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나라 사람들인 일본인들은 나무 한그루, 벌레 한마리에도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힐링의 명소로 찾는 일본정원, 늪을 중심으로 정원석과 자연의 나무, 풀로 꾸며진 그 곳에 가면 ‘인간을 자연의 일부'라고 여기는 일본인들의 감성을 짙게 느끼게 된다.
자연을 가까이에 하려는 일본인들의 노력은 단독주택의 마당에서도 확연하게 느끼게 된다. 있는 그대로 옮겨온 듯한 소박한 꾸밈들이 ‘돌아가는 자리’인 집(가족)에 대한 편안함과 애틋함을 심어주는듯 싶다.
단독주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인 주차장외의 땅에 조그마한 여유만 있으면 일본인들은 나무를 심거나 잔디 혹은 꽃을 심는다. 그들의 생활에 미도리(緑)는 홀시할 수 없는 존재인 것이다.
집주인의 취미에 의해 매화꽃나무, 사쿠라꽃나무, 동백꽃나무, 감나무, 귤나무 등 나무들이 선택되고 덕분에 계절의 변화가 기분 좋게 장식되는 주택가로 된다.
일부의 가상풍수(家相風水)에 의하면 참대나무와 감나무가 잘 자라는 집안에는 가운이 번창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는 잘 몰라도 우리 집 근처에는 감나무를 심은 집들이 수두룩하다. 가을이 되면 주렁주렁 달린 오렌지색의 열매가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무성하다.
관상용만이 아니고 열매를 먹을 수 있어서 일거량득인 감나무.
떫은 감은 알콜로 떫은 맛을 제거한 후 껍질을 벗겨서 곶감으로 만들고 단감은 그대로 겁질을 벗겨서 먹는 것이 최고인데 사각사각 씹는 감각과 달콤함이 조화를 이루는, 게다가 비타민C까지 풍부한 녀성들에게 더없이 귀중한 과일이기도 하다.
나에게 있어서 단감계절은 손꼽아 기다려지는 맛있는 계절인 동시에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에 착잡해지는 계절이기도 하다.
우리 고향에서는 단감보다 홍시가 널리 알려져있다. 그래서 감은 곧 홍시라고 여기는 분들도 많았다. 다른 과일과는 달리 생생한 단감은 거의 본 적이 없었고 곶감이거나 얼군 상태의 감을 먹군 하였는데 그것이 홍시였던것이다. 일본에 온 후 주변의 일본인들에게 잘 익은 단감을 랭동고에 넣었다가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요즘에는 그것이 지인들 속에서 류행되기도 한다.
몇해전 건강이 안 좋으신 아버지께 생생하고 달달한 단감맛을 보여드리려고 고향행 때 짐 속에 단감 다섯개를 넣었다. 일본에 몇번이나 다녀가셨는데 한번도 단감철을 만나지 못하신 아버지께 그 맛을 꼭 알려드리고 싶었던 것이다.
생각 밖에 나리타공항에서는 아무 문제 없이 순조로웠다. 하지만 연길공항의 체크시스템은 짐 속에 들어있는 감들을 빠뜨리지 않았다. 예상했던 일이였다.
가방을 열고 하나하나 천천히 감을 꺼내면서 주변이 조용해지길 기다린 나는 일단 머리 숙여 사과하면서 사정이야기를 꺼냈다. 아버지가 심한 병환에 계시는데 마지막일지 모르는 이번 기회에 아버지께 꼭 대접하고 싶어서 안되는 일인 줄 알면서 갖고 왔다고, 앞으로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이니 한번만 봐주십사 하고…
안된다는 쌀쌀한 표정의 세관인원(당연한 일이였다)들을 마주하고 한 30분 정도 사정사정을 하다 보니 눈물코물범벅이 되고 말았다. “안되는 일이다”를 반복하던 그들이 결국에는 나더러 단감을 가지고 나가라고 했다. 물론 한번만 봐주는 것이라는 엄포를 놓았다.
그렇게 억지로 넘어온 단감의 경과를 병상에 계시는 아버지께 재미있게 회보하느라 한시간 쯤 흘렀을가…
“아껴서 잘 먹어야지.” 하시고 나서 아버지가 잠드시는 바람에 또 한시간이 흐르고…
거의 두시간 후에 아버지께 단감을 깎아드리려고 주방에 나간 나는 그만 주저앉고 말았다.
글쎄 힘들게 넘어온 단감이 홍시처럼 랭동고에 보관돼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생생한 과일인 줄 몰랐던, 아니 감이란 원래부터 얼구었다가 먹는 과일인줄 알았던 식구중의 누군가가 당연한 일을 하듯 랭동고에 넣었던 것이다.
너무 안타까와서 애처럼 엉엉 울었던 그 때 일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결국 아버지는 단감맛을 못 보시고 그 두달 후에 돌아가셨다...
해마다 감철이면 그 일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옛날 일본에 간 손문(孫文)이 단감의 자연적인 단맛에 감탄을 했다는 에피소드를 어디서 본 적이 있다고 이야기를 하시던 그 때의 아버지의 모습이 오늘도 눈앞에 선히 떠오는다.
/길림신문 일본특파원 리홍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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