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동 일조에서
진수영 할머니는
한폭의 초상화를 받았다
그림 속 젊은 시절의 진할머니와
남편 동수안은 웃는 얼굴로
어깨겯고 앉아있는 모습이다
진수영의 남편 동수안은
1946년 입대해 같은 해
사평전역에서 희생되였다
사진 한장, 유물 한점 남기지 못했다
진수영 로인의 유감을 미봉하기 위해
현지 화가 가귀천은
복원의 방식으로
두 사람의 초상화를 그렸다
초상화를 손에 잡은 진수영 로인은
남편의 얼굴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다
“당신 진짜 돌아왔군요,
당신이 기다리라고 해서
95살까지 기다렸어요.”
“날 기다리오”한마디에
70여년 이어온 기다림
1928년 생인 진수영 로인은
18살 때 동수안과 부부의 연을 맺었다
결혼한지 며칠 지나지 않아
남편은 부름을 받고 참군했다
“당시에는 너무도 가난했습니다.
참군은 해방을 위하고
더 좋은 생활을 위해서
내린 선택이였습니다.”
남편이 없는 동안
진수영은 매일 로인을 모시고
밭에서 일했고
밤에는 집에서 천을 짰다
진수영 로인은, 동수안이 입대 후
집으로 돌아온 적 있다고 회억했다
하지만 마지막 리별 후 종무소식이였다
몇년 후 진수영 로인은
남편의 희생 소식을 접했다
처음에는 믿기지 않았다
현에서 동수안의 렬사증을 보내와서야
진수영 로인은 이 사실을 받아들였다
남편이 떠날 때 한마디
‘날 기다리오’ 때문에
진수영 로인은
70여년의 기다림을 이어왔다
진수영 로인은 남편을 위해
헝겊신을 만들었다
“언젠가는 당신이 돌아와
내가 만든 신발을
신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집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이 신발은 바닥만 남게 되였다
그후 진수영 로인은
매번 남편이 그리울 때마다
신발바닥을 꺼내 만져보군 했다
“돌아오니 좋아요
렬사들을 모시고 집으로”
얼마 전 일조시 영현 교산진
퇴역군인봉사소의 실무인원은
남편을 집으로 데려오고 싶다는
진수영 로인의 념원을 알게 되였다
알고 보니 동수안 렬사는
길림성 사평시 렬사릉원에
고이 잠들어 있었다
실무인원은 렬사릉원과 련계하여
릉원의 일부 흙을 고이 모셔
진수영 로인의 신변에 가져다주었다
실무인원은 진수영 로인을 위해
사평렬사릉원에서
흙을 걷는 과정을 방영했다
진수영 로인은 처음 남편이
희생된 곳을 보았고
처음으로 렬사벽에 새겨진
남편의 이름을 보았다
남편이 희생된 곳의 흙을 받고
진수영 로인은 만감이 교차했다
진수영 로인은 낮은 목소리로
“돌아오니 좋아요, 돌아오니 좋아요”를
여러번 곱씹었다
모든 렬사와 렬사 유가족들에게
경의를 전합니다
중국조선어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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