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름다운 추억118]‘삐꼬'에서 스포츠맨이 되기까지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2월26일 00시00분    조회:123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6)

▩전영실(연길)

등산길에서 필자 전영실

나는 단위 종업원 운동대회를 비롯해 운동경기에 자주 출전하는 스포츠맨이다. 나에게는 이것이 참으로 ‘기적'이다.

나는 소학교 2학년 때 하학길에 부주의로 넘어지면서 다리를 상했는데 설 수도 걸을 수도 없게 되였다. 병원의 진단은 “둔부의 뼈가 썩기 시작하고 한쪽다리는 힘줄이 늘어났다”는 것이였다.

청천벽력이였다. 창밖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노라니 나의 두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나도 저 애들처럼 자유롭게 뛰논다면 얼마나 좋으랴 !

나는 종신불구로 된다는 의사들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지팽이를 짚고 왼손으로 벽을 붙잡고 두다리에 힘을 주면서 일어서보았다. 순간, 모진 진통으로 그 자리에 폴싹 꼬꾸라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이 철없는 것아, 네가 어떻게 일어서서 걸을 수 있다고 그러냐.” 하며 눈굽을 찍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 말씀도 나의 결심을 동요시킬 수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좋다는 병원과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다니였다. 연길의 223병원, 장춘의 길림성병원, 천진의 골과병원 등등. 중의원에서 그 아픈 침만 해도 왼쪽 다리에 한번에 30여대씩 2700여대나 맞았으며 고통의 피눈물은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나는 빨리 걷고 싶은 욕망으로 무릎걸음부터 시작했다. 점차 설 수 있게 되자 발자국 떼는 련습을 하다가 이마를 구들에 쪼으며 넘어진 적도 있고 아픔을 참느라고 입술을 깨물어 피를 흘린 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지팽이를 짚고 겨우 바깥구경을 나가면 조무래기들로부터 “삐꼬, 삐꼬! 다리삐꼬!!!” 하며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병원의 치료와 어머니의 정성 그리고 꼭 다시 걷겠다는 나의 불굴의 의지가 하느님을 감동시켰던지 4년 반 만에 끝내 지팽이를 버리고 걸을 수 있게 되였고 학교에도 갈 수 있게 되였다…

어느 하루 신문에서 전 주 자전거경기가 있다는 소식을 보게 된 나는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등록을 해놓은 나는 출근전 새벽에 일어나 밥을 안쳐놓고는 련습으로 모아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갔다. 매일 시계를 보면서 비교해보니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드디여 1999년 10월 23일 연길시에서 자전거 경기가 진행되였다. 남편과 아들애가 응원하러 가겠다는 것을 나는 “말등하면 어쩌려구. 창피하게… 제발 오지 마세요.” 하면서 말렸다.

남자들 경기가 끝난 후 녀자들 차례였다. 전 주 각지에서 온 선수들이였는데 모두 몸집이 웅장하고 키도 크고 올림픽 선수 같았지만 나는 겨우 155메터 키에 체중 백근이 되나마나해 그들과 비하면 너무나 왜소했다.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가 울리자 나는 총알같이 첫 사람으로 페달을 밟았다. 녀자 15키로메터는 흰기를 가지고 페달을 밟아 올리막까지 가서는 붉은기를 바꿔가지고 내려와야 했다. 달리는 도중에 응원하면서 광천수를 권하는 사람도 있었고 우리 몸에 물을 뿌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땀이 좔좔 흘러도 닦을 사이 없는데 언제 그런 걸 돌볼 사이가 있는가. 일분일초 시간과 속도를 다투면서 숨을 할딱거리며 나는 최선을 다했다. 돌아오는 도중 이제 약 20메터 남았는데 자전거 사슬이 벗겨졌다! 돌볼 새가 없다. 뒤사람이 따라온다. 나는 아예 두손으로 자전거를 밀고 죽을둥살둥 모르고 뛰였다. 종점에 이르기 바쁘게 뒤사람이 몇초를 사이두고 들어섰다.

환성이 울렸다. 2등이였다. 나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뜻밖의 좋은 성적에 놀란 남편도 혀를 끌끌 차며 점심에 맛나는 음식을 먹자고 했다. 남편과 아들애가 같이 길에 나와 나를 마중했다.

2등상으로 주체육운동위원회에서 영예증서를 주었고 주통신회사에서 전화비 500원을 입금한 삐삐기 한대를 상으로 주었으며 텔레비죤 뉴스에도 소식이 나왔다.

텔레비죤을 본 친구들도 야단법석이였다. “영실아, 너 정말 대단하다. 어쩌면 몇년이나 다리를 앓아 누워있던 네가 이런 큰 경기에 참가하여 등수에까지 들 수 있니? 정말 놀랍고도 감격된다.” 그 날은 내 생애에서 정말 기쁨에 벅찬 하루였다.

앉은뱅이가 될 번했던 내가 이런 경기에 참가하여 등수에 오르다니. 생각하면 꿈만 같다.

또 작년 3.8절이였다. 우리 가사협회의 3.8명절 유희 종목에 팔씨름이 있었다. 나는 B조의 팔씨름 대표로 나섰다. 근데 A조의 선수는 나보다 12년 어리고 키가 170센치메터 이상, 체중이 150근 좌우로 보기만 해도 나는 새우에 불과했다.

책상을 중간에 놓고 호각소리에 따라 치렬한 경기가 시작되였다. 나는 대방의 우악진 손을 꽉 붙잡고 안깐힘을 다 썼다. 그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손은 남자손처럼 크고도 넙적하고 억대했다. 나는 입을 옥물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그와 겨루었다. 두 소조는 각기 목이 터지게 자기 편을 응원했다.

눈은 무시로 깜빡거렸고 손목은 바들바들 떨렸고 입은 악물다 못해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실망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키가 크고 억대하면 단가? 나는 키 작아도 악으로 해야지, 절대 항복할 수 없다. 있는 힘 끝까지 해봐야지…

그는 우악진 손으로 나의 팔목을 꺾으려 하였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지려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손목은 이쪽으로 기울가 하다가는 저쪽으로 기울며 중간에서 긴장히 떨렸다.

몇분간의 치렬한 겨룸 끝에 대방은 끝내 항복하고야 말았다. 그녀는 나를 보고 ‘악물'이라고 롱담을 하였다. 우리 조에서는 너도나도 나를 끌어안고 환성을 올렸다.

전 주 민속절 팔씨름 경기에 참가하여서도 나보다 10년이나 어린 왕청에서 온 힘장사군을 척 꺾었다.

또 연집 뾰족산 등산 시합에서도 우정국 녀자들 몇십명이 총소리와 함께 등산을 시작했는데 중도에서 많이 투항했지만 나는 숨이 차서 할딱거리면서도 마지막에는 나무뿌리, 풀뿌리를 붙잡고 기여올라 2등을 하였다.

5.4청년절 단위에서 있은 모아산 등산 경기에서도 6등을 하여 고급이불을 상으로 받았다.

또 한번은 운동회에서 우편마대에 들어가 달리기를 했는데 남들이 퐁퐁 뛰면서 달리다가 엎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나는 챠플린 걸음 동작으로 쭉쭉 속도를 빼면서 걸어나가 한번도 엎어지지 않고 백메터경주에서 일등을 하였다. 내가 경기장에서 퇴장할 때 우리 황색대는 나를 포옹까지 해주면서 축하해주었다.

맡은 바 사업도 열심이 하니 직장에서 동료들이 인정해주었다.

하면 된다. 내 가족과 사회를 위해 나는 내 심신의 건강에 유익한 일이라면 무엇이나 해보리라. 건강은 삶의 밑천이다.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십여년 동안 휴식일에 등산을 견지하였으며 평소에 매일 5000보 내지 만보씩 걷고 특수상황 외에는 택시를 타지 않으며 장거리에 가면 몇원이면 살 수 있는 산나물, 민들레, 달래, 버섯 등 토산물도 직접 산에 가서 뜯기를 즐긴다. 로동도 일종 운동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지금껏 40여년 동안 이전의 골과병이 재발하지 않았으며 몸도 가볍다. 그리고 항상 머리가 맑아있어 많은 일에 흥취를 가지게 된다. 료리에 대하여, 살림에 대하여, 또한 사회인으로서 글쓰기에 대해서도…

영원한 장애인으로 사회의 부담거리로 될 번했던 나는 19살 고중졸업생으로 사회에 진출한 후 분발 노력해 수많은 영예도 지녔다.

내가 어렸을 때 매일 아픈 타령만 하고 누워만 있었더라면 오늘날까지도 ‘삐꼬'란 별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며 오늘과 같은 날은 더구나 없었을 것이다.

평범할 수 없었던 나의 인생길, 평범하지 않은 곳에서 평범한 건강인의 생활을 창조한 나는 이 모든 것이 자포자기하지 않고 완강한 의력으로 열심히 살아온 결과라고 말하고 싶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일본인 아키코씨의 연변추억(1) “…붐비는 기차안을 벗어나 사람들은 큰 마대자루같은것을 어깨에 올려 놓은채 홈에 내렸다. 삼삼오오 떼지은 사람들의 속을 비비고 개찰구에 나왔더니 연변대학 반공실의 D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금은 낡은 검은색 승용차가 우리 곁에 와 멈추...
  • 2018-07-11
  • 입원 가능 어린이병동 찾아 몇 달마다 전전…법적·사회적 배려 필요   '폭염 속 어린이 방치' 통학버스 사고 차량 [연합뉴스 자료사진]   (광주=연합뉴스) 장아름 기자 = "밥 한 끼 못 먹이고 2년간 튜브만 꽂게 했어요. 몸이 훌쩍 자라는 동안 한 번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해 가슴이 저려요...
  • 2018-07-09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9) ▩리오로(장춘) 유정세월에 보낸 고중시절 류수촌 동창들과 함께. 뒤줄 중간이 필자 리오로. 교하시 로야령 상봉에다 뿌리박고 서쪽으로 흘러내리면서 수천쌍 옥답을 적셔주고 수만명 생령들의 생명수가 되여 흘러흐르다 송화강수와 합수하는 강, 이 강이 바로 망우...
  • 2018-07-06
  • 지난 6월 30일, 백년돌솥밥음식유한회사 박성화 사장은 연길총점, 왕청, 훈춘, 도문 분점의 사장들과 함께 안도현 명월진의 왕수매가정과 영경향 류약근가정을 방문했다. 이번 방문은 연변애심어머니협회 방선화 회장의 알선으로 이루어졌다. 안도현 명월진에 살고 있는 왕수매 부부 모두가 장애인이다. 장애인의 몸으로 두...
  • 2018-07-03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8) ▩황혼호(대경) 촬영작품 〈밥 짓는 연기〉와 필자 황혼호 얼마전 나는 촬영 전시회에 참가했는데 한장의 〈밥 짓는 연기〉라는 사진 앞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 사진을 보노라니 어릴 적 내가 태여나고 자란 고향이 사무치게 그리워나며 눈앞에 선히 떠올랐다...
  • 2018-07-02
  • 일본인의 연변추억(1) 올 봄에 들어서서부터 그림을 그리시는 오오무라 아키코(大村秋子)씨와 함께 사진앨범정리를 하게 되였다. 일찍 1985년 남편인 오오무라 마스오 (大村益夫)교수(일본 와세다대학 명예교수)를 동반하여 처음으로 연변대학에 1년간 체류하였고 그후 20여년간 해마다 한달씩 연길에 다녀갈 정도로 연변을...
  • 2018-07-02
  • 농민공을 자처한 한 사람이 두루마리 휴지에 쓴 ‘편지’와 함께 두고간 바지값 11원. 6월 마지막 주의 월요일인 25일의 아침 8시, 여느때와 다름 없이 아침 일찍 출근한 연길시 건공가두 장신사회구역 사업일군들은 사무실 문틈에 끼워있는 ‘편지 한통’에서 우연찮게 큰 감동을 받았다. ...
  • 2018-06-2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6) ▩김덕운(장춘) 1966년 민병패장으로 있은 필자(중간줄 왼쪽 첫 사람) 등이 입대하는 청년을 환송하며 남긴 사진 나는 흑룡강성 오상현 향양공사(지금은 향양진) 중원 3대에 살았다. 그 지대는 수전지구로서 아무리 곤난한 년대에도 주식은 입쌀밥이였다. 그래서 시...
  • 2018-06-15
  • - 로투구진 렴명촌 마을 주둔 사업대 대원 전봉씨의 빈곤해탈 분투기 “고향에 돌아오면 안일한 직장생활이 눈앞에 펼쳐질 거라 생각했지요. 지금껏 저는 공무원은 책상머리에만 앉아 일하는 신사스러운 직업인 줄로만 여겼어요. 알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구요. 허허…” 로투구진 렴명촌 마을 주둔 사업대...
  • 2018-06-12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5) ▩김숙자(길림) 소녀시절 친구들과 함께 남긴 사진. 뒤줄 중간 사람 춘애, 그 오른쪽이 필자. 춘애와 나는 초중동창생이다. 녀성의 온갖 아름다움을 한몸에 다 가진듯한 그는 고운 눈에 복스런 보조개에 얼굴형도 길지도 동그랗지도 않고 딱 보기 좋게 갸름한 데다 ...
  • 2018-06-06
  • 케이운칸 온천앞에서 리홍매특파원 원천수(源泉数)가 2만 7000개를 넘는 일본은 세계적인 온천대국이다.“온천에 한번 들어 가면 용모가 아름다워 지고 두번 들어 가면 만병을 치유한다”는 일본인의 온천문화는 1300여년전부터 시작되였다. 올해 2월말, 으로 기네스북에 등록된지 7주년을 맞이하는 온천려관 「...
  • 2018-06-04
  •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세상에 둘도 없는 내 딸아: 안녕? 천사같은 네가 내 딸로 태여나주어서 엄마는 얼마나 든든하고 자랑스러운지 모른단다. 아빠를 쏙 빼닮은 네가 빨간 주먹을 꼭 틀어쥐고 세상에 힘찬 고고성을 울린 그날부터 엄마는 온 우주를 다 가진것 같은 기쁨속에 살아오고있단다. 소학교에 입학해서부터는 해마...
  • 2018-06-03
  • "저한테두 이런 날이 오네요. 요즘 저는 한마디로 살맛 난다고 웨치고 싶어요. 출근해 돈을 벌어본다는 건 상상조차도 못했던 제가 인젠 주위의 도움으로 위챗판매를 하면서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으니...고객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고 하루 종일 텅 빈 공간에서도 외로움 없이 할 일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
  • 2018-05-31
  • 6.1아동절에 즈음하여 29일 연길시 하남가두의 31명 빈곤가정, 결손가정 아동들의 ‘작은 소망’이 현실로 이뤄졌다.활동준비 과정에 하남가두 사업일군들은 전화로 신청을 받거나 직접 빈곤가정을 방문하는 등 방법으로 관할구역 빈곤가정과 결손가정 아동들의 ‘작은 소망’을 수집했다. ‘새 책가방을 메고 싶어요.’, ‘...
  • 2018-05-3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4) ▩리진욱(연길) 1964년 1월 필자의 결혼식 기념사진(앞줄 모친과 조카) 1940년대 중반 부모님의 사진 
  • 2018-05-30
  • 20여년전에 일본에 갓 왔을 때의 일이다. 바다가의 모래밭에 성(姓)자를 새겨놓고 프로포즈하는 장면을 텔레비죤프로에서 보았다. “나의 성으로 되여주세요” “당신의 성으로 되고 싶어요” 깜짝 놀랐다. 절대로 바꿀 수 없다는 의미로 ‘…면 성을 갈겠다’고 맹세를 하기도 하는 ...
  • 2018-05-24
  • 봄빛이 한껏 무르녹는 5월 23일,연변TV《사랑으로 가는 길》 제207회 록화프로 제작이 연변TV방송국 슈튜디오에서 진행되였다. 김광호,김춘희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프로제작은 이제 며칠후의 6.1절을 맞으며 세상의 모든 어린이들이 행복한 명절을 보내길 바라는 방청객들의 소원을 담겨져있다. 프로 첫 사연으로...
  • 2018-05-24
  • 계동현 신봉중학교 제1기 졸업생     중학교졸업 50년 기념 동창모임 측기         ▲사진= 50년 전에 찍은 색바랜 졸업사진.     (흑룡강신문=하얼빈) 꿈 많고 승벽심으로 가득했던 학창시절, 우리는 서로 뒤질세라 경쟁을 하면서 공청단원으로, 모범학생으로 함께 푸른 ...
  • 2018-05-21
  • 애심을 천직으로 간주하고 빛을 밝히다 생을 마감한 고 강철수씨를 추모하면서 《사람으로 세상에 태여나서 존재의 의미와 가치는 부동하다.그러나 생명의 의의를 가늠하는 척도는 생명의 길고 짧음이 아니라 불타는 족적으로 세상에 남긴 한 사람의 선행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가치관이다.》 이 말의 의미는 애심으로 오로...
  • 2018-05-21
  •     위해시 조선족로인협회 주원길 회장의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도움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며 내 삶도 행복한 삶으로 가꾸어 가겠습니다."   위해시 조선족로인협회 주원길회장은 금년에 새로 당선된 간부이다. 4년에 한번씩 교체되는 규정에 따라 원 협회간부들이 임기가 차서 지난해 년말...
  • 2018-05-18
‹처음  이전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