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대채를 참관 학습하러 가던 나날들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12월20일 08시55분    조회:1213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수기 28] 대채를 참관 학습하러 가던 나날들

김삼철

51년전에 대채대대를 참관 학습하던 나날을 잊을 수 없다. 비록 반세기를 넘었지만 지금도 기억이 또렷이 남아있다.

1970년대까지 산서성 석양현 대채대대는 우리 나라 농업전선의 훌륭한 본보기로 전국 인민들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대채라 하면 누구나 진영귀를 떠올린다. 대채 당지부서기 진영귀는 대채대대 농민들을 이끌고 나무 한 대도 없던 두메산골 승냥이골을 식수조림하여 록음으 우거지고 번대머리 호두산을 곡창으로 만들었다. 농민들은 땅굴 집에서 나와 새 벽돌집에 살았다. 가난하던 대채대대는 부유한 살기 좋은 농촌으로 변하여 우리 나라 농촌의 훌륭한 본보기로 되었다.

위대한 령수 모주석께서는 “공업은 대경을 따라배우고 농업은 대채를 따라 배우라”고 전국에 호소하였다. 그래서 전국 각지에서는 1967년부터 대채 참관 열풍이 불었다. 당시 연길현 광신향 광신대대 책임자로 있은 나는 광신대대의 락후한 면모를 개변시키기 위해 대채대대 참관학습을 조직하였다. 대대 간부들과 생산대 간부 빈하중농 대표들로 참관단을 무었는데 참관단 성원들로는 리철호, 김상순, 림창학, 심호일, 최길자, 최용주, 김숙자, 남광일, 허천, 김북만, 김삼철, 림봉석, 김창식, 김광석 등 15명이였다.

참관단 일행은 조양천 기차역에서 북경까지 가는 직행 렬차표를 떼였다. 좌석표였는데 한장에 21원 가량 되였다. 그 때 가난했던 우리는 침대표를 살 엄두도 못냈다. 하루 반 달려 북경에 도착한 우리는 내리자 마자 식사도 하지 않고 산서성 석양 현성까지 가는 차표를 샀다. 차표 사기가 여간 힘들지 않았다. 북경역 앞은 대채를 참관하러 가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홍위병 완장을 팔에 낀 젊은이들도 많았다.점심까지 먹지 못한 우리 배 속에서 언녕부터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났다. 100여메터 되는 줄을 서서 기다렸는데 누구 하나 불만의 소리 없이 조용히 순서대로 표를 샀다. 그 때 사람들은 정말 각오가 높았다. 약 반시간 가량 기다려서 우리도 산서성 석양까지 가는 눅거리 저녁 기차표를 샀다. 모두 배고파서 북경역 부근의 간이식당을 찾아 아침이자, 점심, 저녁을 한꺼번에 먹었다. 눅거리 밀가루 빵에 좁쌀죽 그리고 무우 짠지에 두부볶음, 두부 말랭이 볶음을 저마끔 한그릇씩 비웠다. 그제서야 허기찬 배를 달래여서인지 껄ㅡ껄 하며 얼굴에 웃음빛이 어려있었다.

그 때 우리는 ‘금강산 구경도 식후경’ 이라는 말의 참 뜻을 진정 알게 되였다. 식당에서 나와 북경역 대합실로 오면서 보노라니 그 때 북경역은 지하철 건설로 땅을 깊게 파헤치고 그 안에서 중국인민해방군 공정병들이 큰 터미널 틀을 고정하고 그 우에 콩크리트를 씌우는 공사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처음 이렇게 큰 공사를 봤다. 저녁이 되여 기차에 몸을 실었다. 다행이도 우리 참관단은 모두 걸상에 앉을 수 있는 행운을 얻게 되였다. 아마도 시발점이 여서인지 아니면 수만리 머나먼 연변 변강에서 온 조선민족에 대한 대우였는지는 몰라도 우리는 편안히 앉아 갈 수 있게 되였다.

산서성 석양까지는 온밤 달려 이튿날 점심녁에야 도착하는 로정이다. 모두 초저녁부터 잠에 곯아 떨어졌다. 우리에겐 잃어버릴가봐 근심되는 물건 하나 없기에 태평스럽게 코를 곯았다. 기차는 기적소리를 울리며 계속 달렸다. 지금은 디젤유를 쓰는 신식 기관차가 아니면 태양에너지 고속기관차들이 달리지만 그 때는 석탄을 때는 증기관기차여서 속도가 늦다. 드디여 새 날이 밝아왔다. 기차는 석가장, 신화, 정경을 지나 산서성 경내의 양천을 지나 석양현에 도착하였다. 석양역 광장에는 숱한 뻐스들이 대채를 참관하려 가는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채를 참관하러 가는 손님들이 썰물처럼 기차에서 쏟아져 내렸다. 우리가 손님 접대를 책임진 총지휘자를 만나 길림성 연변 조선족이라는 신분을 밝히자 우리가 소지한 소개신을 보더니 제일 먼저 뻐스에 오르게 하였다. 우리 일행은 오매에도 그리던 대채대대가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생각으로 시장끼를 느끼지 못했다. 뻐스는 어느덧 대채에 도착하였다.

밖을 내다보니 참관하려 온 사람들이 바다 물결처럼 출렁이였다. 손님들을 실어나르는 수십대 뻐스가 길가에서 장사진을 이루었다. 나는 대채 참관 지휘부를 찾아 신분을 밝히고 소개신을 보이니 그들은 “멀고 먼 변강의 소수민족이 왔네”라고 하면서 우리 만을 우대하여 전문 인원을 파견하여 대채대대를 참관시켰다. 옛날에 살던 토굴집으로부터 지금의 벽돌주택과 2층 으로 된 주택 그리고 사무청사까지 구경시키고 또 우리들을 데리고 대채의 승냥이골과 호두산 꼭대기까지 올라갔다. 그 옛날 승냥이가 살판치던 승냥이골은 식수조림과 과수재배로 나무가 우거졌다.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달리기 시작하고 호두산 꼭대기에는 가물을 방지하기 위해 건설된 둥그런 저수지가 있었다. 이같은 성과에는 진영귀동지가 이끄는 대채대대 농민들이 피타는 노력이 깃들어 있었다. 아침도 먹지 못하고 대채에 다달은 우리는 점심이 지났지만 대채정신에 매혹되여 배고픈 감도 잊고 해설원들의 설명을 들으며 큰힘을 얻었다.

사진도 찍었다. 이전에 대채 사람들이 아침을 먹으며 회의를 했다는 곳도 찾아보았다. 바로 2층 청사 곁에 있었다. 그 때 해설원이 “좀 있으면 진영귀동지가 참관단 동지들을 만나러 온다” 고 알렸다. 우리는 안내원이 시키는 대로 길 옆에 서있는데 마침 진영귀동지가 흰색 적삼에 검정색 바지, 머리에는 횐색 수건을 쓰고 등장하였다. 기록영화에서 보던 것과 꼭 같았다. 그의 곁에는 대채 부련회 곽봉련 주임도 수행하였다. 진영귀는 “동무들! 안녕하십니까? 대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하고 말하자 “농업은 대채를 따라배우자!”, “진영귀동지를 따라배우자!”, “진영귀동지에게 경의를 드린다!” 는 구호소리가 참관자들 속에서 련이어 울려퍼졌다. 우리도 그들과 함께 웨쳤다. 진영귀동지는 잠간 있다가 인차 자리를 떴다.

우리는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진영귀동지를 보고 악수까지 하는 행운을 가지게 되였다. 진영귀동지는 우리가 소수민족이라고 하니 매우 반가와 하시며 나의 손을 꼭 잡고 힘 주어 흔들었다. 이는 내 일생의 최대의 영광이였다.

그 때 나의 손을 흔들어주던 진영귀동지의 장알 박힌 손의 힘은 지금도 나의 가슴 속에서 요동치는 듯 하다. 대채 참관학습을 끝낸 우리는 인차 현성에 와서 식사를 하고 나서 서둘러 귀로에 올랐다. 집에 돌아온 우리 일행은 대채정신을 우리 지방에서도 꽃피우려고 노력을 아끼지 않은 끝에 선진단위로 표창까지 받았다.

대채의 간고분투 혁명정신은 한세대를 감동시켰고 영원히 잊지 못 할 일이다. 그 세월 대채 정신은 전국 인민들을 더욱 분발노력하도록 고무격려했다.

길림신문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1209
  •   “저희 집에도 멋진 새 옷장이 생겼어요… 고맙고 감사합니다.” 1일, 52살에 나는 김길남씨가 아담한 새 옷장을 바라보며 감격에 젖어 하는 말이다. 이날 그는 연길 락백가구 사업...
  • 2013-11-07
  •   감동과 눈물로 얼룩진 한 회갑연   (흑룡강신문=하얼빈)윤운걸 길림성 특파원= “아버지가 중풍에 걸린지 인젠 몇년되는데 그래도 생전에 회갑은 치러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라고 해 하객들의 눈굽을 적시는 일이 연길시에서 벌어졌다.   지난 2일에 모인 회갑연에 하객은 70여명밖에 안되었지만 김광...
  • 2013-11-06
  • “사회구역에서 나서지 않았더라면 계속 추위에 떨번하였습니다.” 연길시 건공가두 장생사회구역 건설국 소구역 1번지 3단원의 주민들이 고마움에 젖어 하는 말이다. 알아본데 의하면 이 단원의 한쪽&nb...
  • 2013-11-05
  • 외국에 나가 돈을 버는것도 힘들지만 다른 사람의 홀대를 받아가며 일하기란 더욱 힘듭니다. 고향에 돌아와 자기농사 지으니 마음이 편하고 절로 힘이 납니다.거기에다 풍작을 맞아 항상 신나기만 합니다.” 화룡시 동성진 해란촌 박일수씨(52세)는 외국돈벌이도 마다하고 고향에 다시 돌아와  신원벼재배전문농...
  • 2013-11-05
  • 사랑하는 엄마:       엄마, 하늘나라가 있나요? 혹시 그곳에서도 이 못난 아들 걱정을 하고계시는것 아닌가요? 다들 시간이 약이라고 하건만 엄마가 우리곁을 떠난지 거의 2년이 돼가도 나는 아직 “엄마”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울컥하고 눈시울이 젖어들어 필을 들수가 없습니다. 아마도 이 막내아들...
  • 2013-11-01
  • "동네 어르신네 신세가 큽니다!” 이는 화룡시 팔가자진 룡산촌 룡두산학복전문농장의 주인인 리명복(52세)씨가 하는 말이다. 여기에서 그럴만한 깊은 사연이 깃들어 있다. 리명복이 거주하고 있는 룡산촌 룡강툰은 원래 한개의 행정촌이였는데 촌툰합병시에 룡산촌과 합병하여 오늘날의 룡산촌산하의 한개 자연툰으로...
  • 2013-10-30
  • 《가정교육》을 담론하는 황정숙로인 가정교육이 목마른 요즘 시대에 75세 조선족할머니가 학부모들의 《가정교육》의 지남침으로, 동료들에겐《격세(隔代)가정교육》방법과 경험을 전수해 화제다. 그가 바로 장춘시조선족새일대관심위원회 관성구분회의 주임 황정숙로인이다. 45년간 교육사업에 종사해왔던 황정숙로인은 ...
  • 2013-10-29
  • 룡정시 지신진 룡지촌 2툰에는 97세나는 조선족로인 김숙자를 친어머니처럼 정성들여 돌보고있는 부승(70세)이라 부르는 만족로인이 있다. 부승로인과 김숙자는 앞뒤집사이로 1972년부터 사이좋게 지냈다. 룡지촌 2툰은 대부분 한족이 거주, 조선족은 3세대뿐이였고 지금은 한집밖에 남지 않았다. 이 마을은 한족, 조선족,...
  • 2013-10-26
  • 갑작스러운 질병으로 남편과 헤여진후 찬바람이 스며드는 자그마한 단칸방에서 불편한 몸을 이끌고 하루하루 힘든 삶을 살아가는 오금자씨(63살)를 만난것은 지난 22일이였다. 도문시 석현진 13주민위원회의 한 좁은 골목에 자리잡은 그의 집은 20평방메터  되나마나한 작은 단층집이였다. 지난해 갑작스레 손을 떠는...
  • 2013-10-24
  • 연길시 북산가두 단광사회구역 로인협회 문영재할머니 주위에 독거로인들이 늘고있다.잘살아보겠다며 타향살이 떠난 자식들은 1년에 어쩌다 겨우 한번, 그것도 큰 마음을 먹어야 고향집을 찾는다.“오늘은 뉘집 아무개가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했다네”란 소문이 들릴 때마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남의 일 같지가...
  • 2013-10-23
  • 장백조선족자치현 마록구진 이십도구촌 촌당지부서기 왕련영 《우리 마을 왕서기는 참말로 훌륭한 분이십니다. 그분을 꼭 신문에 내주십시오!》이는 장백조선족자치현 마록구진 이십도구촌의 촌민들이 촌당지부서기 왕련영을 두고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한 간절한 부탁이다. 금년 5월, 왕련영(57세)한족서기는 촌민들의 추천...
  • 2013-10-22
  • ㅡ해당부문 《의로운 용사》로 신청 ㅡ청도조선족사회 병원 방문 위로금 전달 이어져 지난 10월 8일 밤 9시경, 청도시 조현로(曹县路)에 위치한 정화려관(靖和旅馆)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여 청도시민들을 경악하게 한 가운데, 폭한의 서슬푸른 기세에도 두려움 없이 폭력을 제지하다 중상을 입고 즉시적으로 경찰에 신고하...
  • 2013-10-17
  •        나에게는 이모 한분이 계신다. 1934년생이시니 올해로 어느덧 79주세인 셈이다. 세월이 무정했었는지? 운명의 조화였던지? 이모에게 하나밖에 없는 이 조카딸은 세살에 엄마를 잃었고 그때 이모와 갈라져서 왕청에서 연길로 떠나왔었다. 내가 다섯살나던 해 이모가 한번 연길로 찾아오...
  • 2013-10-15
  • 장춘시 변철호선생을 찾아서 지나온 일들을 얘기하고있는 변철호선생/ 사진 한정일 기자 퇴직후에 더 바쁜 사람 장춘시 조선족들중에 변철호(85세)라 하면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다. 불편한 다리를 지팡이에 의지한채 걸음을 겨우 걸으면서도 조선족사회에 관계되는 일이라면 크고작건 발벗고 나서는 걱정도감이다. 특히 흘...
  • 2013-10-15
  • 지난 9월 22일에 연길시공안국 하남파출소의 경찰들에 의해 연길“사랑의 집”에 보내진 두살배기 남자아이 김세영(가명)어린이는 지금 따뜻한 사랑의 보금자리에서 행복한 웃음꽃을 피워가고있다. “처음에 사랑의 집에 들어올 때까지만 하여도 아이는 누구의 품에 안기면 떨어지려 하지 않고 울기만 했는...
  • 2013-10-11
  • “돈지갑을 잃어버린 주인을 찾을수 없을가요?” 8일,순박한 얼굴에 안타까운 표정을 지은 한 로인이 본사 편집부를 찾아왔다. 랑력민이라고 하는 올해 60살에 나는 이 로인은 가방에서 기다란 두개의 돈지갑을 꺼내놓으며 “며칠전에 연길 국제무역청사와  청년광장 부근의 쓰레기상자에서 이 돈지갑...
  • 2013-10-11
  • 임신상태에서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된 녀성이 아이를 낳고 이 아이로 인해 3년여만에 소생한 사연이 화제가 되고있다. 강소성에 거주하는 장영향씨는 3년동안 식물인상태였다가 최근 자신의 아들을 보고 미소를 지을수 있을 정도로 회복됐다. 장씨는 지난 2010년 12월 1일 오전 9시, 남편이 운전하던 삼륜차가 사거리를 지...
  • 2013-10-08
  • 정년퇴직이 눈앞인 59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조무래기들과 함께 하며 동심으로 나이를 잊은 중년교원이 있다. 잘 숙성이 된 와인처럼, 농익은 이 가을의 과일처럼 진하고 향긋한 꽃중년의 향기를 피워올리는이가 바로 연변대학 사범분원부속소학교 5학년 5학급 담임 김순태교원이다. 단정한 옷차림새, 씩씩한 걸음걸이와 시...
  • 2013-10-08
  • 김수금회장   올해 74세 나는 김수금은 장춘 제1 자동차그룹 조선족로인협회 회장이다. 제1자동차그룹 3중에서 교원으로 있다가 퇴직한 김수금은 2008년부터 지금까지 제1자동차그룹 조선족로인협회의 부회장, 회장으로 있으면서 두번째 인생을 로인들을 위해 봉사하는데 바치고있다. 퇴직하기전에 제1자동차그룹 조선...
  • 2013-10-08
  • 현재 천진에서 병치료중인 박명혁학생 16살 백혈병소년 박명혁학생의 거액 치료비가 필요한 투병사실이 조선족을 대상으로 생활정보와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중위쳇(公众微信)인 《우리온》에 소개되면서 명혁이에 대한 사랑의 손길이 계속 줄을 잇고있다. 최근 공중위쳇《우리온》은 《우리온에 걸려온 전화...우리...
  • 2013-10-04
‹처음  이전 51 52 53 54 55 56 57 58 59 60 61 다음  맨뒤›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