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추모글]별찌는 짧은 순간이여도 밝게 빛난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5월21일 00시00분    조회:2390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애심을 천직으로 간주하고 빛을 밝히다 생을 마감한 고 강철수씨를 추모하면서

《사람으로 세상에 태여나서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부동하다.그러나 생명의 의의를 가늠하는 척도는 생명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불타는 족적으로 세상에 남긴 한 사람의 선행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가치관이다.

이 말의 의미는 애심으로 오로지 남을 돕는 것을 락으로 여기며 우리 주변을 빛내다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고 강철수(康哲洙)씨의 아름다운 생을 기리는 추도사의 한 구절이다.

5월 18일,길림성 연길시장의관 추모광장에서는 불우이웃을 돕는 것을 자신의 천직으로 간직하고 삶을 빛내다가 영영 우리 곁을 떠난 후사모 회원 고 강철수씨의 추도식이 한창 열리고 있었다.

1978년생인 강철수씨는 길림성 화룡시 숭선진 태생으로서 지난 5월 10일, 한국의 한 작업현장에서 크레인 작업을 하다가 의외의 사고로 크게 다쳐 병원으로 옮겨진 후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당일 39세로 생을 마감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고 강철수씨(오른쪽)가 생전에 후사모 리경호 초대회장으로부터 감사패를 전달받고 있는 모습

이날 추도식에는 고 강철수씨의 가족, 지인 그리고 후사모(연변 후대사랑과 사회봉사를 실천하는 모임) 회원들과 고 강철수씨 생전에 도움을 받은 적 있는 일부 인사들도 참석해 비통을 함께 하였다.

연변후사모 고문(초대회장) 리경호가 사회한 추도식에서 후사모 회장 김태국은 추도사를 통해 《고 강철수씨한테도 생전에 보통사람들이 누리는 아주 소박한 소망이 있었는데 바로 집 한채를 장만하고 사랑하는 녀자를 만나 장가 가서 행복한 생활을 하는 것이였다》며 《그러나 열심히 일해 벌어들인 돈은 모아지다가도 누군가 절실히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나타나면 전부 기부로 이어져 남는 것이 없었다”고 감동적인 사연을 털어놓았다.

강철수씨는 생활조건이 훌륭한 집안에서 태여나지 못했다.

세상물정를 알기 시작하면서 주위를 비교하고 자신은 남들과 달라도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느꼈다.

고 강철수씨(가운데)가 생전에 두부방을 차리고 후사모 애심봉사 회원들과 함께 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있는 집도 그에게는 사치였고 남들은 모두 건강한 아버지,어머니와 함께 행복한 삶을 누렸지만 그에게는  자기 몸도 제대로 건사하기 어려운 장애인 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셨던것이다.

정부의 혜택으로 시골 양로원에서 살고 있는 것이 그들 가족의 현실이였고 그런 일상은 언제면 끝날지 모르는 밑도 끝도 없는 고단한 삶의 연속이였다.

경제난으로 어렵게 초중을 겨우 졸업하고 그는 1995년 영광스럽게 중국인민해방군에 참군하여 대련 81379부대에 입대하게 되였다.

부대생활은 그에게 종래로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당과 정부,그리고 사회에 보답하려는 마음은 굳센 의지와 열정을 다하는 행동으로 표현되였다.

부대에서 그는 우수전사로 퇀급 상장도 수차 받았고 참군 2년 만에는 영광스럽게 중국공산당에 가입하였다.

1999년 강철수씨는 3년간의 군부대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게 되였다. 집에 돌아온 후 얼마 안되여 그는 이제 더 이상 사회에 무거운 짐이 되고 싶지 않아 양로원에서 남편을 잃고 뇌출혈로 누워계시는 어머니를 모시고 무작정 빈손으로 연길로 왔다.

고 강철수씨(뒤줄 가운데)가 생전에 후사모 회원들과 함께 등산후 남긴 사진

세집에서 어머니를 돌보며 생존을 위해 날마다 그는 몸의 기운이 다 빠지도록 악착스레 일했고 그의 노력은 주위에서 찬사와 함께 따스한 도움의 손길로 찾아왔다.

운신을 못하는 어머니 목욕을 전담해주던 조양천아줌마, 늘 과일을 가져다주던 시장아줌마, 엄마가 좋아하는 순대를 대접하라고 가져온 마음씨 고운 순대아줌마, 늘 곱돌장을 끓여주던 70세 고령의 할머니와 김밥을 두둑하게 담아주시던 김밥아줌마,체력로동을 하는 사람이 고기를 많이 먹어야 한다며 고기국을 자주 가져다주던 오주시장의 소고기국집 아줌마, 항상 뜨근한 아침상을 차려주던 주인집 아줌마, 그외에도 주변의 마음씨 고운 분들의 따스한 손길로 인해 그는 용기와 힘을 얻고 더욱 열심히 일했다.

항상 가난과 역경으로 남보다 못하고 부족함을 느끼며 살았지만 그는 꼭 하나만은 남들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다.

가난했지만 그는 마음의 부자였다. 그것은 열심히 노력해 당과 정부,그리고 고마운 이웃들의 은혜와 은정에 보답하려는 착한 마음가짐과 굳센 의지의 표현이였다. 하루 또 하루 시간이 흘러갈수록 마음 한가운데 불우한 이웃을 도우려는 애심의 마음이 불길처럼 활활 타올랐다.

2002년부터 강철수와 동생 강철봉씨 형제는 연길서시장에서 삼륜차부로 힘들게 일하면서 매일 1원씩 매달 30원의 돈을 무명으로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에 기부하기 시작했다.

그 후 이들의 선행은 무려 10여년 넘게 꾸준히 이어졌다.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는 송금통지서를 단서로 고마운 주인공 강철수, 강철봉씨를 찾는 데 무려 5년이란 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그 때로부터 그의 사적은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였고 연변에서는 매일 1원씩 성금을 모아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를 후원하는 열풍이 일었다. 그 후 그의 기부는 쉼없이 이어졌다. 불우한 학생들을 지원하라고 후사모에 2만원(인민페), 연변축구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당시 연변부덕축구구락부에 만원, 백혈병을 앓는 김은정학생에게 5천원, 골수암으로 앓는 공원소학교 김가영학생에게도 만원, 사랑의 집에도 수천원 어치의 육류를 보냈고 화룡고아원에 한화 30만원,부모 없는 어린 손자를 키우며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할머니에게 5천원…수없이 보낸 기부는 이들에게 생의 용기와 힘이 되였다.

연변후사모 리경호 회장에 따르면 강철수는 생전에 몸이 어느 곳에 있든 상관없이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만나거나 혹시 후사모 위챗을 통해서 불우한 이웃들의 사연을 들으면 자신의 일처럼 생각하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며 무척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기에 열심히 창업해서 번 돈이나 외국에 나가 힘들게 번 돈이라도 앞뒤를 고려하지 않고 맨먼저 기부했다고 한다. 강철수씨가 생전에 어려움에 처한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기부했는지 일절 성함을 밝히지 않은 원인으로 지금까지 누구도 정확한 수자를 알 수가 없다.

2016년 강철수씨는 창업으로 연길지질6소 부근에 두부방을 차렸다. 그는 매일 이른새벽에 일어나 밤 늦게까지 열심히 두부를 만들어서 무상으로 사회봉사를 하였다.

고 강철수씨가 생전에 두부방에서 고아원에 지원할 두부를 포장하고 있는 모습

룡정시 도촌자애원, 동불사진새별관, 연길희망복지원…이외에도 많은 고아원들은 그의 기부대상이였다.

추호도 리기적이지 않고 오로지 수많은 불우이웃들을 위해 성심성의로 애심을 베풀며 뛰였다.

강철수씨가 한국에서 사고를 당하고 돌아갔다는 비보를 접하고 생전에 그의 도움을 받은 사람들은 이날 장례식장에서 비통한 눈물을 쏟았다.

연변희망복지원 유영애 부원장은 지난 5월 10일, 강철수씨의 사망소식을 들었을 때 이것이 진실인지 도무지 믿을 수 없었다며 너무나 큰 충격에 빠졌다고 했다.

그러면서 강철수씨가 두부방 경영을 접고 2017년 12월, 로무로 한국으로 출국하기 직전 류영애 부원장을 만나 《한국에서 이번에 열심히 돈을 벌어 고향에 돌아와 집도 마련하고 좋은 녀자를 만나 장가도 들겠다며 기뻐하던 일이 어제 갔은데...》 하면서 눈물을 흘렸다.

강철수씨는 생전에 다른 고아원과 마찬가지로 종종 희망복지원을 찾아 아이들에게 과일과 맛 있는 음식을 사다주었을 뿐만 아니라 두부방을 차린 후에는 늘 바쁜 시간에도 금방 앗은 따스한 두부를 복지원에 가져왔다.

고 강철수씨 추도식에 참가해 슬퍼하고 있는 사람들

복지원의 애들은 강철수씨를 ‘두부삼촌’이라고 편하게 부르며 속심을 나누군 하였다.  애들이 축구구경을 하고 싶어하자 연변팀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자기 돈으로 입장권을 사서는 축구구경도 함께 다니며 매우 친근하게 보냈다.

늘 아이들에게 자신도 어릴 적에 복지원에서 자랐다며 공부를 잘해 훌륭한 사람이 되여 꼭 사랑과 도움을 받은 만큼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추도식에서 류영애 부원장이 대독한 희망복지원 아이들이 보낸 10여통의 편지와 고 강철수씨 생전에 도움을 받은 분들이 전하는 마디마디의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리미화학생은 편지에서 《우리가 그냥 철수삼촌을 허물없이 ‘두부삼촌’이라고 불렀는데 이렇게 우리 곁을 영영 떠나게 돼서 뭐라 형언할 수 없이 마음이 너무 아픕니다. ‘두부삼촌’은 힘들게 두부를 만들어서 우리들에게 자주 두부를 가져다주었습니다. 하늘은 참 무정하네요. 왜 착한 삼촌이 이렇게 빨리 우리 곁을 떠나게 하는지요. 비록 삼촌은 영영 우리 곁을 떠났지만 삼촌의 사랑을 너무 많이 받은 우리는 삼촌의 말씀을 꼭 명심하고 삼촌의 뒤를 따라 앞으로 사회에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좋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리복자씨는 눈물범벅이 되여 준비한 원고를 읽다가 도중에 비통을 참지 못하고 끝내 울음을 터뜨려 주위를 또 한번 눈물바다로 만들었다.

2015년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사랑으로 가는 길’프로에서 리복자씨의 딸 김은정이가 백혈병이란 진단을 받고 천문수자와도 같은 병원비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는 안타까운 사연이 방송된 후였다.

며칠 후 프로책임자로부터 당시 한국에서 일하던 강철수란 분이 딸의 병치료에 보태라고 인민페 5천원을 송금해왔다며 돈을 리복자씨한테 전달해왔다. 낯모를 분이 보내온 돈을 받고 그녀는 당시 매우 고마웠지만 한편으로 마음이 몹시 무거웠다고 한다.

고 강철수씨(가운데)가 생전에 후사모 회원들과 함께 등산 후 기념사진을 남기고 있는 모습

힘들게 피땀으로 번 돈을 이렇게 선뜻 낯모를 딸의 병치료에 보태라고 내밀 수 있다는 그 마음과 용기에 너무 존경스러웠고 미안했다.

그 후에야 강철수씨가 어린 시절부터 불구자 부모의 사랑 없이 어린 동생을 거느리고 매우 어렵게 생활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여 매우 감동되였다고 한다.

리복자씨는 《그렇게 힘들고 곤혹스러운 생활환경 속에서 살면서도 수많은 불우한 이웃들에게 사랑의 손길을 보내며 살아온 강철수씨가 이렇게 빨리 하늘나라가 떠나갔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습니다…》고 흐느끼였다.

고 강철수씨 동생 강철봉씨는 《형님은 어릴 적부터 저의 손을 잡고 다니며 부모의 자리를 대체한 거룩한 존재였다》며 몇년전 부대에서 제대해서 집에 돌아오는 길에 기차역에서 어린 아들을 안고 돈지갑을 잃은 이름 모를 한 시골 모자에게 기차표를 사주고 로비를 해결하라고 자신의 호주머니를 전부 털어준 사연을 전했다.

추도식에서 연길희망복지원 류영애 부원장이 비통을 머금고 아이들이 보낸 10여통의 편지를 대독하고 있다.

현재 화룡시 숭선진에서 살고 있는 고인의 소시적 친구 최승일씨에 따르면 강철수씨는 어린 시절 매우 힘들게 자랐지만 항상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먼저 걱정하는 마음씨 착한 애였다고 한다. 강철수씨가 돌아간 후 동생 강철봉씨가 고인의 유물을 정리하면서 보니 한국에서 돈을 모아 집 사고 장가를 가겠다던 형님의 남은 재산이란 몇권의 책과 생전에 남긴 3천여페지에 달하는 필기, 평소 착용했던 몇벌의 낡은 옷가지외 후사모에 애심봉사를 위해 송금하려고 준비해두었던 10여만원 한화가 전부였다고 한다.

연변후사모 김태국 회장은 《향후 고인의 유지를 받들고 전체 애심봉사원 회원들과 함께 불우이웃을 도와 아픔과 어려움을 함께 나누며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한몫을 기여하는 단체가 되련다》고 말했다.

슬픔 속에서 추도사를 읽고 있는 연변후사모 김태국 회장

별찌와도 같은 짧은 생애에 불우한 사람들에게 애심을 베푸는 것을 락으로 간주했던 고 강철수씨의 아름다운 삶, 비록 그는 젊은 나이에 너무 일찍 우리 곁은 떠났지만 애심을 천직으로 나눔과 봉사를 실천해온 그의 고귀한 정신은 우리 사회의 본보기가 되여 영원히 길이길이 빛날 것이다.

길림신문 강동춘 특파기자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일년중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소서, 왕청현 복흥농장 하니베리재배원은 그야말로 독야청청이다. 태양을 피할 나무 한그루 없이 재배원 주변은 훤하고 전망이 좋았다. 2008년 4무 될가하는 밭에&...
  • 2016-07-19
  • 길림성 룡정시 장애인정양보호원 원장 박해옥은 1989년부터 지금까지 장장 27년간 장애인사업을 해오면서 장애인들의 고통을 가장 잘 헤아리고 그들의 보호자가 되여주면서 자신의 사랑을 몽땅 쏟아 넣고 있다. 장애인어린이들과 로인들로부터  “즐거움의 사절”로 불리우는 그는 각급 정부로부터 “...
  • 2016-07-04
  •   김복순할머니께 위문금을 전하고있는 연길시화린무역유한회사 리덕봉총경리(우1) 2016년7월1일,중국공산당창건 95주년을 기념하고자 연길시신흥가도민안사회구역 리미화서기의 안내로 연길시정협상무위원이자 연길시 화린무역유한회사 리덕봉총경리는 본 당위지부위원회 서기로서 지부전체 당원(량승만기검위원,한경...
  • 2016-07-03
  • 국제온돌학회, 중국 봉사활동 "우리 전통에 관심 가져줘 감동"   한국의 전통 온돌(구들) 전문가들이 중국 옌볜 조선족자치주 농촌 마을을 찾아 우리나라 방식의 구들에 성공적으로 불을 댕겼다. 사단법인 국제온돌학회(회장 김준봉 우석대 교수)는 지난 13~20일 중국 지린성 투먼시 캉닝춘(康寧村) 한옥마을과 옌지 ...
  • 2016-06-28
  • 지난달 갑작스럽게 골육종 진단을 받고 대구의 한 대학병원에 입원한 김호진(가명`16) 군. 농구선수가 꿈인 호진이는 어린 시절부터 손에서 농구공을 놓아본 날이 없다. 건강하고 활발했던 호진이가 이렇게 병상에 누워있게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 중학교 3학년인 지금 호진이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힘든 항암치료보다 ...
  • 2016-06-15
  • 천진시조선족로인협회는 천진시조선족친목회와 상회의 후원하에 진남구 송원 생태 향촌구락부 (津南区国家 农业科技园区 松江生态乡村俱乐部)에서 2016년 단오절 민속 활동을 진행했다. 8시 반부터 륙속 도착하는 전용 버스들에서 내린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명절을 맞는듯한 환한 얼굴로 줄지어 대회장으로 향했다. 입구에서...
  • 2016-06-12
  • 연길시 조양천진 중평촌의 세 농민이 창업과 치부를 함께 꾀하고있어 주목받고있다. 2일, 중평촌회관 부근에 있는 무우와 수박 종자 육성 하우스에서는 벌들이 꽃을 옮겨다니며 “작업”에 충실...
  • 2016-06-06
  • “노다지농사꾼” 황만성인터뷰   지난5월 20일, 필자는 도문시 석현진수남촌 시선툰 김계월씨(62세)의 추천으로 남봉오동 두개 툰(신선툰, 흥진툰)의 유일한 한족 황만성을 인터뷰를 했다. 김계월은 지난 세기 8, 90년대에 성, 주, 시정부로부터 “축산왕” , “성로동모범”, &ldquo...
  • 2016-06-06
  • 어린이들의 명절인 6.1국제아동절에 즈음해 지난달 29일 주당위 조직부는 연길시 공원가두 원예사회구역과 손잡고 사회구역의 결손가정자녀, 빈곤가정자녀들과 함께 영화관람을 하며 특별한 명절을 보냈다. 이른아침, 곱게 차려입은 아이들은 한껏 들뜬 마음으로 사업일군들의 손을 잡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처음 오는 영...
  • 2016-06-01
  • “손자”“손녀”살피기 연길시 연춘지역사회와 연길시 동광소학교는 자매결연단위이다.4년전부터 지역사회의 6명 ”5로”들이 이 학교 6명 불우아이의 “대리할머니” ,“대리할아버지”로 나섰다.    28일,  “대리할머니” ,“대리할...
  • 2016-05-30
  •   新文化延边讯日前,珲春法院首次采用云会议系统审理了一起特殊的离婚案。丈夫到法院起诉离婚,妻子远在外地不肯回珲春参加离婚庭审,怎么办?   主审法官使用云会议系统采取视频开庭的方式,让原、被告和法官三方同时在电脑屏幕上进行庭审,困扰了双方七年的问题,30分钟内在网上解决了。   7年不见妻子 丈夫欲诉离...
  • 2016-05-28
  • ▲ 청주한국병원에서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는 조선족 심장내과 전문의 김용철씨. 청주한국병원 제공 “최첨단 장비와 의료진들의 뛰어난 의술을 겸비한 청주한국병원에서 심장시술 등 여러 가지 선진의술을 많이 배우고 갑니다.”  지난 달 26일부터 한달동안 청주한국병원(이사장 송재승) 심장내과에서 연...
  • 2016-05-27
  • ▲ 한국 생활 9년차인 백승아씨가 청계천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왼쪽). 아직은 ‘조선족’이라고 말하기가 두려운 김명숙씨가 서울시청광장을 돌아보고 있다(오른쪽). ⓒ천지일보(뉴스천지) [인터뷰] '다문화 편견에 마음 아프죠' 결혼이주 여성의 한국생활 한국 발전에 이바지 하고파 [천지일보=강은...
  • 2016-05-23
  • 28년전 세종병원서 심장수술로 새 생명 얻은 강수월씨가 지난 달 세종병원서 아이를 출산했다. 사진은 왼쪽부터 박찬금 간호본부장, 문경원 행정부원장,권정복 간호1부장,강수월씨, 박진식이사장/세종병원 제공 28년전 심장전문병원인 세종병원에서 심장수술로 새 생명 얻은 조선족 강수월씨가 지난 달 세종병원에서 아이 ...
  • 2016-05-21
  • 어머니학교 12기 수료생들과 함께  연길 가정 행복협회 (회장 전웅렬, 부회장 김란영)에서는 '5월 가정의 달'을 맞으며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데 초점을 두고 5월 12일,19일 이틀간 메가스터5층 (원 신흥 파출소5층)에서 아버지학교14기와 어머니학교 12기 수료식을 거행했다. 5월에 수료한 71명 원생들은 "비...
  • 2016-05-20
  • 지난 9일 오후에 우연히 만난 연길시중로년깃털제기협회 초대회장 김해룡로인(74세)은 매일 연길시 모아산 부근 민속촌뻐스정류장동쪽 깃털제기장에서 오전에는 바드민톤을, 오후에는 깃털제기를 즐긴다고 한다. 겉...
  • 2016-05-17
  • 2016년 4월 중순, 기자는 광동성 조선민족 련합회 사무국이 위치한 심수시 보안구 미란빌딩(美兰大厦)에서 서재봉(徐在峰 67세)로인과 김정덕(金正德 73세)로인을 만났다.  하루종일 축축하게 내리는 매우(梅雨)도 마다하고 먼곳에서 온 두 어르신의 몸에서 중년 못지 않은 름름함 풍채가 엿보였다. 이 두분은 현임 광...
  • 2016-05-15
  • 안녕하실줄을 믿고 인사말씀 생략하오니 리해바랍니다. 오늘 저 김용복은 무척 행복하고 기쁜 날입니다. 오늘 저는 저의 인생 3단계의 마지막 세번째로 사재 현금 33억원을 출원해서 “월정어린이 문화재단”을 설립하고 사회 각 계층에서 존경을 받는 일곱분들로 “월정어린이문화재단 준비위원회” ...
  • 2016-05-10
  • “조선족이 남방에 오면 조선말 하나 아는것이 큰 우세입니다. 거기다가 대학전업 하나 잘 쥐면 잘 나갑니다. 어지간하면 관리직에서 일할수있습니다.” “협회 하나 만들자, 서로 교제를 하고 서로 도우면서 지낼수있는 조선족협회를 만들자고했습니다.” 녕파조선족협회의 형성 녕파 호혜영성무역유...
  • 2016-05-10
  • 옌볜 허룽시 봄 진달래꽃 축제 조선족 마을 ‘진달래촌’ 7일간 축제  기와집·비빔밥 등 전통 관광상품화 옌볜의 봄은 한국보다 한 걸음 늦게 왔습니다. 가지만 휑하던 모노톤의 나무들 사이로 분홍, 빨강, 하얀 ‘색’이 피어납니다. 6개 시와 2개 현이 있는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의 면...
  • 2016-05-09
‹처음  이전 27 28 29 30 31 32 33 34 35 36 37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