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후의 인상속 설날은 대개가 비슷한 이미지다. 대문가에 높이 걸린 빨간 초롱과 한밤의 찬공기를 가르며 요란하게 터지는 폭죽소리, 가마에서 갓 건져낸 뽀얀 김이 피어오르는 물만두… 음력설이면 할아버지, 할머니께 세배를 올리고 세배돈을 받는 재미도 좋았고 사촌들끼리 간식을 나눠먹는 재미, 어른들의 화투판에 참견하는 재미도 즐거웠다.
올해 33살인 로은화씨는 어린시절 설날을 추억하며 식구들은 12시가 되면 꼭 물만두를 빚어먹었다고 했다. 물만두를 안 먹으면 눈섭이 하얘진다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졸음에 고개를 끄덕끄덕 떨구면서도 꼭 먹었다는것이다. 이제 딸을 가진 엄마가 된 그녀는 올해 설 식구들과 함께 물만두를 빚을것이라 했다. 졸음을 꾸벅꾸벅 참아가는 딸에게 “안 먹으면 눈섭이 하얘질거라”고 살짝 겁도 줘볼 생각이다.
그때는 집집마다 거의 그랬다. 설날 우리 민족 전통음식인 떡국을 먹는 집도 있었고 한족들처럼 물만두를 빚어 먹는 집도 있었다. 따라서 식구들이 모여앉아 흔히들 즐기는 유희는 윷놀이나 화투치기 혹은 트럼프치기나 마작이였다. 이처럼 80후의 설은 한족의 설문화와 조선족의 설문화가 어우러진 이른바 퓨전식 설문화라 할수 있었다.
최근에는 그 모습이 아주 많이 바뀌였다. 대다수 고층건물이 들어선 도심에서는 큰 상가들에서 설을 맞으며 내건 커다란 초롱이 보일뿐 그것은 옛날처럼 대문가에 높이 걸려 포근한 정취를 느끼게 하던 모습이 아니다. 폭죽놀이도 전처럼 요란하게 벌리지 않는다. 폭죽으로 인한 화재나 소음, 환경오염 문제가 화두에 오르면서 일각에서 폭죽놀이를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있기때문이다.
더구나 집집마다 가족이나 친척들이 한국이나 미국, 일본 등 나라로 외화벌이를 떠났고 젊은이들도 대도시로 진출해 그곳에 정착해 살고있으니 연변은 이제 고향이라는 아득한 이름만 남아있다. 특히 중국의 1자녀 정책으로 요즘은 사회 주류를 이끄는 젊은 층들 거개가 외독자이다보니 이른바 핵가족중심의 사회가 형성된지 오라다. 식구가 적으니 당연 설이라 해도 전 같은 흥성흥성한 분위기를 내기 어려운것. 게다가 소득이 높아지면서 평소에도 이왕의 설 못지 않게 지내는터라 맛 나는 음식, 예쁜 옷, 세배돈때문에 기다려지던 설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3년째 설은 한국에 가서 쇠고있다는 리명주씨(30), 부모가 모두 한국에 계시기때문이다. 부모뿐만 아니라 친척들 거의 모두가 한국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 보니 오히려 고향에 남겨진 자신이 한국에 가서 설을 쇠고 돌아오는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고, 그래야 설이 설다와진다고 했다.
사실 이러한 상황은 명주씨네 가족뿐만 아니다. 불확실한 통계에 의하면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있는 조선족은 수십만명이나 된다고 한다. 어떤 가족은 친지들마저 대부분 한국에 있다 보니 한국에서 모이는것이 더 편하고 쉬운 일이 돼버렸다. 하여 최근에는 결혼식이나 지어 환갑까지도 한국에서 치른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런가하면 대학 졸업이후 천진에서 취직하고 결혼후 아이까지 낳은 장춘욱씨(37)는 설마다 로비를 몇천원씩 팔면서도 기어이 고향인 연변에 와서 설을 쇤다. 고향에 홀로 계시는 아버지가 안쓰러운것도 있지만 그래도 고향에 와야 설 같은 느낌이 든다고 했다. 다행히 그의 친척들중에는 고향에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기에 그래도 모이면 설분위기를 제대로 낼수 있다. 올해에도 그는 국도를 따라 안해와 둘이서 16시간 동안을 번갈아 운전하며 고향으로 설 쇠러 올것이라고 했다.
한편, 연길에 거주하는 장해연씨(35)는 좀더 특별한 설을 보냈다고 한다. 지난 설련휴 기간에 그녀는 남편과 아들과 함께 황산유람을 떠났다. 소학교 3학년에 다니는 아들은 조선어문교과서에서 황산을 소개하는 글을 배웠는데 그후 황산에 가보고싶어 했다. 공직에 종사하는 그녀는 평소 긴 휴가를 낼수 없었으나 설련휴동안만은 시름놓고 긴 려행일정을 잡을수 있어 내친김에 900년 력사를 가지고있는 고대 마을 홍촌(宏村)도 들려보고 우진(乌镇)도 들려보았다. 아들에게 생생한 현장교육이 된것은 물론 설에 이처럼 가족이 함께 즐기며 새로운 문화체험을 하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했다고 그녀는 말했다.
요즘 들어 우리는 설이 설 같지 않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그제날 할머니가 몰래 감췄다 꺼내주는 달콤한 엿사탕의 유혹도, 푸짐히 차려진 설음식상에 자꾸만 할아버지 먼저 젓가락이 올라가 어른들의 핀잔을 듣던 아이들도 이제 더이상 그 자리에 있지 않다.
설날, 우리를 설레게 하고 기다리게 했던것은 무엇일가? 그리고 지금 그것들은 어디에 있을가?
연변일보 박진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