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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의 주인공》후속보도(7)리찬걸편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12월8일 00시00분    조회:3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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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조선족축구운동의 일등공신―― 원 길림오동팀 리찬걸선수 북경조선족축구협회를 이끌고  8년 동안 땀동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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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찬걸

 

길림오동축구팀의 선수로 활약하다가 은퇴한 뒤 북경에 가서 북경조선족축구협회를 이끌고 현재까지 8년간 열성을 다하고 있는 리찬걸은 고향이 료녕성 심양시이다. 

 

심양시 소가툰에서 태여나 평안남도 말씨를 구사하는 어린이(리찬걸)가 부모님을 따라 연길에 이주할 때는 만 여섯살, 조선족이 많은 연길에 이주했다고는 하지만 리찬걸의 어릴 적 기억에는 금방 연길에 왔을 때 그렇게 좋았던 기억은 적었다. 왜냐하면 당시 평안남도 말씨를 쓰는 그를 보고 동네에서 이상한 사람으로, ‘괴물 같은 존재’로 취급했기 때문이다. 

 

“저의 이상한 억양을 들어보려고 맨날 여러명이 찾아와서 똑같은 물음을 물어보군 했는데 그런 애들 때문에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였습니다.” 

 

시간이 점차 지나면서 리찬걸은 심양에서 배운 중국어로 그런 아이들을 대처하면서 간신히 힘든 고비를 넘기는 ‘요령’까지 터득하게 되지만 유치원은 그냥 한족아이들하고 같이 다니는 연변병원유치원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유치원을 다닐 당시 박영자선생님이 담임으로 있었는데 담임선생님은 운동에 타고난 기를 보여준 리찬걸을 유별나게 이뻐했다고 한다. 

 

“어느 날 박영자선생님께서 저의 손을 이끌고 그 당시 펠레 등 최고의 축구선수들이 찍은《성공적인 탈출》이라는 할리우드영화를 보게 하였는데 그 때로부터 제가 축구선수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되였던 것 같습니다. 특히 그 영화에서 나오는 축구선수들의 화려한 기술과 선수들의 강한 투지를 보면서 저런 멋진 선수로 되여보고 싶었던 욕망이 어린 저의 심장에서 꿈틀거렸던 기억이 지금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소학교 2학년 때 연길시에서 펼쳐진 학교축구경기에서 리찬걸은 건공소학교를 대표하여 경기에 참가하게 되였는데 팀에서는 1등을 따내게 되였다. 당시 해당 부문에서는 각 학교에서 축구를 잘하는 선수 16명을 선정했는데 리찬걸 역시 그 중의 한명으로 뽑혀 연길시중앙소학교로 전학을 하게 되였다. 이렇게 여러 학교 축구인재들로 무어진 축구팀의 감독에 당시 8.1축구팀에서 선수로 뛰다가 북경호적마저 뿌리치고 연변축구를 춰올리려고 연길에 온 최기철씨가 부임하게 되였으며 이어 본격적인 고강도훈련이 실시되여 리찬걸 등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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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시절의 리찬걸.(김홍석 찍음) 

 

리찬걸에 따르면 그 때에는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한다. 중앙소학교로 전학할 당시 다른 아이들은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학교를 찾았고 연길에서 가장 훌륭한 중앙소학교에 올 수 있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인 데 반해 리찬걸은 축구에 대한 부모님들의 반대로 유일하게 가만히 전학증을 갖고 중앙소학교에 등록을 하게 되였다고 한다. 몇달 뒤에 이 일을 알게 된 어머님의 말에 따르면 어린 나이에 이런 당돌한 행동을 한 리찬걸을 체육선생님들은 많이 놀라하셨다고 한다. 이는 결국 축구에 대한 부모님들의 반대의지를 최종적으로 꺾을 수 있었던 계기가 되였고 축구를 그토록 좋아하는 자식의 마음을 헤아린 부모님들은 그 뒤 오히려 아들의 충실한 열성팬이 되여 최선을 다해 밀어주었다. 

 

2년이라는 간고한 훈련 끝에 이들 축구팀에서는 1987년 북경에서 펼쳐진 전국대회에서 1등이라는 성적을 거두게 되였다. 당시 리찬걸은 팀의 주장이였으며 이번 일은 그로 하여금 또 한번 크게 성장하도록 하는 계기가 되였다. 경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장춘에서는 길림성 성장, 연길에서는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이 이들을 직접 만나고 따뜻하게 환대를 해주었는데 가난하고 없었던 시절에 처음 진수성찬을 맛본 이들한테는 그 때의 기억이 지금도 지워버릴 수 없는 아름다운 추억으로 가슴 속 깊이 자리 잡고 있다. 

 

그 뒤로 리찬걸선수의 축구인생은 별다른 변수가 없이 비교적 탄탄한 길을 걷게 되였다. 연변체육학교에서 학습하는 동안 련속 4년 문화과 최우수학생으로 선정되면서 학업을 마무리한 그는 지난 1993년, 팀에서 유일하게 당시 길림성축구팀에 입단하게 되는데 당시 그의 나이가 열아홉살이였다. 

 

리찬걸선수는 이듬해인 1994년에 중국프로리그가 출범하면서 프로축구선수로서의 행복을 누리는 한편 여러 경기에서 큰 활약을 선보이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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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오동팀 선수시절의 리찬걸.(김홍석 찍음) 

 

1995년, 연변팀의 갑급리그 잔류에 중요한 경기로 부각된 8.1팀과의 경기에서 어린 나이에 센터포드(中锋)로 큰 역할을 하면서 갑급리그 잔류를 앞당겨 실현하는 데 힘을 보태게 되였다. 이어서 펼쳐진, 당시 리그 3위 광동팀과의 원정경기에서 두꼴을 넣으면서 리찬걸선수는 젊은 나이에 수많은 축구팬들로부터 큰 기대를 한몸에 안게 되였다. 

 

안타까움도 없지는 않았다. 1996년에는 잦은 발목부상이 몸무게관리 실패로 이어지면서 기대이하의 발휘를 하게 된 것, 하지만 갑급리그 잔류와 직결된 광주송일팀과의 관건적인 경기에 또 한번 훌륭한 모습을 보이면서 유독 큰 경기에 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1997년에 한국인 최은택 감독이 부임하면서 선수들은 이왕과는 다른 새로운 훈련을 경험하게 되였다. 리찬걸선수 역시 뼈를 깎는 고통으로 체중감량에 뛰여들었는데 한달 동안에 무려 16키로그람 감량하게 되였다. 그 순간을 두고 리찬걸선수는 “마치도 애벌레가 나비로 탈바꿈을 하는 듯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센터포드에서 강한 몸싸움, 재치 있는 드리블과 대포알 같은 슈팅으로 팬들의 마음을 사로잡으면서 리찬걸선수는 ‘땅크’라는 별명을 얻게 되였고 선수로서의 최고의 황금시기를 맞이하게 되였다. 

 

그 해에 5~6명의 국가대표선수가 포진되여있는 중경팀과의 원정경기에서 일방적으로 집중포화를 맞는 경기였지만 역습을 통해 중간지역에서 3~4명의 상대방선수를 달고 40메터 가량 드리블을 하면서 끌고 가다가 때린 슈팅이 꼴문구석으로 들어간 장면은 지금도 많은 팬들이 두고두고 얘기하는 멋진 기억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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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변팀의 경기를 중계하고 있는 리찬걸. 

 

하지만 좋은 일만 뒤따른 게 아니였다. 팀에서 활약하면서 국가대표선수의 꿈을 꾸던 그한테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게 되였다. 1998년에 리찬걸선수는 무릎에 큰 상처를 입고 부득불 수술을 하게 되였는데 이 때문에 거의 일년을 잔디밭에서 뛸 수 없게 되였다. 비록 열심히 회복훈련에 림한 보람으로 그 해에 산동팀과의 홈장경기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 때는 이미 리그 막바지로서 리찬걸선수는 이듬해 새로운 시즌에서의 활약을 기다릴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악몽은 1999년에 또 한번 리찬걸선수를 찾아왔다. 한국 전지훈련에서 72키로그람까지 감량하면서 물오른 감각을 뽐내기 시작하는 가운데 훈련중 동료선수의 험한 태클을 당하면서 골절상을 입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그는 또다시 아픈 시련을 맞게 되였다. 련속 2년 동안에 큰 상처를 입게 되면서 선수로서 크게 주춤하게 되였다. 리찬걸선수는 축구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운도 따라야 큰 선수로 될 수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되였다. 

 

2000년, 연변팀에서는 갑급리그 보존에 실패하면서 강등의 쓴맛을 보게 되였다. 그 해 그는 전체적으로 저조한 경기력을 보여준 연변팀에서 많은 경기에 출전했지만 이전처럼 훌륭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해 결국 이듬해에 최은택 감독의 부름을 받고 한국 한양대학에서 축구에 대한 공부를 시도하려고 했다. 하지만 당시 여러가지 여건이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다시 연변팀에 와서 선수로 뛸 수 밖에 없었다. 

 

2년간 선수로 뛰는 과정에 재차 발목수술을 받게 되자 리찬걸선수는 큰 숙고 끝에 은퇴를 결심하게 되였다. 그 해가 2003년이였다. 련달아 이어지는 큰 부상으로 인해 갖고 있는 기량을 팬들에게 전부 다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는 그 점은 지금도 리찬걸선수한테는 아쉬움으로 남아있다. 이렇게 리찬걸선수는 프로축구선수인생의 막을 내리게 되였다. 

 

북경의 조선족동네로 소문난 망경(望京), 매주 토요일이면 중앙미술학원 교내운동장에서는 어김없이 순 조선족축구선수들로 무어진 축구팀간에 여섯껨의 축구시합이 조직된다. 전원 조선족들로 무어진 12개의 축구팀, 이들 축구팀의 큰 집은 20대로부터 50대에 이르기까지 500여명의 회원을 두고 있는, 북경시 조선족단체 가운데서 규모가 제일 크고 활동이 가장 활성화된 북경시조선족축구협회이다. 이 큰 집을 이끌어가고 있는 협회장이 바로 당년에 길림오동팀에서 주력으로 맹활약하던 리찬걸선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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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시조선족청소년축구양성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리찬걸. 

 

“북경시조선족축구협회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자리를 잡게 된 데는 리찬걸 회장의 노력과 갈라놓을 수 없습니다. 열정과 패기 그리고 인내력으로 7년 동안 참으로 고생이 많았지요.” 

 

현재 북경시조선족축구협회에서 심판장을 맡고 있는, 1970년대 흑룡강성축구팀에서 선수로 활약했던 국가급 심판 리석주(59세)씨의 말이다. 

 

리찬걸 회장의 소개에 따르면 북경의 조선족축구운동은 대략 2003년을 전후해 여러 분야에서 조직된 축구팀들이 경기를 진행하면서 서서히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2005년 ‘금영’컵 북경시조선족축구련맹전을 계기로 정식으로 북경시조선족축구협회를 발족하게 되였으며 올해까지 7년째 그가 회장을 담임하고 있다. 창립 초기에는 열개 팀이 협회에 가입했는데 현재는 북경의 한국류학생팀까지 합세하여 열네개 팀이 매주 토요일마다 리그별로 일곱껨의 고정경기를 치르고 있다. 

 

“지금은 그동안의 경험과 짜인 조직체계,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노력에 의해 모든 경기가 거의 빈틈없이 진행되고 있지만 처음에는 힘들었습니다. 경기중 선수들간에 그리고 심판에 대한 불만으로 불미스런 일들이 종종 일어났습니다. 거의 모든 선수들이 아마추어선수인 데다가 경기에서 무조건 이겨야만 한다는 너무나 과격한 승부욕으로부터 기인된 문제였다고 봅니다.” 

 

이럴 때마다 리찬걸 회장은 그 어느 팀이나 선수나를 물론하고 규정에 따라 가차없이 벌칙을 안겼다. 이렇게 말썽을 일으켜 축구협회에서 제명된 팀이 네개나 되였다. 또 문제를 일으켜 제명된 선수는 다른 팀에도 못 들어오도록 규정했다. 문제가 불거지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다 보니 거기에서 오는 압력이 만만찮았지만 그는 말없이 꾹 참고 지냈다. 

 

공평과 공정을 바탕으로 한 리찬걸 회장의 드팀없는 사업열정과 엄격한 협회제도는 점차 북경시조선족축구협회를 진취적이고 향상하는 하나의 사회단체로, 북경에 거주하는 모든 조선족축구동호인들이라면 누구라도 팀에 가입해 경기에 참가하기를 원하는 스타급 단체로 부상하도록 했다. 그러기에 망경과 멀리 떨어진 북경 연교(燕郊), 순의구 현대자동차공장에서 근무하는 조선족젊은이들까지 축구팀을 조직하여 하루품을 들여가며 먼데까지 찾아와서 함께 축구를 즐기는 것이 아니겠는가! 

 

북경조선족축구협회에서는 지금 일년에 적어도 200차 이상에 이르는 련맹경기를 펼친다. 뿐만 아니라 그동안 연길, 상해 조선족축구협회 그리고 한국 해당 축구협회와의 교류를 통해 축구협회를 대외에 알리고 있으며 아마추어팀이지만 프로축구팀 못지 않은 정규적이고도 합리한 련맹경기 조직형식은 업계인사들의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 2017년 8월, 이들은 한국에 나가 한국국민생활체육회 그리고 재한조선족축구협회와 친선경기를 치렀는데 그동안 북경시조선족축구협회에서는 2년 련속 세계한인축구대회에서 1위를 따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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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시조선족청소년축구양성에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리찬걸. 

 

북경시의 조선족축구에 대한 리찬걸 회장의 열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 2016년에 그는 망경에 소년축구과외훈련반을 내왔다. 조선족, 한국 어린이들로 구성된 어린이축구과외훈련반은 매주 토요일 오전 열시부터 열두시까지 직접 리찬걸 회장이 거느리고 있는데 아이들은 운동장에서 땀동이를 쏟는 것을 통해 프로정신과 팀워크를 하나하나씩 익혀나가고 있다.

 

“그동안 축구협회의 모든 팀원들이 함께 노력하면서 오늘과 같은 결실을 맺었다고 봅니다. 7년 동안 협회장을 맡았으니 자리를 내놓을 때도 진작 됐지요. 젊고 능력이 있는 인재들이 협회에 적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대담히 짐을 떠맡기고 뒤에서 밀어주는 것도 협회의 장원한 발전에 유리하다고 봅니다. 앞으로 바람이라면 북경시조선족축구협회의 활동이 지금의 여건을 토대로 지속적으로 활성화된 모습을 이어가고 북경시축구협회에 정식으로 등록을 해 경기에 출전하며 축구라는 이 대중운동을 통해 북경의 조선족을 널리 알리고 민족의 이미지를 더욱 향상시키는 것입니다.” 

 

프로축구선수로부터 계속 이어지는 리찬걸씨의 잔디밭축구인생은 그의 끈질긴 노력과 식을 줄 모르는 열정으로 오늘도 수도 북경의 조선족축구무대에서 찬란한 빛을 뿌리고 있다. 

 

/길림신문 김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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