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택 처형 이후 대북정책 저울질하는 중국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고모부인 장성택 전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을 처형하면서, 북한과 경제 통합을 꾀하던 중국의 전략이 혼란에 빠졌다.
북한은 13일(금) 장성택을 처형했다고 발표했다. 중국 정부는 장성택을 친중・친기업 성향의 북한 지도층으로 평가했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대체적 시각이다.
북한 국경에 경제 기반 시설을 구축하고 라선(나진•선봉)경제무역지대를 통해 북중간 교역과 투자를 확대하려는 중국의 장기 비전에서 핵심 인물이 바로 장성택이었다.
중국은 경제적 영향력이라는 무기를 바탕으로, 북한의 군사적 위협을 완화하고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도록 설득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북한의 도발 대상인 미국으로서도 장성택은 중요한 인물이었다.
6•25 전쟁(1950~1953년)에 참전해 북한을 지원한 바 있는 중국은 여전히 북한의 최대 무역 상대국이자 투자국, 원조국이다. 중국 정부는 지난 4년 동안 고속철도 공사를 비롯해 국경지대 인프라에 거액을 투자해왔다. 2012년 양국간 교역량은 약 60억 달러 규모였다고 중국은 집계했다.
중국 외교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국 지도층은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 보도에서 장성택이 석탄을 비롯한 지하자원을 ‘임의로’ 매각했으며 라선경제무역지대에 있는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외국(이름은 거론하지 않음)에 팔아버렸다는 죄목을 특히 우려한다.
중국 북동부 지린(길림)성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라선특별시는 1980년대 중국이 그랬던 것과 거의 동일한 방식으로 북한이 외자를 유치하기 위해 만든 경제특구 중 하나다.
장성택의 죄목에 중국이 구체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중국 기업들은 최근 몇 년 새 북한 광업에 투자해왔다고 중국 관영 언론은 보도했다.
중국의 한 기업은 라선경제무역지대에 부두를 임차키로 했다. 또 다른 중국 기업은 부두를 비롯한 인프라를 개발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시멘트와 같은 건축 자재를 제조하는 산업단지를 건설하기로 50년 기한 계약에 서명한 중국 기업도 있다.
주펑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 교수는 “(장성택의) 일부 죄목에서 간접적으로 중국을 공격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면서 “중국 재계에 즉각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나 부정적인 여파는 상당할 것이 분명하다”고 분석했다.
주펑 교수에 따르면, 북한이 중국과 경제협력 관계를 계속 공고히 하더라도 중국 투자자들은 장성택이라는 신뢰할 만한 파트너를 잃었기 때문에 새로운 북한 파트너를 상대해야 한다. 장성택 수하들도 숙청된 상태다.
북한과 교역을 담당한 중국 기업인들은 장성택이 숙청되면서 중국 기업들에 불똥이 튀었다는 소문은 아직 들은 바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일부 중국 기업인은 장성택이 제거된 데다가 죄목으로 라선경제무역지대와 관련된 주장까지 제기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우려했다고 전했다.
상하이증권거래소에 상장된 중국 기업인 지린야타이그룹(亞泰集團)은 라선경제무역지대에 산업단지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지린야타이그룹 관계자 한 명은 (장성택 처형이) 라선 프로젝트에 끼친 영향은 아직까지 없다고 말한다. 훈춘창리(珲春创力)해운물류회사는 라선시에 부두를 10년간 임차하기로 계약을 체결했다. 이 회사도 상황이 달라질 게 없다며 중국 북동부에서 석탄을 계속 실어나를 생각이라고 관계자 한 명은 말했다.
훈춘창리해운물류회사는 라선시에 있는 부두 한 곳을 재건했으며, 2011년 이후 중국 북경 도시 훈춘에서 라선을 통해 상하이와 닝보와 같은 중국 동부 도시로 석탄을 운송해왔다.
15일(일) AP는 장 전 부위원장 처형이 북한 경제정책의 변화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윤용석 북한 조선경제개발협회 국장의 발언을 인용・보도했다. 북한은 잠재적 투자자들을 안심시키려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윤 국장은 “북한 경제 정책은 이전과 완전히 똑같을 것”이라고 강조했다고 AP는 전했다.
17일(화) 북한은 김정일 사망 2주년 추도식을 맞아 김정은 제1위원장 일가에 대한 충성 맹세 행사를 개최했다.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에는 정치 지도자들과 군인 수백 명이 모였다.
그러나 북한의 경제특구에 대한 의지가 흔들릴까 걱정하는 중국 투자자들은 여전히 많다. 1990년대 초반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경제특구를 실험했다. 수년 동안 시작 단계에서 시행착오를 거듭한 끝에 장성택 전 부위원장은 2009년경부터 북중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었다. 장 전 부위원장은 故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중국을 방문해 산업공단을 시찰하고 북중 경제협력 계약을 체결하는 장소에도 모습을 드러낸 바 있다.
한편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전군주요지휘관회의를 열고 북한이 김정은 지지를 모으기 위해 내년 초에 도발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중국 외교부는 북한 체제가 안정되고 경제가 개발되기를 희망한다고 피력하고, 북한 동향을 언급할 때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16일(월) 홍콩 피닉스TV(鳳凰衛視)와 인터뷰에서 중국은 북한의 국내 정책과 외교 정책을 예의주시하고 있으며 정책 기조에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밝혔다.
중국 전문가 일각에서는 장성택이 숙청된 이유는 중국과 경제협력을 맺는 것을 반대해서라기보다는 파워 게임에서 밀렸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북한 전문가인 왕쉥(王生) 지린대학교 행정학원 교수는 “장성택이 친중파라는 이유로 숙청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외국에 토지를 50년 기한으로 임대한 사실을 죄목으로 언급한 것은 북한 내부에서 개혁・개방 정책에 대한 의견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 정도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2012년 8월 장성택 전 부위원장은 북한 대표단을 이끌고 북중 경제협력을 논의하기 위해 방중했다고 중국 관영 언론은 보도했다.
중국 관영 언론에 따르면 후진타오 당시 중국 국가주석은 “장성택 동지가 우호적인 선린관계를 확립하기 위해 이바지한 바가 크다”고 언급했다고 한다.
장성택 전 부위원장은 방중 기간 동안 중국 투자 유치를 위해 베이징에서 설명회를 유치했다. 2012년 8월 중국은 북한에 총 30억 위안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대북 투자금을 지원하는 중국투자공사는 올해 3월 웹사이트에 북한 광업 프로젝트 17개를 포함해 총 20개 프로젝트에 대한 투자 상세 내역을 올렸다. 중국투자공사에서 북한 경제협력에 관한 연구와 자문을 담당하는 장치(Zhang Qi) 연구원은 장성택 처형으로 대북 투자금이 영향을 받을 것인가에 관한 논평은 거절했다.
장치 연구원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개혁・개방의 길을 계속 걸을 것인지 아니면 문호를 닫을 것인지 관망하는 단계”리며 “아직 언급하기는 시기상조이나, 중국 정부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김정은 제1위원장은 장성택 전 부위원장처럼 중국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지 않다”고 부연했다.
월스트리트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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