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룡강신문=하얼빈) 윤운걸 길림성특파원=필자는 미국 연방 사이판 현지에서 사업성공가도를 달리는 한 베테랑 조선족여성기업가의 도움으로 시장 데이빗·아파탕을 인터뷰하는데 성공했다.
약속대로 사이판 현지시간으로 5월 25일 9시(중국시간으로 7시)에 북마리아나군도정부(사이판은 수부)청사로 갔다.그런데 마침 데이빗·아파탕 시장이 한 시민의 장례차로 행사에 참가하는 바람에 부시장 핸리 S 하프스나이더(이하 부시장으로 약칭)가 필자를 만나줬다.
우선 관광차로 오다보니 정장복 차림이 아니어서 미안하다고 하니 부시장은 “아니 별 말씀, 여기는 굉장히 자유스럽기에 의상에 별로 신경을 안쓰는 것이 더 편안하고, 더우기 이렇게 더운 날씨에 티셔츠 차림으로 한 기자를 만나니 아주 자연스럽다”고 답해 만나자마자 초면이라는 인상이 인츰 사라졌다.
사이판은 어느해에 어떻게 미국의 영토로 되었는가 하는 질문에 “사이판은 지리적으로는 오세아니아에 속한데 원주민은 차모로족으로 기원전 2만 년경부터 이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일본군이 상륙해 섬을 사탕수수 재배지와 군사기지로 개발했고, 전쟁 막바지에는 군사요충지로서 이곳을 차지하기 위해 일본과 미국이 치열한 전투를 벌였었다”며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한 뒤 현지인들이 관리하고 미국이 재 건축을 도와 나서게 되었으며 1978년이 되자 사이판과 로타, 티니안이 중심이 되어 북마리아나군도를 결성해 미국 연방국이 되었다”고 말했다.그는 “현재 국방,이민,학교 등은 모두 미국정부가 관리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부시장은 “사이판은 일년 사계절 해양 풍경이 절경이고 해안선과 산에는 야자수를 비롯한 열대식물이 아주 무성하게 자라고 있어 매년마다 관광객들이 구름처럼 찾아온다”고 덧붙혔다.
중국에 다녀온 경험이 있는가 하는 질문에 부시장은 “아직 다녀 오지는 못했지만 지금은 북경,광주 등 지역의 지리,력사 등을 공부하고 있다”며 “래년쯤에 중국에 다녀오겠다”고 답했다.기자가 “중국에 오게 되면 꼭 전화라도 하고 기회가 되면 만나서 식사나 하자”고 하니 흔쾌히 접수하면서 시간되면 꼭 찾겠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중국 관광객에 한마디 해 달라고 하니 부시장은 “여기는 서로 스쳐 지나가도 상대방에게 미안하다고 사과한다”며 “어제 (24일) 면세점에 가서 매대에 진렬된 제품들을 유심히 살피고 있는데 한 중국인 여성이 서슴치 않고 저의 앞을 가로막는 바람에 저의 시선을 가리워 굉장히 불쾌했다”고 하고 나서 “상대방을 배려하는 문화가 있는 매너를 갖추었으면 좋겠다”고 해 기자로서 얼굴이 확 달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취재가 끝날 무렵 정부 비서실로부터 전갈이 왔다.시장이 장례에 참석한 뒤 중국에서 온 기자를 만나기 위해 부랴부랴 집무실로 왔다는 것이다.
체격이 우람진 데이빛.아파탕 시장은 기자를 만나자 환한 모습으로 악수를 청하면서 명함장을 서로 교환한 뒤 지금 또 다른 행사가 있으니 사진이라도 남기자고 했다.
취재를 마치고 나오면서 안내 겸 통역을 맡은 김옥희 사장은 이 건물청사는 시청이 세를 맡고 사무를 보는 청사라고 했다.그러면서 김사장은 “정부의 주 업무는 시민들의 민원을 해결하는 것이고 시장을 비롯한 정부 관원들은 일체 시민들의 고충 해소에 주 사무를 보는데 정부는 청사를 짓기보다 임대하는 것이 서민들의 세금을 절약하는데 큰 도움이 되기에 이렇게 청사를 임대한다”고 말했다.그는 또 “시장은 또 결혼증에 직접 사인하고 결혼주례를 봐 주는가 하면 희사,상사 등 행사에 모두 참석해 준다”고 했다.
한편 김사장의 제의에 의해 정부청사와 떨어진 기타 부서들을 승용차로 돌아봤는데 “비자청”, “소방청” 등을 비롯한 청사들은 믿기 어려울 정도로 판자집과 비슷했고 그 주변 주민들의 자택은 모두 호화별장 같았다.
북마리아나군도는 14개 도로 조성되었는데 사이판은 이 군도의 수부이다.
주:북마리아나정부 관원 인터뷰 연결 및 통역에 사심없이 나선 김옥희 “녹색생명”사장 등 일행 2명에게 충심으로 되는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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