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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글짓기응모] 하늘아래 빈 자리에 서서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7월30일 10시25분    조회:13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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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늘아래 빈자리에 평범할래야 더 평범할 수 없는 내가 서있다.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을가? 그리고 또 어디로 갈것인가? 이 물음에 답안을 작성해 본다면 조금은 식상하지만 절때로 흠을 잡을 수 없는 답이 나온다. 나는 주련화이고 엄마의 배속으로 부터 왔으며그 리고 나중에는 나 또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비켜갈 수 없는 꼭 가야만하는그곳으로 가야만 할 것이다.

  물론 나 또한 잘 알고 있다. 이 물음은 결코 이런 식상한 답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럼 똑같은 물음을 다섯살의 꼬마였던  나에게 던져 본다.

  다섯살난 꼬마에게 있어서 이 물음은 아마 너무 무거울테지? 다섯살의 꼬마는 이 물음을 리해하기 조차도 어려워 할 것이다. 그리고 또 어떤 대답을 해야하나 머리를 갸우뚱하겠지? 그러면 꼬마를 도와서 점점 색이 바래져가는 기억들 속에서 유치원 때의 희미한 기억 한 쪼각을 끄집어내 보기로 한다.

  “너희들은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유치원 담임이였던 긴 파마머리의 예쁘장한 선생님이 물어 보신다.

  꼬마들이 하얀 련꽃 뿌리를 닮은 팔을 쳐들고 먼저 대답하겠노라고오 구작작 떠든다.

  “선생님, 나는 커서 의사질하고 싶습니다.”

  애됫 얼굴의 누군가가 코까지 훌쩍이면서 대답한다.

  “선생님, 나는 커서 선생질하겠습니다.”

  한 꼬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의기양양해 한다. 제법 당차기까지  하다.

  “선생님, 나는커서 비행기 몰겠슴다.”

  어느 누군가의 앳된 얼굴에는 제법 비장함까지 엿보인다.

  “오,호호, 너희들 꿈다 멋있구나, 공부를 잘 하면 그 꿈들을 꼭 이룰 수 있어, 알겠니?”

  꼬마들이 박수를 치면서 환호를지른다. 그들 중에는 입술을 감빨기만 하면서 차마 손도 들지 못한 꼬마가 섞여 있다. 꿈이 과학자였던 그 꼬마는 과학자가 대체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그저 과학자라는그 이름 하나만으로도 근사하고 벅차다.그 꼬마는 손을 들 용기도 없었고 꿈을 말 할 용기조차도 없다.항상 조용한 곳에서 혹은제일 뒤에 서 있던 존재감이 없던 그 꼬마는 바로 나였다.

  어릴적의 나는 왜 그토록 존재감이 없었고 용기가 없었던 걸가? 지금의  나도 그건 잘 모른다.

  나는 70년대 후반에 어디에 가나 볼 수 있는흔한 조선족동네에서 태여났다.

  인가가 겨우 100여호 밖에 없는 자그마한 동네였다. 엄마아빠는 믿을거라고는 두 주먹밖에 없는 평범한 농민이셨고 나는 그분들의 큰딸로 태여났다. 나중에 아래로 일곱살 터울로 녀자동생이 한 명 더 생긴다.

  엄마아빠는 부지런한 사람이셨지만 왠지 우리 집은 늘 가난했고 벌레들의 천당이였던 초가집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어린마음에도 초가집이 가난의 상징이여서 참 부끄러웠다. 그래서 가난이 준 선물인지는 몰라도 나는 내성적이면서도 자존감이 낮은 아이로 성장했다. 지극히 말이 없고 지나치다싶을 정도로 조용했으며 자기 앞에 말 조차 변변하게 못하는 그런 아이가 나였다.

  10대의 나에게 똑같은 물음을 던져본다. 10대의 나도 그 물음에 대답을 하기는 어렵다. 10대의 나는 고향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속은 자존감이 낮아서 바닥을 치고 있지만 겉으로는 아닌척하고 대신 그래도 공부를 열심히 하는 평범한 학생이였다. 그리고 존재감이 없는 건 여전했다.

  엄마아빠는 가난이라는 굴레가 자식들한데까지 물려질가봐 산골로 들어가서 농사를 지으셨었다.  나와 동생은 학교를 다녀야 했던 원인으로 한 명은 외할머니댁에 다른 한명은 둘째 이모네댁에 맡겨지고 이산가족이나 다름없이 3년을 지내야 했지만 그래도 우리 집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일년이 다가도록 새옷 한번 사 입는것이 힘들었으며 좀 괜찮은 옷이라고는 막내이모가 물려 주었던 옷들이였다.한창 멋을 부리고 싶을 나이에 나는 제대로 된 반항조차 못해보고 초중을 졸업하게 된다. 초중을 졸업한 나는 집에서 한시간 거리인 자그마한 현성에서 고중으로 진학하게 된다. 처음으로 부모의 품을 떠나서 어느 정도의 독립이라는 것을 하게 된 것이다.

  고중에 진학을 한 후 중국어도 잘하고 항상 당당해보이던 현성의 애들 앞에서 위축감이 들었지만 나는 또그 렇지 않은 척 위장을 한다. 초중 때는 그래도 상위권을 맴돌던 나의 성적이 하락세를 타더니 고중 때에는 하위권에서 맴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은 다른 사람들이 초중 때 겪던 사춘기를 나는 고중때 겪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매사에 소심한 성격이였던 내가 가끔은 저녁 자습도 빼먹으면서 소심한 반항을 했던 건 아닐가 싶다.

  20대의 나에게 똑같은 물음을 던져 보기로 한다. 20대의 나 역시 그 물음의 뜻을 잘 알지는 못한다. 20대의 나는 선택의 갈림길에 놓여져 있었다. 친척언니와 오빠가 있는 청도냐 아니면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심양이냐? 그중에서 나는 결국에는 심양이라는 낯선도시를 선택한다. 리유는 딱 한가지였다. 아무도 모르는 심양에서 무언가를 자신의 힘으로 해보고 싶었다. 그 무언가가 그렇게 불투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심양으로 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그때 엄마는 동생 학비를 마련한다고 한국행 중이였으며 나는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는 심양이라는 도시에서 내생에 첫 사랑이라는 것을 경험한다. 상대는 나보다 연하였던 남자애였다. 사랑이라는 걸 처음 해보는 나는 무조건 주는 것이 사랑인줄로 알고 그 애가 웃으면 함께 웃고 그 애가 화를 내면 나도 화를 냈다. 불을 덮치는 부나비처럼 모든 것을 올인했던 나는 종국에는 일방적인 사랑에 지쳐 버린다.

  그렇게 나는 또 첫 리별이라는 걸 하고 펑펑 울었었다.

  몇 년전, 심양 출장이 잡혀서 그 애랑 함께 거닐었던 거리를 다시 거닐면서 나는 심양에 대한 모든 추억과 자신을 잃어가면서 사랑을 했던 그제날의 나를 화창했던 심양의 봄날에 함께 묻어버렸다.

  30대의 나에게 똑같은 물음을 던져본다.

  30대의 나는 나를 한없이 상심케했던 심양을 떠나서 천진이라는 도시에 정착을 하게 된다.그리고 처음 출근하게 된 회사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결혼이라는 걸 했다.

  분명히 2년간 사귀였고 나이도 꽊 차서 결혼했던 우리 부부였지만 결혼 초기에 참 많이 다투었었다. 다투었던 주요 요인들은 결국에는 돈이라는 단어였다.

  농촌 태생이였던 두 사람이 누구의 도움도 없이 천진이라는 큰도시에 정착을 한다는 건 솔직히 쉬운 일은 아니였다. 결혼을 했으니 아이를 가져야 하겠고 아이 마저도세집살이 시킬 수 없다는 압박감에 우리는 서로 초조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더 다투게 되였지 않았나 싶다. 매일 출근을 하고 아껴 쓰느라고 했지만 돈은 모여지지 않았고집을 산다는 건 아스란히 먼 꿈 얘기나 다름 없었다. 겨울내내  스모그가  껴있는 천진의 날씨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 나날들이 련속되면서 우리 부부는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주머니 사정이 무척 가난했던 결혼 초반시절에 천진의 자그마한 농촌에서 셋집을 임대맡고 살았던 적이 있었다.

  온동네가 몇 개 없는공용화장실을 써야 했고 파리에 구데기에 환경이 열악하기 그지없었다. 혹시라도 밤 중에 화장실에 가야 했던 날에는 너무 무서워서 손전등을 들고 남편이 동행해 주어야 가능했다.

  그런 환경에서 몇 년을 살다가 결국에는 대출을 받아 우리의 이름으로 된 작은 집을 마련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이사를 들어가던 날 나는 침대 모서리에 앉아서 그만 펑펑 울기까지 했다. 그것은 고진감래라는 말을 온 몸으로 실감하는 순간이였다.

  지금의 나, 즉 40대의 나에게 똑같은 물음을 던져본다.

  지금의 나는 그 물음에 조금 더 명랑한 대답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건우, 가은이 두 아이의 엄마이며 앞으로도 쭉 이 타이틀을 달고 갈 것이다. 녀자는 아마 엄마가 되는 순간부터 한평생 지고가야 할 사명감이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두 아이의 엄마라는 신분에 충실하는 것을 최고의 임무로 간주 하고 있다. 나의 두 아이가 사회에 첫 걸음 내 디디는 순간에 휘청거리지 않도록 충분하게 밑거름을 대 줄려고 오늘도 나는 분주히 돌아치고 있다.

  50대의 나에게도 이 물음을 던져본다. 조금 이른감이 없지 않지만 나는 50대에는 좀 더 여유로운 사람이였으면 좋겠다. 밀린 독서를 할 시간도 있고 좋아하는 글쓰기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지금보다 많았으면 좋겠고 마음도 여유롭고 넉넉하게 베풀 줄 아는 사람이였으면 좋겠다.그 리고 조금 더 여유롭게 엄마라는 배역에 임하는 모습이엿으면 좋겠다.

  60대, 70대의 나에게는 이물음을 보류하련다. 미래는 늘 알수 없고 불투명하다.

  그래서 나는 오늘을 살고저 한다. 하늘아래 빈자리에 서서 나만의 자리에 서서 또 나만의 소임을 다하는 나로 살아가는 나 이고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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