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청춘노트]글을 쓰는 일… 세상을 마주하는 일(박진화)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11월25일 08시29분    조회:156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한때 내게는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일을 내놓고 별다른 취미가 따로 없었다. 같잖은 글이라도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차곡차곡 글로 표현해내고 나면 모종의 희열 같은 것을 느끼군 했다. 그랬던 적이 있었다. 그런 나에게 요즘은 글을 쓰는 일이 일상이 되여버렸다.

졸업을 하고 출판사의 편집이 되고 나서, 또 지금은 하루가 멀다하게 마감시간에 맞춰 헐레벌떡 기사를 써내야 하는 기자가 되고 나서 글 쓰는 일이 한없는 부담으로 몰려오기도 했다. 내가 지향했던 문학적인 글쓰기는 고사하고 변변한 기사 한편 써내는 것도 큰 부담이였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대충 마무리를 끝낸 글에는 항상 부족한 것이 있었다. ‘감동’이였다.

작년 이맘 때 쯤부터 ‘8090세대의 글쟁이’들을 만나면서 이런 압박감과 초조함은 더해갔다. 나도 써내야 할텐데… 그러나 무엇을 쓰지? 그렇게 ‘무엇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지금까지도 계속되여 왔지만 아직까지도 나는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아이들이 잠이 들고 난 후부터 서로 줄기찬 대화를 이어가는 위챗그룹이 있다. 녀자 7명, 일명 ‘7공주 그룹’이라 해서 애초에는 쓸 만한 중고물품들을 서로 교환하자는 의미에서 무어졌는데 어쩌다보니 글을 쓰는 얘기도 하게 되고 일상도 나누게 되면서 거의 매일 자정이 가까와질 때까지 끝날 줄 모르는 수다로 밤을 태우군 했다.

그날 밤, 나는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대비해 아이에게 줄 선물을 고르고 있었다. 오래전부터 사달라고 졸라댔던 병아리 놀이감이였는데 가격이 꽤나 나가는지라 망설이고 있는 중이였다. 그러다가 위챗 단톡방에 들렸더니 한 언니가 자신이 돕고 있는 8살짜리 꼬마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철없는 엄마는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를 배고 그렇게 짐 부리듯 부랴부랴 아이를 낳고는 두달 된 피덩어리를 외할머니한테 맡기고 사라졌단다. 이후 7년, 이제 8살이 된 아이는 지금까지도 무릎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할머니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불행에는 리유가 있었다. 그 무겁고 아픈 이야기들, 무엇보다 끝이 보이지 않는 턴넬 속을 걷고 있을 것 같은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였다…

그날, 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저변에는 내가 몰랐던 가슴 아픈 일들이 참 많다는 것에 놀랐고 이후로도 오래 동안 그러한 아픔의 여운이 좀처럼 가셔지지 않아 련며칠은 무거운 마음으로 보내야 했다.

문득, 그 이야기를 전하던 언니가 글을 쓸 수 있는 리유를 알게 되였다. 아직 나는 제대로 갖추지 못한,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과 마음을 가졌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는 글을 쓰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며 그런 글에, 혹은 문학작품에 지나치게 효용성을, 그중에서도 문학이 주는 교훈적 가치를 부여하는 것에 대해 늘 비딱한 시선을 갖고 있었더랬다. 작가에게 어떤 사회적이고 도의적인 책임을 안긴다 할 때 그 작품에는 어쩔 수 없이 교조적이고 계몽적인 메세지가 실릴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그렇다면 ‘문학은 예술’이라는 명제와 어긋나지 않을가. 반대로 생활을 대하는 작가의 태도나 감정이 그 어떤 억지스러운 가공도 거치지 않고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작품에 녹아있을 때면 독자들은 작품을 통해 작가와 호흡을 같이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바로 문학이 사람에게 주는 기쁨이고 정화의 힘이라고 믿었다. 어쩌면 문학의 효용성은 이러한 힘에 있지 않을가? 반대로 한 작가의 관점에 대해 전혀 공감을 할 수 없거나 부정을 하고 싶어진다면, 그것마저 문학이 가지는 긍정적인 가치라고 믿고 싶었다.

그래서 8년 넘게 문학편집으로 일해오면서 나는 작가들의 원시원고를 대할 때면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웠었다. 바로 ‘나는 제1의 독자다’라는 생각으로 작품을 대한다는 것이다. 지난 8년 동안 정말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봐왔다. 현란한 기교를 자랑하는 글들, 새롭고 예리한 시각으로 머리가 끄덕여지게 만드는 글들, 참신한 내용으로 재미를 더해주는 글들… 그러나 그중에서도 나를 울게 만드는 글은 결코 이상의 모든 우점을 갖춘 완벽한 글이 아니였다. 조금은 비문이 섞여있어도, 조금은 내용이 어수선하긴 해도 글쓴 이의 진정성이 느껴지는 그런 글들이 가장 마음에 와닿았고 그래서 다시 또 읽고 싶어졌다.

그래서 최근에는 글의 진정성이란 도대체 무엇일가라는 생각을 곱씹어보았다. 한 선배는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나있는 마음”이라고 했다. 또 다른 선배는 “내가 작품 속에 얼마나 들어가 있냐 하는 깊이의 문제”라고도 말했다. 결국 진정성이 있는 글을 쓴다는 것은 ‘나를 내려놓은 일’인 것 같다. 진실한 모습으로 글에 다가가는 것. 때론 내가 주인공이 되고 주인공이 내가 되여 아파하고 행복해하며 서로 다독이고 감싸주는 일, 그것이 바로 진정성 있는 글쓰기인 것 같다.

고백하자면, 나에겐 참 몹쓸 버릇이 있다. 지나치게 자신을 사랑하는 것. 호불호가 분명한 성격이라 자부하지만 그것마저도 내가 상처받지 않기 위한 하나의 방패임을 나는 안다. 긍정적이라는 평가를 종종 받기도 하지만 아프고 힘든게 싫어서 단기 기억상실자마냥 잊음이 헤픈 자신을 만들어버리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일에서도 늘 그래왔던 것 같다. 내 글에 조금이라도 완벽하지 못한 내가 비쳐질가 봐, 그것이 결국 내 허점으로 남을가 봐 전전긍긍하며 글을 써왔던 것 같다. 아마 그래서 ‘감동’이 없는 글들만 쏟아냈던 게 아닐가 스스로를 진단해본다.

몇달 동안 피타는 노력으로 다이어트에 성공을 한 후배가 그런 말을 했다. “뭔가를 얻으려고 죽도록 노력하는 것보다 헛된 것들을 하나, 둘 내려놓는 일이 때론 더 힘들더라.” 글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때론 과감히 내 아픔을 마주할 용기도 가져야 하고 그렇게 나 역시 완벽하지 않은 하나의 인간일 뿐이라는 걸 인정할 수도 있어야 하며 누구나 아파하기도 행복해하기도 하면서 생을 살아간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어쩌면 글을 쓴다는 것은 곧 세상을 알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겠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해본다. 왜 나는 글을 좋아했고 그것을 평생의 직업으로 선택했을가? 그동안 무수한 회의에 빠진 적도 있었다. 과연 글이 나에게 어떤 행복감을 주는지, 때론 그것이 살아가는데 그리 구체적인 도움을 주지 않는 것 같아 괴로울 때도 있었다. 오히려, 글을 쓰는 것 외에 별다른 재주도 갖고 있지 못하는 자신이 우스웠고 그렇다고 변변한 글 한편도 제대로 써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정말 재능이 있기라도 한걸가? 라는 의문도 던져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끝까지 이 끈을 놓지 못하고 있는 것은 어떤 형식이 돼왔을 지라도 글을 쓰는 일은 내가 세상을 대하는 방법이였고 내가 누군가를 향한 고백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나에게 적지 않은 위로가 되여주었기 때문이다. 과거에 그러했고 지금도 그러하다. 앞으로도 웬지 세상을 마주하는 나만의 방법으로 글 쓰는 일을 계속 해볼 것 같다.

*《도라지》2019년 제2호에 발표.

박진화 朴珍华

1984년, 룡정 조양천 출생.

2007년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석사학위 취득.

2014년, 로신문학원 소수민족문학창작반 수료.

소설, 수필 다수 발표.

연변작가협회 리사.

현재 연변인민출판사 근무.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흩날리는 오동잎은 가을이 다가옴을 알리고 못가의 련꽃들이 활짝 피면서 여름과 가을이 교차되는 이 시각 길림시 송화강반에 우뚝 서있는 길림육문중학교 앞에 발걸음을 멈추고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다보니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쉼없이 흐르는 강물과 같이 무정한 세월의 흐름도 지워버릴 ...
  • 2020-08-26
  • (원제목) 애심이 깃든 티셔츠 입고 새학기 힘찬 출발을 해요 8월 24일,길림성 화룡시신동소학교 어린이들은 사회 각계의 사랑과 관심을 담은 따스한 개학식으로 새학기의 힘찬 스타트를 멋지게 출발했다. 오전 8시,알롱달롱 고운 민족복장을 한 신입생 꼬마들이 가족의 손을 잡고 호기심 어린 눈을 누비며, 순수한 동...
  • 2020-08-25
  • [수기] 자식들이 펼친 낡은 물건 ‘소탕전’ 김삼철 ‘소탕전’이라하면 모두들 전쟁 마당에서 적을 짓부시는 장면을 련상할 지 모르겠으나 지난해 추석 기간 우리 집에서는 시집 간 딸들과 사위들이 오랜만에 놀러와서 난데 없는 낡은 물건을 숙청하는 ‘소탕전’을 벌려 온 집안이 며칠간...
  • 2020-08-14
  • 할머니와 ‘선생님’ 박순자 어느 날인가 뜬금없이 누군가로부터 할머니라 불리우는 바람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던 적이 있다. 아마 47살 나던 해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물론 그 호칭이 무척이나 낯설고 귀에 거슬리긴 했어도 자신이 더 이상 젊지 않다는 걸 깨달은 것도 그 무렵이였다. 시력이 1.5로 유난히 밝...
  • 2020-08-09
  • 족보의 종착역은 어디? 첨서    나는 어릴 적 큰아버지가 왜 족보란 물건을 보배인양 숨겨놓고 우리한테 보이지 않았는지 지금껏 알지 못하고 있다. 하긴 큰아버지가 세상을 뜬 지도 어느덧 25년이 지났고 아버지가 세상을 뜬 지도 23년 철을 잡으니 어데 가서 물을 데도 없다. 간혹 있다 해도 아리숭한 추측이거...
  • 2020-08-07
  • 한국 간병업계에 떠오른 새별 한국 “간병정보”회사 황설자 회장에 대한 이야기 한국 “간병정보”회사 황설자 회장 캄캄한 밤 하늘에 유난히 밝게 비쳐오는 작은 별 하나가 있다. 거기에 또 마음과 마음을 하나로...
  • 2020-08-04
  • 이불 30채, 손소독크림 60개, 현금 3천원을 30명 학생들과 장애인녀성들에게 전달   연변애심어머니협회 상무리사이며 연길시해금포민족이불유한회사 리사장 최경심의 사랑나눔 미담이 뜨거운 태양이 작렬하는 삼복더위 열기를 타고 널리 전해지고 있다. 코로나19로 모든 기업이 직격탄을 맞아 직원들을 먹여살리기도...
  • 2020-07-31
  • 민낯   주소: https://mp.weixin.qq.com/s/iEXOQSZMrSSFfY4JNRKq0Q   아침에 일찍 나오면 드물게 사람들의 얼굴을 볼 수 있다. 이른 시간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표정이 살아서 걸어다니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원래는 이게 정상인데 어떻게 하다보니 얼굴표정을 볼 수 있는 길거리가 이...
  • 2020-07-24
  • '박방본초 전매점”의 려순희 사장의 헌신 이야기   15살 소녀가 발 하나를 잃게 된다면 그의 삶은 어떠했을가? 상상만해도 끔찍하다. 동상을 입은 발이 썩어들어가 잘라야 한다는 던. 발이 100일간의 치료끝에 완쾌됐으니 전설같지 아니한가.   사실은 이러했다.   올해 2월, 왕청에 살고 있는 한...
  • 2020-07-16
  • 김매화(왼쪽)씨가 에도가와구 시바다 야스히로 총무부장으로부터 감사장을 받았다.   지난 7월 8일,재일조선족 김매화씨가 도꾜 에도가와구(江戸川区)에 마스크 2만장을 기부하였다.   류학생시절 장학금으로 공부하고 생활하면서 일본사회복지의 덕택을 받았던 김매화씨는 현재 도꾜 에도가와구에서 주식회사 ...
  • 2020-07-14
  • 엄마 집은  5층으로 된 아빠트인데 내가 엄마 집에 간다고 하면 엄마는 아래층에서 날 기다리실 때가 많다. 엄마가 이렇게 내려오신 것은 내 다리가 걱정되였기 때문이다. 번마다 함께 올라갈 때면 엄마가 내 앞에 등을 내밀면서 말씀하신다. “너 그 다리로 오르기 힘들 텐데 어서 내 등에 업혀.” 그럴 때...
  • 2020-06-29
  •  내가 만난 남편 (박영옥편 7) 2012년도 가을의 어느날, 나는 이외의 사고로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 부랴부랴 병원으로 가서 사진 찍었더니 골절되였다면서 석달이 지나야 회복된단다. 정말 약한 다리에 침질한 격으로 부실한 다리가 골절되였던 것이다. 나는 아픔을 견디며 석달 후란 그 날자에 초점을 맞추고는 매일...
  • 2020-06-29
  •  고마왔던 은사님 박영옥편 6 소학교부터 고중까지 공부하는 동안 제일 고마운 은사는 이미 고인이 되신 박창호선생님이다. 졸업 후 20년이 넘은 후에도 내가 문학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나에게 여러가지 서적과 속담책도 사다주셨고 발표된 글을 보러 일부러 우리 집에 오시기도 했던 선생님이시다. 그리고 내가 장...
  • 2020-06-24
  • 내 '아픈 손가락'들이 남기고 간 자리  박미자(연길시제2중학교 교원) 2020년 5월 4일 태암촌의 진달래는 유난히도 화사하게 봄볕을 만끽하고 있었다. 무덤무덤의 묘지를 지나 푸른 초원마냥 길게 뻗은 들판을 지나 흐드러지게 피여난 진달래는 파아란 하늘과 어우러져 연분홍빛 꽃바다를 뽐내고 있었다. &nb...
  • 2020-06-19
  • 인생에서 지기가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운이다. 나는 행운아였다. 나에게는 나의 분신 같은 친구 둘이 있다. 소꿉친구이자 동창생(화룡현신동소학교 1966년급 동창생)이며 부대의 전우이자 지기인 허문선과 방창화다. 이들 둘은 평생을 부대에서 청춘과 정열을 다 바쳐 근무하다가 퇴직한 전업 군인이다. 허문선은 원 길림...
  • 2020-04-12
  • ▲사진설명: 최창성 의사 부인인 채경숙씨가 정성드려 준비한 청국장   2020년 4월 1일 수요일 어제는 잊을 수 없는 날! 우리 낭군님께서 우한 의료 제일선으로부터 칭다오로 돌아오셔서 한시름 놓게 되었습니다.  50일간 집밥을 못 드시고 고추장, 된장을 못드셨으니 얼마나 허전하셨겠습니까?   우한에서...
  • 2020-04-03
  • “나이가 들다 보니 큰 도움은 못 드릴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조금이나마 저의 성의를 표달하려고 합니다.” 3월 5일, 71세의 로당원 신순자는 들고 간 현금 만원을 신립사회구역당지부 서기인 정립화의 손에 쥐여주면서 전염병 예방통제 일선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일군들과 환자들에게 전해달라고 ...
  • 2020-03-11
  • 장백조선족자치현 장백술공장 리성모 공장장은 설기간에 본사 주재기자와 함께 당지에서 제일 장수로인으로 불리우는 박동수(107세)로인을 방문했다. 장백술을 받아들고 기뻐하는 박로인(우) 박동수로인은 1913년 10월 11일에 조선 단천에서 출생했다. 1.60메터의 작은 키에 백근 정도의 몸무게를 가진 로인은&n...
  • 2020-02-12
  •       조선기업인 천진청송화약(青松华药)의약회사에서 최근 천진시인민정부에 3만장의 한국 의료용 마스크를 기증했다.   신종코로나가 발생후 1선 방역에 필요한 마스크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듣고 이 회사 심재관 리사장과 직원들이 설 휴식도 마다하고 여러경로를 통해 해외공급상과 연락했다. 드디여...
  • 2020-02-05
  • 나는 꿈을 꾼다. 얼굴을 간지럽히는 해빛이 창문에 따갑게 비추던 어느 하루, 여섯살 난 나는 집에서 이야기책을 보고 있었고 어디선가 뿡뿡하는 기분 나쁜 승용차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빚쟁이들이 들이닥친다. “엄마는 어디 갔니?” 이젠 “아빠는 어디 갔냐”도 생략이다. 얼어붙...
  • 2020-02-01
‹처음  이전 1 2 3 4 5 6 7 8 9 10 1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