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아름다운 추억118]‘삐꼬'에서 스포츠맨이 되기까지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2월26일 00시00분    조회:1166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6)

▩전영실(연길)

등산길에서 필자 전영실

나는 단위 종업원 운동대회를 비롯해 운동경기에 자주 출전하는 스포츠맨이다. 나에게는 이것이 참으로 ‘기적'이다.

나는 소학교 2학년 때 하학길에 부주의로 넘어지면서 다리를 상했는데 설 수도 걸을 수도 없게 되였다. 병원의 진단은 “둔부의 뼈가 썩기 시작하고 한쪽다리는 힘줄이 늘어났다”는 것이였다.

청천벽력이였다. 창밖에서 뛰노는 아이들을 보노라니 나의 두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나도 저 애들처럼 자유롭게 뛰논다면 얼마나 좋으랴 !

나는 종신불구로 된다는 의사들의 말을 믿고 싶지 않았다. 오른손으로 지팽이를 짚고 왼손으로 벽을 붙잡고 두다리에 힘을 주면서 일어서보았다. 순간, 모진 진통으로 그 자리에 폴싹 꼬꾸라지고 말았다. 어머니는 “이 철없는 것아, 네가 어떻게 일어서서 걸을 수 있다고 그러냐.” 하며 눈굽을 찍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그 말씀도 나의 결심을 동요시킬 수 없었다.

어머니, 아버지,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좋다는 병원과 용하다는 의사는 다 찾아다니였다. 연길의 223병원, 장춘의 길림성병원, 천진의 골과병원 등등. 중의원에서 그 아픈 침만 해도 왼쪽 다리에 한번에 30여대씩 2700여대나 맞았으며 고통의 피눈물은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나는 빨리 걷고 싶은 욕망으로 무릎걸음부터 시작했다. 점차 설 수 있게 되자 발자국 떼는 련습을 하다가 이마를 구들에 쪼으며 넘어진 적도 있고 아픔을 참느라고 입술을 깨물어 피를 흘린 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지팽이를 짚고 겨우 바깥구경을 나가면 조무래기들로부터 “삐꼬, 삐꼬! 다리삐꼬!!!” 하며 놀림을 당하기도 했다.

병원의 치료와 어머니의 정성 그리고 꼭 다시 걷겠다는 나의 불굴의 의지가 하느님을 감동시켰던지 4년 반 만에 끝내 지팽이를 버리고 걸을 수 있게 되였고 학교에도 갈 수 있게 되였다…

어느 하루 신문에서 전 주 자전거경기가 있다는 소식을 보게 된 나는 한번 도전해보고 싶었다. 등록을 해놓은 나는 출근전 새벽에 일어나 밥을 안쳐놓고는 련습으로 모아산까지 자전거를 타고 올라갔다. 매일 시계를 보면서 비교해보니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드디여 1999년 10월 23일 연길시에서 자전거 경기가 진행되였다. 남편과 아들애가 응원하러 가겠다는 것을 나는 “말등하면 어쩌려구. 창피하게… 제발 오지 마세요.” 하면서 말렸다.

남자들 경기가 끝난 후 녀자들 차례였다. 전 주 각지에서 온 선수들이였는데 모두 몸집이 웅장하고 키도 크고 올림픽 선수 같았지만 나는 겨우 155메터 키에 체중 백근이 되나마나해 그들과 비하면 너무나 왜소했다.

시작을 알리는 총소리가 울리자 나는 총알같이 첫 사람으로 페달을 밟았다. 녀자 15키로메터는 흰기를 가지고 페달을 밟아 올리막까지 가서는 붉은기를 바꿔가지고 내려와야 했다. 달리는 도중에 응원하면서 광천수를 권하는 사람도 있었고 우리 몸에 물을 뿌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땀이 좔좔 흘러도 닦을 사이 없는데 언제 그런 걸 돌볼 사이가 있는가. 일분일초 시간과 속도를 다투면서 숨을 할딱거리며 나는 최선을 다했다. 돌아오는 도중 이제 약 20메터 남았는데 자전거 사슬이 벗겨졌다! 돌볼 새가 없다. 뒤사람이 따라온다. 나는 아예 두손으로 자전거를 밀고 죽을둥살둥 모르고 뛰였다. 종점에 이르기 바쁘게 뒤사람이 몇초를 사이두고 들어섰다.

환성이 울렸다. 2등이였다. 나는 너무도 기쁜 나머지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뜻밖의 좋은 성적에 놀란 남편도 혀를 끌끌 차며 점심에 맛나는 음식을 먹자고 했다. 남편과 아들애가 같이 길에 나와 나를 마중했다.

2등상으로 주체육운동위원회에서 영예증서를 주었고 주통신회사에서 전화비 500원을 입금한 삐삐기 한대를 상으로 주었으며 텔레비죤 뉴스에도 소식이 나왔다.

텔레비죤을 본 친구들도 야단법석이였다. “영실아, 너 정말 대단하다. 어쩌면 몇년이나 다리를 앓아 누워있던 네가 이런 큰 경기에 참가하여 등수에까지 들 수 있니? 정말 놀랍고도 감격된다.” 그 날은 내 생애에서 정말 기쁨에 벅찬 하루였다.

앉은뱅이가 될 번했던 내가 이런 경기에 참가하여 등수에 오르다니. 생각하면 꿈만 같다.

또 작년 3.8절이였다. 우리 가사협회의 3.8명절 유희 종목에 팔씨름이 있었다. 나는 B조의 팔씨름 대표로 나섰다. 근데 A조의 선수는 나보다 12년 어리고 키가 170센치메터 이상, 체중이 150근 좌우로 보기만 해도 나는 새우에 불과했다.

책상을 중간에 놓고 호각소리에 따라 치렬한 경기가 시작되였다. 나는 대방의 우악진 손을 꽉 붙잡고 안깐힘을 다 썼다. 그도 만만치 않았다. 그의 손은 남자손처럼 크고도 넙적하고 억대했다. 나는 입을 옥물고 젖 먹던 힘까지 다해서 그와 겨루었다. 두 소조는 각기 목이 터지게 자기 편을 응원했다.

눈은 무시로 깜빡거렸고 손목은 바들바들 떨렸고 입은 악물다 못해 비뚤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나는 실망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다. 키가 크고 억대하면 단가? 나는 키 작아도 악으로 해야지, 절대 항복할 수 없다. 있는 힘 끝까지 해봐야지…

그는 우악진 손으로 나의 팔목을 꺾으려 하였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지려 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손목은 이쪽으로 기울가 하다가는 저쪽으로 기울며 중간에서 긴장히 떨렸다.

몇분간의 치렬한 겨룸 끝에 대방은 끝내 항복하고야 말았다. 그녀는 나를 보고 ‘악물'이라고 롱담을 하였다. 우리 조에서는 너도나도 나를 끌어안고 환성을 올렸다.

전 주 민속절 팔씨름 경기에 참가하여서도 나보다 10년이나 어린 왕청에서 온 힘장사군을 척 꺾었다.

또 연집 뾰족산 등산 시합에서도 우정국 녀자들 몇십명이 총소리와 함께 등산을 시작했는데 중도에서 많이 투항했지만 나는 숨이 차서 할딱거리면서도 마지막에는 나무뿌리, 풀뿌리를 붙잡고 기여올라 2등을 하였다.

5.4청년절 단위에서 있은 모아산 등산 경기에서도 6등을 하여 고급이불을 상으로 받았다.

또 한번은 운동회에서 우편마대에 들어가 달리기를 했는데 남들이 퐁퐁 뛰면서 달리다가 엎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나는 챠플린 걸음 동작으로 쭉쭉 속도를 빼면서 걸어나가 한번도 엎어지지 않고 백메터경주에서 일등을 하였다. 내가 경기장에서 퇴장할 때 우리 황색대는 나를 포옹까지 해주면서 축하해주었다.

맡은 바 사업도 열심이 하니 직장에서 동료들이 인정해주었다.

하면 된다. 내 가족과 사회를 위해 나는 내 심신의 건강에 유익한 일이라면 무엇이나 해보리라. 건강은 삶의 밑천이다.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십여년 동안 휴식일에 등산을 견지하였으며 평소에 매일 5000보 내지 만보씩 걷고 특수상황 외에는 택시를 타지 않으며 장거리에 가면 몇원이면 살 수 있는 산나물, 민들레, 달래, 버섯 등 토산물도 직접 산에 가서 뜯기를 즐긴다. 로동도 일종 운동이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지금껏 40여년 동안 이전의 골과병이 재발하지 않았으며 몸도 가볍다. 그리고 항상 머리가 맑아있어 많은 일에 흥취를 가지게 된다. 료리에 대하여, 살림에 대하여, 또한 사회인으로서 글쓰기에 대해서도…

영원한 장애인으로 사회의 부담거리로 될 번했던 나는 19살 고중졸업생으로 사회에 진출한 후 분발 노력해 수많은 영예도 지녔다.

내가 어렸을 때 매일 아픈 타령만 하고 누워만 있었더라면 오늘날까지도 ‘삐꼬'란 별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이며 오늘과 같은 날은 더구나 없었을 것이다.

평범할 수 없었던 나의 인생길, 평범하지 않은 곳에서 평범한 건강인의 생활을 창조한 나는 이 모든 것이 자포자기하지 않고 완강한 의력으로 열심히 살아온 결과라고 말하고 싶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일본인들의 특유문화 (花見) 해마다 2월에 들어서면 일본의 기상청에서는 벚꽃이 피여나는 개화시기에 대해 예상을 발표하기 시작한다. 꽃망울이 지기도 전부터 텔레비죤 뉴스, 특히 천기예보프로에서는 사쿠라전선(前線),사쿠라만개(満開)시기에 대한 예측, 사쿠라명소 등등 화제로 날마다 북적거린다. 봄을 맞는 풍습...
  • 2018-03-29
  • (사진 클릭하여 영상보기) 영길현조선족실험소학교 6학년 림호준이 아빠께 편지를 쓰고 있다 [편집자의 말] ‘가족사랑 영상편지(3)’을 펴내면서 네티즌들의 아낌없는 고무격려와 응원의 박수에 감사를 드린다. 이번기 주인공은 길림성 영길현조선족실험소학교 6학년 학생 림호준이다. 호준이의 편지내용을 통해...
  • 2018-03-29
  •   “경제리익을 우선시하는 요즘 시대에 이런 분은 보기 드뭅니다.” “자신의 리익을 챙기기 급급한 요즘에 이런 분이 몇분이나 될가요” 요즘같이 인정보다 자신의 리익을 먼저 챙기기 급급해하는 세상에 이러한 미담은 메마른 인정이란 사막에 목을 추기는 오아시스가 되군 한다. 대중교통이 ...
  • 2018-03-28
  •       (흑룡강신문=하얼빈)사람들은 세월의 흐름이 류수같다고들 말한다. 누가 말했는지 딱히는 알수 없는데 나이를 먹어가는 속도도 30대는 30키로로 달리고 40대는 40키로로, 50대는 50키로로 달리고 60대는 60키로로 달린다고 했다. 정말 그런것 같이 느껴진다. 1978년에 교편을 잡아 줄곧 교단을 지키다가...
  • 2018-03-27
  • —장춘시 관성구조선족로인협회 김신숙 회장의 협회 사랑 이야기 장춘시 관성구조선족로인협회 회장 김신숙(81세)은 연설을 할라 치면 발언고도 없이 청산류수로 쏟아내는가 하면 그 목청 또한 힘있고 쩌렁쩌렁하다. 게다가 훤칠한 체격에 걸음걸이도 젊은이들 못지 않게 날파람 있고 사유와 반응도 무척 민첩하다. 2...
  • 2018-03-27
  • 장춘조선족부녀협회 3.8절 경축 및 제45차 장학금 발급 행사 개최 장춘조선족부녀협회, 장춘시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공동 주최한 ‘장춘조선족부녀협회 3.8부녀절 경축 및 제45차 장학금 발급’ 행사가 3월 25일 장춘시조선족군중예술관에서 개최되였다. 여러 원인으로 뒤늦게 펼쳐진 녀성절 축하 및 장학금 발급...
  • 2018-03-26
  • 동방가무단의 안정, 미국에서 새로운 무용인생에 도전   쇼우스토펄(Showstopper)은 미국 아마추어무용가(본업으로 하지 않고 무용을 애호하는 사람)들의 최고의 경연대회로서 해마다 전미 40개 지역의 무용애호가들이 불꽃튀는 경연을 펼치며 프로급수준의 실력을 자랑하고 있다.   이 쟁쟁한 경연가운데서 미국...
  • 2018-03-2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4) ◈김춘식(한국) 지금은 애완견을 많이 기르고 있지만 개에게 물려도 광견병 왁찐을 사지 못할가 걱정하는 사람이 없다. 병원, 위생방역소에서 얼마든지 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30년 전까지만 해도 이런 상황이 아니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나는 왁찐을 ...
  • 2018-03-21
  • 3차에 거쳐 8만원 가치의 박방표 파스 후원 박방생물과학기술유한회사 박원일(좌)대표가 연변지체장애인협회에 1000통의 파스 전달 연변 지체장애인들에 대한 사랑이 오늘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3월 16일,상해박방생물과학기술유한회사(대표 박원일)에서는 각종 통증을 해소하는 박방백소통 파스 1000통(3만원)를 연변지체...
  • 2018-03-19
  •   15일, 국제소비자권익 보호일을 맞아 전국 방방곡곡에서 소비자권익보호를 둘러싼 소비자 고발과 선전활동이 펼쳐진 가운데 룡정시 백금향정부에는 ‘3.15’주제와는 무관한 흥미로운 ‘고발’ 3건이 련달아 제기돼 황당하면서도 훈훈한 감동을 자아냈다. 고발 1.'3.15'를 맞아 저는 저...
  • 2018-03-16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3) ◈ 류춘옥(일본) ‘동춘호’는 우리의 고향이였고 우리의 친인이였으며 우리의 꿈이였다   ‘동춘호’에 첫 컨테이너를 실었던 류춘옥 부부 2008년 10월 31일은 나의 40년 인생에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소중히 간직되여...
  • 2018-03-15
  • 22년전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첫날부터 대변인으로 나서준 히사타케(久武)씨, 내가 처음으로 접촉한 일본인이였던 그가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것이 2007년 여름이였다. 마지막 병문안을 갔다 온 후 한달만에 전화를 받고 숙야(通夜)장소에 갔다. 생전에 리론적인 변론을 즐겼던 히사타케씨는 약물치료를 거부하고 ...
  • 2018-03-13
  • 일전, 연길시 북산가두 단영사회구역의 ‘숙청언니작업실(大姐工作室)’이 정식으로 설립되였다. 이는 왕숙청과 같은 사회구역 사업일군들을 육성하고 단영사회구역과 같은 시범집단을 구축하는데 일익을 담당할 것으로 예견된다. 료해한데 따르면 왕숙청은 사회구역 사업에 종사한지 17년이 되였고 그가 몸담고 있는 단...
  • 2018-03-12
  • 연변의 배달왕에 도전한 한 조선족 젊은이의 이야기 컴퓨터앞에서 직원들을 관리하고 있는 168무역회사 지욱 총경리. 요즘 조선족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많이 달라졌고 또한 그들이 창업하여 성공 일로를 걷는 기간도 무척 짧아졌고 세련되였다. 젊은이들이 막강한 경제실력이나 유력한 경제후원도...
  • 2018-03-08
  • 행복한 배상봉씨 가족 어머니들이 자식을 키우면서 인생의 가장 소중한 체험을 하듯이, 남자들도 슬그머니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웁니다. 원래 애 키우자고 내가 이 지구별에 온 것은 아니였지만 어쩌다 보니 애까지 있게 되였고 또 천하에 가장 맛있는 김치와 도라지무침을 모른다는 일본이라는 땅에서 당분간 애를 ...
  • 2018-03-05
  • 연길시 신흥가두 민부사회구역에 사는 한 독거로인이 보름명절을 맞으며 본 편집부(길림신문)에 보내온 감사 사연을 담은 편지이다. 독거로인이 흔히 부딛치는 병원가기 관심 문제 및 생활 보살핌 문제상 로인은 신변사람들과 사회구역으로부터 진정어린 관심, 보살핌을 받은...
  • 2018-03-05
  • 3월 1일,간밤에 내린 함박눈은 연길시내 곳곳을 하얗게 뒤덮었고 환경미화원들은 이른새벽부터 교통안전을 위해 거리와 골목에서 눈치기에 여념이 없었다. 연길대교 부근에서 눈을 청결하던 환경미화원들은 문뜩 찾아온 10여명 청년지원자대오의 소행에 저으기 마음이 훈훈해졌다. 청년지원자들은 환경미화원들에게 뜨근뜨...
  • 2018-03-02
  •   일본에 온 지 어언 19년이 된다. 그동안의 일본에서의 생활을 돌이켜보면 내가 걸어온 길 자체가 바로 일본에서의 나의 성장과정이 아닐가 싶은 느낌이 든다. 물론 10명중 7명은 나와 같은 길을 걸어오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1999년 5월, 녀동생과 같이 바다를 건너 일본땅에 발을 내딛고 나서부터 지금까지의 일들...
  • 2018-03-01
  • 제2회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1) ◇리룡득(안도) 32년전 하경지어르신(좌)을 모시고 찍은 사진(중간 전파 주임, 오른쪽이 필자.) 지금으로부터 32년 전인 1986년 8월 25일 오후였다. 내가 안도현문련 사무실에 방금 들어서는데 전화벨이 따르릉 세차게 울렸다. 얼른 송수화기를 들자 현인대 과학교육...
  • 2018-03-01
  • 정월 대보름이 사흘 앞으로 다가온 눈 내리는 27일 아침, 정월 대보름을 맞아 윷판을 차려놓고 마을 로인들을 기다리는 연길시 건공가두 장해사회구역 로년협회 몇몇 회원들의 일손이 분주했다. 올해도 장해사회구역에서는 정월 대보름 행사가 미리 펼쳐졌다. 반갑지만은 않은 봄눈 때문에 로인들의 출행이 불편하지는 않을...
  • 2018-02-27
‹처음  이전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