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8)
▩서현(연길)
겨울방학이라 두눈이 멀뚱멀뚱해서 거의 집에만 박혀 쏠락거리다가 점점 식상한 나머지 새로운 고안을 짜낸 것이 바로 시골에 살고 있는 그 친구네 집을 한번 찾아가려는 것이였다. 그래서 친구 몇몇도 함께 차거운 겨울바람이 쏴~ 매섭게 불어오는 어느 날, 추위도 아랑곳 하지 않고 들뜬 마음으로 자전거 페달을 힘차게 밟으며 친구네 집으로 ‘고고싱!’했다.
그러나 들뜬 마음은 한순간, 친구네 집이 어느 마을에 있는지도 잘 모르고 떠난 우리는 친구집을 찾느라 적잖은 에너지를 이미 소모했고 거기에 추위와 배고픔으로 지칠 대로 지쳐서 겨우 친구네 집을 제대로 찾아들어갈 때는 점심때가 한참이나 지난 후였다.
그런 우리를 놀라움과 반가움에 겹쳐 어쩔 바를 몰라하며 맞이하는 친구와 그의 부모님들. 때마침 우리가 간 그 날, 마을에는 잔치집이 있어 친구 어머님은 잔치집에 가 이것저것 푸짐히 들고 오셔서 우리에게 뜻밖의 ‘거한’ 밥상을 차려주셨다.
도시와는 사뭇 다르게 뭐든 아낌없이 함께 나누는 시골 동네의 넉넉하고 따뜻한 인심도 처음 접해보았지만 추위와 배고픔에 지칠 대로 지쳐서 친구집에 찾아간 우리에게 차려준 그 날 그 밥상은 우리 인생에서 처음으로 우리만을 위해 차려준 감동의 밥상이였고 우리에 대한 인정의 밥상이였다!
또한, 희희락락 웃음꽃을 피우며 모든 게 다 꿀맛 같은 잔치상 음식을 게걸스럽게 먹는 우리를 보면서 “시내 애들이 어쩌다 우리 집을 찾아왔는데, 내 손으로 만든 음식으로 너희를 먹여보내야 하는데… 그래도 많이 먹어야 한다.” 하시며 연신 우리에게 맛갈스러운 고기볶음채랑, 떡이랑 집어주시는 친구 어머니를 보며 나의 어머니에게서만 느꼈던 모성애와 같은 동질감을 어머니가 아닌 다른 분에게서 내 생에서 처음으로 진하게 느껴본 하루였다, 그날은.
세월은 흘러 이제는 그 때 그 시절의 우리의 모습도 친구 부모님의 모습도 기억 속에서 흐릿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상한 건 비록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은 내 삶의 주변 곳곳에서 그 때 그 추억을 다시 재생케 할 것 같은 현장을 저도 모르게 느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어느 시골집 못지 않은 소박한 장국집에서 새하얀 이밥에 큼직하게 썩썩 썰어놓은 삶은 돼지고기를 그득 담은 구수한 장국 한그릇 올리며 “드시고, 더 받으세요. 밑반찬도요.” 하시며 후덥게 웃으시는 푸근해 보이는 장국집 주인 아주머니를 보면서, 물가가 고속성장하는 이 시기에도 음식값을 별로 올리지 않고 항상 여유와 즐거움으로 웃음을 잃지 않으며 손님을 후덥게 대하는 어머니 손맛 같은 음식을 항상 고집하는 순두부집 주인 내외를 보면서, 비록 드라마이지만 언젠가 한국 드라마 《응답하라 1994》를 보다가 큼직한 대야에 나물을 무치고 잡채를 만들고 국수를 말며 하숙집 학생들을 자기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드라마 속 경상도 아줌마를 보면서도…
비록 우아하고 고품스럽지는 않아도 소박하고 후더운 그들의 모습과 따뜻하고 풍요로운 인심에는 항상 내가 그리워하는 그 추억 속의 가슴 뭉클했던 동질감이 느껴지고 마음 찌릿하게 잊지 못할 그 추억으로 다시 돌아가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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