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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의 숨결 두만강과 함께(2부)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8월21일 08시19분    조회: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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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래 강보금할머니와 그 일가의 이야기 1,2,3, 제2편 분투편-변강건설
〈100년의 숨결 두만강과 함께〉구성:
머리말
제1편 정착편 - 이주
제2편 분투편 - 변강건설
제3편 행복편 - 개혁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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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네 양로공’—정성록

주인공 정성록의 로고가 슴배인 두만강 변경길 하마래구간, 사진속 구간은 지난해 홍수에 훼손되였던 하마래 서쪽 구간이다.
 
해방후 강보금할머니의 남편 정성록은 성실한 감농군으로 명동골 내외에 널리 알려졌다. 1958년, 정성록이 부유제1생산대(현재 하마래) 첫 대장으로 선발되면서 강할머니네는 명동골을 떠나 하마래로 이사왔다. 강할머니는 그 때 이사 해 든 집은 남편의 성품을 믿어 공소사 주임이 집값 280원을 선대해 주어 산 것이였다며 돼지를 길러 팔고 한푼두푼 아글타글 모아  2년만에 그 돈을 다 갚았다고 말했다.

정성록은 하마래에서 20여년간 선후로 생산대 대장 직에, 명동공사 도로양호대 대장 직에 있었다. 하마래에서 입당한 정성록은 생산대 대장 직에 있으면서 연길(지금의 룡정시)현 삼합공사 신용합작사의 업무 대리원 직도 수년간 겸임했다.그 때 정성록은 현찰이나 문서들을 각반으로 몸에 감고 하마래-삼합구간 30여리 산길을 오르 내리면서 갖은 고생을 다 했다.

“그런 험한 조건하에서도 단 한번의 차질도 없었지.”강할머니는 남편 정성록을 이렇게 치하하면서 혀를 끌끌 찼다.

“길이 없는 고생을 겪어본 사람이여서인지 령감은 길 닦기에 모질 공들였다오. 저 백바위(하마래에서 명동으로 가는 바위산)을 까서 맨손으로 안아낸 돌이 얼마인지 모르오. 그 바위굽에서부터 조동령까지 쉴 새 없이 일했지…”

강할머니는 이렇게 말하며 령감이 돌아간지 36년에 나지만 두만강 길을 보면 령감이 그 길에서 아직도 일하고 있는 것만 같다고 했다.
 

지난 세기 70년대 정성록, 강보금부부가 하마래 집앞에서 찍은 기념사진.
 
정성록은 명동인민공사 모택동사상선전대의 선전극《우리네 양로공》의 원형 인물이다. 연길시 북산가에 살고 있는 정성록, 강보금부부의 큰아들 정원순(63세)은 기자에게 1976년, 자기가 군복무를 마치고 5년 만에 제대하고 집에 돌아와 보니 부유대대 선전대가 금방 부친을 원형으로 선전극《우리네 양로공》을 만들어 공사에서 공연했는데 자기의 동창생 김종현이 부친 역을 맡았으며 온 마을이 떠들썩했다고 말해주었다.

1964년부터 1974년까지 명동인민공사 방송소에서 일하다가 명동인민공사 당총지(1975년후에 당위로)부서기로 사업했던 김일록(71세)선생은 당년의 두만강 변경길과 정성록에 대해 이렇게 회억한다.

1957년전까지만해도 두만강 변경길은 소수레길에 지나지 않았다. 1957년에 현에서는 사원들을 동원하여 백금으로부터 삼합까지의 구간에 기동차량이 통할 수 있을 정도로 도로를 뺏다. 명동공사에서는 1969년에 전문 도로양호대를 설립했는데 정성록이 도로양호대 초대대장을 맡았다.

그 시기 두만강 변경길은 명동공사의‘명맥’이나 다름없었다.

1970년도 11월 중순, 명동공사에서는 전현적으로 전개하는 징구량 상납 대회전에 만전을 가했다. 그런데 탈곡이 끝나자 갑자기 진눈까비가 내리는 통에 량식을 당장 실으러 온다던 차량들이 오지 못했다. 청천—하마래도로의 조동령 구간은 진흙이여서 비가 약간 와도 길이 찰흙 반죽에 기름칠을 한 것처럼 미끌어 자동차든 소수레든 아예 들어설 엄두도 못냈다. 그날 정성록은 즉시 도로양호대 대원들과 생산대 사원들을 동원하여 밤 늦게까지 모래를 메다가 1키로메터 넘는 도로 구간의 미끄러운 문제를 해결하고 차량을 소통시켜 징구량임무를 제때에 완수했다. 그해에 명동공사는 전현적으로 제일 먼저 징구량 상납임무를 완수해 현의 표창을 받았다. 그 막후의 공신이 바로 정성록이다.

조동령을 넘어서면 하마래구간인데 이 구간은 또 온통 사불땅이여서 일단 가물기만 하면 차바퀴들이 푹푹 빠져들어가군 했다. 정성록은 그런 도로상황을 개변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그는 출퇴근 시간이 따로 없었다. 그 길에 제일 먼서 나오고 제일 마지막으로 귀가하는 사람이 바로 정성록이였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정성록의 모습 만은 언제나 도로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정성록 앞에서는 안된다는 일이 따로 없었다. 1972년 7월 중순, 한차례 큰 비로 하마래와 중마래사이의 다리가 뭉청 끊어져나갔다. 다리를 인차 놓을 수도 없고 재력도 딸리는 상황에서 정성록이 림시로 나무다리라도 놓자고 건의했다. 공사에서는 그의 건의를 비준했다. 정성록은 인차 림산작업소와 소통한후 대원들을 이끌고 입산해 아름드리 나무를 벌목해 떼목처럼 묶어놓아 이틀만에 차량이 지나다닐 수 있게 했다.

그해 9월, 연길현 교통국에서 각 공사 도로양호대 대장들을 조직해 하마래에 와 현장회의를 열었는데 정성록이 경험소개를 했다. 1973년 년초에 정성록은 연길현교통국 도로양호사업회의에서도 경험소개를 했다.

명동인민공사 당위 서기로 사업했던 최경묵(82세)선생은 그 시기 명동공사의 기업경영사업과 도로양호사업이 현의 긍정과 표창을 받은데는 정성록의 큰 기여와 갈라놓을 수 없다고 높이 평가했다.

두분은 기자에게 정성록의 주인공적 책임감, 맡은바 사업에 지극히 열중하는 정신은 명동사람들 특히는 자녀들한테 본을 보여주었다면서 정성록의 셋째딸 정춘봉의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정춘봉은 공청단 부유대대 지부 서기로서 하마래서 20살에 입당한후 1974년에 명동인민공사의 추천을 받고 연변사범학교에 진학, 졸업 후 룡정시 북신소학교에서 사업하면서 선후로 룡정시와 연변조선족자치주 및 길림성의 우수교사로 성장한 명동공사의 자랑이였다.
 

강할머니가 연길에서 큰아들(할머니 뒤의 사람), 큰며느리, 손자, 증손녀(손녀의 딸,손녀는 당시 일본 류학 중)랑 남긴 기념사진.
 
기자가 만난 강보금할머니의 큰아들 정원순은 정춘봉의 지차 동생인데 정춘봉이 사범학교로 추천 받아 갈 때 그도 부대에서 입당했다.

이렇게 ‘산(山)사람’, 정성록, 강보금 일가는“가문에 당원이 셋”인 영광시대를 맞이했다.

이는 강할머니네 일가의 제일 큰 자랑이였다. 그 후 이 일가는 명동공사의‘모범가정’으로, 강할머니는 ‘훌륭한 시어머니’로 뽑혀 표창을 받은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제3편 다음날에 이어진다)

길림신문 김영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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