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보기 드물지만 1950년대까지만 하여도 이맘때쯤인 정월초부터 대보름까지 안도현 도안구 신툰, 료녕성 환인현 등 조선족마을에서는 “지신밟기” 등 농악놀이가 성황리에 진행되였다. 지난 1월 20일에 찾은 연변조선족자치주박물관 농악무전시장에는 소중한 우리것들을 올곧이 재현하고 보존 및 계승해나가려는 흔적과 모습들이 력력하였다. 평일임에도 가족끼리, 친구끼리 온 사람들이 보였고 멀리 광주와 상해 지역에서 온 관광객들도 꽤 있었다. 특히 타지역에서 온 그들의 눈에 이 모든것은 아름다움과 신비로움의 대상이였다. 박물관 한광운 연구원에 의하면 해마다 10만명이 넘는 관광객들이 이곳에 몰려와 조선족의 문화와 력사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는다고 했다.
조선족농악무는 조선족의 농경문화와 밀접한 련계를 갖고있으며 조선족의 이주, 정착 력사와 그 명맥을 함께 해왔다. 19세기 중엽부터 조선족의 이주로 인해 우리 농악은 조선반도에서 중국의 동북지역에 뿌리를 내리게 되였다. 1928년에 영벽(왕청)농악, 그뒤를 이어 면전농악, 서위자농악이 나타났고 1936년에 투도농악, 1937년에 신툰(안도)에 조선족집단부락이 이뤄지면서 신툰농악이 나타났으며 1945년 연길현(현재 룡정시) 팔도촌에 농악대가 조직되였다. 길림성 연변지역은 조선족전통농악문화의 발상지로 되였으며 산재지역인 길림, 흑룡강, 료녕, 내몽골 등 지역에도 전통농악문화가 류입되면서 점차 보편화되기 시작했던것이다. 문화대혁명을 전후로 일부 지역의 농악은 소실되기도 하고 중시받기도 하였다. 지난 80년대 이후 연변 각 현시의 크고작은 경축행사에서 농악무는 빼놓을수 없는 공연종목이 되였다. 최근 40년간 연변에서 진행된 대형농악무활동들을 여러개 살펴본다면 그중에는 조선족문화생활에 큰 반향을 일으킨 1988년 안도현 장흥향 새마을에서 벌린 마을건립 50돐 경축행사, 1995년 “제1회 전국 징, 북 경기”에서 우수상을 받은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창작한 “농악징, 북”, 2008년 “북방교역회”기간 하남가두상모예술단을 중심으로 1184명 출연자들이 펼친 상모춤, 2010년 룡정시 개산툰진 하천평마을에서 농부절경축 일환으로 펼친 대형농악무축제, 2012년 자치주 창립 60돐을 앞두고 펼쳐진 “제1회 중국조선족농악무경연”… 수십년간의 파란만장한 세월의 소용돌이속에서도 우리 중국조선족농악무는 자랑스런 성과를 이룩하였다. 2006년에 제1기 국가급무형문화재로 등재되였고 2009년 9월에 유네스코에서 인류무형문화재대표작명록 등재를 비준하였다. 이는 또한 길림성에서 첫번째로 되는 세계급무형문화재이자 동북3성에서 유일한 세계급무형문화재이며 우리 나라에서 유일하게 “인류무형문화재대표작명록”에 오른 무용이다.
조선족농악무는 조선족의 원시신앙인 천신, 지신, 일월신, 부락신 등 제례행사와 민간의 세시풍속, 생활환경을 토대로 장기간의 생산, 생활과 사회실천속에서 형성된 악, 무, 희 등 종합적인 공연형식이다. 이렇듯 마당놀이를 위주로 했던 농악놀이를 조득현선생과 하태일선생 등 예술가들이 1950년대 초반에 무대예술로 승화시켜 농악무의 새 지평을 열었던것이다. 전통적인 농악놀이의 구성과 특징을 살리면서 시대적정신과 숨결을 담은 농악무는 보통 소고춤, 장고춤, 북춤, 탈춤, 상모춤 등 민속무용으로 조합되였으며 그 장단이 다양하고 춤가락이 경쾌하며 조선족인민들의 두레정신과 경쟁의식을 뚜렷하게 구현하였는가 하면 예술적이면서도 민족적인 정서미를 풍부히 하고 우리의 락천적인 기백을 잘 표현하였다.
문화유산보호하는것은 당대에 공적을 이룩하고 천추에 혜택을 주는 작업으로서 조선족농악무의 전승은 반드시 어린이부터 틀어쥐여야 한다고 한광운연구원은 말하고있다. 실제로 20세기 50년대부터 연변을 중심으로 한 동북3성 조선족집거지의 여러 조선족중소학교, 유치원들에서는 체계적으로 민족악기 연주, 농악무 연기 기교를 전수하였으며 유치원, 중소학교에 소년아동농악무전승기지를 세우고 중대한 명절, 축제, 경연, 공연행사에서 청소년농악무연기는 관중들의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농악무의 앞장에서 추켜드는 농기, 그에 새겨진 “농자천하지대본”은 수천년을 내려오면서 진리와 철학으로 통하고있다. 농악무에 동원되는 꽹과리는 “양”의 기운을 상징하면서 음색이 벼락과 같아 “우뢰”에 비유되고 북은 장단이 강력하고 기세가 넘치여 “구름”에, 장고는 음색이 경쾌하고 절주감과 표현력이 풍부하여 “비”소리에, 징은 포용성과 긴 여운으로 “바람”소리를 상징한다… 농악은 이런 자연의 소리와 인간의 기원을 함께 아우르는 “천인합일”의 철학사상을 품고있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농악의 씨앗을 중국대륙에 심어 한세기남짓한 우여곡절의 역경속에서도 버리지 않고 세대를 거쳐 전승하고 발전시켜오면서 이주문화의 시들지 않는 꽃으로 아름답게 피워온것이다.
수년전의 이맘때쯤에 우리 생활과 가락을 다채롭게 꾸며주었을 우리 민족의 지혜와 창조의 결정체인 농악, 박물관 농악무전시장에서 그 숨결을 잠시나마 느껴보고 알아가는것도 참 뜻깊은 일인듯싶다…글·사진 류설화 허성 기자, 편집디자인 김광석
연변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