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름다운 추억 83]기와집을 지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5월9일 14시25분    조회:1949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1)

▩양상태(길림)

필자부부가 당시 두손으로 지은 기와집

내가 결혼할 당시(1967년 겨울)에 우로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이가 계셨는데 누이는 출가했고 형님은 항미원조에 나갔다가 제대하여 흑룡강성 대경시에 배치받았다. 아래로는 남동생이 둘 있었는데 큰동생은 중학교에 다니며 기숙하였고 막내동생은 소학교에 다녔다.

우리 집은 오두막집이였다. 미닫이를 사이두고 아래방에는 아버지, 어머니와 막내동생이 거처하고 웃방은 나와 안해가 거처했는데 아버지는 잠자리가 거북하다고 밤에는 한마을 독신령감 집에 가서 주무셨다. 이듬해 아들을 보면서 식구가 불어나자 나는 송곳자리 같은 잠자리에 누워잤다. 이때 마침 누가 이사를 가는 바람에 우리가 그 집을 사게 되였다.

‘새집’은 두칸 초가집인데 한족식으로 정주와 방 사이에는 간막이벽이 있고 방은 중간에 바닥이 있었는데 북쪽은 우리가 차지하고 남쪽에는 부모님과 막내동생이 거처했다. 밤에 잘 때 포장은 쳤지만 사돈네 안방 같았다.

그마저도 몇년이 지나자 북쪽 담벽이 겨울에는 얼었다가 봄에는 녹으면서 내려앉다 보니 뒤문이 찌부러져 창문도 열 수 없게 되였다. 집이 무너져가자 할 수 없이 집을 지어야 했다.

그 때 농촌엔 벽돌집이라곤 검불밭에서 수은 찾기였다. 어느 마을을 지나다가 혹시 벽돌집을 볼 때마다 ‘나도 저런 벽돌집에 한번 살아봤으면’ 하는 욕심이 솟구치군 했다.

‘울고 싶자 때린다’고 안해와 상의하여 집에 있는 자금을 추려 기와집을 짓기로 했다.

집 짓는데 첫시작은 지반 닦긴데 집을 허물고 제자리에 짓다 보니 외일이 많았다.

수년 묵은 짚이영을 걷어내니 집채더미 같았다. 그것을 한마름 한아름씩 말아서 실어내고 그 다음 산자 뜯기, 서까래 뜯기, 도리 뜯기, 보장 뜯기, 기둥 빼기, 창문 뜯기, 새문 뜯기,지게문 뜯기를 해치운 다음 벽을 허물어 잘게 부순 후 집터자리를 평평하게 고르고 다진 후 반메터 넓이에다 약 2메터 깊이로 집기초 구뎅이를 파고 자갈모래로 구뎅이를 메운 후 물이 구뎅이에 고이도록 푹 주고 쇠지레대로 쑤시여 꽁꽁 다진다. 일이 소천엽에 똥 쌓이듯하였는데 전적으로 나와 안해 그리고 친척들이 했다.

지반을 닦은 다음 미장군이 기초돌을 쌓고 그 우에 벽을 쌓기 시작한다.

벽 쌓을 때 쓰는 모래와 그 외 수요되는 모래가 작은 집채더미 만했다. 나와 안해가 리야까로 한차 한차 실어날라서 모은 것인데 그 많은 모래를 어떻게 실어날랐는지 꿈만 같다.

집짓기 일을 시작하자 나는 보초를 보기 위해 헛간에서 잤으며 그 외 식구들은 사양소에 거처하다 보니 잠자리가 몹시 불편했다.

집짓기가 밥짓기라더니 안해는 일군들 밥을 하고 집식구들을 보살펴야지 눈코 뜰 사이 없었다.

하루는 70고령의 어머니가 4살 먹은 손자를 데리고 집 짓는 것을 보러 왔는데 얼음과자 장사가 왔다. 애가 얼음과자를 사달라고 할매한테 칭얼댔다. 그 당시 집에 돈 한푼 없었다. 설마 있다 해도 푼전도 쪼개여 쓸 형편이다. 안해가 보다 못해 안타까와 “이다음 집 다 짓거든 얼음과자 많이 사줄게.”라고 구슬렸더니 “엄마 그럼 집 다 지은 다음 꼭 사줘야 돼.”라고 대답하는데 눈물이 글썽했다. 그 광경을 목격한 나는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났다.

나는 애연가였다. 한시라도 담배가 떨어지면 참지 못한다. 너무 담배 생각이 간절할 때면 길바닥에 버려진 담배꽁초를 남몰래 주어서 종이에 말아 피우기도 했다.

저녁을 먹은 후 밤하늘의 별이 쳐다보이는 헛간에 누우니 온몸이 아프고 쑤셔났다. 그리고 오늘 아이에게 그렇게 먹고 싶어하던 몇전짜리 얼음과자 한꼬치 못 사준 것을 생각하니 내가 왜 집짓기를 시작하여 개고생을 하나 싶어 몹시 후회되였다. 그러나 또 멀지 않아 벽돌집에서 살 것을 생각하니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일이 꼬일라니 그 해는 특별이 비가 많아 사흘돌이로 비가 오는 바람에 늦가을 무렵에야 벽을 다 쌓았다. 집짓기에서 집벽을 다 쌓으면 집짓기 절반일은 한 셈이다. 이제 지붕만 씌우면 된다. 어쨌든 땅이 얼기 전에 기와를 얹어야 했다. 집짓기란 얼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일이 많이 진척되여가니 온 집식구들이 기뻐하였다.

안해, 막내아들, 손자와 함께 집앞에서 찍은 1990년대 사진

이때 뜻밖의 일이 생겼다.

그 날 나는 지붕틀에 쓸 송목을 사려고 돈 300원(그 때 당시 300원이면 보통가정의 일년 분배돈이다)을 호주머니에 넣고 공공뻐스를 타고 목적지를 향했다. 승객이 어찌나 많은지 뻐스안은 콩나물시루 같았다. 림장에 와서 목재 값을 바치려고 양복 안 호주머니에 손을 밀어넣으니 돈뭉치가 없다. 호주머니 아래쪽은 쭉 째져있고.

“앗차 소매치기당했구나!”

나는 갑자기 가슴이 덜컹하면서 두방망이질했다. 그 날 어떻게 뻐스를 타고 돌아왔는지 제정신이 아니였다. 뻐스에서 내리자 남들이 안 보는 구석진 곳에 가서 그만 제자리에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실컷 울고라도 싶었지만 억이 막혀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집에서 안해는 눈이 빠지도록 기다릴 텐데, 내가 이렇게 큰일을 저지르고 무슨 낯으로 집에 들어가나, 집에 가서 안해에게 무어라고 말할가, 이 일을 알게 되면 그가 얼마나 상심할 것인가, 나의 머리속은 온통 실뭉치를 풀어놓은듯하였다. 도무지 집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기 주저앉아 그냥 있어도 뾰죽한 수도 없다. 나는 생각할수록 오늘 그 패덕한 소매치기군놈이 괘씸하여 치가 떨렸다. 그러나 깨진 사발 금 맞추기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갈 곳은 그래도 집 뿐인지라 억지로 일어나 터벅터벅 집으로 향했다.

내가 파김치가 되여 집에 들어서니 눈치 빠른 안해는 대뜸 무슨 일이 있음을 짐작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어찌된 일이냐고 연거퍼 물어왔다. 나는 할 수 없어 된꾸지람을 들을 각오를 하고 소매치기에게 당한 일을 자초지종 이야기했다.

“돈 잃어버렸으면 잃어버렸지 너무 속상해 말아요. 사람 있으면 돈도 있으니 돈은 앞으로 벌면 얼마든지 돼요. 설마 또 무슨 방법이 있겠지요.”

당시 안해라고 왜 속상하지 않았으랴. 지어 녀자로서 나보다도 더했으련만 생각밖에 이런 말로 위로해주는 것이였다. 나는 안해의 고마운 마음에 북받치는 감격으로 두눈에 이슬이 맺혔다.

추위는 곧 닥쳐오겠는데 송목을 못 사면 집도 절도 없는 우리는 어디 가서 겨울을 날 것인가. 그 많은 돈을 어디서 구하겠는가? 나와 안해는 몇날 며칠 밤을 지새우며 궁리해도 애간장만 탔다.

이때 마침 군대 간 막내동생이 이 소식을 알고 자기 처삼촌에게 부탁하여 송목을 사게 되였다. 그 처삼촌이 림업국에 잘 아는 사람이 있어 집재목을 외상으로 사서는 림업국 차로 직접 우리 집까지 실어다준 것이다. 그들이 얼마나 고마웠던지…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더니 아마 이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송목을 실어오자 껍질을 벗긴 후 목수를 청하여 지붕틀을 짜고 동네 남정들을 청하여 지붕틀을 올렸다. 그리고 들보에다 붉은 천을 달아매고 폭죽을 터치고 일군들에게 풍성한 술상을 차려 대접했다.

지붕틀을 올린 후 그 우에 서까래를 걸친 후 반자를 깔고 기와걸개를 고정시킨다. 이런 목수일이 끝나면 와공들이 기와를 잇는다.

집 외부 일이 끝나면 집안 장식인데 안벽 바르기, 중천반 하기, 간막이벽 쌓기, 구들 놓기, 부엌 쌓기, 아궁과 부뚜막 하기, 창문에 유리를 맞추기, 전기 가설 등 일들이다,

큰처남은 전공이며 유리 끊는 기술도 있었다. 작은처남과 함께 자전거를 타고 20여리 상거한 우리 집에 와서 전기 가설을 하는데 초겨울이 림박한지라 손이 시렸지만 극복하고 창문에 유리를 끼워주었다.

큰동생은 기와, 문재료를 사주고 지붕틀을 짤 송목도 련계해주었다. 웃마을에 사는 자형은 병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매일 와서 일머리도 틀어주고 집 짓는 일을 보살펴주었다. 친척들의 방조가 없었더라면 우리 집은 일어서지 못했을 것이다.

‘땀 흘린 밭에 풍년 들고 피 흘린 곳에 기와집 짓는다’고 98평방 되는 덩실한 조선식 기와집이 처음으로 동네 한가운데 일어섰다.

새집들이 하는 날 온 식구들이 기쁨으로 하여 만면에 웃음꽃이 피게 된 것은 두말할 것도 없다.

이 집에서 로부모를 모셨으며 일점혈육 없어 오갈 데 없는 새 장모도 십여년 모셨고 두 동생도 돌보면서 공부시키고 성가시켰다. 슬하에 아들 삼형제를 두었는데 막내아들은 대학공부도 시켰고 손자손녀 뒤바라지도 이 집에서 했다.

나와 안해는 한평생 이 기와집에서 가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흑룡강신문=하얼빈) 리흔 기자 = 어린시절 한족가정에 입양됐던 조선족 조향염씨가 현재 생모를 애타게 찾는 사연이 본지를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 7월 30일 오전 조향염씨는 기사를 읽고 전화했다는 길림성 부여시 도뢰소(陶赖昭)진 홍성촌의 방금녀씨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에서 방...
  • 2014-08-20
  •   “저는 마음 잇기 차대의 성원입니다. 택시에 두고 내린 물품을 임자한테 되돌려주는것은 저의 응당한 책임입니다.” 19일, 17년간 도문시에서 택시운전수로 근무하면서 선후로 15만원에 달하는 금품과 수십대의 핸드폰을 주어 임자를 찾아 돌려준 양계걸(53세)은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2000년 여름, 한 ...
  • 2014-08-20
  •   지난 12일 한화 1550만원(9만원좌우)를 택시에 두고 내렸다가 세시간만에 되찾은 김승호(61세)씨는 연길 택시운전수 왕소(王潇)의 아름다운 소행에 련신 고마음을 표했다. 한국에서 귀국한지 이틀째 되는 날인 12일, 김승호씨는 친구한테서 꾼 돈을 돌려주려고 훈춘으로 떠났다. 아침 7시 50분경에 그는 동생과 함께...
  • 2014-08-20
  •   “자식들이 다 쓸데 없어유... 늙어서 손에 갚힌게 없으니 이 모양이 잖아유...” 어느 김씨로부부는 한때 유족한 생활을 누리다가 정년에 되자 저금도 없는데다 안로인이 시름시름 앓기까지 해 늘 자식들 넉두리만 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다양한 양로혜택으로 점점 자식한테 기대려는 로인들이 ...
  • 2014-08-19
  • 왕청현 공상은행에는 현재 50여명의 리퇴직인원이있다. 한때 이 은행에서는 “자관회(自管会)”라는 방식으로 로간부를 관리하였는데 자아관리에 애로가 많았고 누구도 관계하지않는 상태로 되여 로인들이 흩어지게 되였다. 10년전 이들은 전주 은행계통에서 처음으로 로인협회모식을 인입하여 관...
  • 2014-08-18
  • 《꽃타령》을 열창하고있는 최홍련(오른쪽) 최종화(왼쪽) 자매.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펼친 《로인절맞이 우리노래대잔치》프로에서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오성촌에서 온 74세나는 최홍련과 최종화(70세) 두자매는 민요 《꽃타령》을 성수나게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들 자매가 이 노래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
  • 2014-08-18
  • 18일 오전 10시경, 연변천지예술단에서는 “절씨구씨구 세월 좋아~”가 흘러나온다. 남들이 다양한 문예공연들로 로인절을 축하하는 가운데 이들은 절로 “세월 좋아”를 부르면서 춤판을 벌리는것이다. 가족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며칠 남지 않은 공연준비에 다급해진것이다...
  • 2014-08-18
  • 훈춘 농장로인협회의 미담   “우리 농장의 로인들은 그야말로 보배랍니다. 지금 전 주의 조선족농촌마을의 형편은 서로 엇비슷하지 않습니까. 젊은이들과 장년들은 모두 로무송출에 나서다보니 마을에는 로인과 어린이들만 남아있지요. 그러다보니 마을을 지키고 가꾸는 중임이 로인들의 어깨에 놓여졌지요.&rdq...
  • 2014-08-18
  • 90세 고령의 시아버지를 살뜰히 보살펴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킨 며느리가 있습니다. 연길시 하남가두 춘광사회구역의 마귀금녀성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올해 67세인 마귀금이 아침에 일어나 하는 첫 번째 일은 시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는것입니다. 이어 따뜻한 음식을 시아버지에게 대접하고 세수를 시키고 면도질을 ...
  • 2014-08-15
  •   1일,연길시적십자회에서 한국에 무료수술치료를 보냈던 6명의 선천성심장병어린이가 건강을 회복하고 귀국했다. 연길시적십자회에서 한국 구세군, 한국 동의성단원병원과 련합하여 전개하는 이 “적십자심장병어린이구조항목...
  • 2014-08-14
  •   아껴 먹고 아껴 쓰며 모은 돈 선뜻이 기부 지진재해구를 향한 연변인민들의 자발적인 사랑의 손길이 이어지고있다. 5일,연길시 공원가두 원신사회구역의 김주일로인(84세)이 적십자봉사소를 찾아 로당원으로서 운남 로전지진재해구에 저그마한 성의라도 표하고싶다며 성금 200원을 내놓았다.료해한데 따르면 김주일로...
  • 2014-08-14
  •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 12일, 40여명 로인과 15명의 봉사자가 탄 뻐스에서 신나는 노래소리가 울려퍼진다. 연길시 진학가두 네잎클로버자원봉사협회가 로인절 30돐을 맞아 독거로인들과 “연길구경”에 나선것이다. 9시경, 뻐스는 연길시 진학가두판공실앞에서 출발해 첫 지...
  • 2014-08-14
  •  “1984년 8월에 주로인협회가 정식으로 설립됐고 또한 8월 15일을 연변의 로인절로 정했습니다. 올해 우리 주에서는 문예공연, 좌담회, 로년사업 30년 대사기, 화책, 정책자문 등 일련의 활동으로 로인절을 맞이하게 됩니다”고 7일 주로인협회 전평선회장이 로인절 30돐을 맞으면서 우리 주에서 펼치게 될...
  • 2014-08-14
  • 연길시공원소학교 3학년 3학급 담임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이 더운 여름 선생님 학급의 동가영학생이 방학간의 휴식시간을 리용하여 저의 단위에 와서 사무실을 청소하고 책도 정리하고 화분에 물을 주면서 저의들의 손을 도와주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마냥 뛰여놀고 싶을텐데 그래도 저의 단위 선생님들의 심부름도 생글생글...
  • 2014-08-13
  • 만성신부전증(뇨독증)으로 한국 서울성모병원에서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있던 가수 송경철씨가 석달간의 국외치료생활을 잠시 접고 지난 8월 8일 연길로 돌아왔다. 12일, 연길시 공원가의 한 세집에서 송경철가수를 만났다. 거액의 병원치료비때문에 진달래광장부근에 있던 살림집을 팔다보니 귀국해 부득불 조촐한 세집생활...
  • 2014-08-13
  • 10일 연길시 10명의 로인들은 팔도 강락장수원 홍명옥원장의  초청에  복숭아 두광주리를 사가지고 팔도로 향하였다.  홍원장은 오래전 같이 글쓰던 통신원들이라고 잊지 않고 로인절도 곧 돌아오는데 물좋고 공기좋은 곳에 와서하루를 즐기라면서 자리를 마련하였다. 홍원장은 장수락원의 50여명 로인들 보...
  • 2014-08-13
  • 지난 3월, 뻐스 탈 때 있은 일이다. 차에 오르려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짧게 전화 받고 급한대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마음으로 콩나물시루속 같은 차안을  비집고 올라갔다. 오른손으로 공중손잡이를 잡고 힘겹게 서서 정신줄을 놓고있는 사이 도적이 손쉽게 웃옷호주머니의 쪼르래기를 활짝 열고 스...
  • 2014-08-12
  • 8월 8일 연길공원 남쪽광장은 한복차림에 알룩딸룩 모자를 쓴 로인들로 붐비였다. 이날 연길시 진학가두에 자리잡고있는  흔흔로인락원에서 축수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고령로인들이 조용히 모이여 자아양로를 해오는 흔흔로인락원은 지금  60여명으로 80세이상 로인이 30여명 년장자는 92세이다. 연변로인절을 ...
  • 2014-08-12
  • 닷새전 서울에서 악몽 같은 비보가 갑자기 날아왔다. 한국 카톨릭대학 서울성모병원에서 골수의식 치료를 받고있던 박운봉교수가 엄중한 합병증으로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했다는것이다. 몇달전 모두가 큰 기대를 안고 한국으로 병치료를 떠나는 교수님을 배웅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청천벽력 같은 비보에...
  • 2014-08-12
  •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 단장 황성렬씨   “우리 합창단을 전문화된 합창단으로 승격시켜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고싶습니다.” 11일,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퇴직하고 2013년 3월에 퇴직일군들로 구성된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을 설립한 황성렬(65세)단장을 ...
  • 2014-08-12
‹처음  이전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