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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림신문 수기 108] 화림이 누나
조글로미디어(ZOGLO) 2022년7월24일 22시36분    조회: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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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누나가 없다. 그래서 청년시절까지는 누나가 있는 친구들을 몹시 부러워했다. 누나가 있으면 상냥하면서 부드러운 누나 사랑을 한껏 느끼면서 관심도 듬뿍 받고 응석을 부려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팔자에도 없는 ‘누나타령’을 하면서 아무나 누나라고 부를 수도 없는 노릇이였다.

 

 
철도부문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필자 리동주

 

그러던 어느 하루, 우연한 일로 이름도 모르는 처녀를 누나라고 부른 적이 있었다. 겉으로만 누나라고 부른 것이 아니라 마음속으로부터 우러러 나온 ‘누나’라는 존경의 부름이였다. 그때 처음으로 누나라고 그 처녀를 부르고 나서 한켠으로는 쑥스럽기도 했지만 마음속은 꿀물이라도 한사발 들이켠 것처럼 매우 달콤하고 즐거웠던 기억이다.

때는 바로 1970년 1월 중순경의 어느 날 저녁무렵이였다. 몸에 좀 헐렁해 보이는 솜옷을 입고 머리에는 개털모자를 푹 눌러 쓴 한 낯모를 청년이 우리가 들어있는 집체호를 찾아왔다. 그는 집체호에 들어있는 우리들의 친구 화림이의 누나였는데 그 역시 연길현 동성용향의 어느 농촌마을에 하향을 내려가 있는 녀지식청년이였다. 이들 화림이 남매는 연길과 룡정 두곳에 갈라져 하향을 하다 보니 남매가 서로 만날수 있는 기회가 매우 드물었던 것 같다.

당시 우리가 내려간 연길시 의란공사 신광대대 집체호에서는 년말 총화가 금방 끝나다 보니 집체호의 녀청년들은 말미를 맡고 모두 집으로 돌아갔고 몇몇 남자들만 남아 있을 뿐이였다.

남자들 뿐인 집체호 사정을 눈치 챈 화림이 누나는 도착하자 마자 말 없이 솜옷과 개털모자를 벗어 놓고는 팔소매를 걷어 부치고 남자들 살림으로 란장판이 된 집체호 구석구석을 살손을 대가면서 깨끗이 청소하기 시작했다. 개털모자를 벗으니 화림이 누나는 남자애들처럼 머리를 짧게 리발한 하이칼라 스타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어린 녀자애들이나 녀선수들을 제외하고는 이렇게 짧게 머리를 꾸민 녀자들은 적었던 시절이였다. 구들 한켠에 몰려 앉은 집체호 사내 녀석들은 신기한 듯이 하이칼라를 하여 한결 멋스러운 화림이 누나를 흘깃흘깃 훔쳐보고 있었다. 화림이 누나는 때로는 일하다 말고 고개를 들어 동생벌되는 집체호 사내 녀석들에게 다정한 눈길을 보내 주기도 했는데 자상하면서도 아름다웠다.

겨울철의 짧은 해가 서산에 지고 곧 땅거미가 지자 집체호 방안은 인차 어둑어둑해졌다. 집안 청소를 마친 화림이 누나는 저녁 준비로 돌아쳤고 친구 화림이는 누나를 도와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그때 우리가 들어있는 집체호는 시골식 조선족 초가집이였는데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면 부엌과 구들이 함께 딸려 있었다.그때는 아직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은 때인지라 심지를 한껏 돋아 올려도 희미하기만한 석유등잔 신세를 질 때였다. 불빛을 등지고 저녁을 짓는 화림의 누나 모습은 얼핏 보면 영낙없는 사내 녀석 모습이였다.

그때 외지에 나갔다가 방금 집체호에 돌아온 나는 화림이 누나가 집체호에 놀러 온 줄을 감감 모르고 있었다. 집체호에 들어서서 구들에 올라선 나는 “에라, 계집애들은 다 어디로 가고 사내 녀석이 가마목 운전을 하느냐? 눈꼴시여 못 봐주겠다.”하고 말하면서 돌아앉아 이남박에 쌀을 일고 있는 화림이 누나 엉덩이를 악의 없이 걷어찼다. 갑자기 불의의 습격을 받은 화림이 누나는 앉은 자세 그대로 물앉으면서 이남박의 물과 쌀이 얼굴과 옷에 덮씌워 졌다. 너무나 뜻밖의 광경에 당황해난 집체호 친구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야, 너 무슨 짓을 하는 거야, 화림이 누나다!”하고 덴겁한 소리를 질러서야 나는 뭔가 일이 잘못되였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버린 물이였다. 세상에 이런 실수를 하다니!… 나는 너무나도 미안하고 송구스러워서 어쩔바를 몰랐다. 화림이 누나는 젖은 머리의 물기와 흥건해진 바닥의 물기를 서둘러 행주로 닦으면서 전혀 내색하지 않고 웃음 띤 얼굴로 연신 괜찮다고 말하는 것이였다. “괜찮소, 그저 누나라고 생각하면 되오, 나도 동생으로 생각하고…”

화림이 누나의 넓은 도량과 따뜻한 마음에 나는 더욱 머쓱해졌고 어쩔바를 모른 채 우두커니 두손을 마주 비비면서 송구스레 서있을 뿐이였다. 화림이 누나가 “이런 망할 놈이 있나?! ”하고 차라리 시원하게 호통치고 귀싸대기라도 한대 갈겨주었으면 덜 미안하고 창피하지 않을 것 같았다.

미안하고 처참한 기분 속에서도 화림이 누나가 무람없이 누나라고 생각하라는 말에 나는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따뜻한 인정과 위안을 얻었다. 누나, 얼마나 부르고 싶었던 부름인가? 나는 기꺼이 누나의 동생이 되여 나도 누나라고 부를 수 있는 존경하고 사랑스러운 누나가 있음에 마음이 따뜻해지고 즐거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일로 화림이 누나와의 보이지 않는 긴장과 장벽은 허물어지고 마음의 공간이 좁혀지는 것 같았다.

그날 저녁은 배추김치 한접시와 언 배추국 한사발씩 차례진 초라한 저녁식사였지만 그 어느때보다 맛있고 즐거운 저녁식사를 한 것 같았다. 식사하면서 집체호 친구들은 모두 나보고 화림이 누나에게 인사를 올리라고 하였는데 나는 용기를 내여 “누나는 얼굴도 이쁘지만 마음씨도 너무 아름다운 것 같소. 정말 미안하오”하면서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으로 사과를 드렸다.

나는 이렇게 처음으로 낯선 녀자에게 내심으로부터 우러 나오는 누나라는 존칭을 불러 보았고 화림이 누나는 또 년장자 답게 동생벌 되는 우리들에게 여러가지 유익한 인생조언과 충고들을 밤새도록 재미있게 들려주었던 기억이다.

세월이 흘러 이젠 그때 그 시절도 아득한 추억 속에서나 돌아볼 수 있는 50여년전의 일로 되였다. 나도 이제는 80고개를 바라보는 로인이 되였다. 집체호를 떠난 후 모두들 살아가는 일에 바쁘다 보니 련락이 끊기였고 다만 풍편에 화림이는 훈춘에서 살고 있다는 소문만을 오래전에 들었을 뿐이다. 아마 화림이 누나도 생전이라면 이젠 80세를 넘긴 백발의 로인이 되였을 것이다. 그 후로 화림이는 물론, 화림이 누나도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그때 그 시절의 순수했고 열정으로 차 넘쳤던 한단락 추억이 더욱 또렷이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은 무슨 까닭일가? 순수했던 시절,마음속으로부터 우러 나오는 존경과 마음을 담아 불러보았던 그 ‘누나’ 라는 부름이 내 마음속 깊이 각인되여 있었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만약, 화림이 혹은 화림이 누나가 이 글을 보고 지나간 옛 추억을 떠올리면서 우리들의 인연이 다시 이어지고 이로하여 우리들의 추억으로 되찾은 여생이 더욱 아름다워 진다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리동주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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