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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정세월의 유정 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2월11일 15시44분    조회:7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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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0)

◇김규칠 구술 김숙자 대필

행복한 만년을 보내고 있는 김규칠 로인 부부

내 나이 금년에 80이다. 긴 세월 수많은 일들을 겪다 보니 잊혀지지 않는 사연도 많다. 그런데 요즘 인정세태가 삭막해서 그런지 그 때 그 일이 어쩐지 더 자주 떠오르군 한다.

온 나라가 문화대혁명의 세례를 겪고 있던 지난 세기 70년대 초반의 일이다. 그 때 나는 화룡현 동성공사 해란소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교육이 무산계급정치를 위해 복무하고 교육은 생산로동과 결합해야 한다는 당중앙의 호소에 따라 학교마다 거의 반공반독(공부 절반 로동 절반) 상태에 있었다. 학교마다 실험전이 있었는데 학생들은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농사일을 하였다.

그리고 학교에서도 규모가 작은 공장 같은 것을 꾸릴 수 있었는데 학교지도부에서는 토론 끝에 문구(文具)공장을 꾸리기로 결정하였다. 피나무로 만든 20센치메터짜리 자대는 학생들이 수업 때마다 쓰는 도구인지라 수요가 많을 것 같았다. 사업의 수요로 학교지도부에서는 공장원료를 구매하는 일을 내가 책임지게 하였다. 자대를 만들자면 나무원료도 중요하지만 관건적인 것은 신나수(新那水)라는 화학품이 있어야 한다. 당시 료해한 데 의하면 온 연변에 딱 한곳 연변대학 화학계(학부)에서 생산한다고 했다.

공장의 정상적인 운영을 위해 이 화학품은 반드시 구매해야 한다. 나는 날자를 잡아서 기차를 타고 연길로 갔다. 물어물어서 겨우 연변대학 화학계 신나수창고를 찾아갔는데 눈앞에 벌어진 정경에 그만 겁부터 집어먹었다. 두 사람이 한참 크게 얼굴을 붉히며 말다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들어보니까 한사람은 신나수창고 보관원이고 한사람은 훈춘에서 온 운전수였다. 창고보관원은 신나수가 없다고 딱 잡아떼고 운전수는 기어코 내놓으라 야단하는 것이였다.

나는 그들의 말다툼을 보면서 아차 오늘 헛걸음을 하였구나 하고 실망하는 마음에 온몸의 맥이 탁 풀렸다. 힘들게 멀리서 왔는데 헛걸음을 하였다고 생각하니 발걸음도 제대로 내디딜 수 없었다. 멍하니 한참 서있는데 두 사람의 다투는 소리가 끝나고 쾅 하고 문 닫기는 소리가 귀 아프게 들려왔다. 와들짝 놀라 어쩔 바를 모르는데 창고보관원 선생님의 욕소리가 들린다. “아무 것도 모르는 주제에 큰소리 치기는, 참 꼴 보기 싫어서!” 그리고는 성차지 않아 한참이나 얼굴이 벌개서 씩씩거리다가 무심결에 옆에 멍하니 서있는 나를 아래우로 찬찬히 살펴보더니 무슨 일로 왔는가 물어보는 것이였다.

그 때 나의 행색은 말이 아니였다. 자식 넷에다가 안해마저 장기환자여서 가정형편이 곤난하다 보니 옷차림새가 형편 없었다. 낡은 골덴 옷도 여러 곳을 기운데다가 ‘왕바신’마저 몇군데나 기웠었다. 실말이지 그 때 나는 긴장한데다가 옷차림까지 너무 창피해서 쳐다보는 그 선생님의 눈을 피해 책상밑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였다.

나는 그 선생님의 묻는 말에 얼른 모주석어록이 씌여있는 학교소개신을 내밀었다. 그는 한참 소개신을 들여다보더니 “학교 선생인가?” 하고 억양을 낮추어 상냥하게 물었다. 나는 얼른 그렇다고 말하면서 “학교공장에서 꼭 써야 하는 물건인데…” 하고 말끝을 흐리면서 근심어린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보관원선생님은 나를 좀 기다리라 하면서 밖으로 나가는 것이였다.

한참 지나서 그 선생님이 어느새 20근 들이 비닐통 두개에다 신나수를 골똑 채워가지고 들어섰다. 나는 너무도 놀랍고 고마워서 어쩔 바를 몰랐다. 없다고 딱 잡아떼던 신나수가 어디에서 났는가고 조심스레 물어보니 땅크 안의 건 이미 없고 고무호스에 남은 걸 담아왔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나는 급히 학교에서 가지고 왔던 돈 200원을 내밀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땅크 안의 것이 아니라며 기어코 돈을 안 받는다 한다. 너무 미안하고 황송해서 어쩔 바를 모르는데 이렇게 무거운 물건을 어떻게 가지고 가겠는가 물어온다.

신나수는 화학약품이여서 뻐스에 가지고 다니지도 못한다. 나는 미안한대로 새끼줄이나 바줄 같은 거 있으면 등짐에 지고서 역전까지 가겠다고 하였다. 기실 그 시기 연길에 하남다리 하나 뿐이여서 연변대학에서 역전까지 걸어가려면 한시간 넘는 시간이 걸려야 했다. 보관원선생님은 이렇게 무거운 물건을 어떻게 등짐에 지고 역전까지 가는가 하면서 나더러 잠간 기다리라고 하더니 한참 후에 해방패자동차를 모는 운전수를 데리고 와서는 이 선생님을 역전까지 모셔다 드리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이였다.

세상에 이런 일이! 나는 너무도 감동되여 몸둘 바를 몰랐다. 농촌학교에서 아무런 연줄도 없이 그것도 처음 만난 나 같은 허줄한 사람한테 이런 고마움을 베푸는 그 선량한 마음을 어디에 비기랴!

연길역까지 도착한 후 나는 또 한번 아차 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신나수 값도 받지 않았는데 담배 사서 피울 돈이라도 일전 한푼 내놓지 못하고 온 일이 얼마나 후회되는지 몰랐다. 그 후 한동안 내 머리 속에서는 항상 그 일이 또렷이 떠오르면서 감동을 금할 수 없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지난 세기 90년대 어느 날 나는 한동네에 사는 사촌처남네 딸의 잔치에 갔다가 우연히 그 창고보관원 선생님과 한상에서 또 만나게 되였다. 첫눈에 알아본 것이 아니고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다 나니 옛날 연변대학 화학계에서 사업했다 하고 신나수창고 보관원 사업을 했다기에 찬찬히 눈여겨보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그 옛날 고마운 선생님이 분명했다.

“아이구, 선생님… 선생님을 이 자리에서 만나다니…” 나는 무작정 그 분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 때까지도 어리둥절해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그 분과 같은 상에 앉은 사람들에게 나는 그 때 그 날의 이야기를 다시 한번 낱낱이 전했다. 이야기를 하는데 여태 가슴 속에 고스란히 남아서 잊혀지지 않던 그 날의 고마움이 일시에 솟구치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나는 그렇게 신세를 지고도 담배 한대 제대로 권하지 못하고 급급히 떠났던 그 때의 미안함도 함께 전했다.

알고 보니 사촌처남 처가집 친척이 되는 분이였다. 그 날 나는 그 선생님한테 수수께끼 같은 그 일의 자초지종을 물어보았다. 왜서 훈춘에서 온 운전수한테는 신나수가 없다고 딱 잡아떼고 안 주고 나같이 허줄한 농촌교원한테는 돈도 안 받고 차까지 내여서 역전까지 바래주었는지 말이다. 그 선생님이 말씀하시기를 그 시기 학교마다에 로동자선전대가 들어와서 학교를 관리한답시고 얼마나 우쭐렁거리는지 꼴 보기가 싫었는데 그 날 훈춘에서 온 운전수도 자기가 로동자선전대라고 너무 으시대는 꼴이 눈꼴 사나워서 기어코 없다고 딱 잡아뗐단다. 그 날 우리는 지나간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고 나는 그 기회에 옛날 미안했던 마음을 술에 담아 술잔이 찰찰 넘치게 부어올려 다소나마 위안받을 수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제일 어려울 때 따뜻한 손길을 보내준 사람이다. 40여년이 지나갔지만 오늘날까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 않고 도리여 생생하게 떠오르는 무정세월 속의 유정 이야기, 항상 내 마음을 따뜻하게 하고 즐겁게 했던 그 때 그 일, 정직한 창고보관원 선생님의 대바른 일, 내 평생에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한페지로 오늘까지 남아있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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