룡은 중국인의 마음속에서 특별한 신물로 존재한다. 언제 어디에 가던 "룡의 전승인(龙的传人)"이라는 말 한마디로 중국인은 자호감을 느끼고 "룡의 자손"이란 말에 모든 중국인은 더없는 친절감을 느낀다…
"龍"이란 글자는 갑골문중에서 이미 출현했다. 전설에 순 (舜) 제시기 동부(董父)라는 한 사람이 룡을 잘 사양했기에 순제가 그에게 "환룡씨(豢龙氏)"라는 씨족명을 하사했고, 하조때에도 역시 룡을 사육하는 "유루(刘累)"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왕에게서 "어룡씨(御龙氏)"라는 씨족명을 선물받았다. 이러한 전설에서 알다싶이 요순우시기부터 중국인은 龍과의 인연을 맺아왔다.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주내성(朱乃诚) 교수의 소개에 따르면, 고고학 발견으로부터 볼 때 현재 발견된 3600년전의 룡 유물은 약 10여개에 달하는데 례를 들면 2004년 중국 하남성 이리두에서 발견된 대형 록송석 룡모양 기물은 3700년전후로 추측되고, 산서성에서 발견된 도자기그릇에는 채색 룡 그림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4400~4300년 전후로 거슬러 올라 갈수 있다고 한다. 이 년대는 바로 중국 고대사에서 말하는 요순우~하조시기를 말하는데 룡의 의식관념도 바로 그 시기에 형성된것으로 볼수 있다.
현대에 와서 "염황자손, 룡의 후손"이라는 설이 여전히 존재한다. 이는 바로 룡과 염제, 황제는 련계가 있다는것을 가리킨다.
주내성 교수의 고증에 의하면 최초 룡과 염제, 황제를 련결시킨것은 한조때부터이다. 사마천의 "사기(史记)"와 동한시기 왕부의 "잠부론(潜夫论)"에 일찍 이러한 설이 기재된바 있다.
룡과 제왕을 련결하고 룡을 제왕의 상징으로 여긴것은 한조때부터 시작되여 점차 변화발전의 과정을 가졌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이러한 이야기를 적었다. 한조의 개국황제 류방(刘邦)의 어머니가 강변에서 휴식하고있는데 갑자기 소나기를 만났다. 류방의 아버지가 안해를 찾으러 나왔다가 큰 룡이 안해의 몸을 감싸고있는것을 보았다. 그뒤 류방의 어머니는 얼마 안되여 류방을 낳게 되였다.
주내성교수는, 비록 한조때부터 룡과 황제가 련결되였지만 룡을 황권의 상징으로 여긴것은 당조때부터 시작되였다고 분석하고있다. 당조 현종시기 "천추절(千秋节)"이 있었는데 당시 매번 천추절이 되면 황제가 직접 일부 공헌을 세운 사람들에게 동거울을 선물하거나 하인들이 황제에게 공물로 동거울을 선물했다고 한다. 이 동거울은 우에 룡이 그려져 있고 "천추(千秋)"라는 두 글자가 새겨져 있었으며 반룡경(盘龙镜)이라고도 불리운다. 반룡경은 당시 "천자경(天子敬)"이라 불리웠는데 여기서 룡과 황권은 이미 련결되였음을 알수 있다.
룡을 황제의 상징으로 여긴것은 염격하게 말하면 명조때부터 시작되였다고 할 수 있다. 황제가 룡포(龙袍)를 입는 규정이 명조때부터 제정되였기때문이다.
룡이 황제의 화신과 권위의 상징으로 부상된후 龍자는 황제와 관련된 단어에 속속 출현하기 시작했다. 례를 들면 황제의 즉위를 "룡비(龙飞)"라 불렀고 황제의 몸을 룡체라 불렀으며 얼굴은 룡안, 입는 옷은 룡포, 앉는 의자는 룡의, 잠자는 침대는 룡상, 심지어 황제의 자손도 "룡의 자손"이라 불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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