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름다운 추억 101]개암 세알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9월12일 00시00분    조회:1411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29)

▩김룡운(교하)

학교 열람실에서 필자 김룡운선생님

나는 산에 오르내리기를 좋아한다. 왜냐 하면 나는 동년을 산골에서 지냈기 때문이다. 60년대에 아버지가 그 좋은 장춘 도회지를 버리고 우리 자식들을 이밥이라도 실컷 먹이겠다며 하향하여 두메산골에 가서 짐을 부리웠던 것이다. 따라서 나는 산골애로 되였고 산골은 나의 제2고향으로 되였다.

나에게 동년은 금쪽같이 귀한 시절이였다. 나는 늘 산골의 오솔길을 걸으며 희망을 길러왔었다. 푸르르고 싱싱한 대자연, 산골짜기로부터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고 또 멀리 들판에서 잔잔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오곡의 물결…

나는 어렸을 때 부모님 뒤꽁무니를 따라다니기 좋아했다.어머니께서 밭으로 가시면 밭으로,고사리 꺾으러 가시면 고사리밭으로, 고무신이 벗겨지는 줄도 모르고 어머니께 엉덩이가 벌겋게 부어나도록 맞고도 따라나섰다.그리고 아버지께서 개암밭으로 가셔도 버릇 대로 조르르 따라나선다.그러면 아버지는 “거긴 애들이 따라가지 못하는 데야. 벌레도 있고 뱀도 있어…”라고 타일렀으나 막무가내였다.막내 귀염둥이라 아버지는 하는 수 없이 나의 손목을 잡으신다.

지렁이 기여간듯한 오솔길을 따라 산비탈에 이르면 크지도 작지도 않은 강냉이밭이 펼쳐진다.강냉이밭 아래쪽에는 억새로 이은 자그마한 농막이 있는데 그 농막 주인이 바로 아버지이다.아버지께서는 팔뚝 같은 강냉이 한이삭을 따서 불에 구워 나의 손에 쥐여주고는 배낭을 지고 개암밭으로 사라지신다.나는 그 강냉이를 들고 하모니카 불듯 이쪽 저쪽 입을 옮겨 뜯어먹으며 농막에서 시간을 보낸다.강냉이 반이삭을 채 먹기도 전에 초가을의 따뜻한 해살에 정복되여 평화로운 잠에 곯아빠진다.

문득 무엇인가 바지가랭이 속으로 써늘하게 기여드는 느낌에 화뜰 놀라 잠을 깨여보니 커다란 구렁이였다. 기겁한 나는 “으악!”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농막 밑으로 굴러떨어져 곤두박혔다.그 때 다친 상처는 지금도 오른쪽 정강이에 흉터로 남아있다.구렁이는 그래도 내가 애라서 그런지 물지는 않았었다.

아버지께서 한짐 지여오신 개암을 쏟아놓으면 한마당이 된다.우리 형제들은 우르르 몰려들어 납죽한 돌 하나씩 차지하고는 개암을 깨여먹는다.흰 런닝 앞자락이 퍼렇게 물들도록 깨여먹고는 강가로 나가 물오리가 된다.

시간이 썩 흘러 차츰 철이 들고 어른이 된 내가 개암밭을 주름잡아 한짐씩 지고 오면 나의 애들이 욱 몰려와서 개암을 맛있게 먹어댔다. 당년의 나와 너무 흡사하다. 인젠 자식들도 커서 사회로 진출했다. 벌써 난 손자를 보았으니 다 산 셈이다. 작년에 한국에 있는 딸애가 아기를 업고 놀러 왔었다. 발발 기여다니는 손자애를 데리고 놀기란 무엇과도 비길 수 없는 락이였다. 기여와서는 나의 품에 팍 안기는 그 모양에 더없는 행복감을 느끼군 했다. 손자애는 발발 기여가 광주리에 듬뿍 담긴 개암을 한줌 쥐고 와서는 내 손에 놓는다. “할배, 머어.” 보니 세알이다. 손에 넘치도록 쥔 것이 세알이다. 나는 개암을 데구르르 굴려놓았다. 손자놈은 또다시 쥐고 와서 내 손에 놓는다. 아, 개암 세알. 나는 추억 속에 사로잡혔다.

언젠가 농짝에서 책을 뒤지다가 궤짝 시렁에서 흰 손수건에 싸인 개암 세알을 발견했다.

“여보, 이 손수건에 싸인 개암 세알은 뭐요?”

“바로 몇십년 전 당신의 추억이래요.”

안해는 곱게 눈을 흘기며 대답했다. 아, 나는 그제야 생각이 났다.

1986년 8월 25일 이날은 나의 평생에서 지울 수 없는 날이다. 개학 교수안 준비를 마친 나는 오후에 행장을 차리고는 애들이 잘 먹는 개암을 따러 나섰다. 헌데 뒤에 따르는 이가 있어 돌아다보니 한직장에서 근무하는 두 녀선생이였다.

“김선생님이 산발을 잘 타는데 우리 둘을 데리고 가세요, 네?” 남들의 우격다짐에는 겁내지 않지만 녀성들의 감언리설에는 꼼짝 못하는 나인지라 하는 수 없이 응낙하였다. 원래 나 혼자 가면 앞산 기슭에서 짐을 채울 수 있었으나 셋의 짐을 채우려면 좀 먼산에 가야 했다. 우리는 ‘검은 산’ 쪽으로 향했다. ‘검은 산’은 나무숲이 울창하고 항상 검푸르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였다.

날은 찌뿌드드하고 곧 비가 내릴 상 싶었다. 반짐 쯤 차자 나는 집으로 돌아가자고 하였다. 하지만 녀성들이란 그렇지 않았다. 온 바 하고는 꼭 짐을 채워야 한다는 것이였다. 나는 하는 수 없이 그들을 데리고 ‘3형제유리산’에 들어섰다. 3형제유리산은 세 산의 모양이 비슷하고 투명한 차돌이 난다고 하여 3형제유리산이라고 불렀다.

사람들은 어지간해서는 이 산에 들어서지 않는다. 왜냐 하면 둘레로 서있는 이 3형제유리산은 모양이 비슷하여 방향 잃기가 일쑤이기 때문이였다. 이곳에서는 자칫하면 돈화 땅에 떨어지고 자칫하면 무인지경 남골에 떨어지고 또 자칫하면 이치강자 탄산자골에 떨어지는 것이다. 이 세갈래가 다 집으로 가는 길은 아니다. 단 한갈래의 길이 집으로 통하는 길인데 종잡기가 쉽지 않다.

한참 따다가 보니 비가 구질구질 내리기 시작했다. 해라도 있으면 방향을 잡을 수 있겠지만 검은 장막에 안개까지 뒤덮여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산등성이에 오른 우리는 더는 갈 수가 없었다. 땅거미가 지며 밤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장밤을 산등성이에서 지새워야 했다. 구질구질 내리는 비는 밤새껏 틈을 주지 않고 줄곧 퍼부었다.

하느님 맙소서, 오늘 다행히도 이 구질구질한 밤을 셋이 같이 지새우니 말이지 만약 이중에 어느 한 녀성과만 지낸다면 이 몸을 한강에 던지더라도 내 사타구니에 붙은 흙만은 깨끗이 씻어낼 수가 없게 될 것이였다…

비바람이 기승을 부리던 지루한 밤은 끝내 물러가고 동녘하늘이 희붐해지며 비는 멎고 차츰 붉은 해가 동산에서 얼굴을 내밀었다. 해살은 부채살처럼 골짜기를 비추었다. 나는 부지중 아버지의 말씀이 떠올랐다. “얘야, 산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급해 말고 물곬을 따라 내려야 한다. 물곬을 따라 내리느라면 내도 나타나고 강도 나타나고 차츰 동네도 나타날 것이네라.”

우리는 물곬을 따라 내렸다. 과연 멀지 않은 곳에서 개 짖는 소리,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소몰이군을 만나 그가 구워준 강냉이를 게 눈 감추듯하였다. 소몰이군은 우리를 보며 빙그레 웃었다. 과연 타동네인 탄산자 골짜기에 떨어진 것이다. 후에 안 일이지만 간밤에 동네에는 란리판이 났었다. 밤새껏 확성기에다 불어대고 동네 사람들이 동원되여 온 산판을 헤매였다고 한다. 이 일을 생각할 때마다 동네사람들이 고맙기만 하다. 태원이, 홍식이, 상철이, 춘택이 그리고…

“할배—”

손자의 부름소리에 나는 사색에서 깨여났다. 손자의 손에 쥐여있는 개암 세알, 나의 영원한 추억-개암 세알. 나는 다시금 개암 세알을 흰 손수건에 꼬옥 싸서는 농 속에 넣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흑룡강신문=하얼빈) 리흔 기자 = 어린시절 한족가정에 입양됐던 조선족 조향염씨가 현재 생모를 애타게 찾는 사연이 본지를 통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 7월 30일 오전 조향염씨는 기사를 읽고 전화했다는 길림성 부여시 도뢰소(陶赖昭)진 홍성촌의 방금녀씨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에서 방...
  • 2014-08-20
  •   “저는 마음 잇기 차대의 성원입니다. 택시에 두고 내린 물품을 임자한테 되돌려주는것은 저의 응당한 책임입니다.” 19일, 17년간 도문시에서 택시운전수로 근무하면서 선후로 15만원에 달하는 금품과 수십대의 핸드폰을 주어 임자를 찾아 돌려준 양계걸(53세)은 이같이 말문을 열었다. 2000년 여름, 한 ...
  • 2014-08-20
  •   지난 12일 한화 1550만원(9만원좌우)를 택시에 두고 내렸다가 세시간만에 되찾은 김승호(61세)씨는 연길 택시운전수 왕소(王潇)의 아름다운 소행에 련신 고마음을 표했다. 한국에서 귀국한지 이틀째 되는 날인 12일, 김승호씨는 친구한테서 꾼 돈을 돌려주려고 훈춘으로 떠났다. 아침 7시 50분경에 그는 동생과 함께...
  • 2014-08-20
  •   “자식들이 다 쓸데 없어유... 늙어서 손에 갚힌게 없으니 이 모양이 잖아유...” 어느 김씨로부부는 한때 유족한 생활을 누리다가 정년에 되자 저금도 없는데다 안로인이 시름시름 앓기까지 해 늘 자식들 넉두리만 했다… 사회가 발전하면서 다양한 양로혜택으로 점점 자식한테 기대려는 로인들이 ...
  • 2014-08-19
  • 왕청현 공상은행에는 현재 50여명의 리퇴직인원이있다. 한때 이 은행에서는 “자관회(自管会)”라는 방식으로 로간부를 관리하였는데 자아관리에 애로가 많았고 누구도 관계하지않는 상태로 되여 로인들이 흩어지게 되였다. 10년전 이들은 전주 은행계통에서 처음으로 로인협회모식을 인입하여 관...
  • 2014-08-18
  • 《꽃타령》을 열창하고있는 최홍련(오른쪽) 최종화(왼쪽) 자매. 연변텔레비죤방송국에서 펼친 《로인절맞이 우리노래대잔치》프로에서 흑룡강성동녕현삼차구진오성촌에서 온 74세나는 최홍련과 최종화(70세) 두자매는 민요 《꽃타령》을 성수나게 불러 박수갈채를 받았다. 그들 자매가 이 노래무대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많...
  • 2014-08-18
  • 18일 오전 10시경, 연변천지예술단에서는 “절씨구씨구 세월 좋아~”가 흘러나온다. 남들이 다양한 문예공연들로 로인절을 축하하는 가운데 이들은 절로 “세월 좋아”를 부르면서 춤판을 벌리는것이다. 가족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식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며칠 남지 않은 공연준비에 다급해진것이다...
  • 2014-08-18
  • 훈춘 농장로인협회의 미담   “우리 농장의 로인들은 그야말로 보배랍니다. 지금 전 주의 조선족농촌마을의 형편은 서로 엇비슷하지 않습니까. 젊은이들과 장년들은 모두 로무송출에 나서다보니 마을에는 로인과 어린이들만 남아있지요. 그러다보니 마을을 지키고 가꾸는 중임이 로인들의 어깨에 놓여졌지요.&rdq...
  • 2014-08-18
  • 90세 고령의 시아버지를 살뜰히 보살펴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킨 며느리가 있습니다. 연길시 하남가두 춘광사회구역의 마귀금녀성을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올해 67세인 마귀금이 아침에 일어나 하는 첫 번째 일은 시아버지의 대소변을 받아내는것입니다. 이어 따뜻한 음식을 시아버지에게 대접하고 세수를 시키고 면도질을 ...
  • 2014-08-15
  •   1일,연길시적십자회에서 한국에 무료수술치료를 보냈던 6명의 선천성심장병어린이가 건강을 회복하고 귀국했다. 연길시적십자회에서 한국 구세군, 한국 동의성단원병원과 련합하여 전개하는 이 “적십자심장병어린이구조항목...
  • 2014-08-14
  •   아껴 먹고 아껴 쓰며 모은 돈 선뜻이 기부 지진재해구를 향한 연변인민들의 자발적인 사랑의 손길이 이어지고있다. 5일,연길시 공원가두 원신사회구역의 김주일로인(84세)이 적십자봉사소를 찾아 로당원으로서 운남 로전지진재해구에 저그마한 성의라도 표하고싶다며 성금 200원을 내놓았다.료해한데 따르면 김주일로...
  • 2014-08-14
  •   “아리아리, 스리스리, 아라리요…” 12일, 40여명 로인과 15명의 봉사자가 탄 뻐스에서 신나는 노래소리가 울려퍼진다. 연길시 진학가두 네잎클로버자원봉사협회가 로인절 30돐을 맞아 독거로인들과 “연길구경”에 나선것이다. 9시경, 뻐스는 연길시 진학가두판공실앞에서 출발해 첫 지...
  • 2014-08-14
  •  “1984년 8월에 주로인협회가 정식으로 설립됐고 또한 8월 15일을 연변의 로인절로 정했습니다. 올해 우리 주에서는 문예공연, 좌담회, 로년사업 30년 대사기, 화책, 정책자문 등 일련의 활동으로 로인절을 맞이하게 됩니다”고 7일 주로인협회 전평선회장이 로인절 30돐을 맞으면서 우리 주에서 펼치게 될...
  • 2014-08-14
  • 연길시공원소학교 3학년 3학급 담임선생님께 안녕하세요? 이 더운 여름 선생님 학급의 동가영학생이 방학간의 휴식시간을 리용하여 저의 단위에 와서 사무실을 청소하고 책도 정리하고 화분에 물을 주면서 저의들의 손을 도와주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마냥 뛰여놀고 싶을텐데 그래도 저의 단위 선생님들의 심부름도 생글생글...
  • 2014-08-13
  • 만성신부전증(뇨독증)으로 한국 서울성모병원에서 힘든 투병생활을 하고있던 가수 송경철씨가 석달간의 국외치료생활을 잠시 접고 지난 8월 8일 연길로 돌아왔다. 12일, 연길시 공원가의 한 세집에서 송경철가수를 만났다. 거액의 병원치료비때문에 진달래광장부근에 있던 살림집을 팔다보니 귀국해 부득불 조촐한 세집생활...
  • 2014-08-13
  • 10일 연길시 10명의 로인들은 팔도 강락장수원 홍명옥원장의  초청에  복숭아 두광주리를 사가지고 팔도로 향하였다.  홍원장은 오래전 같이 글쓰던 통신원들이라고 잊지 않고 로인절도 곧 돌아오는데 물좋고 공기좋은 곳에 와서하루를 즐기라면서 자리를 마련하였다. 홍원장은 장수락원의 50여명 로인들 보...
  • 2014-08-13
  • 지난 3월, 뻐스 탈 때 있은 일이다. 차에 오르려는데 휴대폰이 울린다. 짧게 전화 받고 급한대로  빨리 목적지에 도착할 마음으로 콩나물시루속 같은 차안을  비집고 올라갔다. 오른손으로 공중손잡이를 잡고 힘겹게 서서 정신줄을 놓고있는 사이 도적이 손쉽게 웃옷호주머니의 쪼르래기를 활짝 열고 스...
  • 2014-08-12
  • 8월 8일 연길공원 남쪽광장은 한복차림에 알룩딸룩 모자를 쓴 로인들로 붐비였다. 이날 연길시 진학가두에 자리잡고있는  흔흔로인락원에서 축수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고령로인들이 조용히 모이여 자아양로를 해오는 흔흔로인락원은 지금  60여명으로 80세이상 로인이 30여명 년장자는 92세이다. 연변로인절을 ...
  • 2014-08-12
  • 닷새전 서울에서 악몽 같은 비보가 갑자기 날아왔다. 한국 카톨릭대학 서울성모병원에서 골수의식 치료를 받고있던 박운봉교수가 엄중한 합병증으로 치료에 효과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하직했다는것이다. 몇달전 모두가 큰 기대를 안고 한국으로 병치료를 떠나는 교수님을 배웅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청천벽력 같은 비보에...
  • 2014-08-12
  •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 단장 황성렬씨   “우리 합창단을 전문화된 합창단으로 승격시켜 우리 민족의 아름다운 음악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고싶습니다.” 11일,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퇴직하고 2013년 3월에 퇴직일군들로 구성된 중국조선족항일가요합창단을 설립한 황성렬(65세)단장을 ...
  • 2014-08-12
‹처음  이전 40 41 42 43 44 45 46 47 48 49 5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