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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뜨기가 모주석의 접견을 받기까지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2월5일 10시56분    조회: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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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흑룡강신문=하얼빈)1932년 4월 조상봉씨의 셋째 아들로 태여난 나는 다섯살때 어머니를 잃고 12살때 기둥같이 믿던 아버지마저 급성장염으로 돌아가셨다. 동년시절 한창 공부할 나이에 지주의 머슴질도 해보고 학도공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나는 조직의 배양으로 1952년 10월에 사업에 참가하고 입당을 하고 료녕성 신빈현에서 공청단간부로 활약했다.

  1961년 3월, 나는 신빈현 홍묘자공사서기로 임명받고 그 곳에서 장장 11년동안 사업했다. 현성에서 70여리 떨어진 홍묘자는 그 당시 전기도 없고 버스도 통하지 않았으며 사무실도 없고 간부도 없었다. 앞이 캄캄하였다. 사업을 전개하려니 28세 새파란 나이에 도무지 궁리가 나지 않았다. 나는 이를 사려물고 사업에 착수했다.

  우선 낡은 초가집을 세내여 사무실로 정하고 당지에서 몇명의 간부를 선발하고 전 공사 8000여명 군중들 속으로 들어갔다. 급선무가 농민들의 식량과 가축들의 사료문제 해결이였다. 나는 현정부를 찾아 가을에 갚기로 약정하고 량식과 가축에게 먹일 두병을 실어왔다. 차가 통하지 않아 공사간부들이 등짐으로 량식을 메여다 농민들에게 나눠주었으며 콩깨묵으로 앙상하게 여윈 마소들을 살찌웠다다. 감격에 겨운 농민들이 땀벌창이 된 공사간부들의 손을 꼭 잡고 눈물을 흘리면서 춘경생산을 시작했다. 모내기철에 일손이 모자라 나는 30여명 교원들과 함께 15일간 사원들 집에서 먹고 자면서 모내기를 끝냈다. 그해 홍묘자공사는 어거리대풍이 들어 알곡 총생산량이 원래 300여만근으로부터 일약 450만근으로 뛰여올라 봄에 현에서 꿔온 량식도 다 갚아주고 공량임무도 넘쳐 완수하였다. 장령자 대대의 농민들은 기쁨에 겨워 새로 가공한 입쌀과 노루, 꿩 등 산짐승 고기를 수레에 싣고 공사로 와서 감사를 표했다.

  그후 나는 3년 남짓한 시간에 악전고투하여 전 공사에 전기를 끌어들이고 황페한 민둥산에 식수조림을 하였으며 해마다 막대한 재해를 안겨주던 거류하를 다스리기 위해 제방둑에 버드나무를 심고 큰 골짜기에 저수지를 건설했다. 해마다 9월이면 전 공사 농민들을 동원하여 현성으로부터 공사까지 70여리되는 길을 수리하여 버스가 통하게 했다. 농민들의 주택을 개선하기 위해 낡은 초가집을 허물고 벽돌기와집을 새로 지었다. 농민들의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여 나는 현위, 현정부로부터 모범서기로 표창받았다.

  1964년 9월, 내가 현위지시에 따라 한창 '4청운동'에 참가하고 있는데 전국 소수민족참관단의 성원으로 북경에 가서 국경 15주년 경축활동에 참가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감격으로 설레이던 그 나날 나는 료녕성소수민족참관단(조선족 6명까지 합하여 모두 20명)의 일원으로 북경에 가서 대형 음악서사시 “동방홍”을 관람하고 전국인민정치협상회와 국가민족사무위원회에서 주최한 초청야회에 참가하였으며 민족문화궁을 참관하였다. 특히 10월 5일 모주석, 류소기, 주덕, 등소평 등 당과 국무원 지도자들의 친절한 접견을 받고 기념사진을 남겼다. 접견할때 앞줄 세번째 좌석에서 비록 모주석과 악수하지 못했지만 나는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물을 금할수 없었다. 사회주의 조국이 아니였다면 나같은 시골뜨기가 어떻게 나라의 최고 지도자를 만나뵐수 있었겠는가!...

  세월이 흘러 내 나이 86세가 되였지만 인생의 년륜에 새겨진 홍묘자공사 11년의 력사는 영원히 잊을수 없다.

  /대련시개발구조선족로년협회 조만선 구술, 리삼민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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