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름다운 추억 98]내 집 마련하기 15년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8월27일 00시00분    조회:100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6)

▩김명희(왕청)

알뜰살뜰 살림군 김명희 필자

해마다 거리에 우후죽순처럼 일어서는 새 아빠트들을 보면 저도 모르게 힘들게 살아왔던 지나간 세월이 영화필림처럼 떠오르며 코마루가 찡해난다.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던 1995년 겨울, 친척 친우들의 축복 속에서 간단한 결혼식을 치르고 우리 부부는 20평방도 안되는 세집에서 홀로 서기 새살림을 시작했다.

꽃종이로 천정을 도배한 세집은 겨울에는 한기가 곧게 내려와 시려나는 뒤잔등에 대낮에도 이불을 덮고 있어야 했고 무더운 여름철에는 앞뒤로 통하는 문이 없어 찜통 속에서 땀동이를 흘려야 했다. 흐린 날에는 부엌에서 연기가 거꾸로 나와 석탄불이 다 탈 때 까지 출입문을 열어놓고 기다려서야 자군 했다.

거주환경이 렬악하고 빈주먹 밖에 없는 우리 부부는 인차 아이를 가질 생각을 단념하고 모든 정력을 사업에 몰두했다.

그 대신 평소에 아껴먹고 아껴쓰면서 돈을 조금조금 저금해나가며 내 집 마련 10년 계획을 세웠다.

2년 후 아들애가 태여나자 가정지출이 퍽 늘어났고 저금했던 돈도 인차 거덜이 났다.

아이가 3개월이 되자 나는 돈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교원사업을 하는 한편 토요일과 일요일 휴식일을 리용해 보험회사의 업무원으로 일하면서 고객 유치에 나섰고 방학이면 교원이라는 자존심을 버리고 약장사도 하고 동네아줌마들과 함께 삯일도 찾아하였다.

내 집 마련 계획을 1년이라도 빨리 실현하기 위하여 우리 집 식구들은 반반한 옷 몇벌 사입지 못했고 외식도 몇번 못했으며 웬간한 부조행사에는 따져가며 참가했다.

날마다 꼬박꼬박 가계부를 적고 1원 돈도 쪼개쓰면서 가정지출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통장에 돈을 차곡차곡 적금했다.

이렇게 2002년에 아글타글 7년간 애써 모은 돈 4만 5000원을 선불금으로 내고 5만원의 주택대출금까지 받아 끝내 우리의 힘으로 90평방 되는 새 아빠트를 마련했다.

새집에 이사하던 날, 친정엄마가 오그랑 팥죽을 한가마 쑤어와서는 이쁜 새 공기에 담아 방 구석진 곳들에 놓아주셨다. 폭포처럼 내리드리운 거실 카텐을 만져보고 엄마는 만면에 웃음꽃을 피우며 감개무량해하셨다.

“‘정성이 지극하면 돌우에도 꽃이 핀다’고 끝내 궁궐 같은 집을 마련하게 됐구나. 축하한다!”

아들애가 좋아서 히죽히죽거리며 이 칸 저 칸 뛰여다녔고 친척 분들도 집들이에 모여와 기쁨을 함께 나누며 건배를 하였다.

그 날 밤 우리 세 식구는 너무도 감격해 도무지 잠을 이룰 수 없어 전등을 켠 채로 밤을 보냈다.

새집을 산 후에도 빈곤의 음영은 우리 가족에서 떠나지 않았다. 남편과 나 둘의 로임을 합쳐야 1500원이 되나마나한 형편에서 달마다 주택대출금 550원, 아들애 유치원비며 학원비, 각종 생활비용을 떼내고 집장식을 할 때 여기저기 친척들한테서 꾼 돈을 갚고 나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또 아득바득 살지 않으면 안되였다.

때마침 교원이라고 전탁생을 맡아달라고 먼 친척이 부탁을 해왔다. 생활의 어려운 고비를 잘 넘기기 위하여 나는 그 후 10년 동안에 3명의 전탁생을 맡아 내 자식처럼 키워주고 수고비를 받아서 구멍 난 생활에 보충해 쓰고 적금을 했다. 출근을 하랴, 철없는 내 자식에 남의 자식까지 키우랴, 우리 부부는 매일마다 팽이처럼 바삐 돌아쳤다.

주택대출금을 하루라도 앞당겨 갚느라 아들애가 사달라고 칭얼거리는 놀이감도 만족을 주지 못했고 질 좋은 운동신 한컬레 사주지 못했으며 학교로 보내는 옷차림도 늘 교복이 주로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10년 사이에 시골에 계시는 년로한 시부모들도 모셔다 함께 생활하고 마지막 운명할 때까지 자식으로서의 도리를 다하였다.

몸이 고달프고 경제난에 쪼들렸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열심히 노력하면 꼭 해뜰 날이 오리라는 일념으로 채찍질하면서 달려왔다.

2010년 1월, 결혼 15년 만에 주택대출금과 여러가지 빚들을 모두 갚고 끝내 우리 명의로 된 가옥소유증을 손에 쥐였다.

가옥소유증을 타던 날, 나와 남편은 작은 음식점에 가서 간소한 축하 파티를 열었다. 물만두 한접시, 볶음채 두가지, 맥주 두병. 남들한테는 평범한 외식일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축제의 날이고 ‘집의 노예’(房奴)에서 벗어난 제일 기쁜 날이였다.

평소에 우스개를 잘하는 남편이 그 날에 했던 말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울려와 마음이 짠해진다. “이제부터 우리에게는 행복한 날만 남았으니 오래오래 잘살아보기오.”

‘집의 노예’가 되여보지 못한 사람은 그 아픔과 설음을 잘 모를 것이다. 개굴 같은 집이라도 제 집이 있어야 제일 행복감을 느낀다는 것을.

15년 동안 앞만 보고 허둥지둥 바삐 살아오면서 여느 젊은 녀자들처럼 멋 한번 부려보지 못하고 세 식구가 함께 멋진 유람 한번 해보지 못했다. 그래도 잃은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은 맨발의 청춘이였던 우리에게는 그 시절이 제일 아름다운 추억이였고 일생에서 제일 빛나는 삶이였다고 생각된다.

가난에서 벗어나보려고 우리 주변 조선족들이 외국에 나가 아득바득 갖은 고생을 다하여 커다란 집을 샀지만 그 대신 화목한 가정을 잃은 사람도 적지 않다.

우리가 힘들게 산 것은 아빠트 뿐만이 아니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귀중한 생활 경험을 얻었고 행복한 자기 가정을 지켰고 친인들과의 소중한 추억들을 쌓았다.

그동안 어려움 속에서 한푼이라도 도와주느라 애쓴 량가 부모님들과 친척들이 더없이 고맙고 건강하고 밝게 자라준 아들애와 든든한 버팀목이 되여준 남편이 눈물 나게 고맙다.

집을 사고 안정하게 산 지 어느덧 8년 세월이 지났다. 작년에 아들애는 어엿한 대학생이 되여 보금자리를 떠났다. 아들애가 없는 집은 마치 텅 빈 둥지와 같이 느껴진다.

요즈음은 힘든 일이 적어지고 너무 한가해졌지만 앞으로도 그 웃음꽃이 피고 충실하게 살아왔던 15년 세월이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화폭이 되여 오래동안 내 마음에 잔잔한 감동과 여운을 남길 것 같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외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든지 생활상황이 어떠한지를 막론하고 설을 쇨 때에는 고향에 돌아와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음력설기간 기자는 외지에서 사업하고 학습하는 안도현의 4명 귀향인원을 만나 이들이 고향에 대한 기대와 정감을 느껴보았다.   시민 마우붕은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후...
  • 2018-02-27
  • [백성이야기71]수집인생의 “화분”으로 빚어내는 “황금꿀” 연변장백산우취협회 리사 김영일선생의 수집인생 이야기 들어본다 모아왔던 수집품들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김영일선생 “언제든지 시간 나면 놀러오슈…” 매주 주말이면 장이 서는 연길의 한 골동품...
  • 2018-02-26
  •       음력설을 맞아 위챗 채팅그룹마다 따뜻한 새해덕담과 명절인사로 가득찼다. 이 가운데 16일 안산시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는 자체 채팅그룹에서 ‘온정’을 주제로한 사진교류활동을 벌렸다. 회원들이 채팅그룹에 적극 공유한 가족사진, 설날밥상사진을 투표에 따라 1, 2, 3등을 ...
  • 2018-02-24
  • 북경에서 대학을 마치고 상해에 있는 일본회사에서 8년간 일하다가 작은 집도 사고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런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니 생활에 대한 격정과 자극이 없었고 더 발전이 없을것 같은 따분한 현재가 권태로워졌다. 그래서 현실을 타개하는 길을 선택한것이 바로 일본류학이였다.   일본 도쿄...
  • 2018-02-23
  • 사랑하는 딸과 함께 한 윤화씨 중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은행에서 여유롭게 일하던 나한테 일본류학을 소개해준 것은 같은 은행을 퇴직하고 일본류학을 떠난 후배였다. 그 당시에는 류학신청에서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지라 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부모와 회사를 속이고 일본류학 신청을 시작했다.그런데 예산...
  • 2018-02-22
  •      ‘미(美)+청(青)’ 사진관 4년만에 9개 가맹점 거느려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당신에게 다가서는 김개강 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정명자 기자=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했던 90년대, 스튜디오이자 사진 현상소(照片冲洗店)였던 사진관은 어디서든 쉽게 볼수 있었다.   하지...
  • 2018-02-12
  • 일본에 온 지 어느덧 17년, 내 인생의 거의 절반, 그것도 제일 찬란한 20대와 30대를 일본에서 지내왔다. 돌이켜보면 힘든 적도 있었고 슬픈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거같다. 누구나 다 있는 20대와 30대를 많은 이야기로 수놓았으니 지나온 날들도 행복했고 현재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연변대학...
  • 2018-02-09
  • 내가 일본에 와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넌 일본에 살아서 참 좋겠다.”  일본에 살면서 얼마나 많이 외로운데, 서러울때는 또 얼마나 많았는데…그러나 끝내는 무거운 미소로 묵인하고 만다.  “그래, 나 너무 좋아. 찢어지게 가난하던 촌년이 일본에 와서 출세했으니...
  • 2018-02-05
  • 남영권씨 가족 “세월이 류수”라는 말이 지금은 리해가 간다. 일본에 온지 벌써 20년이 되였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무너지고 이른바 잃어버린 20년 바로 그 시기를 나는 일본땅에서 보냈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의 덕분에 사이타마켄(埼玉県)에 있는 일본어학교의 입학통지서를 받게 된 나는 부모님이 챙겨준 일...
  • 2018-02-05
  •     (흑룡강신문=하얼빈)1932년 4월 조상봉씨의 셋째 아들로 태여난 나는 다섯살때 어머니를 잃고 12살때 기둥같이 믿던 아버지마저 급성장염으로 돌아가셨다. 동년시절 한창 공부할 나이에 지주의 머슴질도 해보고 학도공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나는 조직의 배양으로 1952년 10월에 사업에 참가하고 입당을 하...
  • 2018-02-05
  • 정성을 몰부어  꽃떡을 빚고 있는 김몽 지난 한해가 막 저물어가고 있는 그때 남방의 대도시 광주에서 한 40대 조선족녀성이 연길 “궁중떡향기” 공방으로 앙금플라워 꽃떡공예를 배우러 찾아왔다. 이름은 “김몽“이라 했고 이미 광주에서 17년간“고향떡집”을 경영해왔다고 했다. ...
  • 2018-02-01
  • 편집자의 말: “일본생활수기”시리즈를 내면서 1983년 당시 일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내각이 “류학생 10만명 계획”을 세운 후 세계로 향한 일본 고등교육의 대문이 열렸다. 80년대 국비류학, 사비류학으로 시작된 조선족의 일본에로의 이동은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정착의 시대를 넘어...
  • 2018-02-01
  • "기층 당지부서기로서 군중과 한마음이 되여 백성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련다." 이는 촌에 내려가 제1서기 직무를 맡고 있는 장백조선족자치현심계국 당지부서기 박선렬의 심중 고백이다. 금년에 39살에 나는 박선렬은 지난해 5월, 현 조직부문의 배치에 따라 십사도구진 망천아신촌에 내려가 촌당지부 제1서기 직무...
  • 2018-01-22
  •         (흑룡강신문=하얼빈)렴청화 연변특파원= 룡정시 로투구진 동불에 들어서는 길목은 버드나무로 즐비하다. 마을 입구에서 우정국까지 나무가 500-600미터쯤 줄지어선 모습은 동불사회구역로인협회 회원들이 '마을가꾸기'의 일환으로 일궈낸 풍경이다.   그들이 마을을 ...
  • 2018-01-1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71) ◇한해동(장춘)   필자 한해동  벌써 80고개를 훨씬 넘은 나는 늘 지난날의 일들을 회억하게 된다. 후회되는 일도 많고 자랑스런 일도 적지 않다. 인생은 마치 흘러가는 물과도 같아 장애물에 부딪쳐도 멈추지 않고 에돌아가노라면 언젠가는 끝내 머나먼 큰 바다...
  • 2018-01-17
  • 섬나라 사람들인 일본인들은 나무 한그루, 벌레 한마리에도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힐링의 명소로 찾는 일본정원, 늪을 중심으로 정원석과 자연의 나무, 풀로 꾸며진 그 곳에 가면 ‘인간을 자연의 일부'라고 여기는 일본인들의 감성을 짙게 느끼게 된다. 자연을 가까이에 하려는 일본...
  • 2018-01-17
  • 한국에서 딸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 안녕? 사랑하는 내 딸 지월아, 엄마는 우리 딸이 너무나 보고 싶구나! 너의 편지를 보고 우리 딸이 씩씩하고 건강하게 커줘서 엄마는 정말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공부도 잘하고 여러 방면에서 모두 우수해서 엄마는 너무나 기쁘고 우리 딸이 자랑스럽다. 우리 딸이 가장 필...
  • 2018-01-10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70) ◇서문만옥(길림) 문우들과 함께 있는 필자(왼쪽 첫 사람) 올해 내 나이 75세,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아버지(서문화봉씨)의 령전 앞에서 “아버지의 꿈을 제가 이루었어요!”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어 가슴이 뿌듯해진다. 나는 아버지의 꿈대로 한평생 우리말...
  • 2018-01-09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9) ◇리송규(훈춘) 학생시절 대련 바다가에서의 필자 소중한 추억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법이라 할가? 그것도 내가 가장 즐기는 바다에서 얻은 것이기에 더욱 잊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물 몇살 젊은 시절 장춘에서 대학교에 다닐 때 대련에 간 적이 있었다. 대...
  • 2018-01-09
‹처음  이전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