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2)
▩김진석(연길)
필자 김진석
나는 한생을 라지오TV방송 기자 사업으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류수와 같이 흘러간 세월을 돌이켜보니 가슴은 세차게 방망이질하면서 기자생활에서 있었던 가지가지 일들이 주마등처럼 머리 속에 떠오른다. 그 하나하나가 마치 밤하늘의 별들처럼 어떤 것은 작고 희미하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한가지 사연만은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아있다.
그것은 55년전 내가 대학을 졸업하고 연변인민방송국에 배치받은 지 두해가 되던 1963년 5월에 있은 일이였다.
그 날 편집부에서는 나한테 처음으로 독립취재 임무를 맡겼는데 그것인즉 왕청에 가서 물에 빠진 할머니를 구하다가 나어린 생명을 바친 소선대원-리금란의 사적을 폭이 넓게 취재하여 ‘6.1’절 특집프로로 방송하라는 것이였다.
자신의 실력을 가늠하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한 나는 남다른 흥분에 휩싸여있었다.
왕청에 도착한 나는 먼저 왕청진제2소학교에 가서 학교 소선대 총보도원인 윤좌현선생님한테서 리금란의 사적을 취재하였다. 나는 리금란에 대해서 전면적으로 료해하기 위해 리금란의 부모, 담임교원, 친구들을 취재해야 했다.
그런데 내가 꼭 만나려고 하는 사람들은 왕청진에 없었다. 하여 나는 리금란의 담임교원과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 신흥향으로 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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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생각에만 골똘히 사로잡혀 철다리를 건너는데 불시에 렬차의 기적소리가 귀청이 째지게 울렸다. 앞을 바라보니 기차는 전속력으로 질주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철다리 중간이라 피할 수도 없다. 너무도 갑작스레 닥친 일이라 나는 어쩔 새 없이 다리에서 뛰여내렸다. 순간, 기관사의 고함소리와 함께 기차는 칼바람을 일구며 지나갔다.
‘과연 내가 살았단 말인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몽롱한 의식 속에서 가까스로 눈을 뜨고 보니 불행중 다행이라 할가 나는 모래밭에 파묻혀있었고 해는 서산마루에서 나불나불 넘어가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어느 한 집에 누워있었다. 이튿날 그 집 주인의 안내로 소수레에 앉아서 왕청병원에 가서 검사하였다. 의사는 뼈는 다치지 않았다고 다행이라 했다. 나는 며칠간 조리를 하니 걸을 수 있었다.
이렇게 보름 동안의 간고한 취재 끝에 써낸 3만여자에 달하는 장편 오체르크 〈소년 영웅-리금란〉은 그 해 ‘6.1절’을 계기로 6회로 나뉘여 방송되였다. 생명을 바칠 번하며 쓴 작품이 전파를 타고 온 누리에 메아리칠 때 나는 기자로서의 자호감을 뿌듯이 느끼며 남다른 희열에 잠겼다.
그 때만 해도 신문사 기자에 비해 방송국 기자는 사회적 위치가 높지 않았다. 하여 내가 방송국 기자가 되였다고 하니 위로해주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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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때로부터 기자사업을 더욱 열애하고 방송사업에 정을 붙이게 되였으며 그 어떤 영예도 보수도 바람이 없이 누가 보건 말건 묵묵히 일하며 열심히 선배들을 따라배우고 고심히 실무를 연찬했다. 따라서 나는 보통기자로부터 편집부 주임, 연변라지오TV방송국 부주필로 승급되였고 교수급인 ‘고급기자’ 직함을 가졌으며 ‘전국우수보도일군’ 칭호를 수여받았고 문집 《나와 라지오TV》와 론문집 《라지오TV방송연구》를 출판했으며 길림성 보도계렬 고급직함(교수급)평정위원회 위원으로 초빙되였고 평생 사적이 《중국당대 편집기자 대전》에 수록되였다.
그렇다! 기자란 이 직업은 신성한 직업이고 뭇사람들의 존경과 흠모를 자아내는 일터다. 또한 간고한 업종으로서 거기에는 층암절벽도 가시덤불도 있으며 지어 생명까지 바칠 수 있다.
만약 고락을 겪지 못하고 간난신고를 거듭하는 것을 겁나하며 희생정신이 없다면 생명력이 있는 우수한 보도작품을 내놓을 수 없고 영향력이 있고 성과가 있으며 명실이 부합되는 기자로 될 수 없으며 ‘명기자’로는 더구나 될 수 없다.
기자의 행위는 천가만호에 관계되고 전반 사회생활과 밀접히 련관되며 사회 의식형태 면에서 거대한 영향력을 산생시키고 중요한 작용을 발휘한다.
오늘 현대화 선전도구로서 다른 보도 매체가 대체할 수 없는 특수한 사명을 지니고 당과 인민의 후설 역할을 남김없이 발휘하고 있는 라지오TV방송은 사람마다 부러워하는 직업과 일터로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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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나이가 많아 방송제1선에서 물러났지만 자신의 방송기자 생활을 더 늘이고 빛나게 장식하고 싶은 소원은 여전하다.
후대 기자들이여, 새로운 시기에 기자로 된 자각을 안고 부지런히 배우고 사색하며 보도실천 가운데서 자신의 자질과 수양을 높여 당과 인민의 사랑을 받는 명기자로 되기 바라는 바이다.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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