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한세기를 걸친 우리 가문 이민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8월30일 16시20분    조회:105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한세기를 걸친 우리 가문 이민이야기”
김영금《중국조선족백년실록》취재팀


내 고향 오도구

내가 살던 고향은 오도구라고 부르는데 훈춘으로부터 다섯번째 골안이라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란다. 우리 선조가 이 산골로 이주해온게 할아버지(김문삼, 金文三)가 여덟살 때이다.

당시 증조할아버지(김예빈, 金艺斌)는 세 아들, 딸 하나를 거느리고 조선 경원군으로부터 두만강을 건너 오랑캐령을 넘어 이 골짜기 저 골짜기를 더듬다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 정착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 가족이 이곳에 온지가 어언 100년이 잘 된다. 그 사이 증조할아버지네 형제와 할아버지네 사형제, 아버지네 여섯형제, 엄마네 다섯형제, 우리네 여섯형제…… 뻗고 뻗은 수많은 친척들이 오도구골에서 분주히 살았다.
 


그때 오도구에는 만족 몇호가 살고 있었는데 동산밑으로 훈춘강이 흐르고 서산밑으로는 맑은 개울이 흘렀다고 한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포근하고 물 맑고 산 좋은 고장이였다.

어릴 때 할아버지 말씀에 의하면 방금 이 골안에 왔을 때는 몇십호밖에 안되고 대부분이 만족이였다고 한다. 갓 들어와서는 만족 장쾌손(본명 알수 없음)네 밭을 소작부쳤다고 한다. 후에 묵밭을 일구고 주로 피낟(돌피)과 조 감자를 심어 먹었다고 한다.

나의 고향집은 할아버지 때 지은것인데 이 집에서 나의 아버지, 삼촌, 고모 넷 그리고 우리 여섯형제중 다섯이 태여났다. 어릴 때 우리 집에는 13식솔이 사는데다 친척들이 많아 날마다 군일집 같았다. 할아버지의 삼촌되는 분은 우리 집에서 만년을 보냈고 우리 집에서 세상을 뜨셨다. 고모의 말에 의하면 할아버지의 삼촌, 나의 할아버지(그때 두 할아버지를 구별하기 위해 할아버지의 삼촌을 할아버지라 부르고 나의 친할아버지는 아바이라고 불렀다.)는 조선에서 로씨야로 떠돌다보니 30고개를 넘도록 장가를 못가셨다고 한다. 할아버지는 우리 집 웃방에서 조카의 며느리인 나의 어머니 손에서 진지상을 받으며 만년을 조용히 보내시였다.

나의 아버지(김만길, 金万吉)가 장가가서 이 대가정의 주인으로 되면서는 새벽부터 온 식구를 인솔해가지고 묵밭을 일구고 돌밭을 개간하였다. 우리는 대여섯살 때부터 아버지 따라 밭에 가서 돌을 주었다. 오도구골안에다 묵밭을 일구고 피낟을 심고 콩농사도 지었다. 김을 맬 때나 후치질할 때면 자갈에 부딪치는 호미, 보습 소리가 멀리에서도 쟁쟁히 들려왔다. 그만큼 돌이 많은 밭이였던것같다. 여름이면 아버지는 잔밥(우리 조무래기)들을 수레에 실어다 저 밭머리에다 부려놓고 일했다. 일여덟살쯤밖에 안되는 나와 나의 고모는 돌멩이를 주어내다 밭머리에 쌓군하였다. 돌이 어찌나 많았던지 밭머리에는 몇개의 ‘돌산’이 이루어져 늘 뱀들이 모여들었다. 비가 오다가 해가 반짝 나는 날에 뱀들이 돌담우에 얼기설기 누워있는것을 보면 몸이 우들우들 떨리군 하였다.

입쌀은 없어도 좁쌀과 피낟쌀 감자농사를 가득 지어 곡간과 움을 채웠다. 해방될 때에는 상중농의 수준에 치달아 빈하중농의 비판을 받았다. 그때 고향사람들은 돈을 몰랐다. 옷은 베를 짜서 지어입고 연필과 같은 학용품은 콩을 이고 유일한 상점인 합작사에 가서 바꾸어왔다. 병원도 없고 의사도 없었다. 그런 고향을 아버지는 내내 잊지 못하고 되돌아가 살고 싶다고 늘 말씀하셨다.
 

 


고급사에 생명처럼 아끼던 소를 바친 아버지는 정신 나간 사람처럼 밤마다 우사간에 다니더니 끝내는 우사간일을 맡아하셨다. 한전농사를 짓다가 수전농사를 짓게 된 아버지는 얼음이 설겅거리는 논판에서 일하다 랭병을 얻어 49세에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인민공사만세!”를 부를 때 아버지는 밥 한사발을 랭수에 말아먹으면 좋겠다는 가슴아픈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때 아버지는 밭머리에다도 집주위에다도 꼭 같이 배나무, 오얏나무들을 줄지어 심어놓았다. 과일나무아래에는 머루넝쿨과 딸기넝쿨을 가득 심어놓았는데 어찌 보면 과수원같았다.

“마우재가 온다”

내가 일곱살 나던 해인 1945년, 산너머 “마우재”가 넘어와 왜놈들을 쫓아버리는것을 구경하였다. 그때도 지금도 고향사람들은 쏘련사람을 “마우재”라고 부른다. 어째 그렇게 부르는지 나는 지금도 모르고 있다.

“마우재”는 동쪽산으로 넘어오고 왜놈들은 서쪽산으로 도망쳤다. “산”과 “산”이 싸우는 바람에 어간에 끼운 마을사람들은 사흘동안이나 부엌바닥에 거적을 깔고 굶어서 누워있었다. 총알이 창문으로 비발치듯 들이퍼부었다. 땅바닥에 누워 두문불출한 사람들은 모두 눈이 멀뚱멀뚱해 살았는데 수수밭속으로 달아다닌 언덕집 큰아들은 총알에 맞아죽었다.

그해 공교롭게 마을에는 장티브스가 돌아 숱한 사람들이 앓아누웠다. 우리 마을에서는 그 병을 “머저리병”이라고 불렀다. 우리 집에는 둘째오빠가 한창 “머저리병”에 걸려 헛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달구지에 소를 메워가지고 앓고 있는 오빠를 이불에 둘둘 감아 싣고 다른 식구들은 걸어서 서쪽 산기슭을 에돌아 양지구골안으로 피난을 갔다. 피난가는 사람들이 먹을것을 이고 지고 장사진을 이루었다. 난리 때다 보니 세상에 제일 귀중한 물건이 먹을것이였다. 그때만 해도 우리는 왜놈들이 우리 편인줄 알고 일본군대들이 가는 쪽으로 따라갔다. “마우재 온다!”하면 울던 아이들도 울음을 그치고 벌벌 떨던 때였으니깐.

골안어구에 들어서는데 일본군대들이 사정없이 총질하며 우리를 내쫓았다. 하는수없이 숲속에 눌러 앉아있는데 쏘련을 동네집처럼 드나들던 기만이라고 부르는 한 젊은이가 헐떡거리며 달려와 쏘련홍군(마우재)은 우리를 해방시키러 온 사람들이라고 하면서 모두다 돌아와 큰길에 서서 “우라! 우라!”하고 외치라고 하였다. 마을사람들은 그의 말을 믿고 되돌아왔다. 워낙 집 떠나기를 죽기보다 더 무서워하던 마을사람들이라 차라리 “좋아라”하고 돌아왔던것이다. 

코대가 크고 머리, 눈이 노란 “마우재”들을 꼴딱꼴딱 실은 트럭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신작로길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때는 동산에다 큰 구멍 뚫고 나온줄로 알았는데 후에 알고 보니 훈춘 장령자와 춘화의 분수령으로 해서 넘어왔다고 한다.
 


차에 앉은 코 크고 눈이 노란 “마우재”들이 사탕봉지와 과자봉지를 길 량켠 환영군중들에게 휙휙 내리 뿌렸다. 아이들은 과자를 줏고 어른들은 기만이를 따라 팔을 흔들며 “우라! 우라!”하고 외쳐댔다. “우라”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말이다. 저녁에야 아버지가 어디서“우라”가 “만세”라는 뜻임을 알아왔다. 아버지와 삼촌 그리고 온 집식구들은 배를 끌어안고 웃어댔다.
 
“녀자애도 공부 잘하면 출세한다”

우리 조상들이 이주해오던 시기 오도구에 박씨네, 리씨네 등이 줄레줄레 모여오면서 큰 부락이 생겨났다고 한다. 그후 일본군까지 둥지를 틀고 있어 일본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300여명 잘 되였다.

해방후 내가 소학교를 다닐 때 우리 학교도 300여명 학생을 가진 농촌소학교였다. 만족과 한족은 2년에 한번씩 모집했는데 한반에 학생이 겨우 10여명 정도였다.

고급사가 시작되던 때 아버지는 나무잎처럼 무성한 자식들을 공부시키려고 훈춘근처인 신화촌으로 이사해왔다. 잇따라 친척들도 연줄연줄 훈춘근처로 이주하였는데 몇년도 안되여 신화촌과 대유수촌에 널려 살았고 다들 두번째 “오도구촌”이라 불렀다.

밤이면 호랑이와 승냥이가 살판치던 곳, 산마다 돌배, 머루, 다래, 딸기가 넘쳐나던 곳, 철따라 송어와 연어가 욱실거리던 훈춘강, 산천어를 잡아 봄이면 온마을 사람들이 산제사를 지내던 서쪽산 그리고 저녁마다 동네어른들이 모여와 귀신이야기로 밤을 패던 고향집이 지금은 까마아득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춘화중학교에 다닐 때였다. 할머니가 3년동안 하숙집에 바치는 쌀과 남새(채소)를 몇달에 한번씩 실어다주었다. 그 길은 늘 호랑이가 내려오는 무서운 50리 산길이였다. 할머니는 공부 잘하는 나를 좋아하였다. 소학교, 중학교를 다닐 때 무슨 상을 타오면 할머니가 제일 기뻐하셨다. “녀자애도 공부 잘하면 출세한다.”고 말씀하셨다. 할머니와 나는 “출세”가 뭐인지 사실 잘 몰랐지만 아무튼 공부를 계속하면 이 산골을 벗어날수 있다는 뜻으로 리해했다.

어느날 문득 쓰딸린이 사망되였다는 비보가 전해왔다. 학생들은 누구를 불문하고 모두 책상에 엎드려 온 교실이 떠나갈듯이 울어대는 바람에 하루동안 수업이 정지되였다. 학교에서는 반기를 내리우고 애도를 표시하였다.

그때까지 우리 마을은 녀자애들이 18세되기전에 시집가서 아이를 낳았다. 고중을 다닌 사람이 없었다. “녀자애도 공부 잘하면 출세한다”는 할머니의 “명언”은 나더러 중학교, 고중, 대학을 거쳐 마침내 연길로  “출세” 하게 하였다. 자취생활하며 고중을 다닐 때 할머니는 농한기마다 와서 밥을 끓여주다가 석탄가스에 중독되여 세상을 뜰 번했다. 해방후 나는 고향마을의 초대 대학생이 되였다.▣(책임편집/김향덕)

<중국민족>잡지 2017년 3호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일년중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소서, 왕청현 복흥농장 하니베리재배원은 그야말로 독야청청이다. 태양을 피할 나무 한그루 없이 재배원 주변은 훤하고 전망이 좋았다. 2008년 4무 될가하는 밭에&...
  • 2016-07-19
  • 길림성 룡정시 장애인정양보호원 원장 박해옥은 1989년부터 지금까지 장장 27년간 장애인사업을 해오면서 장애인들의 고통을 가장 잘 헤아리고 그들의 보호자가 되여주면서 자신의 사랑을 몽땅 쏟아 넣고 있다. 장애인어린이들과 로인들로부터  “즐거움의 사절”로 불리우는 그는 각급 정부로부터 “...
  • 2016-07-04
  •   김복순할머니께 위문금을 전하고있는 연길시화린무역유한회사 리덕봉총경리(우1) 2016년7월1일,중국공산당창건 95주년을 기념하고자 연길시신흥가도민안사회구역 리미화서기의 안내로 연길시정협상무위원이자 연길시 화린무역유한회사 리덕봉총경리는 본 당위지부위원회 서기로서 지부전체 당원(량승만기검위원,한경...
  • 2016-07-03
  • 국제온돌학회, 중국 봉사활동 "우리 전통에 관심 가져줘 감동"   한국의 전통 온돌(구들) 전문가들이 중국 옌볜 조선족자치주 농촌 마을을 찾아 우리나라 방식의 구들에 성공적으로 불을 댕겼다. 사단법인 국제온돌학회(회장 김준봉 우석대 교수)는 지난 13~20일 중국 지린성 투먼시 캉닝춘(康寧村) 한옥마을과 옌지 ...
  • 2016-06-28
  • 지난달 갑작스럽게 골육종 진단을 받고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한 김호진(가명`16) 군. 농구선수가 꿈인 호진이는 어린 시절부터 손에서 농구공을 놓아본 날이 없다. 건강하고 활발했던 호진이가 이렇게 병상에 누워있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중학교 3학년인 지금 호진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힘든 항암치료보다 ...
  • 2016-06-15
  • 천진시조선족로인협회는 천진시조선족친목회와 상회의 후원하에 진남구 송원 생태 향촌구락부 (津南区国家 农业科技园区 松江生态乡村俱乐部)에서 2016년 단오절 민속 활동을 진행했다. 8시 반부터 륙속 도착하는 전용 버스들에서 내린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명절을 맞는듯한 환한 얼굴로 줄지어 대회장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 2016-06-12
  • 연길시 조양천진 중평촌의 세 농민이 창업과 치부를 함께 꾀하고있어 주목받고있다. 2일, 중평촌회관 부근에 있는 무우와 수박 종자 육성 하우스에서는 벌들이 꽃을 옮겨다니며 “작업”에 충실...
  • 2016-06-06
  • “노다지농사꾼” 황만성인터뷰   지난5월 20일, 필자는 도문시 석현진수남촌 시선툰 김계월씨(62세)의 추천으로 남봉오동 두개 툰(신선툰, 흥진툰)의 유일한 한족 황만성을 인터뷰를 했다. 김계월은 지난 세기 8, 90년대에 성, 주, 시정부로부터 “축산왕” , “성로동모범”, &ldquo...
  • 2016-06-06
  • 어린이들의 명절인 6.1국제아동절에 즈음해 지난달 29일 주당위 조직부는 연길시 공원가두 원예사회구역과 손잡고 사회구역의 결손가정자녀, 빈곤가정자녀들과 함께 영화관람을 하며 특별한 명절을 보냈다. 이른아침,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은 한껏 들뜬 마음으로 사업일군들의 손을 잡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처음 오는 영...
  • 2016-06-01
  • “손자”“손녀”살피기 연길시 연춘지역사회와 연길시 동광소학교는 자매결연단위이다.4년전부터 지역사회의 6명 ”5로”들이 이 학교 6명 불우아이의 “대리할머니” ,“대리할아버지”로 나섰다.    28일,  “대리할머니” ,“대리할...
  • 2016-05-30
  •   新文化延边讯日前,珲春法院首次采用云会议系统审理了一起特殊的离婚案。丈夫到法院起诉离婚,妻子远在外地不肯回珲春参加离婚庭审,怎么办?   主审法官使用云会议系统采取视频开庭的方式,让原、被告和法官三方同时在电脑屏幕上进行庭审,困扰了双方七年的问题,30分钟内在网上解决了。   7年不见妻子 丈夫欲诉离...
  • 2016-05-28
  • ▲ 청주한국병원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는 조선족 심장내과 전문의 김용철씨. 청주한국병원 제공 “최첨단 장비와 의료진들의 뛰어난 의술을 겸비한 청주한국병원에서 심장시술 등 여러 가지 선진의술을 많이 배우고 갑니다.”  지난 달 26일부터 한달동안 청주한국병원(이사장 송재승) 심장내과에서 연...
  • 2016-05-27
  • ▲ 한국 생활 9년차인 백승아씨가 청계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 아직은 ‘조선족’이라고 말하기가 두려운 김명숙씨가 서울시청광장을 돌아보고 있다(오른쪽). ⓒ천지일보(뉴스천지) [인터뷰] '다문화 편견에 마음 아프죠' 결혼이주 여성의 한국생활 한국 발전에 이바지 하고파 [천지일보=강은...
  • 2016-05-23
  • 28년전 세종병원서 심장수술로 새 생명 얻은 강수월씨가 지난 달 세종병원서 아이를 출산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박찬금 간호본부장, 문경원 행정부원장,권정복 간호1부장,강수월씨, 박진식이사장/세종병원 제공 28년전 심장전문병원인 세종병원에서 심장수술로 새 생명 얻은 조선족 강수월씨가 지난 달 세종병원에서 아이 ...
  • 2016-05-21
  • 어머니학교 12기 수료생들과 함께  연길 가정 행복협회 (회장 전웅렬, 부회장 김란영)에서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으며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데 초점을 두고 5월 12일,19일 이틀간 메가스터5층 (원 신흥 파출소5층)에서 아버지학교14기와 어머니학교 12기 수료식을 거행했다. 5월에 수료한 71명 원생들은 "비...
  • 2016-05-20
  • 지난 9일 오후에 우연히 만난 연길시중로년깃털제기협회 초대회장 김해룡로인(74세)은 매일 연길시 모아산 부근 민속촌뻐스정류장동쪽 깃털제기장에서 오전에는 바드민톤을, 오후에는 깃털제기를 즐긴다고 한다. 겉...
  • 2016-05-17
  • 2016년 4월 중순, 기자는 광동성 조선민족 련합회 사무국이 위치한 심수시 보안구 미란빌딩(美兰大厦)에서 서재봉(徐在峰 67세)로인과 김정덕(金正德 73세)로인을 만났다.  하루종일 축축하게 내리는 매우(梅雨)도 마다하고 먼곳에서 온 두 어르신의 몸에서 중년 못지 않은 름름함 풍채가 엿보였다. 이 두분은 현임 광...
  • 2016-05-15
  • 안녕하실줄을 믿고 인사말씀 생략하오니 리해바랍니다. 오늘 저 김용복은 무척 행복하고 기쁜 날입니다. 오늘 저는 저의 인생 3단계의 마지막 세번째로 사재 현금 33억원을 출원해서 “월정어린이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사회 각 계층에서 존경을 받는 일곱분들로 “월정어린이문화재단 준비위원회” ...
  • 2016-05-10
  • “조선족이 남방에 오면 조선말 하나 아는것이 큰 우세입니다. 거기다가 대학전업 하나 잘 쥐면 잘 나갑니다. 어지간하면 관리직에서 일할수있습니다.” “협회 하나 만들자, 서로 교제를 하고 서로 도우면서 지낼수있는 조선족협회를 만들자고했습니다.” 녕파조선족협회의 형성 녕파 호혜영성무역유...
  • 2016-05-10
  • 옌볜 허룽시 봄 진달래꽃 축제 조선족 마을 ‘진달래촌’ 7일간 축제  기와집·비빔밥 등 전통 관광상품화 옌볜의 봄은 한국보다 한 걸음 늦게 왔습니다. 가지만 휑하던 모노톤의 나무들 사이로 분홍, 빨강, 하얀 ‘색’이 피어납니다. 6개 시와 2개 현이 있는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의 면...
  • 2016-05-09
‹처음  이전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