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우리네 중년이야기 '요즘 부모로 산다는 것은'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2월19일 13시38분    조회:1658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리화-

 

성인자녀와 백발부모의 사이에 끼여있는 50, 60대. 백세시대 절반을 접고 보면 어느새 내 인생의 세대좌표 역시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닌, 딱 중간 그 자리에 와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온전히 나 자신 뿐만이 아닌 어느 부모의 자식으로, 어느 자식의 부모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어떤 것이여야 하는지. 인간 누구에게나 그러하듯이 이번 생은 처음이라, 자식으로 그리고 부모로 사는 것도 처음이라 정답이 무엇인지, 그 정답이란게 과연 있기나 한 건지 알쏭달쏭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와 반성, 불안과 고민으로 골고루 어우러진 이런저런, 여차저차한 사연과 시비들 속에서 어렴풋이 그려지는 우리네 중년 그 삶의 모노그라프. 이제 더 늦기 전에 그 속을 찬찬히 들여다봐야 할 것 같다.

 

반백의 부모는 외국에서 일한지 어언 십수년, 일전 한푼이라도 아껴 쓰면서 힘든 세월을 버뎌낼 수 있었던 리유는 오로지 자식 하나 때문. 다행히 부모가 곁에 없어도 삐뚠 길 걷지 않고 좋은 대학에 합격할 정도로 잘난 아들, 그게 더 기특하고 장하고 미안해서 뼈 빠지는 줄 모르고 열심히 뒤바라지를 해왔다. 여기까지는 부모된 도리로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하는 거라 치자. 문제는 대학졸업후에도 마법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류학, 결혼, 집장만, 손주 돌봄의 얽히고설킨 실타래… 빠듯한 월급에 매달려 살아가거나 경제력이 없는 부모들에게는 더더욱 답답하기만 한 이 상황들. 그야말로 밑 빠진 독, 도무지 헤여나올 구멍이 보이지 않는 기묘한 부모-자녀관계의 덫에 갇혀버린 요즘 우리 중년들의 모습이다. 

 

 

"첫 딸은 살림밑천"이라는 우리말이 있다. 그만큼 성인이 되고 출가한 뒤에는 아들보다 부담이 적고 부모에게 살갑게 도움이 되는 자식이라는 얘기가 되겠다. 그렇다면 요즘 우리네 딸들은 얼마나 다를가. 온갖 정성을 다해서 잘 키웠다고 자부했더니 '신세대 녀성답게' 남자와 똑같이 신혼집, 자가용 비용을 반반해야겠다며 어려운 부모의 사정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딸. 시부모보다 더 편하다는 구실에 반찬부터 자녀양육에 이르기까지 살림살이 전체를 친정부모에게 떠맡기면서도 이러쿵저러쿵 여러모로 마땅치 않은 딸. "자기 부모라서 믿어서" 더 거침없이, 더 서슴없이 내뿜는 가시 박힌 폭언들… 그래서 요즘은 며느리보다 딸 시집살이가 더 힘들다고 하는가.

 

물론 공부뿐만 아니고 인격적으로도 훌륭하게 자란 자녀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그런 자녀들을 둔 경우에도 사방천지로부터 소리없이 죄여오는 '부모로서의 책임과 의무' 내지는 '부모다움'의 사슬. 형편이 모자라서 자녀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는 것은 무능력함이요, 형편이 되면서도 안해주는 건 자녀에 대한 사랑이 부족해서라. 그래서 우리는 누가 머라 하지 않아도 제 풀에 찔려하고 분노하며 답답해한다. "키워주고 대학까지 보냈으면 됐지 어디까지 해줘야 해?", "우리 집 형편에서 더는 안돼, 여기까지야", "이건 분명 좋지 않은 풍기야, 바꿔야 해!" 하면서들 말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어떻게 잘못된 것일가. 성인이 된 후에도 자립하지 못하고 부모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받는 이른바 '캉가루족'이 전 세계적으로 증가하면서 경기불황, 저임금, 고용불안과 취업난, 고물가 등 사회경제적 구조에 초점을 맞춘 담론들이 많이 쏟아져나오고 있지만 우리네 가족 그 자체에는 문제가 없는걸가. 

 

오랜 세월 동안 우리에게 결혼=출산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였으며 특히 농경사회의 가족에 있어서 자식은 생산로동력, 로후 부양자로서의 중요한 경제적 가치를 지니는 존재로 인식되여왔다. 전통적인 가부장제에서는 년로한 부모님 앞에서 제 자식을 이뻐라 하는 티를 내도 불손한 것이였고 가장이 숟가락을 들기 전에는 다른 식구들이 음식을 먼저 짚어도 안될 정도로 철저한 위계질서가 지켜졌다. 자식들은 때가 되면 결혼하고 독립적인 가정을 이루어야 하며 부모님을 모시는 것이 기본 도리였다. 요즘도 농촌에 가보면 로인협회의 가입년령이 50세로 되여있듯이 불과 십년 전만 해도 우리 사회에서는 50세만 넘으면 로인취급을 받고 환갑을 넘기면 생산로동에서 완전히 손을 뗐었다.

 

 

그러나 현대사회에서 결혼은 더는 필수가 아닌 선택사항으로 되였으며 출산과 자녀의 수 역시 자체조절 가능한 가족계획으로 탈바꿈했다. 한구들에 올망졸망 아이들이 부모님을 둘러싸고 오순도순 시끌벅적 살아가던 풍경은 이미 옛말이 된지 한참. 집안행사에 어린 아이 몇명 찾아보기 힘든 요즘 세월에 자식은 말 그대로 꼬마황제. 

 

아이가 귀해진 만큼 이제 자식은 로동력이나 로후대비책이 아닌 정서적 애착과 애정의 대상으로서 그 가치를 재확립하게 된다. 아울러 부모는 학업은 물론이고 취업, 결혼, 손자녀의 출산과 양육에 이르기까지 성인기를 훨씬 지난 자식의 모든 생애과정에 밀착관여함으로써 집값을 비롯한 물가의 폭등과 취업난 등 사회적 악재와 더불어 자녀세대의 실질적인 성인으로의 리행을 크게 지연시키고 있다. 덕분에 기약없이 늘어진 우리네 중년기. 이제 50, 60대는 더 이상 대접받는 로인이 아닌 인생 제2라운드 육아전에 출전하는 주력선수들이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소를 팔아서라도 자식을 공부시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교육열이 높다. 오늘날 '공부 잘하는 자식=잘 자란 자식'이라는 등식 또한 이러한 맥락에서 나온 것이라 생각된다. "공부만 잘하면 뭐든지…","이번 시험을 잘 치면, 중점고중에 붙으면, 중점대학에 붙으면…". 자녀에 대한 모든 관심이 공부에 집중되고 성적의 높고 낮음이 곧 금전적인 대가로 직결되며 반대로 정신적 소양이나 인성•사회성 교육에는 아예 뒤전인 부모들이 허다하다. 

 

그런가 하면 우리네 정서상 가족사이 돈 얘기는 왠지 불편하다, "그까짓 돈이 뭐라고","돈이 먼저야? 자식이 먼저야?"… 자식을 위해서는 무리를 해가면서까지 희생하고 지원해야 '부모다운' 부모고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인간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식의 담론들. 얼핏 들으면 나름 그럴 듯한 '부모다움'의 해석이고 척도인양 비춰지겠지만 그 리면에는 부모세대가 겪는 엄청난 정신적 스트레스와 경제적 부담 그리고 이제 닥쳐 올 로후준비의 어려움들이 한가득 감춰져있다는 것.

 

탈무드에 "물고기를 잡아주면 아이가 하루를 살 수 있지만, 그물 짜는 법을 알려주면 평생을 살 수 있다"라는 구절이 있다. 자식을 무조건 감싸고 희생하는 것만이 사랑이 아니며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와 지켜가야 하는 도리를 가르치는 것이 중요하다. 소중한 자식이기에 내 힘으로 일어서는 수고스러움과 즐거움을 알게 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떠나야 할 때 과감히 놓아주는 게 참사랑이 아닐가.

 

현명한 부모라면 자식에게 준 만큼 돌려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예전처럼 자식이 부모와 동거하면서 로후를 돌볼 것을 기대하는 이들도 점점 줄어들고 시설이나 친구들과의 공동양로 등 다양한 방식의 로후생활을 구상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지금의 중년세대에게는 또 년로한 부모님들이 계신다. 급격한 고령화로 크게 연장된 로후로 인해 아래우로 자식-부모-자식의 삶을 살아가야 하는 세월이 길어졌다. '더블케어(Double Care)', '트리플케어(Triple Care)'라는 개념까지 출현하듯이 그나마 전통적인 가족관념을 어느 정도 소지한 마지막 세대로서 부모를 부양하고 자식과 손자녀까지 챙겨야 하는 요즘 50, 60대 중년들, 그네들의 등골이 휘여간다.

 

부모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부모로 산다는 것은 두렵고 어렵고 조심스러운 일이다. 부모는 자식을 위해, 자식은 부모를 위해 어디까지 해야 하며 무엇을 해줘야 하는지. 깊은 고민이 필요한 때다.

 

/인민넷 조문판

파일 [ 2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외지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어디에 있든지 생활상황이 어떠한지를 막론하고 설을 쇨 때에는 고향에 돌아와 가족들과 한자리에 모이게 된다. 음력설기간 기자는 외지에서 사업하고 학습하는 안도현의 4명 귀향인원을 만나 이들이 고향에 대한 기대와 정감을 느껴보았다.   시민 마우붕은 지난해 대학을 졸업한 후...
  • 2018-02-27
  • [백성이야기71]수집인생의 “화분”으로 빚어내는 “황금꿀” 연변장백산우취협회 리사 김영일선생의 수집인생 이야기 들어본다 모아왔던 수집품들을 작품으로 승화시킬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김영일선생 “언제든지 시간 나면 놀러오슈…” 매주 주말이면 장이 서는 연길의 한 골동품...
  • 2018-02-26
  •       음력설을 맞아 위챗 채팅그룹마다 따뜻한 새해덕담과 명절인사로 가득찼다. 이 가운데 16일 안산시조선족경제문화교류협회는 자체 채팅그룹에서 ‘온정’을 주제로한 사진교류활동을 벌렸다. 회원들이 채팅그룹에 적극 공유한 가족사진, 설날밥상사진을 투표에 따라 1, 2, 3등을 ...
  • 2018-02-24
  • 북경에서 대학을 마치고 상해에 있는 일본회사에서 8년간 일하다가 작은 집도 사고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했다. 그런데 그런 안정된 생활을 하게 되니 생활에 대한 격정과 자극이 없었고 더 발전이 없을것 같은 따분한 현재가 권태로워졌다. 그래서 현실을 타개하는 길을 선택한것이 바로 일본류학이였다.   일본 도쿄...
  • 2018-02-23
  • 사랑하는 딸과 함께 한 윤화씨 중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고향 은행에서 여유롭게 일하던 나한테 일본류학을 소개해준 것은 같은 은행을 퇴직하고 일본류학을 떠난 후배였다. 그 당시에는 류학신청에서도 떨어지는 경우가 많은지라 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부모와 회사를 속이고 일본류학 신청을 시작했다.그런데 예산...
  • 2018-02-22
  •      ‘미(美)+청(青)’ 사진관 4년만에 9개 가맹점 거느려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당신에게 다가서는 김개강 사장   (흑룡강신문=하얼빈)정명자 기자=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촬영했던 90년대, 스튜디오이자 사진 현상소(照片冲洗店)였던 사진관은 어디서든 쉽게 볼수 있었다.   하지...
  • 2018-02-12
  • 일본에 온 지 어느덧 17년, 내 인생의 거의 절반, 그것도 제일 찬란한 20대와 30대를 일본에서 지내왔다. 돌이켜보면 힘든 적도 있었고 슬픈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좋았던 거같다. 누구나 다 있는 20대와 30대를 많은 이야기로 수놓았으니 지나온 날들도 행복했고 현재도 행복하고 앞으로도 행복할 것이다.   연변대학...
  • 2018-02-09
  • 내가 일본에 와서부터 자주 듣는 말이 있다.    “넌 일본에 살아서 참 좋겠다.”  일본에 살면서 얼마나 많이 외로운데, 서러울때는 또 얼마나 많았는데…그러나 끝내는 무거운 미소로 묵인하고 만다.  “그래, 나 너무 좋아. 찢어지게 가난하던 촌년이 일본에 와서 출세했으니...
  • 2018-02-05
  • 남영권씨 가족 “세월이 류수”라는 말이 지금은 리해가 간다. 일본에 온지 벌써 20년이 되였다. 일본의 버블경제가 무너지고 이른바 잃어버린 20년 바로 그 시기를 나는 일본땅에서 보냈다. 우연한 기회에 친구의 덕분에 사이타마켄(埼玉県)에 있는 일본어학교의 입학통지서를 받게 된 나는 부모님이 챙겨준 일...
  • 2018-02-05
  •     (흑룡강신문=하얼빈)1932년 4월 조상봉씨의 셋째 아들로 태여난 나는 다섯살때 어머니를 잃고 12살때 기둥같이 믿던 아버지마저 급성장염으로 돌아가셨다. 동년시절 한창 공부할 나이에 지주의 머슴질도 해보고 학도공으로 힘겨운 나날을 보내던 나는 조직의 배양으로 1952년 10월에 사업에 참가하고 입당을 하...
  • 2018-02-05
  • 정성을 몰부어  꽃떡을 빚고 있는 김몽 지난 한해가 막 저물어가고 있는 그때 남방의 대도시 광주에서 한 40대 조선족녀성이 연길 “궁중떡향기” 공방으로 앙금플라워 꽃떡공예를 배우러 찾아왔다. 이름은 “김몽“이라 했고 이미 광주에서 17년간“고향떡집”을 경영해왔다고 했다. ...
  • 2018-02-01
  • 편집자의 말: “일본생활수기”시리즈를 내면서 1983년 당시 일본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내각이 “류학생 10만명 계획”을 세운 후 세계로 향한 일본 고등교육의 대문이 열렸다. 80년대 국비류학, 사비류학으로 시작된 조선족의 일본에로의 이동은 낯설고 물선 이국땅에서 정착의 시대를 넘어...
  • 2018-02-01
  • "기층 당지부서기로서 군중과 한마음이 되여 백성들을 위해 열심히 봉사하련다." 이는 촌에 내려가 제1서기 직무를 맡고 있는 장백조선족자치현심계국 당지부서기 박선렬의 심중 고백이다. 금년에 39살에 나는 박선렬은 지난해 5월, 현 조직부문의 배치에 따라 십사도구진 망천아신촌에 내려가 촌당지부 제1서기 직무...
  • 2018-01-22
  •         (흑룡강신문=하얼빈)렴청화 연변특파원= 룡정시 로투구진 동불에 들어서는 길목은 버드나무로 즐비하다. 마을 입구에서 우정국까지 나무가 500-600미터쯤 줄지어선 모습은 동불사회구역로인협회 회원들이 '마을가꾸기'의 일환으로 일궈낸 풍경이다.   그들이 마을을 ...
  • 2018-01-17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71) ◇한해동(장춘)   필자 한해동  벌써 80고개를 훨씬 넘은 나는 늘 지난날의 일들을 회억하게 된다. 후회되는 일도 많고 자랑스런 일도 적지 않다. 인생은 마치 흘러가는 물과도 같아 장애물에 부딪쳐도 멈추지 않고 에돌아가노라면 언젠가는 끝내 머나먼 큰 바다...
  • 2018-01-17
  • 섬나라 사람들인 일본인들은 나무 한그루, 벌레 한마리에도 무한한 애정을 갖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힐링의 명소로 찾는 일본정원, 늪을 중심으로 정원석과 자연의 나무, 풀로 꾸며진 그 곳에 가면 ‘인간을 자연의 일부'라고 여기는 일본인들의 감성을 짙게 느끼게 된다. 자연을 가까이에 하려는 일본...
  • 2018-01-17
  • 한국에서 딸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 안녕? 사랑하는 내 딸 지월아, 엄마는 우리 딸이 너무나 보고 싶구나! 너의 편지를 보고 우리 딸이 씩씩하고 건강하게 커줘서 엄마는 정말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구나! 그리고 공부도 잘하고 여러 방면에서 모두 우수해서 엄마는 너무나 기쁘고 우리 딸이 자랑스럽다. 우리 딸이 가장 필...
  • 2018-01-10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70) ◇서문만옥(길림) 문우들과 함께 있는 필자(왼쪽 첫 사람) 올해 내 나이 75세, 지나온 길을 되돌아보며 아버지(서문화봉씨)의 령전 앞에서 “아버지의 꿈을 제가 이루었어요!”라고 떳떳이 말할 수 있어 가슴이 뿌듯해진다. 나는 아버지의 꿈대로 한평생 우리말...
  • 2018-01-09
  • ‘아름다운 추억’ 수기 응모작품 (69) ◇리송규(훈춘) 학생시절 대련 바다가에서의 필자 소중한 추억은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법이라 할가? 그것도 내가 가장 즐기는 바다에서 얻은 것이기에 더욱 잊을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물 몇살 젊은 시절 장춘에서 대학교에 다닐 때 대련에 간 적이 있었다. 대...
  • 2018-01-09
‹처음  이전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