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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뽀뽀, 육영수의 울음…옛 문단 풍경 되살리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0월5일 10시05분    조회: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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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철 유작 ‘우리네 문단골 이야기’

1950, 60년대 문단 풍경 정겹게 되살려

대표작 ‘판문점’ 취재 뒷이야기도






소설가 이호철(1932~2016)이 등단작 ‘탈향’을 처음 쓴 것은 1952년, 피난지 부산에서였다. 최초의 제목은 ‘어둠 속에서’였고 200자 원고지 45장 분량이었다. 그 뒤 250장으로 늘리고 제목도 ‘암야’로 고쳤다가 1955년 다시 65장 길이에 ‘탈향’이란 제목으로 바꾸었으되, 첫 문장만은 내내 변함이 없었다. “그 무렵 나와 광석이와 두찬이와 하원이는 부두노동을 하고 있었다.”

사실주의 소설의 전범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시작이었지만, 작가 스스로는 불만이 많았다. 잡지에 원고를 보내 놓고도 첫 문장에 대한 고민을 떨치지 못하던 어느 날, 문인들이 자주 드나들던 찻집에 갔다가 김동리와 마주쳤다. 동리는 이호철의 그 소설을 읽어보았노라며, “꽤나 재미는 있던데, 그 문장의 서술체가 조금 마음에 걸린다. 묘사체로 바꿨으면 싶은데…”라는 조언을 떨구었다. 그렇게 동리를 만난 저녁 집으로 오는 버스 안에서 문장 하나를 떠올렸다. “하룻밤 신세를 진 화차 칸은 이튿날 곧잘 어디론가 없어지곤 했다.” ‘탈향’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산을 좋아했던 이호철이 1976년 5월 문단 동료들과 지리산 천왕봉에 올랐다. 뒷줄 왼쪽부터 리영희·송기숙·이문구·이호철. 앞줄 왼쪽은 김주영이다. 자유문고 제공

이호철의 육필원고. 자유문고 제공

이호철의 유작 산문 <우리네 문단골 이야기>에 나오는 삽화다. 그가 숨지기 전인 2015~6년 <월간 문학>에 연재했던 글에다, 같은 성격을 지닌 다른 원고들을 곁들인 책이다. 작가 자신의 직접 경험을 중심으로 주로 1950~60년대 문단 사람들과 사건들을 더듬었다. 월남하기 전 원산고등학교 3학년 시절 문학서클 책임자였던 이호철이 같은 학교 1학년 최인훈을 스카웃하고자 교실로 찾아갔던 기억, 집 떠날 때 아버지가 준 소 한 마리 값 돈을 고서점의 체호프 희곡집 네 권과 맞바꾼 결단, 미당 서정주 앞에서 그의 시 ‘산중문답’ ‘문둥이’ 등을 줄줄이 외워 보이자 미당이 “내 새끼, 내 새끼” 하며 혀가 들어오는 뽀뽀를 퍼부었던 일화, 전혜린이 숨지기 전날 저녁 전혜린과 그의 동생, 소설가 김승옥 등과 역시 명동에서 술을 마셨던 추억 등이 살뜰하게 수습됐다.

이호철의 대표작인 단편 ‘판문점’은 1960년 9월과 이듬해 5월 남북 회담 취재기자단에 껴묻어 판문점에 다녀온 경험을 살려 쓴 작품이다. 이호철은 소설에 나오는 대로 북쪽 젊은 여성 기자와 토론을 벌였으나 소나기가 퍼붓는 가운데 지프 안에서 벌어졌던 상황은 순전히 허구라고.


1970년 소설가 이문구(왼쪽)·남정현(오른쪽)과 포즈를 취한 이호철. 자유문고 제공
박정희 유신 당시 반정부 단체 ‘민주수호국민협의회’의 운영위원이던 그에게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영부인 육영수가 전라도 나주의 한센인촌을 방문하는데 그가 동행했으면 한다는 것. 차마 거절은 못하고 헬리콥터 편으로 다녀왔지만, 온화하고 우아한 영부인과 같이 사진 찍힐 기회만은 “교묘하게 피했다.” 그런데 헤어지기 전 청와대에서 커피를 마시던 중 그가 덕담 삼아 ‘오늘 여행이 따뜻한 추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고 말하자 일이 터졌다. 들고 있던 커피 잔을 내려놓은 육영수가 “저는 그저 이런 재미로나 살죠 뭐”라 말하며 헉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는 것. 그 말과 울음의 속뜻은 무엇이었을까.

이호철 자신의 경험 말고 전해 들은 이야기 중에도 재미난 것들이 많다. 조선일보 편집국장 시절 천관우가 사장실에서 내려보낸 이승만의 한시(노산 이은상 번역) 게재 청탁에 사직서 제출로 맞섰던 기개는 호방하다. ‘굳세어라 금순아’가 십팔번이던 시인 박재삼이 중환으로 집에서 요양 중이던 1997년 어느 날 자정 무렵, 소설가 홍성유가 글을 쓰다가 그 노래의 정확한 가사를 알고자 박재삼 집으로 전화를 걸었다. 박재삼은 병환중이라 어눌한 발음으로도 노래를 들려주었다고.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몇번씩이나. 지켜보고 있던 박재삼의 식구들이 놀라 기함한 것은 당연지사.

원산고교 후배이기도 한 소설가 최인훈(왼쪽)과 작품 심사 중인 이호철. 자유문고 제공“이호철은 도무지 어떤 잣대로 잴 수 없는 호인 풍이라 그에게는 적이 없다. 분단문학사에서 이호철만큼 연령, 신분, 이념, 지연, 학연, 신앙이나 장르에 얽매이지 않고 문학 동네 구석구석을 넘나들며 교유관계가 원만했던 작가는 드물다.”

생전에 그와 친했던 문학평론가 임헌영이 쓴 대로 문단의 마당발이었던 이호철이 보고 겪고 기록한 문단 이야기는 가난하지만 낭만적이었던 문인들의 한 시절을 손에 잡힐 듯 정겹게 되살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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