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남명학 부주장과 같이 일하던 하루
조글로미디어(ZOGLO) 2017년12월25일 15시11분    조회:94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4)

◇주청룡(룡정)

1973년, 내가 생산대대의 과학실험소조에서 일할 때였다. 그 때 우리 대대에도 주에서 공작대들이 내려와있었는데 당시 주당위 선전부 리휘 부장이 우리 공사에 온 공작대의 총 책임자로 우리 대대에 와 주둔해있었다.

그 해 여름의 어느 날 리휘 부장은 대대의 공작대원들을 거느리고 우리 실험전에 와서 콩기음을 맸다. 그 날 오전 우리가 한창 기음을 매고 있는데 찌프차 한대가 밭머리에 와서 발동을 끄는 것이였다. 지금은 찌프차라면 보잘 것 없는 차지만 그 때 세월에는 찌프차라면 현급 이상의 간부들이 타고 다니는 차였기에 찌프차 한대 지나가도 모두 그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보던 시절이였다. 그런데 우리 밭머리에 와 서다니.

우리는 모두 일손을 멈추었다. 차에서 한 늙은이가 내리자 리휘 부장이 마중나가 그와 반가이 악수를 하는 것이였다. 나는 틀림없이 주의 간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리휘 부장이 이 분이 주정부 남명학 부주장(그 시기의 직명은 주혁명위원회 부주임이였지만 습관상 그냥 부주장이라고 불렀다)이라고 우리에게 소개를 하였다.

나는 남명학이라고 하는 분이 주정부 부주장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한번도 뵌 적은 없었는지라 정말 기쁘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옷차림새나 모든 행동거지를 보면 주의 간부다운 데는 한곳도 없이 보통 백성과 같아보였다.

그 때 우리 실험소조에는 로농 한분에 계셨는데 남명학 부주장께서는 인사가 끝나자 자기가 왔기에 일에 지장을 준다며 그 로농의 호미를 앗아쥐고 자기부터 엎드려 기음을 매였다. 그의 기음솜씨도 이만저만이 아니였다.

쉼시간에 우리는 남주장 주위에 둘러앉았는데 그이는 노래 한수씩 부르며 즐겁게 쉬자고 하셨다. 그 때는 지정된 몇수의 혁명가요만 부르는 시절이라 모두 혁명가요 한수씩 불렀다. 그 자리에서 누가 이번에는 남주장님의 노래를 들어보자고 하였다. 남주장께서는 기다렸다는듯이 인차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셨는데 “여보시오, 농부님네 이 내 한말 들어보소-” 하며 첫마디를 떼시였는데 〈농부가〉였다. 모두 의아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자 “왜 이 노래가 나쁜가? 농부의 소박하고 랑만적인 마음을 담은 노래인데 왜 못 부르겠는가?” 하며 끝까지 불러내려갔다. 그러자 모두 “야, 듣기 좋은 노래다.” 하며 박수갈채를 보냈다.

그 때 내가 지금 이런 노래를 불러 되는가고 묻자 “이 노래가 우리 조선민족의 민요인데 왜 자기 민족의 민요도 못 부르겠는가?”고 하시는 것이였다. 그리고 나서 “농사철에 대해서는 로농들이 더 잘 알고 있으니 상급의 지시라고 하여 맹목적으로 따르지 말고 로농들의 말을 들어야 하오.” “조 홰지(파종)는 곡우를 끼고 해야 하고 콩갈이(파종)는 립하를 끼고 하면 되오.”라고 하시며 곁에 앉은 로농에게 “로인님 제 말이 어떤가요?” 라고 물으신다. 이에 그 로농은 “글쎄 말씀입니다. 우리는 정말 그렇게 하였으면 좋겠는데 상급에서 어찌나 일찍 파종하라고 하는지. 우리는 리해가 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남주장께서는 “지금은 군대 대표요, 반란파 대표요 하며 맹목적으로 지휘한다니까.”라고 하면서 우리에게 앞으로 로농들을 존중하고 로농들의 말을 잘 들으라고 분부하셨다. 그리고는 인차 “자, 또 한쉼 매여봅시다.” 하며 호미를 들고 일어나 선줄로 나가시는 것이였다.

점심때가 되자 공작대들은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게 되였는데 불의에 닥친 일이라 아무런 준비도 없었다. 우리 지방은 한전고장이라 그 때 시절에는 입쌀 한줌도 없어 그저 조밥을 대접하였다. 그런데 남명학 부주장은 오후에도 계속 나가 기음을 매고 하루 밤 우리 집에서 묵을 타산이였다. 그런데 우리로 놓고 말하면 저녁식사 대접이 문제였다. 어떻게 저녁에 또 조밥만 대접하겠는가? 도시와 멀리 떨어져있는 농촌이라 어디에 가서 돼지고기도 사올 형편이 못되였다. 그렇다고 하여 돼지를 엎어놓는다는 것도 말이 안되였다 그래서 실험소조의 조장은 우리 어머니더러 저녁에 두부를 앗아 대접하자고 하였다.

쟁글쟁글 끓는 뙤약볕에서 남주장은 우리와 같이 온 하루 기음을 매시고 저녁에 해가 넘어서야 집으로 들어오셨다. 조장이 나를 시켜 술을 사오려는 것을 눈치챈 남주장께서는 친히 자기의 호주머니에서 돈을 꺼내 나를 주면서 이 돈으로 술을 사오라는 것이였다. 내가 한사코 안 받자 그이께서는 호미자루로 나의 엉덩이를 때리면서 “쇼주(小朱) 왜 내 말을 안 들어?” 하면서 기어이 그 돈으로 술을 사오라고 하시는 것이였다. 그렇게 되여 나는 남주장에게서 호미자루에 엉덩이를 한매 얻어맞았다. 어쩌면 그 한매가 나의 마음을 그렇게도 기쁘게 하였던지? 나는 그런 매라면 자꾸만 맞고 싶었다.

저녁식사 때 조장이 “남주장께서 모처럼 우리 실험전에 오셔서 온 하루 이렇게 수고를 하셨는데 우리 농촌에는 아무 것도 대접할 것이 없습니다. 저녁에 두부를 준비하였는데 서거픈 음식이지만 많이 잡수십시오.”라고 말하자 남주장께서는 “두부 만치 좋은 음식이 어디에 있소. 자 어서 가져오오. 그럼 오늘 농촌 아주머니가 손수 앗은 두부를 먹어봅세.”라고 말씀하시며 술잔을 들고 “자, 우리 같이 한잔 들어봅시다.” 하며 음식상의 기분을 돋구었다.

저녁식사가 끝나자 다른 사람들은 다 가고 남주장께서와 비서, 그리고 리휘 부장이 남아서 우리 집에서 주무시게 되였다. 사실 그 날 남주장께서는 사업토론을 하려고 리휘 부장을 찾아왔었는데 리휘 부장이 공작대를 거느리고 우리 실험전에 와서 기음을 매자 그이도 우리와 같이 온 하루 일하시고 저녁에 리휘 부장과 사업토론을 하시는 것이였다.

사업토론이 끝나자 나도 그 자리에 끼여서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그이가 리휘 부장(한족)과 이야기를 할 때 한어를 아주 류창하게 하시여 완전히 한족 같은 느낌이였다. 그래서 어떻게 되여 한어를 그렇게 류창하게 하시는가고 물었더니 어릴 때에 연길현 동성용 동성촌의 한 한족지주의 머슴으로 들어가서 돼지를 먹이다가 후에 공산당을 만나 혁명에 참가하였다고 하는 것이였다. 나는 그 날 저녁에 그에게서 많은 혁명이야기를 들었다.

이튿날 아침식사가 끝나고 그들이 떠날 때에 비서가 식비를 계산하여 내놓는 것이였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주장 어른께서 여기에 오셔서 일하신 것만 하여도 송구한 일인데 어떻게 식비를 받을 수 있습니가?” 하며 한사코 받지 않았다. 며칠 후 우리 어머니가 재봉기을 쓰려고 재봉기에 덮었던 보를 드니 그 밑에는 식비 명세표와 현금이 놓여있었다. 우리가 보지 않는 틈에 비서가 넣어놓은 것이였다. 그 때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는 너무도 감격되여 눈물까지 훔치였다.

지금 세월 같으면 남주장께서 우리 실험전에 오셔서 우리와 함께 기음을 매시고 쉼시간에 이야기를 나누시는 장면들을 핸드폰으로 사진 찍어 영원한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길 수 있겠지만 그 때 세월에는 손에 쥔 것이 호미자루 밖에 없었으니 그런 영상자료 하나 없이 그저 머리속의 추억으로 남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유감으로 되고 있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윤주임이 아니였더라면 어찌 오늘의 태흥촌이 있겠습니까? 윤주임이 진날 마른날 가리지 않고 진심으로 촌민들을 위해 동분서주한 덕분에 우리가 이렇게 기와집에서 살고 마을의 길도 다 닦았...
  • 2016-03-08
  • 좋은 일을 하는데는 남녀로소 너나할것없다.오늘은 3월 5일 “뢰봉 따라배우기 날”이다.신흥소학교 2학년 4반 학생들은 최미화 담임교원의 지도하에 은하양로원을 방문해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양...
  • 2016-03-05
  • 시아버님 사랑 태명숙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이다.”란 말이 있다. 시아버지 사랑을 듬뿍 받았던 나로서는 이 말이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다. 내가 23살 꽃나이에 꽃너울 쓰고 박씨가문에 시집 온지도 어언 2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옛날부터 한동네 혼사는 힘들다고 했건만 나는 복받은 녀자인지 한동...
  • 2016-03-03
  • “사람 목숨이 달린 일인데 선뜻 나서야죠. 이후에도 이런 일에 부딪치면 서슴없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겁니다. 다만 이번의 경험을 통해 앞으로는 더욱 과학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택해야 함을 느꼈습니다.” 2일, “내 고장 훌륭한이 ” 영예를 수여받은 주신흥공업집중구 사업일군인 서염봉(38세)을...
  • 2016-03-03
  • 소고기명세장에 깃든 이야기 백순천   전야에 황금오곡 무르익고 산등성이마다 단풍이 빨갛게 불타던 맑은 가을날 나는 오랜만에 내가 나서 자란 그립던 옛 고향을 찾아가 고향사람들을 만나보려고 서둘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이날은 촌로인협회에서는 대형뻐스를 세내여 훈춘 방천으로 관광을 떠나는 날이였다....
  • 2016-03-02
  •   * 음악과 함께 (한동준의 사랑의 서약)   그토록 바라던 시간이 왔어요 모든 사람의 축복에 사랑의 서약을 하고 있죠 세월이 흘러서 병들고 지칠때 지금처럼 내 곁에서 서로 위로해줄수 있나요 함께 걸어가야 할 수많은 시간 앞에서 우리들의 약속은 언제나 변함없다는것을 믿나요 힘든 날도 있겠죠 하지만 후...
  • 2016-03-02
  • 결혼전엔 몰랐던 남편의 모습 미정    련애시절 남편은 생일이나 기념일에 꼭꼭 생화를 한묶음씩 안겨주면서 근사한 식당에도 자주 데려가 맛 있는 음식도 사주었다. 난 그의 자상함에 반했다. “결혼하면 너만을 바라보며 밥도 빨래도 청소도 육아도 다 도와줄게.”라던 그가 결혼후 달라졌다. 물론 결...
  • 2016-03-01
  • 한국인도 반한 중국식 정통 양꼬치의 맛 ‘북경양꼬치’ 북경양꼬치 중국동포가 운영하는 중국식 정통 양꼬치 요리 인기 [디트뉴스24] 고기 마니아들 사이에서 요즘 떠오르는 음식 중 하나가 양고기다.최근 양고기 요리가 대중화되면서 양꼬치 업소가 늘고 있다. 우리에게 그다지 친숙하지 않은 양고기는 꼬치라...
  • 2016-03-01
  • 일본 도쿄에서 '샘물 한글학교'를 이끌고 있는 전정선(60) 교장. 그는 2008년 이 학교를 세우고 재일 조선족 2 세인 어린이들에게 한국어와 한국 역사를 가르치고 있다.일본 내 조선족 2세에 한국어 교육   "한중일 3국 잇는 '코리안' 키울 것"   "새 친구들 환영합니다! 입학생, 재교생 다같이...
  • 2016-02-29
  • 아빠의 빈자리 청목   나의 직업은 의사이다. 그것도 하루에도 몇번씩 수술실을 드나들어야 하는 외과의사이다. 의사라는 직업이 다른 사람들 보기에는 참 매력적인 직업일지는 모른다. 사람들의 존중을 받고 수입도 괜찮고 참 이처럼 완벽한 직업이 또 어디에 있겠느냐고 많은 사람들은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 매력뒤...
  • 2016-02-29
  • 선인장의 웃음 김화 “그동안 수고했다. 참 예쁘구나!” 색갈이 선명하고 깔끔한 세개의 봉오리가 자기를 보라는듯 의기양양하게 행복한 웃음을 보내고있다. 그동안 거의 방치하다시피 돌보지도 않았는데 선인장은 잘 견뎌내고 고운 모습을 보여주고있다. 너무 예뻐 허리를 굽혀 입을 바짝 대고 칭찬을 해주었다....
  • 2016-02-26
  • 숨 차게 달려온 나날   박영옥 장백산아래 안도현에는18년동안 이름을 떨쳐온 한 민간단체가 있다. 그 이름은 바로 “안도현백두산아동문학협회”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전인 1997년 1월의 어느날, 리룡득선생이 날보고 지금 연변에 아동문학협회가 공백인데 안도에 이 협회를 설립할 계획이니 김동철씨가 ...
  • 2016-02-25
  • 시력을 잃은 안해에게 꽃향기를 선물하기 위해 수천송이의 꽃을 집주변에 심은 한 일본인 남편의 지극정성이 화제를 모으고있다. 미야자키현 신토미초에 사는 구로유키 쿠로키와 그 안해 야스코 쿠로키는 매일 60마리의 소를 돌보아가며 바쁜 삶을 살고 있었다. 지난 1956년에 결혼한 이래 슬하에 두 자녀를 둔 부부의 꿈은...
  • 2016-02-24
  • 아버지와 술 문 호    늘 한결같은  친구가 나에게 고급술 한병을 선물하였다. 왠지 술병을 마주하니 눈앞이 흐릿해진다. 친구와의 소중한 우정도 그렇지만 문뜩 아버지가 그리워진다… 아버지는 애주가였다. 어쩌면 술은 아버지에게 어쩌면 밥같은것이였다. 아마도 밥과 술중에서 선택하라면 아버지는...
  • 2016-02-24
  • [경남맛집]창원 양덕동 '어린양양꼬치' 왁자한 선술집 느낌이다. 화려하게 꾸며져 있지 않아서 부담 없이 색다른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어린양양꼬치'다. 양꼬치집이라고 듣고 들렀더니, 중국 요리 메뉴가 빼곡하다. 중국어로 쓰인 메뉴판도 있다. 조선족 출신의 박순화...
  • 2016-02-23
  • [더 나은 미래] "결혼 이주 여성이라면 모국어 살린 통역사 어때요?" 소셜벤처 '온아시아'의 도전 이상선(37)씨는 열한 살 아이의 엄마이자, 중국이 고향인 결혼 이주 여성이다. 10여년 전, 한국인 남편을 따라 서울에 터를 잡은 후 5년은 '육아'에 올인했다. "애가 좀 자라서 취직하려고 보니 나이가 30대...
  • 2016-02-23
  • 300원의 가치 조홍매                                       대학교를 졸업한지도 어느덧 올해로 강산이 한번 변할만큼의...
  • 2016-02-23
  • 세뱃돈을 고향도 아닌 이국타향에서 값지게 사용하는 이가 있다. 그는 다름 아닌 한국 인천남동고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장상훈 군이다. '타인에게 베푼다는 것은 받는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도 행복해지는법이다.' 이런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아서인지 장상훈 군도 약세군체에 후원의...
  • 2016-02-20
  • 추억의 손목시계 리기춘 어느날 나는 책상서랍을 정리하다가 서랍구석에서 22년이라는 긴 세월을 고스란히 잠들어있던 《상해표》손목시계를 꺼냈다.입김을 홀홀 발라가면서 하얀 손수건으로 먼지를 살살 닦으니 깨끗한 모양새가 그대로 깔끔하게 들어났다.어찌보면 보잘것없이 평범한 손목시계이지만 나에게는 애뜻한 감회...
  • 2016-02-18
  • 그래도 다홍치마가 더 곱지 않을까? 맹영수   지난1년남짓한 기간에 친척, 친우 그리고 지인들의 부름을 받고 20번의 결혼식에 참가했다. 결혼식은 평생의 연분을 맺는것으로써 응당 즐거운 맘으로 축하하여 주고 술잔을 들어야 했다. 허나 번마다 그런 즐거운 기분만은 아니였다. 왠지 어떤 결혼식에 참가하고 귀로에...
  • 2016-02-17
‹처음  이전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39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