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90후 조선족작가 작품집 출간에 즈음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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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의 책임편집이기에 앞서 이 책의 저자들인 젊은 작가의 일원인지라 저자이기도 하면서 편집자이기도 한 흔치 않은 경험을 가지게 되였다.
원고 모집을 시작해서 한달 가량이 지나니 최종 68편의 원고가 모집되였다. ‘한 40편쯤 될가?’, ‘많아봤자 50편 정도겠지?’ 생각했던 내 짐작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문학이 죽어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는 지난세기말부터 닳고 닳은 가락처럼 들려왔던 터였다. 나는 모아진 68편의 원고에 꽤 신심을 얻었다. 아직 창작을 열애하는 젊은 작가가 이렇게 많구나 하는 안도감이였다.
사실은 내가 세상을 알아서부터 글자를 깨우쳐서 책을 읽기 시작한 때부터 문학의 종말에 대한 우려는 늘 따라붙었던 이야기였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을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였던 적은 없다.
세상에는 언제든지를 막론하고 자기 생각, 감정 그리고 세상 사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부류의 사람이 있다. 그게 어떤 사회인지를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그리고 또 세상에는 그런 남의 이야기들을 듣고 싶어하는 부류도 꼭 일정 비례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러니까 어떤 척박한 상황에서도 창작자와 독자는 늘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터무니 없는 락관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원고를 심열하는 동안은 늘 벅찬 느낌이였다. 확연히 그 전 세대에 비해 달라진 담론들임을 느낄 수 있었다. 소설 중에는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과학 환상소설도 있었고 짜임새나 인물형상 부각 면에서 세련미가 돋보이는 칙릿소설도 있었으며 대도시에서 삶의 터전을 가꾸어가는 젊은이들의 분투사를 핍진하게 보여준 소설도 있었다. 달라진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 생생한 현장감에 같이 울고 웃었다.
물론 전통적인 우리 고향의 모습을 소박하게 보여준 소설도 몇편 있었다. 변화라는 것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어느 한 시기를 기점으로 180도로 확 바뀌는 일이 없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의 담론이 갑자기 그 전 세대에 비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탈바꿈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새롭게 하려면 노력이야 필요하지만 새롭기 위해 새로와야 하는 것은 아닐 터이다. 작품에 꾹꾹 담겨진 진심, 그거면 족하다.
시 부분에서는 젊은이 다운 민감한 감수성으로 사회를 진맥하려는 노력, 그리고 톡톡 튀는 발상들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잠재력과 가능성은 보여주었지만 더 깊고 넓은 사고의 부재는 아쉬움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길림신문/리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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