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름다운 추억 109] 닭알에 깃든 구구 사연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1월2일 00시00분    조회:148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7)

▩박철원(연길)

필자 부부

지난날 없어서 못 먹던 세월이 지금은 싫어서 안 먹는 때가 되였다. 아빠트에 살면서 입쌀이며 밀가루를 마음대로 살 수 있고 고기며 해산물, 닭알, 우유, 과일이 풍성한 세월이다. 먹을 근심 없는 천지개벽이 일어난 것이다. 계획경제에 시달려 굶주리다 시장경제 시대를 만나 여유족족 행복을 누린다. 이 모든 것이 개혁개방의 덕이라 하겠다.

8월의 삼복 무더위를 이기며 어느 일요일 나는 안해와 함께 모아산 등산을 마치고 시내로 들어섰다.

“시원히 국수나 먹읍시다.”

자기는 썩 좋아하지 않지만 내가 즐기는 걸 아는지라 안해는 랭면옥으로 걸었다. 11시도 안되였는데 하남 민족식당 랭면부는 벌써부터 사람들로 붐비였다.

잠간 자리를 기다리는 기간 나의 목젖은 벌써 방아를 찧었다. 드디여 자리가 생겨나 우리에게도 국수 두그릇이 올랐다. 저가락을 집어든 안해는 닭알을 집으며 나를 쳐다보는 것이였다. 자기 몫의 닭알을 잡숴달라는 것이다. 미안해하는 그 눈길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담낭이 나쁘기에 닭알을 못 먹는다는 것이다. 처음이 아닌 동작이기에 나는 그저 웃음으로 끄덕였다.

옛날에는 메밀국수가 많았는데 메밀은 껍질부터 송곳 같은 뾰족날이 많이 서서 그 가루가 아무리 미세한 분말이라 해도 현미경으로 본다면 역시 가시가 많이 돋은 과립체 형태라고 한다. 그래서 배속에 들어가면 점막을 ‘찌르는’ 자극이 있기에 옛날 선조들로부터 메밀국수를 먹을 때에 꼭 먼저 닭알을 먹어 위점막을 포장해주라는 의미란다.

그러고 보니 국수에 닭알은 궁합 음식이기에 랭면을 먹으며 닭알을 먹지 않는 것도 틀린 습관이다. 그런데 지금 보면 적지 않은 식객들이 삶은 닭알을 먹기 싫어 남겨버린다. 랭면옥에 물어보니 반수 이상의 손님들이 닭알을 버린다는 것이다. 여름철 더운 날이면 랭면 2000여그릇씩 판다니 천여개의 닭알이 구정물에 들어가는 셈이다. 너무나도 아깝고 끔찍한 랑비다.

닭알에는 풍부한 단백질과 칼슘, 린, 철, 칼륨, 비타민 등이 함유되여있어 완전식품이라고도 불린다. 필수 콜레스테롤, 아미노산과 메사이오닌, 시오틴 같은 합황 아미노산이 많아 100그람당 139칼로리 정도의 열량을 가지고 있기에 인체 면역력 제고와 체질 증강에 보귀한 음식물이다. 또한 손재간 없는 사람도 쉽게 맛나는 료리를 만들 수 있는 흔하고 친근한 식품이다. 이토록 질 좋은 식품이건만 ‘루명’도 많이 쓰며 외면당하는 때가 많아 가슴이 아프다.

나는 안해가 싫어하는 닭알을 먹을 때마다 닭알이 귀하여 가슴 앓던 때의 일이 떠오르군 한다.

1974년 1월, 우리의 첫 애기 림산 때의 일이다. 그 때 안해는 동불사의 본가집에서 호주노릇하며 출근하고 나는 돈화시에서 사업하는 외기러기였다.

조선족은 해산하면 미역국이 우선이지만 한족들은 닭알이 우선이고 닭알을 많이 먹은 것을 자랑거리로 여겼다. 하여 나도 그 때가 되면 안해에게 닭알을 마음껏 먹여보리라 은근히 작심했다. 그런데 정작 닥치고 보니 안해의 림산기가 바로 음력설 좌우인 엄동설한이여서 닭알이 그렇게 귀할 줄이야.

그 때 돈화시에는 량식창고에 자그마한 양계장이 있었다. 그래서 량식국에서 일하는 한족친구에게 도움을 청했더니 며칠 후 량식창고 주임의 도장이 찍힌 ‘두근’이라고 쓴 쪽지를 가져다주는 것이였다. 비록 너무 적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보배 같았다.

가격은 한근에 겨우 70전, 나는 새알보다 좀더 커보이는 하얗고 맑은 닭알 22개를 사들고 왔다. 여러개는 껍질에 피자욱도 있었다. 숙소에 들고 와 안전한 그릇에 담으면서 보니 한놈은 살짝 금이 갔었다. 나는 종이에 풀을 발라 터진 닭알을 땜질하여 맨 우에 올려놓았다.

상업국 식료품공사에도 찾아가 사정해보았는데 닭알은 ‘특수공급’으로만 비준한다며 퇴를 맞았다.

며칠 후 연길 출장길에 적지만‘최다'의 닭알 22개를 대감 모시듯 조심스레 들고 와 장모님에게 바쳤다. 그 날이 해산날 10일 전이였다.

그런데 사위가 왔는데 반찬거리가 없다며 장모는 그 자리에서 닭알 두알을 깨여 나에게 닭알국을 끓여주는 것이였다. 산모를 먹이려고 쉽지 않게 얻어 조심스레 들고 온 것을 나더러 먹으라 하니 너무도 난처하였다. 먹기도 어렵고 먹지 않을 수도 없고. 만삭이 된 안해도 옆에 앉아 웃으며 권장하던 그 때의 정경이 지금도 가슴에 아련하게 찔려온다. 후에 알고 보니 그 때 여덟살이던 막둥이 처남이 너무 보채여 장모님은 역시 그 닭알 두알을 장려했다는 것이다.

음력 정월 초이튿날, 우리의 첫 애가 태여나는 날 장모는 닭알을 산모에게 먹이며 힘을 주었다. 얻기 힘든 닭알 덕분인지 닭알 18개를 대접받은 산모는 무난히 고비를 넘기였고 젖도 많이 돌아져 아이도 건강했다.

그토록 희귀하던 닭알 얻기를 평생 잊을 수 없다.

1년 후 딸애의 돌을 쇠고 우리는 드디여 돈화시에 단란한 새 가정을 꾸리게 되였다. 장모는 병아리 몇마리 사주었다. 그 후로부터 우리 집에도 암탉이 있어 닭알을 생산할 수 있게 되였다. 아이들의 입살이에는 충족하였다. 혹시 불시에 술손님이 찾아와도 너무 막막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시기는 아직 개체경제가 허용되지 않아 농촌에서는 해마다 닭알 판매 임무를 떨구고 공소사에서 수매하였다. 돈이 나올 데 없는 농민들은 닭을 은행(鸡屁股银行)이라 불렀다. 그제날에 학용품을 사려면 닭알을 들고 공소사에 갔고 할아버지들이 정통편을 사도 닭알로 바꾸었다.

소학교 시절 학교에서 원족 가는 날에는 꼭 차례지던 삶은 닭알, 그렇게도 맛있을 수가 있을가!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60년대, 우리 집에서는 닭 몇마리 길렀다. 엄마는 작은 그릇에 닭알을 깨여서는 소금물을 넣고 잘 저은 후 밥가마에 쪄내여 아버지의 도시락 반찬으로 하군 하였다. 어떤 날에는 찐 닭알을 떠내 도시락에 담아보내고는 아직 닭알이 좀씩 붙어있는 그릇을 나에게 장려하군 하였다. 나는 그 ‘밥도적’을 그릇에 숟가락 자리가 나도록 긁어먹었는데 그 별미의 짭짜름한 맛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몆해 전 나 절로 그 때의 엄마를 본따 닭알반찬을 만들어보았는데 소금냄새 뿐 아무 맛도 없었다. 닭알맛이 변했는지, 아니면 내 입이 변했는지…

내가 알건 대로 외할머니가 우리 집에 계실 때에 “닭알은 녀자들이 먹는 것이 아니야.” 하며 닭알반찬에 저가락도 안 대더니 어머니 역시 그 습관이였고 녀동생에게도 차례지지 않다 보니 지금도 나의 녀동생은 닭알은 “비린내 나서 싫다”며 먹을 줄 모른다. 나도 닭알은 아버지들만 많이 잡숫고 남자애들이나 조금씩 맛보는 줄로 알았다.

세월이 흐르고 흘렀지만 닭알은 여전히 우리들 식탁에 없어서는 안되는 주객이다 보니 여러가지 품질의 닭알이 대량 생산되는 한편 인조닭알도 나오고 지어 가짜닭알도 나오는 현실이다. 시대의 변천에 따라 닭알맛도 변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닭알은 여전히 고급 식품으로 대우받아야 함이 틀림없을듯하다.

닭알은 옛날에도 지금에도 장래에도 사과와 함께 제사상 잔치상에 빠질 수 없는 흔하면서도 귀한 식품이다. 다만 남성들에게 영양보충으로만 쓰이던 닭알이 아니고 애들을 어르기만 하던 반찬이 아니다.

없어서 못 먹던 그 세월이 오늘은 싫어서 먹지 않는 시대로 되였건만 오늘도 나는 해산할 안해에게 닭알을 푸짐히 대접 못한 죄책감에 모대긴다. 닭알만 보면 떠오르는 아픈 추억이다.

나는 지금도 외출하면 아침식사 때 꼭 튀긴 닭알 한알씩 먹으며 그 옛날을 되새긴다.

길림신문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ㅡ룡정온천사우나의 ‘때밀이박사’ 김철수도 아빠트 두채에 자가용 갖춘 부자 지금은 목용탕에서 때밀이를 하는 사람들중 조선족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때밀이를‘천’한 일로 여기기때문이다. 하지만 목욕탕에서 때밀이를 17년 째 해오고 있는...
  • 2018-05-16
  • - 아들의 프로 데뷔를 보고 싶은 한 아버지의 가슴 아픈 사연 지난 10일 만난 정명호(46세)씨는 수심이 가득했다. 부모가 돼서 자식에게 자꾸만 부담을 주고 짐이 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 뿐이라고 했다. 목에 튜브를 낀 정명호씨는 이틀에 한번씩 투석 치료를 받아야 하는 뇨독증 환자이다. 당뇨합병증을 10여년 앓던 그...
  • 2018-05-14
  • 5월 10일 오전, 연길시 신흥가 민창사회구역에서 점심준비가 한창이다. 어머니의 사랑을 확인하고 기념하는 날인 어머니날은 미국에서 유래된 기념일(5월 두번째 일요일)로 연변에서는 ‘3.8’부녀절이나 ‘8.15’로인절 등에 비해 작은 규모의 비교적 생소한 명절에 불과하나 독거로인을 비롯한 로인...
  • 2018-05-12
  • 4월 22일, 일본국제문화원 정걸씨의 초청으로 메지로대학“스즈키선생과 장연선생을 모시는 모임”에 참가하였다. 이날 모임의 현장 ㅡ 동경 닛포리 HOTEL LUNGWOOD으로 가는 길은 연변의“진달래꽃 축제”를 마중해 언녕 핀듯한 울긋불긋한 철쭉꽃들로 필자의 기분이 더 없이 상쾌하였다. 이날 모임은...
  • 2018-05-10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1) ▩양상태(길림) 필자부부가 당시 두손으로 지은 기와집 내가 결혼할 당시(1967년 겨울)에 우로는 아버지, 어머니, 형님, 누이가 계셨는데 누이는 출가했고 형님은 항미원조에 나갔다가 제대하여 흑룡강성 대경시에 배치받았다. 아래로는 남동생이 둘 있었는데 ...
  • 2018-05-09
  • 왕청진후대관심사업위원회 전금선 주임의 사적   (흑룡강신문=하얼빈)리강춘 특약기자= 10년을 하루와 같이 왕청현 왕청진 동진소학교의 학교, 유치원어린이들에게 새 이불, 솜신, 솜옷, 교복, 운동복을 보내주고 생활형편이 어려운 가정의 학생들에게 온갖 사랑의 선물을 보내주는 공산당원이 있다. 그가 바로 왕청진 후...
  • 2018-05-08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응모작품 (10) ▩김삼철(룡정) 1968년 11월 7일, 맏딸 홍화의 돌생일날에 남긴 기념사진 지금도 우리 부부가 처음 엄마 아빠로 되던 날을 생각하면 나는 기쁨보다 온몸에 소름이 끼친다. 처음 맞게 되는 큰애의 출생이 안해의 난산으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 줄을 누가 알았으랴. &lsqu...
  • 2018-05-04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9) ▩김성숙(장춘) 앞줄 왼쪽부터 필자의 올케, 어머니, 오빠. 뒤줄 왼쪽부터 필자의 동생부부, 언니, 필자 김성숙. 어머니는 아버지를 일찍 여읜 우리 네 형제자매를 근면하고 정직한 사람으로 키우기에 힘썼다. 후에 아들을 장가 보내 며느리를 삼은 후에는 화목한 가...
  • 2018-04-25
  • 료녕성 무순시에서 해방전쟁시기 전투영웅 리형선 로인을 만나 취재중인 김광현. 출판기념모임에서《백년실록》교육편의 주필인 허청선 교수와 담소하고 있는 김창석. (지난 기에 이어) 김광현과 김창석은 아예 우리 지도의 최남단에 위치한 해남도로부터 취재를 시작하기로 기획을 하고 일시불로 동영상카메라 4대를 샀다...
  • 2018-04-20
  • -10여년간 불우이웃에 따뜻한 애심손길 보내준 김선희씨 이야기 휴빈스의 애심천사 “영채꽃”은 누구? “불우이웃을 돕는데 전혀 사심이 없고 항상 앞장선다” 는 짤막한 기사제보를 보내준 사람은 화룡시 팔가자진에서 옹기된장기업을 운영하고있는 장청옥, 김경남씨 부부였다. 함께 애심활동을...
  • 2018-04-16
  • 연변주봉체육양성쎈터 양매 외지에 오래 있다 보면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하기 마련이다. 창업에 발을 들여놓기 전에 줄곧 외지에서 사업했던 연길시주봉체육양성쎈터 교장 양매(43세)도 그중 한 사람이다.   “창업을 시작하기 전에 저는 줄곧 장춘, 심양 등지에서 기업관리에 종사했습니다. 외지에 나간 시간이...
  • 2018-04-13
  •     광둥 후이저우에 조선족 노인협회가 탄생되기까지   (흑룡강신문=하얼빈) 자녀따라 광둥에 진출한 노인들은 악착같이 버텼다. 적응기는 빡셌고 슬펐다.   친구도, 말 동무도 없었던 노인들은 정착 과정에서 문화적응, 언어장벽, 여가생활의 부족, 병원 등 사회 공공 기관  사용의 불편은...
  • 2018-04-1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7) ◈김철우(위해) 40여년전 유치원 문예공연을 마치고 남긴 기념사진(중간 필자) 오늘 나는 책상서랍을 뒤지다 우연히 흑백사진 한장을 땅에 떨구었다. 허리를 굽혀 손에 쥐여들고 보다가 나는 세월 속에 깊숙이 묻힌 추억의 바다 속에 저도 몰래 빨려들어가고 말았다....
  • 2018-04-11
  • 일본에 온 지가 어느덧 18년이 돼간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두번이나 변할 정도의 기나긴 세월이 눈깜짝 할 사이에 흘러갔다. 일본은 나에게 희망도, 행복도, 저주도, 슬픔도 배워준 희로애락의 인생교과서이다 . 나는 처음부터 그 어떤 웅대한 포부나 꿈을 가지고 일본류학을 선택한 것은 아니였다. ...
  • 2018-04-10
  • 5일 새벽, 깊은 산속에서 54년간 묵묵히 렬사기념비를 지켜온 리은기 로인이 지팡이를 짚고 오솔길을 따라 마을에서 그닥 멀지 않은 산속을 향해 걷는다. 길의 저 끝에는 혁명렬사기념비 하나가 조용히 서있었다. 기념비에 도착한 로인은 손으로 기념비 우에 앉은 먼지를 살살 닦아내고는 기념비 앞에 두 발 모아 바로 선 ...
  • 2018-04-09
  • 일본전통씨름대회인 오오즈모 현장 지난 4월 4일 일본 교토 마이즈루 (舞鶴) 시에서 있은 봄철 오오즈모(大相撲:일본전통씨름대회)에서 인사말을 하던 시장이 갑자기 지주막하출혈로 쓰러졌다. 긴급한 상황에서 관객석에 있었던 두 녀성(간호사)이 도효(土俵:경기장)에 올라 구급조치를 취하게 되였고 잇따라 다른 두명...
  • 2018-04-09
  • [편집자의 말] 을 펴내면서 북경 등 전국 각지 네티즌들 뿐만 아닌 한국 네티즌까지 아낌없는 고무격려와 응원의 박수에 감사를 드린다. 에서는 서로 떨어져있는 부모와 자식간의 그리움, 원망으로부터 서로 리해해주고 서로 응원해주는 가족사랑을 담은 내용이였다면 (3)에서는 부모와 자식간 소통의 기회를 마련해가면서...
  • 2018-04-08
  •    든든한 "무송서기"로 불리우는 룡정시 석문촌 김무승 제1서기   (흑룡강신문=하얼빈)류설화 렴청화 연변특파원= "우리 무송서기한테 토닭알하고 된장을 좀 줘야겠는데, 우리 아바이는 매일 저녁만 되면 날이 추워져서 무송서기가 잠을 못잘가봐 '우리 집으로 데려올까'하고 물어보오. 어디 그뿐이오...
  • 2018-03-2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5) ◈김삼철(룡정) 당년의 ‘땅소나기’ 김병인로인(84세). 당시 조선에 사는 한 친척 화가가 놀러 왔다가 그렸다고 함.
  • 2018-03-29
‹처음  이전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