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춘애청애독자클럽 상무부회장 김석찬은 올해 77세를 넘긴 로인이다. 일찍 장춘시조선족문화관 신축사업 공헌자중 한명이였던 그는 항상 민족문화에 관심을 기울여왔고 근년 우리말, 문화에 푹 빠져있다.
고령임에도 우리말타자 등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한 김로인은 애청애독자클럽에 참가한 3년간 중앙인민방송국조선어부에서 방송한 그의 편지는 32통이나 되는바 클럽에서 첫자리를 차지한다.
1953년6월에 설립된 장춘시조선족문화관(현 장춘시조선족군중예술관의 전신)은 문화혁명기간(1969년 9월)에 철거되였다가 1978년 2월에 회복되였다. 철거되기전의 조선족문화관은 2층집, 면적이 천여평방메터였다. 그러나 문화관이 회복된지 3년이 지나도 원래의 건축물은 다른 단위에서 점하고 새로 30평방메터 되는 좁은 집이 차려졌는데 숙사, 주방, 창고, 열람실, 사무실, 문예프로련습장 등을 겸한 《다공능》실로 되여 18명 문화관 성원들이 회의할 장소조차 없었다.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지켜보고있던 장춘객차공장 종업원대학 교원 김석찬은 1981년 3월 17일부 《인민일보》4면 《독자래신》란에 《문화관을 돌려주길 바란다(希望归还文化馆)》는 글을 발표하였다.
이 글은 독자들, 특히 장춘의 독자들과 해당 부문의 커다란 반향과 중시를 일으켰다. 그해부터 당시 문화관의 림길산관장과 오기철부관장은 김로인의 문장을 들고 다니며 성, 시, 중앙민위에까지 찾아가 문화관신축을 촉구하였다. 1986년 조선족군중들이 학수고대하던 문화관청사가 일떠섰다. 4층집에 1905평방메터되는 큰 건물이다.
2003년, 장춘시조선족문화관설립50주년경축대회에서 문화관신축사업에 크게 기여한 25명의 공훈자를 표창하였는데 김석찬이 다섯번째명단에 들었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만나면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김로인은 퇴직후에도 조선족의 사업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는 1996년부터 2006년까지 10년간 장춘시록원구조선족로인협회 회장을 담임하였고 2006년부터 2010년까지 3년 남짓하게 장춘시조선족로인협회 부회장을 담임하였으며 2010년부터 지금까지 장춘애청애독자클럽 상무 부회장을 담임하고있다.
장기간 우리 민족의 사단에서 령도직무를 맡고 민족문화의 발전에 헌신하고있는 김석찬로인은 자기가 조선어를 잘 다루지 못하는것을 유감으로 생각하고있었다. 특히 애청애독자클럽의 사업을 하면서 말을 해도 조선말을 해야 되고 글을 써도 조선문으로 써야 되는 상황이 많기때문에 조선어수준을 제고해야 할 절박감을 더 느꼈다.
민족언어수준을 제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실천이다. 김로인은 될수록 조선말로 발언하려고 노력하였다. 너무 어려울 때면 한어를 섞어 쓰면서도 조선말을 하였다.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김로인의 조선말수준은 빨리 제고됐는바 지금은 평안도말(김로인은 평안도태생)을 제법 하면서 청중들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김로인은 2011년부터 국제방송국조선어부, 중앙인민방송국조선어부의 방송을 부지런히 청취할뿐만아니라 장춘애청애독자클럽성원들이 방송국에 보내는 편지, 방송국에서 클럽 성원들을 인터뷰한 정황들을 빠짐없이 기록해둔다. 김로인이 애청애독자클럽에 참가한 3년간에 두 방송국조선어부에서 방송한 그의 편지는 32통이나 되는바 클럽에서 첫자리를 차지한다.
하지만 이에 앞서 그는 큰 어려움을 극복했다. 조선어방송국과의 소통, 퀴즈풀이 답안 보내기 등에서 타자할줄 모르다나니 늘 다른 사람한테 부탁했는데 이것은 어디까지나 《림시구급》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이 직접 조선어타자를 배워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12년말 76세 고령인 그는 클럽 록원구 소조장 박옥경의 아들을 《스승》으로 삼고 본격적으로 조선어타자를 배웠다. 조선어타자를 너무 어려운 일로 생각했는데 뜻밖에 조선어타자는 한어타자보다 훨씬 배우기 쉬웠다.
부지런히 실천하였더니 진보가 빨라 2013년 1월부터는 조선어메일로 퀴즈풀이답안과 편지를 실시간에 방송국에 보낼수 있게 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도 조선어로 인터넷통신을 하기 시작하였다. 김로인은 주변의 로인들한테 매사에 두려움을 앞세우지 말고《하면 된다》는 신심을 가져야 한다고 고무격려하기도 한다.
김로인은 요즘 새로운 꿈을 꾸고있다. 앞으로 인터넷지식을 더 배워 몇년간 방송에 발표된 편지와 퀴즈풀이답안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 타자, 인쇄하고 거기에 도편까지 넣어서 멋지고 보귀한 도서를 만들어 남기려 하고있다.
길림신문/윤수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