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버지께서 저세상으로 떠난 지 어언간 4년이 된다.
생의 마지막 반년을 아주 못된 구강암으로 앓으시면서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미이라처럼 말라가던 아버지. 아무 것도 드시지 못하고 아무 말도 못하시면서 오직 고통으로 절여진 퀭한 두 눈으로만 겨우나 의사표달을 하시던 아버지. 나는 세상에 이런 절망의 눈빛도 있구나, 태여나서 처음으로 소름 끼치게 느꼈고 분명 나의 아버지의 눈빛이지만 낯설었고 무서웠다. 죽는 것이 그렇게 두렵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힘겹게 끄덕끄덕 대답을 하시던 나약한 아버지. 그렇게 반년을 앓으시다가 어느 날 조용히 숨을 거두셨고,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그 날 나는 아버지의 유언 대로 유골을 풍경이 수려한 바다가에 뿌렸다.
그 후 아버지에 대한 고운 추억 미운 추억들을 정리해 조만간 아버지에 대한 추모글을 남기려 했으나, 몇번인가 서두를 뗐다가 지우고 다시 쓰고 이렇게 몇번을 반복하면서도 4년 동안 도무지 글을 써내려 갈 수 없었다. 글을 조금이나마 썼다는 아들이지만 어쩐지 나를 제일 사랑했던 아버지에 대한 한편의 추모글조차 써내려 갈 수 없었던 바보 같은 나 자신. 그런 스스로의 한계가 아버지께도 한없이 미안했고 리기적이지만 나 자신에게도 미안했다. 또한 처음으로 글이란 것도 모든 것을 다 표현할 수는 없다는 한계를 실망스럽게 느꼈다. 그리고 스스로를 글쓰는 사람인가고 의심했고 그 의심이 날카로운 칼이 되여 내 자존심을 사정없이 찢어놓았다.
아버지에 대한 미완성의 추모글을 마지막으로 그 후 글을 쓰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2
어릴 때부터 문학을 각별히 좋아해서 책도 많이 읽었고 미숙하지만 나름대로 시도 쓰고 수필도 써서 여러 문학지에 발표도 했고, 각종 문학상도 수상하고 책도 출판했고 연변작가협회에 이름도 등록되여있지만 솔직히 ‘문학’이란 단어는 나의 부끄러운 수준으로 다가설 수 없는 애증의 존재로 남아있다. 잡고 싶으나 잡혀지지 않는, 그러나 어느새 잡힌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애증의 존재.
문학이란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해 보았다.
인생이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삶이라는 기나긴 길을 걸으면서 부단히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고, 그것을 증명하는 고독한 시간 동안 문학이란 이 아름다운 존재가 항상 나를 동반해주었다. 문학이 나에게 즐거움이란 무엇인지, 부끄러움이란 무엇인지, 한계란 무엇인지를 깨닫도록 해주었다. 문학이 없었더라면 나의 인생은 잡초가 무성한 허허벌판이였을지도 모른다. 문학이 한알 꽃씨를 가져와 꽃을 피워주웠기에 자그나마 나만의 인생의 꽃밭을 아기자기 가꿀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이렇게 문학이 조용히 나에게 다가와 진정한 삶의 의미를 부여해주었다. 그리고 문학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삶의 희로애락 그 의미도 함께 느낄 수 있었다.
나는 내 삶이 평범하기를 바란다. 그러나 적어도 이 생에 그 누가 함부로 가져갈 수 없는 나만의 무언가를 남기고 싶다. 이 생이 끝나는 그 순간 이 세상을 한번도 살아보지 않은 것 같은 무의미한 마감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 아무 것도 없는 나에게 문학이 필요했다. 문학을 통해 큰 욕심없이 평범하지만 소소한 의미있는 삶을 기록하고 싶었다.
그래서 기쁜 일이 있으면 희열에 벅차 시를 썼고, 비가 내려 괜히 우울해져도 시를 썼고, 첫사랑 고백하는 날에도 심장이 쿵쿵 뛰는 긴장함과 얼굴 뜨겁게 달아오르는 수줍음을 글로 적었고, 무릎 수술로 몇 달 간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는 힘든 시간도 글을 쓰면서 이겨내곤 했고…
아르헨티나의 저명한 소설가이자 시인인 보르헤스(Jorge Luis Borges)께서는 “한 사람의 상상력은 수천만 다른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는 추억이 될 수 있다”고 하셨다. 문학의 ‘나비효과(The Butterfly Effect)’가 아닐가? 공감이다. 나는 내가 욕심없이 적은 글들이 문학이라는 거창한 높이가 아니더라도 평범한 한 인간의 평범한 감동으로 나비효과마냥 많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추억이 되였으면 좋겠다.
나에게 문학은 그 어떤 성공과 상관없이 삶의 의미 그 자체였다.
3
이런 내가 5년 동안 글을 쓰지 않았다. 원고청탁으로 노트북을 열고 원고폴터를 열어봤더니 나의 마지막 원고폴터가 2014년도, 클릭하여 보니 그것도 텅 비여있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5년 동안 나에게는 아무런 글이 없었다. 갑자기 감전된 듯 발끝부터 머리까지 소름이 끼쳤다.
나는 무엇하고 있었는가?
아버지에 대한 추모글조차 제대로 못 쓴다는 그 미안함에 민감하게 상처를 받고 의도적으로 글쓰는 그 자체를 멀리하면서 5년을 지냈다. 그동안 새로운 도시로 옮겨와 새 환경을 익혀가면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고 익숙한 직장을 떠나 창업을 하면서 울고 웃던 순간들도 많았지만 솔직히 글로 기록된 나의 삶이 없었다는 유감으로 마음이 차거워졌다.
나 자신의 한계로 인해 의식적으로 문학을 멀리했지만 문학은 말없이 멀리서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5년 전에는 아버지에 대한 미안함으로 필을 접었지만, 5년 후인 지금은 그동안 필을 들지 않았던 텅 빈 나의 삶에 대해 미안해졌다. 나는 이 5년 동안 스스로를 발견하고 스스로를 기록하고 증명하는 그 자격, 더 나아가 그 의미마저 솔직히 잃어버린 셈이다. 내가 쓰는 글은 나를 향한 글이 되고 잠시는 모르고 있어도 언젠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는 그 도리를 나는 정녕 모르고 지내왔다.
나는 참 바보였다. 5년 동안 바보가 된 자신을 의식조차 못하고 바보처럼 살았다.
5년 전에도 나 자신이 부끄러웠지만 5년 후인 오늘에는 또 다른 의미로 나 자신이 부끄러웠다.
4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나는 글이 좋다. 문학이 좋다. 좋아서 쓰고 쓰고 싶어서 쓰며 더 잘 쓰기 위해서 쓴다. 솔직히 채 하지 못한 얘기도 많고 해야 할 얘기도 많다. 나에 관한 얘기 뿐만 아니라 욕심일지 모르지만 나중에는 남의 얘기도 쓸 것이다. 나의 글이 서로에게 추억이 되도록 초심으로 돌아가는 노력을 하고 싶어졌다.
아버지에 대한 미완성의 추모글, 그때는 그렇게도 쓰기 힘들었던 추모글, 어쩌면 나의 한계로 이후에도 아버지에 대한 모든 추억을 정확하게 담을 수 있는 추모글을 끝까지 완성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어쩌면 미완성 그 자체가 문학이 아닐가?
문학은 한줄기 빛, 아무리 못된 절망 속에서도 가냘픈 한줄기나마 희망을 줄 수 있는, 등대마냥 앞으로 걸어갈 수 있는 방향과 마지막 용기를 줄 수 있는 그것이 문학의 존재이고 리유인 듯싶다.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였”듯 결국 긴긴 세월 동안 문학은 말없이 나에게도 이런 존재로 남아있었구나!
5
출근길에 커피점에 들렸다. 주문을 끝내고 커피를 기다리는 동안 커피점 배경음악으로 Paul Kim의 〈모든 날, 모든 순간〉이 거의 끝나고 있었다.
“갈게, 바람이 좋은 날에 해살 눈부신 어떤 날에 너에게로 처음 내게 왔던 그날처럼 모든 날 모든 순간 함께 해.”
이 글을 시작으로 나는 다시 문학에 대한 초심으로 돌아갈 것 같다. 항상 사랑하면서 미안해하면서 아파하면서!
그리고 나는 나를 축복한다.
유혁
본명 김혁(金赫), 1987년 출생
흑룡강대학교 졸업. 연변작가협회 회원. 현재 하이난 싼야시에 거주
《도라지》 2019년 제2호/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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