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추모글]별찌는 짧은 순간이여도 밝게 빛난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5월21일 00시00분    조회:2385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애심을 천직으로 간주하고 빛을 밝히다 생을 마감한 고 강철수씨를 추모하면서

《사람으로 세상에 태여나서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부동하다.그러나 생명의 의의를 가늠하는 척도는 생명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불타는 족적으로 세상에 남긴 한 사람의 선행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가치관이다.

이 말의 의미는 애심으로 오로지 남을 돕는 것을 락으로 여기며 우리 주변을 빛내다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 강철수(康哲洙)씨의 아름다운 생을 기리는 추도사의 한 구절이다.

5월 18일,길림성 연길시장의관 추모광장에서는 불우이웃을 돕는 것을 자신의 천직으로 간직하고 삶을 빛내다가 영영 우리 곁을 떠난 후사모 회원 고 강철수씨의 추도식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1978년생인 강철수씨는 길림성 화룡시 숭선진 태생으로서 지난 5월 10일, 한국의 한 작업현장에서 크레인 작업을 하다가 의외의 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진 후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당일 39세로 생을 마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고 강철수씨(오른쪽)가 생전에 후사모 리경호 초대회장으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고 있는 모습

이날 추도식에는 고 강철수씨의 가족, 지인 그리고 후사모(연변 후대사랑과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모임) 회원들과 고 강철수씨 생전에 도움을 받은 적 있는 일부 인사들도 참석해 비통을 함께 하였다.

연변후사모 고문(초대회장) 리경호가 사회한 추도식에서 후사모 회장 김태국은 추도사를 통해 《고 강철수씨한테도 생전에 보통사람들이 누리는 아주 소박한 소망이 있었는데 바로 집 한채를 장만하고 사랑하는 녀자를 만나 장가 가서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이였다》며 《그러나 열심히 일해 벌어들인 돈은 모아지다가도 누군가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전부 기부로 이어져 남는 것이 없었다”고 감동적인 사연을 털어놓았다.

강철수씨는 생활조건이 훌륭한 집안에서 태여나지 못했다.

세상물정를 알기 시작하면서 주위를 비교하고 자신은 남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다.

고 강철수씨(가운데)가 생전에 두부방을 차리고 후사모 애심봉사 회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있는 집도 그에게는 사치였고 남들은 모두 건강한 아버지,어머니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렸지만 그에게는  자기 몸도 제대로 건사하기 어려운 장애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던것이다.

정부의 혜택으로 시골 양로원에서 살고 있는 것이 그들 가족의 현실이였고 그런 일상은 언제면 끝날지 모르는 밑도 끝도 없는 고단한 삶의 연속이였다.

경제난으로 어렵게 초중을 겨우 졸업하고 그는 1995년 영광스럽게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군하여 대련 81379부대에 입대하게 되였다.

부대생활은 그에게 종래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당과 정부,그리고 사회에 보답하려는 마음은 굳센 의지와 열정을 다하는 행동으로 표현되였다.

부대에서 그는 우수전사로 퇀급 상장도 수차 받았고 참군 2년 만에는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99년 강철수씨는 3년간의 군부대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였다. 집에 돌아온 후 얼마 안되여 그는 이제 더 이상 사회에 무거운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양로원에서 남편을 잃고 뇌출혈로 누워계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무작정 빈손으로 연길로 왔다.

고 강철수씨(뒤줄 가운데)가 생전에 후사모 회원들과 함께 등산후 남긴 사진

세집에서 어머니를 돌보며 생존을 위해 날마다 그는 몸의 기운이 다 빠지도록 악착스레 일했고 그의 노력은 주위에서 찬사와 함께 따스한 도움의 손길로 찾아왔다.

운신을 못하는 어머니 목욕을 전담해주던 조양천아줌마, 늘 과일을 가져다주던 시장아줌마, 엄마가 좋아하는 순대를 대접하라고 가져온 마음씨 고운 순대아줌마, 늘 곱돌장을 끓여주던 70세 고령의 할머니와 김밥을 두둑하게 담아주시던 김밥아줌마,체력로동을 하는 사람이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며 고기국을 자주 가져다주던 오주시장의 소고기국집 아줌마, 항상 뜨근한 아침상을 차려주던 주인집 아줌마, 그외에도 주변의 마음씨 고운 분들의 따스한 손길로 인해 그는 용기와 힘을 얻고 더욱 열심히 일했다.

항상 가난과 역경으로 남보다 못하고 부족함을 느끼며 살았지만 그는 꼭 하나만은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

가난했지만 그는 마음의 부자였다. 그것은 열심히 노력해 당과 정부,그리고 고마운 이웃들의 은혜와 은정에 보답하려는 착한 마음가짐과 굳센 의지의 표현이였다. 하루 또 하루 시간이 흘러갈수록 마음 한가운데 불우한 이웃을 도우려는 애심의 마음이 불길처럼 활활 타올랐다.

2002년부터 강철수와 동생 강철봉씨 형제는 연길서시장에서 삼륜차부로 힘들게 일하면서 매일 1원씩 매달 30원의 돈을 무명으로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그 후 이들의 선행은 무려 10여년 넘게 꾸준히 이어졌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는 송금통지서를 단서로 고마운 주인공 강철수, 강철봉씨를 찾는 데 무려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 때로부터 그의 사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였고 연변에서는 매일 1원씩 성금을 모아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를 후원하는 열풍이 일었다. 그 후 그의 기부는 쉼없이 이어졌다. 불우한 학생들을 지원하라고 후사모에 2만원(인민페), 연변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시 연변부덕축구구락부에 만원, 백혈병을 앓는 김은정학생에게 5천원, 골수암으로 앓는 공원소학교 김가영학생에게도 만원, 사랑의 집에도 수천원 어치의 육류를 보냈고 화룡고아원에 한화 30만원,부모 없는 어린 손자를 키우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에게 5천원…수없이 보낸 기부는 이들에게 생의 용기와 힘이 되였다.

연변후사모 리경호 회장에 따르면 강철수는 생전에 몸이 어느 곳에 있든 상관없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만나거나 혹시 후사모 위챗을 통해서 불우한 이웃들의 사연을 들으면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무척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열심히 창업해서 번 돈이나 외국에 나가 힘들게 번 돈이라도 앞뒤를 고려하지 않고 맨먼저 기부했다고 한다. 강철수씨가 생전에 어려움에 처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부했는지 일절 성함을 밝히지 않은 원인으로 지금까지 누구도 정확한 수자를 알 수가 없다.

2016년 강철수씨는 창업으로 연길지질6소 부근에 두부방을 차렸다. 그는 매일 이른새벽에 일어나 밤 늦게까지 열심히 두부를 만들어서 무상으로 사회봉사를 하였다.

고 강철수씨가 생전에 두부방에서 고아원에 지원할 두부를 포장하고 있는 모습

룡정시 도촌자애원, 동불사진새별관, 연길희망복지원…이외에도 많은 고아원들은 그의 기부대상이였다.

추호도 리기적이지 않고 오로지 수많은 불우이웃들을 위해 성심성의로 애심을 베풀며 뛰였다.

강철수씨가 한국에서 사고를 당하고 돌아갔다는 비보를 접하고 생전에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이날 장례식장에서 비통한 눈물을 쏟았다.

연변희망복지원 유영애 부원장은 지난 5월 10일, 강철수씨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이것이 진실인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며 너무나 큰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철수씨가 두부방 경영을 접고 2017년 12월, 로무로 한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류영애 부원장을 만나 《한국에서 이번에 열심히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와 집도 마련하고 좋은 녀자를 만나 장가도 들겠다며 기뻐하던 일이 어제 갔은데...》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강철수씨는 생전에 다른 고아원과 마찬가지로 종종 희망복지원을 찾아 아이들에게 과일과 맛 있는 음식을 사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두부방을 차린 후에는 늘 바쁜 시간에도 금방 앗은 따스한 두부를 복지원에 가져왔다.

고 강철수씨 추도식에 참가해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

복지원의 애들은 강철수씨를 ‘두부삼촌’이라고 편하게 부르며 속심을 나누군 하였다.  애들이 축구구경을 하고 싶어하자 연변팀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자기 돈으로 입장권을 사서는 축구구경도 함께 다니며 매우 친근하게 보냈다.

늘 아이들에게 자신도 어릴 적에 복지원에서 자랐다며 공부를 잘해 훌륭한 사람이 되여 꼭 사랑과 도움을 받은 만큼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추도식에서 류영애 부원장이 대독한 희망복지원 아이들이 보낸 10여통의 편지와 고 강철수씨 생전에 도움을 받은 분들이 전하는 마디마디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리미화학생은 편지에서 《우리가 그냥 철수삼촌을 허물없이 ‘두부삼촌’이라고 불렀는데 이렇게 우리 곁을 영영 떠나게 돼서 뭐라 형언할 수 없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두부삼촌’은 힘들게 두부를 만들어서 우리들에게 자주 두부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하늘은 참 무정하네요. 왜 착한 삼촌이 이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나게 하는지요. 비록 삼촌은 영영 우리 곁을 떠났지만 삼촌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은 우리는 삼촌의 말씀을 꼭 명심하고 삼촌의 뒤를 따라 앞으로 사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리복자씨는 눈물범벅이 되여 준비한 원고를 읽다가 도중에 비통을 참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려 주위를 또 한번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2015년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에서 리복자씨의 딸 김은정이가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고 천문수자와도 같은 병원비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방송된 후였다.

며칠 후 프로책임자로부터 당시 한국에서 일하던 강철수란 분이 딸의 병치료에 보태라고 인민페 5천원을 송금해왔다며 돈을 리복자씨한테 전달해왔다. 낯모를 분이 보내온 돈을 받고 그녀는 당시 매우 고마웠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고 한다.

고 강철수씨(가운데)가 생전에 후사모 회원들과 함께 등산 후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는 모습

힘들게 피땀으로 번 돈을 이렇게 선뜻 낯모를 딸의 병치료에 보태라고 내밀 수 있다는 그 마음과 용기에 너무 존경스러웠고 미안했다.

그 후에야 강철수씨가 어린 시절부터 불구자 부모의 사랑 없이 어린 동생을 거느리고 매우 어렵게 생활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여 매우 감동되였다고 한다.

리복자씨는 《그렇게 힘들고 곤혹스러운 생활환경 속에서 살면서도 수많은 불우한 이웃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보내며 살아온 강철수씨가 이렇게 빨리 하늘나라가 떠나갔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고 흐느끼였다.

고 강철수씨 동생 강철봉씨는 《형님은 어릴 적부터 저의 손을 잡고 다니며 부모의 자리를 대체한 거룩한 존재였다》며 몇년전 부대에서 제대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기차역에서 어린 아들을 안고 돈지갑을 잃은 이름 모를 한 시골 모자에게 기차표를 사주고 로비를 해결하라고 자신의 호주머니를 전부 털어준 사연을 전했다.

추도식에서 연길희망복지원 류영애 부원장이 비통을 머금고 아이들이 보낸 10여통의 편지를 대독하고 있다.

현재 화룡시 숭선진에서 살고 있는 고인의 소시적 친구 최승일씨에 따르면 강철수씨는 어린 시절 매우 힘들게 자랐지만 항상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씨 착한 애였다고 한다. 강철수씨가 돌아간 후 동생 강철봉씨가 고인의 유물을 정리하면서 보니 한국에서 돈을 모아 집 사고 장가를 가겠다던 형님의 남은 재산이란 몇권의 책과 생전에 남긴 3천여페지에 달하는 필기, 평소 착용했던 몇벌의 낡은 옷가지외 후사모에 애심봉사를 위해 송금하려고 준비해두었던 10여만원 한화가 전부였다고 한다.

연변후사모 김태국 회장은 《향후 고인의 유지를 받들고 전체 애심봉사원 회원들과 함께 불우이웃을 도와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한몫을 기여하는 단체가 되련다》고 말했다.

슬픔 속에서 추도사를 읽고 있는 연변후사모 김태국 회장

별찌와도 같은 짧은 생애에 불우한 사람들에게 애심을 베푸는 것을 락으로 간주했던 고 강철수씨의 아름다운 삶, 비록 그는 젊은 나이에 너무 일찍 우리 곁은 떠났지만 애심을 천직으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온 그의 고귀한 정신은 우리 사회의 본보기가 되여 영원히 길이길이 빛날 것이다.

길림신문 강동춘 특파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누구나 대련시감정자구조선족로인협회에 가게 되면 장장 15년간 얼굴 한번 찡그리지 않고 장모를 시중하고 있는 남영걸(73세)의 미담을 들을 수 있다.   이야기의 주인공 남영걸은 2007년 3월, 부인 김태순이 한국으로 가면서부터 장모 한화자(94세)를 모시기 시작했다.   처음엔 쌀과 채소를 사들이고 방을 청소...
  • 2022-01-13
  • 글 김성옥  · 방송 구서림         우리 엄마 기쁘게 한번 웃으면 구름속의 해님도 방긋 웃고요, 우리 엄마 즐겁게 한번 웃으면 아름다운 꽃들도 피여납니다. 고생속에 살아 오신 우리 어머니 웃으시면 온 집 안에 꽃이 핍니다.     바로 이 노래 가사처럼...
  • 2022-01-12
  • 도문시에 살고 있는 2급 지체장애인인 최원(崔源)선생의 가정이 전국부녀련합회에서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가정’(最美家庭)의 한가족으로 된 것은 3년 전인 2018년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필경 최원선생이 《휠체어의 노래》(2014년 출판)라는 자서전을 펴낸 뒤로 이어진 삶의 이야기였다. 최원의 자서전 《...
  • 2022-01-06
  • “우리 왕자님, 오늘도 선생님 말씀 잘 들었지?” 나는 하학하고 우리 반 교실로 들어오는 아들을 안아주며 습관적으로 물었다. “아니, 오늘은 우리 선생님이 우리 말을 잘 들었어.” 필자 아들애의 홍두깨같은 말에 나는 웬 일인가고 다그쳐 물었다. 아들은 오늘 바줄당기기를 했는데 선생님이 체육...
  • 2022-01-04
  •  ‘사랑의 단비’갈망하는 후진생 김봉금 (해림시조선족실험소학교) 후진생의 전변에는 무엇보다 사랑의 손길이 수요된다. 낳아준 부모조차 어쩔 수 없는 후진생을 쓰다듬고 사랑해주어야 하는 것은 밀어버릴 수 없는 우리 교원들의 사명이다. 심혈과 정성을 가장 많이 기울이 건만 좀처럼 눈에 띠게 효과를...
  • 2021-12-21
  • 항주의 삼돈진 자금서원(紫金西苑)아파트단지는 절강대학의 인재유치우대주택으로 주민들 모두가  절강대학의 엘리트 교직원들이다.    지난 11월 말,  코로나 방역통제원인으로 절강대학 자금항 캠프스도 페쇄관리를 실시해 자금서원 아파트단지의 많은 주민들이 캠프스에 체류하게 되면서 자의반 타...
  • 2021-12-09
  • - 11월 리뷰 11월을 떠나 보내고 12월을 시작하며 문득, 2021년도 이젠 막바지에 다다랐음을 절감하는 요즘입니다. 년초에 세웠던 여러분의 일년 계획은 잘 추진되고 있는지요? 사랑 전파로 따뜻한 사회분위기를 조성하고저 《길림신문》에서 지난 5월달에 정식 론칭한 계렬 공익행사 ‘사랑+ 릴레이’도 독자 여...
  • 2021-12-07
  • 아버지와 소의 이야기 어린 시절 내가 살던 우리 집은 오도구라고 부르는 산골 마을이였는데 훈춘에서 150여리 북으로 들어가 네 면이 산으로 둘러있는 그리 작지 않는 골안이였다. 동쪽 산밑으로 훈춘강이 흘러 남으로 흐르고 북으로는 작은 강물이 흘러 훈춘강과 합수하였다. 필자 서쪽 산밑으로는 도랑물이 흘러 동쪽으...
  • 2021-12-03
  • 50년전 오늘. 25세, 23세의 아릿다운 처녀총각이 부부인연을 맸었습니다. 서툴기만했던 새내기 부부는 어느덧  50 년이란 세월이 흘러 머리에 흰서리가 소복이 내린 할머니(정미자), 할아버지(허문봉)가 되였습니다. 어머니(정미자), 아버지(허문봉)  부모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었을 뿐만아니라  인생맨토...
  • 2021-11-29
  • 김홍봉을 잘 아는 사람들은 그를 ‘김꺽다리’라고 부른다. 그는 자기가 하는 라이브 방송 닉네임도‘김꺽다리’라고 지었다. 그의 신장은 저그만치 2.04메터, 조선족으로서는 가능하게 제일 키가 큰 사람일 수도 있다. ‘거인, 구척장신’의 김홍봉의 키가 하도 크기에 거리에 나서거나 쇼...
  • 2021-11-26
  • 편집자의 말       저출산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는 요즘 우리 주위에 있는 다자녀 가정을 찾아 여러 명의 자녀를 육아 하는 과정에서의 희로애락에 대해 알아봤다.   “아이들과 함께 커가는 과정이 행복합니다” 황화 부부의 넘치는 자식사랑       “...
  • 2021-11-12
  • [수기] 위대한 10월 김승원 (상해) 한기가 짙어가는 11월에 들어서면서 갓 지나간 10월이 몹시 그리워난다. 그 리유라면 10월은 붉게 타오르는 아름다운 단풍계절인 것도 있겠지만 특히 10월엔 중국 근대사와 현대사에 길이 빛날 위대한 자욱이 력력히 찍혀져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10월이란 말 만 들어도 가슴...
  • 2021-11-12
  • 州中重度残疾人托养中心开展“落实消防责任,防范安全风险”消防安全知识讲座及应急疏散演练   2021年11月9日是一年一度的“119”消防日,为进一步加强州中重度残疾人托养中心的工作人员和托养人员消防安全知识覆盖面,防范化解安全隐患,增强自我保护能力,提升对突发火灾等事故的应变、逃生能力...
  • 2021-11-05
  •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26년이란 세월을 석자 교단을 누비며 살아온 나는 사업 수요로 소학교 교원으로부터 학교의 유치원 대반 담임을 맡게 되였다. 금방 소학교를 졸업한 6학년 애들을 갓 노란 꽃잎을 펼친 해바라기라고 비유하면 유치원 아이들은 연푸른 ‘새싹’들이라고 볼 수 있다. 해바라기 꽃들이 열매를 ...
  • 2021-10-27
  •   金秋十月正当时,正是各种瓜果成熟的季节。为了丰富托养中心托养人员的精神文化生活,让托养人员走出家门,在亲近自然中感受丰收的喜悦、体验采摘时幸福激动的心情,帮助他们通过劳动得到锻炼从而收获自信心,提升社会适应能力,同时托养人员尽己所能回报社会,助力乡村振兴,体现托养人员自尊、自强、自立、顽强拼...
  • 2021-10-26
  •   10월 16일, 신주13호유인우주선 발사가 원만히 성공됐다. 우주비행사 왕아평은 딸에게 하늘의 별을 따다 주마 하고 약속하고 떠났다.         한편 15일 저녁, 적기강, 왕아평, 엽광부 3명 우주비행사들이 출정을 기다릴때 왕아평의 딸은 현장에 와서 엄마를 응원했다.   신화사/길림신문
  • 2021-10-18
  • 우리 학년은 여섯개 학급이 있습니다. 그중에서 우리 학급이 제일 우수합니다. 공부도 잘하고 규률도 잘 지켜서 늘 모범학급으로 칭찬 받는답니다. 이는 우리 담임이신 채선생님의 덕분이지요. 독서도 무척 즐겨요 채선생님은 커다란 키, 하얀 피부에 항상 웃음을 담고 있는 크고 까만 눈이 돋보여서 정말 아름답습니다. 채...
  • 2021-10-14
  • [수기] 졸업증에 깃든 사연 최준봉 나의 책장 서랍에는 장장 30여년 고이 간직한 길림성당교에서 발급한 전문 대학 졸업증서가 있다. 너무 오래 되여 증서가위가 색바래지고 보풀이 일었지만 이 졸업증에는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추억이 깃들어있다. 1953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성립과 더불어 조선족학교가 설립되였다는 기...
  • 2021-09-07
  •   힘든 액화가스 배달로 생활의 어려움 이겨낸 김은자   화룡시 붉은태양 광장에서 흥겹게 춤추고 있는 김은자(왼쪽) 화룡시 문화가 문성사회구역에 가보면 흥겨운 춤노래로 만년을 즐겁게 보내고 있는 사회구역 민간예술단의 로인들을 볼수 있다. 이라는 무용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아름다운 민족복장차림...
  • 2021-08-31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