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옌타이시조선족사회의 선구자 손익규•윤송죽 부부 이야기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7월18일 14시42분    조회:1727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손익규,윤송죽 부부가 막내딸과 함께 포즈를 취한 장면
 

  (흑룡강신문=칭다오)박영철 기자=손익규, 윤송죽 부부는 지난 1961년부터 옌타이시에 거주하면서 옌타이조선족사회의 산 증인으로 불리며 선구자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옌타이시 중조어업협정 옌타이판공실 통역, 옌타이시외사판공실 섭외과 과장, 옌타이한인상공회 사무국장, 옌타이시조선족노인협회 초대 고문, 제2대 회장직까지 역임하면서 옌타이조선족사회를 위하여 많은 공헌을 해온 손익규(1935년 생) 선생은 지금도 노인협회 회원으로부터 과장, 회장, 고문으로 불리면서 존경받고 있다. 부인 윤송죽(37년 생)씨도 옌타이조선족노인협회 초대 부회장, 예술단 부단장을 지내며 역시 주변에서 영원한 윤 언니로 불리우고 있다.길림성 화룡현 용수평이 고향인 손 고문은 4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투도중학교와 한족 고중을 졸업하고 1955년에 군에 입대하여 1958년에 제대하였다.윤송죽 여사도 화룡현 용호촌 태생으로 57년에 연변 제1고중을 졸업하였다.

  운명적인 만남천생연분이었던지 두 사람은 1958년에 다롄수산전과학교(현재 다롄수산학원)에 가지런히 입학하면서 운명적인 연애를 시작하였다. 1년 후인 1959년에 결혼하면서 윤 여사는 남편의 뒷바라지를 위하여 학교를 중퇴하고 1960년 8월부터 화룡현 용수평 중심소학교에서 3년간 민영교사사업을 하였다.손 고문은 1961년 8월 대학을 졸업하고 다롄해양연구소에 배치받았다. 마침 중국과 조선이 중조황해어업협정을 맺으면서 옌타이시해양어업공사에 <중조어업협정 옌타이지구판공실>을 설립, 통역이 급히 수요되어 손 고문은 그해 11월 옌타이시로 조동되었다.1975년 중조어업협정 옌타이지구판공실이 옌타이시외사판공실과 합병되면서 손 고문은 1980년부터 외사판공실 섭외과 과장으로 사업하다가 1995년에 정년 퇴직하였다.윤 여사는 남편을 따라 1963년에 중조어업협정 옌타이지구판공실에 조동되어 통역사업을 하다가 1992년 외사판공실 비서과 당안관리원으로 퇴직하였다.

  외로운 타향생활국가의 수요에 따라 옌타이에 왔지만 친인척 하나도 없는 이 곳에서 이들 부부는 3남매를 키우며 외롭게 살아왔다. 그나마 우연히 1956년부터 옌타이에서 거주한 손영석, 윤삼여 부부와 1958년에 이주해온 송일룡 가족과 알게 되면서 향수를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었다. 당시 옌타이에는 조선족이 이들 세 가족뿐이었다고 한다.중조어업협정 옌타이지구판공실은 스다오, 롄윈강에도 어업기지가 있어 손 고문은 출장을 자주 다녔다. 스다오에 모 부대가 주둔하고 있었는데 손 고문은 거기서 많은 조선족군인들을 알게 되었다. 당시 손 고문네는 25제곱미터밖에 안되는 단층집에서 다섯 식구가 살고 있었는데 이들 조선족군인들이 동북 고향으로 갈 때면 손 고문네 집에서 묵고 가기 일쑤였다. 외로운 타향생활에서 같은 민족 젊은이들이 찾아와 북적거리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고 윤 여사 또한 때시걱 하느라 힘도 들었지만 얼굴 한번 붉힌 적이 없었다.

  한인상공회 사무국장 맡아손 고문은 1975년부터 옌타이시외사판공실에 근무하면서 해마다 선진공작자로 평선되었으며 산둥성선진모범 칭호도 수여받았다. 윤 여사도 해마다 선진공작자상을 받았으며 당안공작선진상도 수차 받았다.개혁개방의 전진지역인 옌타이에서 외사판공실 섭외과 과장업무를 보았던 손 고문은 자연히 한국기업과 많은 접촉을 하게 되었으며 피를 나눈 동족이라는 생각에 능력이 닿고 정책이 허용하는 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해 도와주었다. 그래서였던지 1995년 손 고문이 퇴직한지 얼마 되지 않아 옌타이한인상공회에서 사무국장직을 맡아달라는 부탁이 왔다. 하여 97년까지 2년 간 한인상공회에 근무하면서 회원사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현지사회와 소통하는 ‘해결사’ 역할을 놀았다.

  조선족사회의 선줄군1992년에 정년 퇴직한 윤 여사는 옌타이시에 정착한 배금애 선생과 만나면서 노인협회를 설립하기로 상론했다. 그 때 외사과에 재직하고 있던 손 고문이 든든한 후원자로 나서면서 배금애 회장, 윤송죽 부회장, 손익규 고문으로 이루어진 노인협회가 그해 6월 고고성을 울렸다. 당시 회원은 12명이었다. 이 협회는 당시 옌타이시 유일한 조선족단체로 93년부터 옌타이조선족운동대회를 4차례 주최하였으며 후에는 옌타이조선족기업가들로 구성된 옌타이시조선족운동회 주비위원회와 공동으로 2차례 운동대회를 개최하였다. 아울러 자체로 옌타이조선족노인운동대회를 7회 조직하기도 하였다. 그 기간 손 고문은 외사과 과장, 한인상공회 사무국장이란 신분으로 큰 역할을 놀았다. 윤여사도 많은 일을 해왔으며 특히 옌타이조선족노인예술단 설립 초기부터 부단장을 맡아 민족사회에 기여했다. 손 고문은 2001년부터 2011년까지 노인협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윤 여사는 92년부터 2000년까지 노인협회 부회장으로 있었다.

  여생도 민족사업에 손익규, 윤송죽 내외는 올해부터 산둥성인민정부 제대군인사무부로부터 영예가정대우를 받고 있다. 자식 삼남매의 지극한 보살핌하에 행복한 만년을 보내는 그들이지만 시종 현지 민족사업에 관심을 아끼지 않고 있다. 손 고문은 건강 원인으로 거동이 불편해 노인협회 활동에 참가하지 못하지만 지금도 빠짐없이 회비를 내고 있다. 윤여사는 남편을 시중들면서도 협회의 대소 활동에 꾸준히 참가하고 있으며 민족사회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서서 구성원들의 칭찬을 한몸에 받고 있다.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 글 / 조련화 -   (흑룡강신문=도쿄) 2018년 5월 20일 일본조선족문화교류협회에서 주최한 우리 노래 대잔치가 도쿄 닛뽀리에서 성황리에 열렸고 나는 짝궁 훈이와 듀엣으로 무대에 오르게 되였다. 꿈만 같았던 하루, 잊을수 없는 그날은 나의 인생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의 계기가 되였다.   노래자랑에 참가하게 된것...
  • 2019-09-20
  • 독서에 심취한 전동빈,조예화부부의 이야기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창업에 뛰여드는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종종 뉴스로 전해지기도 한다. 허나 월급을 주요 수입원으로 하는 그런 직장을 그만두고 금전적인 수익이 없는 공익사업에 뛰여드는 사례는 그리 흔치 않다. 7년간의 노력으로 쌓아올린 공무원직을 내려놓고 &...
  • 2019-09-16
  • 초등학생이 그린 테네시 대학교 로고(왼·로라 스나이더 페이스북)와 실제로 제작된 테네시대 티셔츠(오·테네시대 공식 트위터 계정). 미국의 한 대학교가 초등학교에서 놀림당하던 학생의 그림을 대학교 티셔츠로 제작했습니다. 친구들의 조롱으로 주눅 들어있던 이 아이와 부모는 어른들의 배려에 감동받았다...
  • 2019-09-14
  • 까치소리는 언제나 반갑고 그립다. 까치소리는 내 동년의 아름다운 추억중의 하나로 나의 마음 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 마을 앞 키 높은 백양나무 우에 둥지를 틀고 알을 까고 새끼를 키우며 가끔 마을의 낮은 지붕우로 “깍깍”거리며 날아지 날 때면 어쩐지 기분이 좋았던 나의 동년시절이다. 필자 홍순...
  • 2019-09-09
  • - 글 / 리연춘 -       (흑룡강신문=도쿄) 지난 가을쯤이였던것 같다.   이른 아침 한주일 먹거리를 장만하려고 우리집 부근의 아침시장으로 나갔다. 부지런한 한족들은 쌀쌀한 늦가을에도 사이사이에 발 들이댈 틈도 없이 일자로 길 한쪽에 난전을 펼치고 싱싱한 풋채소에 상긋한 과일에 고기까지 없는것이...
  • 2019-08-22
  • 련이은 장마로 올해 유난했던 무더위가 주춤하는 말복, 알라디조선족학교 72년 13기 졸업생동창생들이 고향마을-알라디를 찾아 큰소리로 “고향아, 우리가 돌아왔노라.”를 웨쳤다.   드디여 고향마을에 도착한 동창...
  • 2019-08-19
  • ‘인생 70 고래희’ 라고 하던데 내 나이가 벌써 73살 된다. “아이들은 날(日)이 빠르고 해(年)가 늦고 로인들은 날이 늦고 해가 빠르다”는 말과 같이 실로 감짝 사이에 한해가 지나니 말이다. 젊어서는 희망으로 살고 늙어서는 추억으로 산다더니 이 나이를 먹고 보니 지나간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하...
  • 2019-08-19
  • - 글 / 한경애 -           개미 채바퀴 돌듯 석자 교단에서 달리고 달리다가 멈춰서 되돌아보니 어언간 30년이란 긴 세월이 흘렀다. 사슴의 눈망울을 가진 꼬마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인간성을 키워주는 시간속에서 수많은 부동한 색갈의 이야기로 아름다운 멜로디를 엮어왔다. 내 기억의 푸르른...
  • 2019-08-16
  • 인생은 미완성 숙제   김 경 희   인생살이 굽이굽이 아리랑 열두 고개, 집집마다 말 못할 사정이 있듯이 나도 살면서 끝없이 꼬리에 꼬리를 문 문제들에 마주하며 살아왔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인생 매단계마다에 의미를 부여하며 참으로 벅차고 억척스레 살아온 것 같다. 그렇게 내 인생의 끝...
  • 2019-08-15
  • - 글 / 김미란 -       (흑룡강신문=도쿄) 오늘도 예전처럼 일 끝내고 집에 와서 부랴부랴 저녁상을 차려놓고 작은 아들과 식탁에 마주앉았다.   무의식에 반찬 하나를 가리키며 아들한테 물었다.   "이 반찬 누가 제일로 좋아하지?"   "할아버지..."   "어떻게 알아???"   "엄마가 이 반찬 할 때마...
  • 2019-08-09
  • 코리아패션의 손향(좌1) 사장 연변지체장애인협회 리춘자(가운데) 회장에게 운동복을 전하고 있다. 연길 코리아패션의 손향 사장은 지난  8월 5일, 총동문회 회장단 일행과 함께 연변지체장애인협회를 방문, 운동복 20벌을 후원했다. 지체장애인협회 활동실에는 다가오는 연변주장애인좌식배구경기에 참가하기 위해 선...
  • 2019-08-08
  • 화룡시 룡성진 부흥촌 제대군인 렴경창의 고향건설 이야기 생활이 제일 구차한 촌민 기와집에 먼저 지난세기 70년대에 건설된 부흥촌 주택구 “이제 당의 지시에 따라 우리가 악전고투한다면 고향사람들이 저런 오두막에서 번신할 날도 멀지 않겠지” 제대하던 날 렴경창은 기와집 한채 보이지 않던 부흥마을을 ...
  • 2019-08-07
  • 정든 고향을 떠나면서 기억속에 담아놓은 연길공항 오늘날 세상은 5G 시대에 들어섰고 세계는 하나의 지구촌을 이루고 있다. 나한테 가정용전화기가 절실했던 시대는 불과 25년전의 일에 지나지 않지만 먼 옛날 얘기처럼 고리타분하게 들린다. 를 맞이한 고향의 변화는 실로 놀라웠다. 중국 연변에서 모바일의 혁신적인 변...
  • 2019-08-06
  • 화룡시 룡성진 부흥촌 제대군인 렴경창의 고향건설 이야기 연길 아들 집에서 기자와  인터뷰 중인 렴경창옹. (사진설명: 렴경창부부(안로인 지난해 85세로 병고)는 슬하에 네 오누이를 두었는데 딸을 일찍 잃었고 세 아들 중 두 아들은 제대군인, 지금 세 아들은 다 외국에서 로무에 종사하고 있다. 렴...
  • 2019-08-05
  • 친구들과 함께(왼쪽 두번째가 리화옥씨). 꿈같은 고향나들이 마지막 일정으로 오늘은 두만강하류일대를 따라 중국대지의 제일 동쪽에 있는 ‘동방제일촌’훈춘시 경신진 방천 관광길에 나섰다. 5월 1일 아침 여섯시 정각, 큰 언니가 새벽부터 정성껏 말아준 김밥을 넉넉히 싸가지고 약속된 지점에서 기다리고 있...
  • 2019-08-02
  •   - 글/ 박영옥 -    오늘은 토요일이라 애들이 작문배우러 오는 날이여서 여느때보다 일찍이 일어나서 아침 먹고 이쁘게 화장을 하고는 반시간 앞두고 림시로 빌려쓰고 있는 로인대학2층교실로 향했다.   그런데 몇몇 애들이 벌써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날 본 애들은 쫑그르 달려와서 저마다 나한테 인사를 했...
  • 2019-07-31
  •              하늘아래 빈자리에 평범할래야 더 평범할 수 없는 내가 서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을가? 그리고 또 어디로 갈것인가? 이 물음에 답안을 작성해 본다면 조금은 식상하지만 절때로 흠을 잡을 수 없는 답이 나온다. 나는 주련화이고 엄마의 배속으로 부터 왔으며그...
  • 2019-07-30
  • "생명의 강, 만남의 강, 희망의 강"으로 마음속 깊이 여울치는 강   두만강가의 중조국경에서 친구들과 함께한 리화옥(가운데 사람)특파원 기다리던 4월 30일, 아파트문앞에서부터 도문까지 택시타고 가는데 40분 밖에 안 걸린다고 했지만 나는 부득부득 30분동안 공공뻐스를 타고 연길서역으로 향하였다. 고향에...
  • 2019-07-29
  • 진달래축제 현장에서 친구들과 함께(오른쪽 두번째가 리화옥특파원) 십여년만의 고향방문길에 마침 화룡에서 열리는 장백산진달래국제 문화관광축제에 참여할수 있는 행운을 누리게 되였다. 27일 아침 6시 30분, 축제에 가기로 약속한 시간이 되여 부랴부랴 아파트밑에 내려갔더니 중학교시절의 친구가 새까만 윤기가 흐르...
  • 2019-07-26
  • - 글 / 김영숙 -   (흑룡강신문=하얼빈) 오늘은 사촌녀동생이 백년가약을 맺는 날이다. 하얀 드레스를 입고 행복한 미소를 머금은 사촌녀동생을 바라보노라니 나도 덩달아 행복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문득 내 눈앞에는 꽃너울을 곱게 쓰고 다소곳이 머리를 숙이고 우리 김씨 가문에 들어선 올케의 예쁜 얼굴이 선히 떠올...
  • 2019-07-25
‹처음  이전 4 5 6 7 8 9 10 11 12 13 14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