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일본인상기8]대지진 현장에서 느껴본 일본인(Ⅰ)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1월24일 09시22분    조회:121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2011년 3월 11일 금요일, 기억 속에서 도무지 지울 수 없는 날이다.

그날 나는 지인들과 함께 레스토랑에서 조금 늦어진 점심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위는 식사하는 손님들과 커피타임중의 손님들로 법석하였다.

오후 2시 40분 쯤 (후에 14시 46분으로 밝혀 졌음)되였을 때, 레스토랑 건물이 상하로 흔들리는 것을 느꼈다. 평소보다 조금 강한 흔들림이였다. “또 지진이네~” 우리는 항상 그러하듯이 지나가는 지진인 줄로 알고 식사를 계속했다.

사실 일본에 오래 살다 보면 자연적으로 지진에 적응하게 된다. 일본에 온 초기에 밤중에 잠간 흔들린 지진에 놀라서 아들애를 껴안고 밖으로 피난을 했었다. 그런데 나처럼 뛰쳐 나온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이상한 감이 들었고 아무 일도 없듯이 잠 자는 남편 때문에 화난 적도 있었다. 그 후 점차 작은 흔들림에 적응이 되고 그 흔들림의 강도와 시간으로 대체적으로 진도(震度)를 추측할 수 있게 되였으며 지진대책으로 지어진 일본주택이 비교적 안전한 것임을 깨닫게 되였다.

2011년 3월 11일 지진 직후의 이와테현 미야코시(자료사진)

그런데 그날은 아니였다. 지진 발생지와 멀리 떨어져 있는 동경에서도 심하게 흔들림을 감촉했다. 상하로 크게 흔들린 3,4초 후 본지진으로 심하게 좌우로 흔들기 시작했다. 7층인 레스토랑은 30년전의 건물이여서 흔들림이 례사롭지 않았다. 천천히 그리고 강한 흔들림을 느꼈다. 각종 전자시스템이 ‘삐ㅡ삐ㅡ'경종을 울리기 시작했고 주방의 용구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무섭게 요란스러웠다. 더구나 눈 앞에서 흔들리는 건물이 공포 그 자체였다. 일본내의 근대적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이였다니 나도 주위의 모든 사람들도 실성할 정도로 혼란상태에 빠졌다.

나는 평소에 익히고 있었던 지진발생시의 상식대로 인차 테블 밑에 들어갔다. ‘오늘 이렇게 죽는구나’ 거의 절망에 빠졌던 나는 같은 테블의 지인들 모습이 눈 앞에 없음을 그제야 확인하였다. 정신을 차리고 다시 테블 밑에서 나왔다.

“아…” 와중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인들을 비롯한 이들이 로인들을 테블 밑에 피난시키고 있었다. 울고 있는 아이들을 달래면서 테블 밑에서 끌어안고 있았다. 물론 이들은 전혀 모르는 사이들이였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웨치는듯 하는 그들의 목소리가 무서운 공간에 큰 위안을 주었다.

그때의 그 창피함을 나는 잊을 수 없다. 때늦게 나도 인차 그들 속에 끼여 주저앉은 로인을 부축하여 비교적 안전한 곳으로 피난을 시켰다. 그리고 2분간, 두시간으로 느껴지는 그 공포 속의 2분간 그분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영원히 지울 수 없는, 그리고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는 그 2분간의 대 난리 속에서 나는 백년에 한번이라는 대진재의 무서움과 함께 일본인들의 몸에 배인 ‘배려심’을 똑똑히 보았다.

지진이 멎은 후 7층으로부터 내려오는 과정은 또한 나를 머리 숙이게 하는 순간들이였다.

레스토랑안에 있었던 사람들중에는 로인도, 몸이 불편한 사람도 있었지만 건강한 사람이 대부분이였다. 언제 다시 여진이 닥쳐들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시각이였는데 로인과 몸이 불편한 분들을 부축이며 뒤에서 천천히 내려오는 모든 사람들이 내 눈에는 영웅처럼 보였다.

결국 달려 내려오면 10분도 안 걸릴 계단을 우리는 그렇게 20여분을 내려왔다.

후에 그런 피난방법을 두고 여론이 많았지만 ‘우리가 달려서 내려가고 나면 남은 이들의 마음은 얼마나 조급할가…’ 라는 그들의 마음을 두고 동감을 표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였다.

약한 자에 대한 배려, 어린이와 로인에 대한 배려가 일본인들에게 있어서 습관과도 같은 ‘당연함’ 에 해당 되는 일일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제일 먼저 우리가 배워야 되는 미덕이라는 생각이 든다.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ㅡ룡정온천사우나의 ‘때밀이박사’ 김철수도 아빠트 두채에 자가용 갖춘 부자 지금은 목용탕에서 때밀이를 하는 사람들중 조선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때밀이를‘천’한 일로 여기기때문이다. 하지만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17년 째 해오고 있는...
  • 2018-05-16
  • - 아들의 프로 데뷔를 보고 싶은 한 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연 지난 10일 만난 정명호(46세)씨는 수심이 가득했다. 부모가 돼서 자식에게 자꾸만 부담을 주고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했다. 목에 튜브를 낀 정명호씨는 이틀에 한번씩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하는 뇨독증 환자이다. 당뇨합병증을 10여년 앓던 그...
  • 2018-05-14
  • 5월 10일 오전, 연길시 신흥가 민창사회구역에서 점심준비가 한창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고 기념하는 날인 어머니날은 미국에서 유래된 기념일(5월 두번째 일요일)로 연변에서는 ‘3.8’부녀절이나 ‘8.15’로인절 등에 비해 작은 규모의 비교적 생소한 명절에 불과하나 독거로인을 비롯한 로인...
  • 2018-05-12
  • 4월 22일, 일본국제문화원 정걸씨의 초청으로 메지로대학“스즈키선생과 장연선생을 모시는 모임”에 참가하였다. 이날 모임의 현장 ㅡ 동경 닛포리 HOTEL LUNGWOOD으로 가는 길은 연변의“진달래꽃 축제”를 마중해 언녕 핀듯한 울긋불긋한 철쭉꽃들로 필자의 기분이 더 없이 상쾌하였다. 이날 모임은...
  • 2018-05-10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1) ▩양상태(길림) 필자부부가 당시 두손으로 지은 기와집 내가 결혼할 당시(1967년 겨울)에 우로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이가 계셨는데 누이는 출가했고 형님은 항미원조에 나갔다가 제대하여 흑룡강성 대경시에 배치받았다. 아래로는 남동생이 둘 있었는데 ...
  • 2018-05-09
  • 왕청진후대관심사업위원회 전금선 주임의 사적   (흑룡강신문=하얼빈)리강춘 특약기자= 10년을 하루와 같이 왕청현 왕청진 동진소학교의 학교, 유치원어린이들에게 새 이불, 솜신, 솜옷, 교복, 운동복을 보내주고 생활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에게 온갖 사랑의 선물을 보내주는 공산당원이 있다. 그가 바로 왕청진 후...
  • 2018-05-08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응모작품 (10) ▩김삼철(룡정) 1968년 11월 7일, 맏딸 홍화의 돌생일날에 남긴 기념사진 지금도 우리 부부가 처음 엄마 아빠로 되던 날을 생각하면 나는 기쁨보다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처음 맞게 되는 큰애의 출생이 안해의 난산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 줄을 누가 알았으랴. &lsqu...
  • 2018-05-04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9) ▩김성숙(장춘) 앞줄 왼쪽부터 필자의 올케, 어머니, 오빠. 뒤줄 왼쪽부터 필자의 동생부부, 언니, 필자 김성숙. 어머니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우리 네 형제자매를 근면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키우기에 힘썼다. 후에 아들을 장가 보내 며느리를 삼은 후에는 화목한 가...
  • 2018-04-25
  • 료녕성 무순시에서 해방전쟁시기 전투영웅 리형선 로인을 만나 취재중인 김광현. 출판기념모임에서《백년실록》교육편의 주필인 허청선 교수와 담소하고 있는 김창석. (지난 기에 이어) 김광현과 김창석은 아예 우리 지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남도로부터 취재를 시작하기로 기획을 하고 일시불로 동영상카메라 4대를 샀다...
  • 2018-04-20
  • -10여년간 불우이웃에 따뜻한 애심손길 보내준 김선희씨 이야기 휴빈스의 애심천사 “영채꽃”은 누구? “불우이웃을 돕는데 전혀 사심이 없고 항상 앞장선다” 는 짤막한 기사제보를 보내준 사람은 화룡시 팔가자진에서 옹기된장기업을 운영하고있는 장청옥, 김경남씨 부부였다. 함께 애심활동을...
  • 2018-04-16
  • 연변주봉체육양성쎈터 양매 외지에 오래 있다 보면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창업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줄곧 외지에서 사업했던 연길시주봉체육양성쎈터 교장 양매(43세)도 그중 한 사람이다.   “창업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줄곧 장춘, 심양 등지에서 기업관리에 종사했습니다. 외지에 나간 시간이...
  • 2018-04-13
  •     광둥 후이저우에 조선족 노인협회가 탄생되기까지   (흑룡강신문=하얼빈) 자녀따라 광둥에 진출한 노인들은 악착같이 버텼다. 적응기는 빡셌고 슬펐다.   친구도, 말 동무도 없었던 노인들은 정착 과정에서 문화적응, 언어장벽, 여가생활의 부족, 병원 등 사회 공공 기관  사용의 불편은...
  • 2018-04-1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7) ◈김철우(위해) 40여년전 유치원 문예공연을 마치고 남긴 기념사진(중간 필자) 오늘 나는 책상서랍을 뒤지다 우연히 흑백사진 한장을 땅에 떨구었다. 허리를 굽혀 손에 쥐여들고 보다가 나는 세월 속에 깊숙이 묻힌 추억의 바다 속에 저도 몰래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 2018-04-11
  • 일본에 온 지가 어느덧 18년이 돼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두번이나 변할 정도의 기나긴 세월이 눈깜짝 할 사이에 흘러갔다. 일본은 나에게 희망도, 행복도, 저주도, 슬픔도 배워준 희로애락의 인생교과서이다 . 나는 처음부터 그 어떤 웅대한 포부나 꿈을 가지고 일본류학을 선택한 것은 아니였다. ...
  • 2018-04-10
  • 5일 새벽, 깊은 산속에서 54년간 묵묵히 렬사기념비를 지켜온 리은기 로인이 지팡이를 짚고 오솔길을 따라 마을에서 그닥 멀지 않은 산속을 향해 걷는다. 길의 저 끝에는 혁명렬사기념비 하나가 조용히 서있었다. 기념비에 도착한 로인은 손으로 기념비 우에 앉은 먼지를 살살 닦아내고는 기념비 앞에 두 발 모아 바로 선 ...
  • 2018-04-09
  • 일본전통씨름대회인 오오즈모 현장 지난 4월 4일 일본 교토 마이즈루 (舞鶴) 시에서 있은 봄철 오오즈모(大相撲:일본전통씨름대회)에서 인사말을 하던 시장이 갑자기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졌다. 긴급한 상황에서 관객석에 있었던 두 녀성(간호사)이 도효(土俵:경기장)에 올라 구급조치를 취하게 되였고 잇따라 다른 두명...
  • 2018-04-09
  • [편집자의 말] 을 펴내면서 북경 등 전국 각지 네티즌들 뿐만 아닌 한국 네티즌까지 아낌없는 고무격려와 응원의 박수에 감사를 드린다. 에서는 서로 떨어져있는 부모와 자식간의 그리움, 원망으로부터 서로 리해해주고 서로 응원해주는 가족사랑을 담은 내용이였다면 (3)에서는 부모와 자식간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가면서...
  • 2018-04-08
  •    든든한 "무송서기"로 불리우는 룡정시 석문촌 김무승 제1서기   (흑룡강신문=하얼빈)류설화 렴청화 연변특파원= "우리 무송서기한테 토닭알하고 된장을 좀 줘야겠는데, 우리 아바이는 매일 저녁만 되면 날이 추워져서 무송서기가 잠을 못잘가봐 '우리 집으로 데려올까'하고 물어보오. 어디 그뿐이오...
  • 2018-03-2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 ◈김삼철(룡정) 당년의 ‘땅소나기’ 김병인로인(84세). 당시 조선에 사는 한 친척 화가가 놀러 왔다가 그렸다고 함.
  • 2018-03-29
‹처음  이전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