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글로로고
가을 같은, 저녁 같은… 이재무 산문집 ‘괜히 열심히 살았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22년9월20일 06시10분    조회:94
조글로 위챗(微信)전용 전화번호 15567604088을 귀하의 핸드폰에 저장하시면
조글로의 모든 뉴스와 정보를 무료로 받아보고 친구들과 모멘트(朋友圈)로 공유할수 있습니다.
산문집 ‘괜히 열심히 살았다’를 출간한 이재무 시인./사진=헬스조선DB
서해의 온 바다가 한꺼번에 저물면서 빛날 때 저녁은 대낮보다 아름답다. 술 없이도 불콰한 그런 저녁에 무슨 심통 나는 일을 겪으셨나. 시집들 사이로 귀하게 내는 산문집에 ‘괜히 열심히 살았다’란 제목을 붙였다. 이재무 시인의 가을 같은, 저녁 같은 산문이다.

알록달록 홀가분한 책을 받고서 심통의 연원이 궁금해 표제 산문부터 찾아 펼쳤다. 네 쪽에 걸친 산행기다. 정상에 집착하신 적이 있던가. 정상에의 강박 때문에 한때 고행과 다름없는 산행을 했다,는 고백이 앞선다. 그 세월이 얼마였는지 알 수 없으나, 시인은 언젠가부터 시야에서 정상을 지웠고 걸음은 가벼워졌다. 이후 ‘선율처럼 굽이치는 등고선을 밟아’ 가는 산행이 시작되는데, 시인의 눈에 펼쳐진 풍광과 절경이 두어 쪽에 걸쳐 눈부시다.

계절로 치면 봄에서 여름까지, 젊은 시절의 한가(閑暇)와 완상(玩賞)을 놓친 게 아쉬웠을 수 있겠단 생각은 해본다. 괜히 열심히 살았다는 한 마디에 담긴 회한의 깊이를 타인이 잴 수 없으니 잠시 요량만 할 뿐이지만…. 그리 짐작할 일이 아니라, 흐릿한 주점에서 얼마간이라도 집요하게 청문할 일일라나.

누구나 밥 먹을 땐 고개를 숙이고
표제를 잊고 목차를 훑다가 ‘누구나 밥 먹을 땐 고개 숙인다’는 제목이 숭고해 다시 책을 펼쳤다. ‘밥이 하늘’이라는 동학 교주 최시형(또는 생활협동조합 한살림)의 파격 선언을 공유하며 시작하는 글을 찬찬히 읽고 있자니 시인의 말마따나 밥 앞에 송구하다. 나의 밥과 남의 밥이 모두 하늘인데, 어느 쪽에도 신심을 보이지 못했다. 내 밥엔 탐욕했고, 남의 밥엔 질투했다. 안팎으로 불경했다. 시인의 관찰대로 누구나 밥 먹을 땐 고개를 숙이는 법인데, 늘 고개든 채로 좌고우면하며 흘기고 탓했다.

밥은 하늘이기 전에 생명이다. 생명이었다가 하늘이니 더하고 뺄 것 없이 그 자체로 우리 삶이다. 그러나 그런 암시를 파악하고 안심하는 순간, 시인은 밥상을 엎는다. 숟가락을 엎고, 밥그릇을 엎어 놓고는 둘 다 무덤 형상이라 귀띔한다.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라는 종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불이(不二)의 경구가, 깜깜한 새벽 절간의 차디찬 쇠문고리 촉감으로 마음에 예리한 충격을 안긴다.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시인의 촌철이 매서워 흠칫한다. 그 앞에서 숭고와 송구가, 삶과 죽음이, 밥과 무덤이, 번뇌와 열반이 한 끗 차이를 버리고 서로를 끌어안는다.

시인의 문장 깊숙한 곳마다 연한 먹물처럼 그리움이 고였다. 정상이 사라진 산에서 낮은 풍경에 반한 뒤 밥상으로 내려와 무덤을 읽는 시인에겐 뜨거웠던 대낮의 지난 세월이 아득하다. ‘나는 저녁이 좋다’ 제하의 에세이에서 시인은 지난 삶을 간결한 서정으로 추상하며, 따스했던 시골 부엌 같은 저녁의 품에 안기려 한다.

슬픔과 허기의 가을, 그리고 저녁이지만…
수천의 시(詩)를 풀어내고도 서글픈 게 인생일까. 밤샘의 방생처럼 40년에 걸쳐 시를 펼쳤으니 허기질 수 있겠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가을 저녁의 허기 끝, ‘괜히 열심히 살았다’는 시인의 푸념이 독자들에겐 신새벽의 한줄기 바람처럼 성찰의 잠언들이다. 적요한 에세이의 숲에서 너와 나의 지난 일들이 물안개로 피어오른다. 산문 속으로 녹아든 시의 언어들은 홀연한 사유로 거듭나, 저녁노을의 진경(眞境)을 보여준다.

어쩜 우리 모두는 괜히 열심히 살았으나 그 무의미한 최선과 탈진의 끝에서 가려운 듯, 뒤척이듯 조심스럽게만 행복을 느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빛바랬으나 속으로는 여전히 붉은, 타오르는 중인 서해 바다의 낙조(落照)처럼. 천년의시작 펴냄, 260쪽.


산문집 ‘괜히 열심히 살았다’/사진=헬스조선DB

파일 [ 1 ]

[필수입력]  닉네임

[필수입력]  인증코드  왼쪽 박스안에 표시된 수자를 정확히 입력하세요

Total : 42
  • 책소개 5년 후 나에게 삶에서 가장 눈부시게 빛나는 1,825개의 하루를 선물하다!   가장 쉽고 지혜로운 방법으로 우리를 깊이 생각하게 하고, 하루하루 성장의 글을 쓰게 하는 『5년 후 나에게 Q&A A DAY』. 하루에 하나씩, 1년 동안 그 답을 기록할 수 있는 지혜롭고 영감에 찬 365개의 질문을 담아 바쁜 일상 속에서...
  • 2020-05-06
  • 올해는 로씨야 작가 체호브 탄생 160년이 되는 해이다. 소설가 겸 극작가인 체호브는 , 외 수많은 작품을 써 사회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객관주의 문학론을 주장했고 시대의 변화와 요구에 대한 옳바른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저술활동을 벌렸다. , , 등 많은 희곡과 소설을 남겼다. 체호브는 로씨야 남부의 항도 타...
  • 2020-04-28
  • 90세 할머니가 1년간 쓴 일기, 소설 '체리토마토 파이' [오마이뉴스 김건숙 기자] 코로나19가 점점 확산되어 불안감도 함께 높아가고 있다. 지난 주에는 판소리 강습만 살짝 다녀오고 쭉 집에만 있었는데 이것마저 당분간 쉬기로 했다. 잔 할머니라면, 이 상황을 어떻게 볼까? 는 작년 출간 때 예약 주문을 해서 4월...
  • 2020-03-11
  •  연변대학 조선언어문학학부 명사들의 이야기를 엮은 《와룡산의 소나무》  올해는 연변대학 창립 70주년이 되는 해이자 연변대학의 기둥학과인 조문학부의 개설 7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이러한 때에 《와룡산의 소나무: 연변대학 조문학부 명사들의 이야기》라는 자그마한 책자를 내게 되였다. 장장 70년...
  • 2019-12-05
  • 장편소설《내 마음의 낯섦》 《내 마음의 낯섦》은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아홉번째 장편소설이다. 이스땀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밝혀온 오르한 파묵은 이민자 가족의 이야기가 생생하게 살아있는 이 소설에서 이스땀불이라는 매혹적인 도시를 배경으로 문화적으로 복잡한 이스땀불의 40년 현대사를 흥미로...
  • 2019-11-20
  • --취장암 확진과 함께 시한부 선고를 받은 엄마와의 10개월 투병생활을 글로 담아낸 책 현재 중앙민족대학 조문학부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김현철 박사가 《엄마의 온돌》이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 제목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엄마’에 관한 내용이다. 김현철 박사는 이 책에서 엄마의 ‘평범하지만 평범하...
  • 2019-11-03
  • 80, 90후 조선족작가 작품집 출간에 즈음하여     리은실  80, 90후 세대의 조선족 청년작가 첫 작품집인 《담쟁이, 여름을 만나다》가 민족출판사에서 출판했다.   나는 책의 책임편집이기에 앞서 이 책의 저자들인 젊은 작가의 일원인지라 저자이기도 하면서 편집자이기도 한 흔치 않은 경험을 가지...
  • 2019-09-26
  • 사할린 잔류자들 현무암·파이차제 스베틀라나 지음|서재길 옮김 책과함께|328쪽|1만5000원 사할린에 사는 요시코(75) 할머니는 다섯 살 한겨울에 집에서 쫓겨났다. 그때 고열에 시달린 뒤 급격하게 시력이 악화됐다. 17세부터는 한 줄기 빛도 감지하지 못했다. 요시코는 사할린 조선인이다. 경상도 출신의 아버지...
  • 2019-08-04
  • 파블로 피카소(1881~1973)는 1929년 디아길레프의 러시아 발레단 무용수였던 올가 코클로바와 결혼을 하고 아들 파울로를 얻었지만, 한 여자로 만족하지 못했다. 올가는 이혼을 원했으나, 스페인의 프랑코 정권은 를 그렸던 피카소의 이혼을 허용하지 않았다. 피카소는 올가와 20년 넘게 별거 생활을 하는 동안에 마리아 테...
  • 2019-07-06
  • '미투' 이후 달라진 것?…페미니즘 소설집 '새벽의 방문자들' 출간 [앵커] '82년생 김지영'을 기점으로 여성주의 소설은 하나의 장르로 자리잡았습니다.  이런 흐름을 이어갈 페미니즘 소설집이 출간됐는데요. 6명의 작가들은 한번쯤 들어본 여성들의 찝찝한 경험을 소설로 썼습니다.&n...
  • 2019-07-03
조글로홈 | 미디어 | 포럼 | CEO비즈 | 쉼터 | 문학 | 사이버박물관 | 광고문의
[조글로•潮歌网]조선족네트워크교류협회•조선족사이버박물관• 深圳潮歌网信息技术有限公司
网站:www.zoglo.net 电子邮件:zoglo718@sohu.com 公众号: zoglo_net
[粤ICP备2023080415号]
Copyright C 2005-2023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