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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엄마의 온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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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치료 포기

2017년 7월 21일

내 고향친구들한테는 엄마는 ‘어죽’으로 통한다. 고기잡이를 좋아하는 나, 어죽을 잘 끓이는 엄마 그래서 친구들은 우리 집에 놀러오기를 좋아했다. 놀러오면 엄마는 거의 혼자서 준비를 다해서 우리가 서쪽 강변에 나가 마음껏 천렵을 즐길 수 있도록 해주군 했다. 처음 몇번은 내가 어죽을 잘 끓인다고 애들이 칭찬하군 했다. 불을 지피는 데서부터 시작하여 전부 다 내가 직접 진행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가 한 일은 그냥 불을 지피고 물이 끓을 때쯤 엄마가 준비해준 내용물들을 그대로 쏟아넣는 것, 양념도 엄마가 마련해준 량을 그대로 퍼넣는 일 뿐이였다. 그렇지만 애들은 그 내용물들을 전부 내가 준비한 줄로 알고 있었다.

 

작자 김현철 엄마(우)와 김현철 사촌 누이 춘설

 

언젠가 애들이 사전계획이 없이 찾아왔다. 엄마는 그래도 준비를 해준다며 부랴부랴 씻고 썰고 넣어주느라 분주히 보냈다. 그것을 두 눈으로 목격한 친구 놈들이 그제서야 이 어죽은 엄마표인 줄 알게 되였다. 그 때로부터 내 영향력은 많이 약화되였지만 나는 늘 기뻤다. 애들이 엄마표 어죽을 먹으러 우리 집에 놀러오는 것이 기뻤고 그런 어죽을 땀을 뻘뻘 흘리며 서너그릇씩 먹더라는 얘기를 듣고 엄마도 항상 즐거워했다.

고향에 있던 시절, 나는 시간만 나면 강에 나가 고기잡이를 했다. 물막이요, 통졸임통이요, 통발이요, 그물이요…다양한 방식으로 고기잡이를 하군 했다. 특히 고기잡이군들이 많던 시절에는 밤에 남의 것을 털어가거나 아침 일찍 털어가는 일들이 잦았기 때문에 밤중에 한번씩은 강에 나가 고기를 건져오고 이른새벽에 재차 나가서 건져오군 하였다. 밤에는 혼자 나가기를 무서워하는 나 때문에 엄마는 늘 손전등을 들고 함께 고기 건지러 가군 했다. 새벽에는 주로 나 혼자 나갔지만 가끔 늦어지면 엄마는 어김없이 강뚝에 나와 멀리서 내가 걸어오는 모습을 지켜봐주군 하였다.

고기를 못 잡는 날도 많았고 아주 작은 새끼고기만 걸려드는 날도 많았다. 그러나 엄마는 단 한 마리도 버리지 않고 하나하나 손질하여 말리우거나 랭장고에 랭동해두군 했다. 그렇게 모인 ‘세치네’는 아버지가 로씨야에 가 계셨을 때 인편에 부치기도 하고 특히 친구들이 오면 한번에 추렴을 해버리군 했다.

캄캄한 밤, 작은 손전등으로 어둠 속을 헤가르며 엄마랑 둘이 두런두런 이야기하며 걷던 그 강변길, 가끔 새벽에 나가 잔뜩 걸려든 고기를 들고 멀리 강뚝에 서있는 엄마를 보며 시뚝해서 걸어오던 그 풍경을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단 한번이라도 그 풍경을 재현해보고 싶은데 엄마는 더 이상 그 때의 건강한 엄마가 아니다. 그리고 나도 강뚝에 자애롭게 서있는 엄마를 보며 아무렇지 않게 시뚝하게 웃을 자신이 없다.

강과 산을 옆에 끼고 산 덕분인지 우리 친척들은 천렵을 좋아했다. 이모부의 ‘동풍패’자동차에 열몇명 되는 가족들이 함께 타고 깊은 산골에 천렵을 가는 광경은 사람들의 부러움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엄마는 특히 강과 산을 좋아했다. 고기잡이, 산나물 캐기, 열매따기 등 뭐든 좋아했고 최선을 다했다. 솜씨가 잽싸서 날렵한 물고기도 맨손으로 잡군 했다.

특히 기름개구리를 잡고 어린아이처럼 즐거워하던 모습들이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그럴 때마다 친척들은 나를 보며 너는 엄마가 젊어서 참 좋겠다고 했다. 나는 그런가 보다 하고 큰 느낌이 없었다. 다들 젊었으니까, 건강 때문에 놀 것을 못 놀고 할 것을 못하는 사람이 아직 없었으니까. 엄마가 젊어서 좋겠다는 말이 그렇게 실감 있게 들려오지 않았다.

외할머니는 63세에 돌아가셨다. 그 때도 다들 너무 일찍 돌아가셨다며 애석해했고 특히 엄마네 삼자매는 몇달 동안을 울음으로 시간을 보냈다. 며칠전 엄마는 외할머니가 참 빨리도 갔는데 자기는 역시나 외할머니보다도 훨씬 더 모질다고, 이제 만나면 외할머니가 엄마를 모질게, 모질게 욕할 것이라고.

연길 세집

…짐이 꽤 많았다. 엄마는 중량을 초과할가봐 걱정을 많이 했다. 중량을 초과하면 내가 도로 들고 오면 되지 걱정 말라고 했건만 엄마는 들어갈 때까지 걱정하면서 자꾸만 공항 직원한테 물어보자고 했다. 물어보면 당연히 안된다고 할 것이니 그저 이 대로 들고 들어가라고 했다. 부피가 큰 데다 개수까지 많아서 엄마는 자꾸만 걱정을 했지만 무사히 다 통과되였다. 다 들어가면 오케이 손 모양을 보여달라고 했더니 한참 뒤 엄마가 검사대 안쪽에서 손모양의 손가락을 흔들어보였다. 나도 똑같이 흔들어보이며 들어가라고 했다. 엄마는 촉촉해진 눈으로 나를 그윽히이 바라보며 나 보고 먼저 돌아가라고 했다.

손조로왔다. 비행기는 예정시간보다 40분이나 앞당겨 연길에 도착, 친구 호남이가 마중을 나와 랭면도 대접하고 아버지가 사놓은 새 집을 구경시키고 나서 세 맡은 집에 들어가 짐을 풀었다. 엄마랑 통화를 했다. 엄마는 불편한 데도 없으니 걱정 말라고 했고 나는 저녁에 두 분이 밖에 나가 드시라고 했다. 엄마는 그렇게 하겠다며 걱정 말라고 했다. 짧은 통화에서 엄마가 가장 많이 한 말은 “걱정 말라는 것”이였다.

장인, 장모랑 안해랑 그리고 라빈이 이렇게 저녁밥상에 마주앉았다. 엄마,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 그리고 장인, 장모에게도 미안했다. 층계 오르기도 힘들어하는 두 분에게 또 애 봐달라는 부탁을 하게 되였으니 참 면목이 없다. 그런데 지금 이 단계에서 더 뾰족한 방법을 생각해내진 못하겠다.

엄마는 지금 쯤 주무실가? 또 라빈이의 사진과 영상을 무한 반복으로 들여다보시다가 잠 드셨을가? 와이파이가 아직 안되여있어서 드라마도 못 보았을 것이다. 그저 핸드폰만 뚫어져라 들여다보다가, 울다가, 눈물 닦다가, 그렇게 반복하다 잠 드셨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아직 안 주무실지도 모른다.

새로운 한주가 시작된다. 그리고 주말이면 엄마 보러 연길에 가고 할머니도 만나게 된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생각을 요즘 들어 부쩍 많이 한다…

2017년 8월 10일

엄마는 나에게 관한 모든 것들을 소중히 여기였다. 소학교 시절 어느 겨울날이였다. 나와 한 친구는 운동장에서 눈덩이를 굴리며 놀고 있었다. 그날따라 눈이 참 잘 굴러졌다. 얼마 안 굴렸는데 엄첨 커진 것이다. 그냥 버리긴 아깝고 해서 학교와 가까운 우리 집 앞마당까지 굴러오기로 결심했다. 우리는 가방을 멘 채 땀을 뻘뻘 흘리며 집을 향해 굴렸다. 그런데 굴릴수록 커져서 절반 쯤까지 왔는데 벌써 날씨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하학후면 바로바로 집에 가는 나인지라 엄마가 걱정되였는지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을 따라 찾아왔다. 엄마는 단 한마디의 꾸지람도 없이 언제 이렇게 굴렸나며 자연스럽게 우리와 함께 굴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나랑 같이 굴렸는데 친구가 인츰 뒤떨어졌다. 그러면 엄마는 다시 가서 그 친구랑 함께 굴렸다. 이렇게 하다 보니 효률이 낮았다. 그래서 아예 함께 하나를 저만치까지 굴려가고 또 돌아와서 다시 하나를 굴려가는 식으로 해서 끝내 앞마당에까지 굴려왔다. 우리는 땀벌창이 되여 집에 들어와 털썩 주저앉았다. 나와 친구는 각각 작은 눈덩이를 더 만들어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리하여 그 해 겨울 우리 집마당에는 우리 키보다 약간 작은 눈사람 두개가 가지런히 봄까지 서있었다. 그 때 우리와 함께 그 눈덩이를 밀고 오던 엄마가 너무 고마왔다. 친구 같고 누나 같고 참 든든했다.

또 어느 겨울날, 톱을 들고 산으로 나무하러 갔는데 하필이면 뿌리와 줄기만 남은 구불구불하고 실팍한, 제일 못 생긴 나무가 눈에 들어와 그에 한번 도전하기로 했다. 거의 한시간을 톱질해서야 겨우 그 나무를 잘랐다. 그런데 자르고 보니 집에까지 운반할 일이 걱정이였다. 나 혼자의 힘으로는 아예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그래서 집으로 와서 엄마에게 자랑했다. 내가 엄청난 놈을 제꼈으니 가서 끌고 오자고. 엄마가 가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이건 끌고 가는 것도 문제이지만 끌고 가도 별 리용가치가 없다는 것이였다. 온몸퉁이에 옹이 박혀서 자르기도 힘들고 패기도 힘들다는 것이였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엄마는 갖고 간 바줄을 풀어 나무를 동여맸다. 그리고는 나랑 같이 끌기 시작했다. 또 거의 한시간반을 들여서야 그 나무를 마당에까지 끌어올 수 있었다.

마을사람들이 와보더니 이 나무는 땔감이라기보다는 예술품으로 만드는 것이 알맞겠다며 놀려주었다. 물론 엄마도 웃었지만 그 해 겨울 시간이 날 때마다 엄마는 거기에 톱질, 도끼질을 하기 시작했다. 결국 봄이 될 무렵 그 나무는 한쪼각도 남김없이 고스란히 엄마에 의해 산산쪼각이 나서 불쏘시개로 사용되였다. 그 때 엄마랑 둘이 그 나무를 끌고 오며 웃고 땀 내며 안깐힘을 쓰던 정경이 눈앞에 삼삼하다.

그 때가 좋았던 것 같다. 내가 하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하든 무조건 지지해주던 엄마다. 물론 그 후에도 줄곧 그랬고 지금은 더 말할 나위 없이 그렇다. 세상에서 아무 의심 없이 무조건 나를 믿어주는 사람 1번 우리 엄마다.

2017년 8월 21일

오늘은 엄마랑 산책 겸 새 집 구경을 갔다. 연변대학 캠퍼스를 지나면서 가장 좋은 산책코스를 추천해드렸다. 젊은이들의 활력과 싱싱한 수림의 세계를 많이 받으면 좋을 것이라고 했더니 하루에 한번씩은 산책을 나오겠다고 대답했다. 엄마가 좋아하는 배구장을 지났다. 파란색으로 깔끔하게 꾸며진 배구장이 엄마의 눈길을 한참이나 머물게 했다. “빨리 회복해서 배구장에서 날아다녀야지?”하며 아버지가 롱담을 하자 “이젠 글러먹었슴다”하며 엄마가 씁쓸히 웃으며 대답했다.

초두부집에 잠간 들려 간단한 점심식사를 했다. 엄마는 식사보다는 밑반찬이며 복무원이며 주방이며 등 구석구석에 더 관심이 많았다. “이 집에서 장사를 참 야무지게 하는구나.” 하며 부러워하는 눈치였다. 간소한 밥상이지만 맛은 일품이였다. 천천히 걸어서 아빠트단지까지 가니 한달 뒤에 열쇠를 받는지라 아직 마무리작업 준비단계에 있었다. 내가 기어이 우겨서 먼지투성이 길을 꿰뚫고 우리가 구매한 집에 들어갔다.

아무 것도 없이 벌거숭이 그대로였지만 난생처음 자신의 아빠트에 들어온 두 분은 무척이나 즐거워보였다. 아버지는 여기저기 가늠해보며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고 엄마는 이 구석 저 구석 돌아보며 여기는 뭘 놓고 저기는 어떻게 꾸미고 하며 쉴 새 없이 얘기를 했다. 내가 이 공간은 여차여차하게 사용하자고 하니 “그것도 좋지만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지 않을가?”하며 엄마가 의견을 내놓았다. 나는 웃으며 “좋은 생각입니다. 역시 엄마다!”하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한참이나 여기를 두드려보고 만져보며 하다가 우리는 아쉬우면서도 기분 좋게 내려왔다.

 구석구석  재여보며 인테리어를 구상하던 엄마의 뒤모습

구석구석을 재여보며 인테리어를 구상하던 엄마의 뒤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쁘게 장식된 주방에서 엄마가 맛 있는 료리를 만드는 모습을 꼭 보고 싶다. 그리고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내며 즐겁게 웃는 모습도 보고 싶다. 집을 내려와 세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엄마는 웃으며 얘기하다가는 조용해지고 그러다가는 또 얘기를 계속하군 했다. ‘발전’이라 불리는 이 거리에 먹을거리가 많아서 손님들이 오면 데리고 오면 되겠다 여기저기를 쳐다보고 가리키며 머리에 익히고 있는 것 같았다.

길에서 버섯 파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엄마도 버섯을 좋아하고 나도 엄청 좋아한다. 저녁에 좀 해주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아들한테 해줘야지.” 하며 버섯을 샀다. 엄마가 해준 버섯료리는 의연히 일품이였다. 엄마가 아프다는 데 엄마가 해준 료리는 목구멍으로 잘도 넘어간다.

우연하게 엄마의 팔과 내 팔이 부딪쳤다. 항상 튼튼하고 탱탱하던 엄마의 팔이 아니라 축 늘어지고 흐물흐물해진 엄마의 팔이 느껴져왔다. 눈으로 보는 것과 직접 촉감으로 느낀 것은 완연 다른 느낌이였다. 탕약이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더니 아직 이틀분이 남았다고 했다. 그럼 모레 쯤 가서 더 지어와야겠다고 하니 “약을 더 먹어야 되니? 한번만 먹으면 되는 줄 알았더니…”라고 한다. “무슨 감기에 걸린 줄 알아요?”하고 말하고는 인츰 후회했다. 엄마도 멋적게 웃었다.

엄마와 아버지의 하루하루는 지루하고 단조롭기만 하다. 특별히 할 일이 없고 딱히 만날 사람도 없고 자기 나름대로 비밀에 부치고 있는지라 찾아올 사람도 없다. 유일한 소일거리가 바로 시장에 다녀오는 것과 산책이다. 이제 내가 북경으로 돌아가고 나면 그나마 눈앞에 보이던 아들도 없다. 그 외로움과 불안함을 엄마가 어떻게 견뎌낼지 벌써부터 걱정된다.

오늘밤도 평화로운 밤이다. 아버지의 코고는 소리가 기분 좋게 들려오고 엄마가 핸드폰으로 드라마를 보다가 조용히 주무시고 있다. 요즘 들어 나는 이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엄마가 깊은 잠에 빠져서 좋은 꿈을 꾸었으면 좋겠다.

김현철 (다음기에 계속)/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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