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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감성련재]그렇게 길을 떠나고…
조글로미디어(ZOGLO) 2018년7월3일 11시01분    조회: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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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조선족 80후 아빠의 딸을 위한 열흘간의 문화체험기

   베이징에 거주하는 '80허우' 조선족 부부의 딸을 위해 떠난 문화체험, 정체성이라는 답을 찾는 기나긴 여정의 첫 정거장으로, 이 가족의 인생에서 사뭇 중요한 한 장(Chapter)이 되는 걸 깨달은 여행. 이들은 익숙하고도 낯선 나라, 한국 서울에서 열흘 간의 뜻깊은 문화체험을 경험한다.

   그런 이야기를 실은 아날로그 감성련재-주노아빠의 '손그림과 함께 하는 문화체험기'가 얼마전 본지 위챗계정을 통해 팔로워들과 대면한후 젊은 세대의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화제가 되었다. 이에 작가가 가장 만족하는 몇편을 선정해 공유하는 바이다.

   -편자 주

  (흑룡강신문=하얼빈)2016년 9월 말, 서늘한 가을 바람을 타고...

  엄마 아빠는 한손엔 짐트렁크, 다른 한 손엔 만 네살반 되는 딸애의 손을 잡고 10일간의 한국 서울 수도권 문화체험을 떠난다.

  본격적인 문화체험이라는 거사에 앞서 항상 명분이라는 유력한 뒷받침이 동반되어야 하는데, 우리의 명분이란 다름 아닌 "해당 지역에 대한 인문학적 현황에 대한 고찰과 민풍인속에 대한 체험" 인 바, 이 어려운 걸 간단히 요약을 하자면 "구경하고, 먹고, 노는 것" 으로 함축해 드릴 수 있다.

  오전 항공편으로 아침 일찍 공항에 도착한 "문화체험단" 일행은 앞으로 열흘 간 펼쳐질 여행이 우리에게 구경 얼마나 큰 경이로움을 선사해줄 건지 하는 초조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있었다.

  중국에서 살고있는 우리가 "우리말"을 해야 하는 이유...

  요즘들어 차츰 자아의식에 눈을 뜨는 딸애가 우리가 두가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부단히 "Why?"를 제출한다.

참... 이건 참으로 우리 어른들한테도 난해한 주제가 아닌가?솔직히 딸애가 물어보기 전까지 살아 한번도 진지하게 그 심층적인 원인에 대해 고민을 해 본적이 없는 문제이기도 했었다.아빠 엄마가 어렸던 시절의 고향의 경우라면 우리말과 중국어를 다 같이 사용하는건 더없이 당연한 걸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인데, 21세기 하고도 십수년이 지난 현재의 북경의 경우라면 문제는 사뭇 달라진다.

 

 

 

  중화권의 정치 문화의 상징인 북경의 언어 환경은 두말할것없이 중국어다.

  그리고 14억이라는 그 방대한 언어의 사용자를 기반으로 대륙은 유구한 역사와 깊은 인문학적인 내실로 주류 문화권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과시한다.

  그런 환경에서 조선족이라는 소수자의 정체성을 확립을 위한 "고조선, 삼국, 통일신라, 고려, 조선, 일본치하 식민시기, 이주역사, 남북분단..." 이 너무나 어렵고 추상적인 딱딱한 편년사들을 공부시키랴 대륙의 주류문화 앞에서는 턱없이 설득력과 현실감이 결핍하고, 또한 실용성 여부를 따지더라도 동기부여가 전혀 될 수 없는, 부모 힘들고 애만 피곤한 부질 없는 노력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현실성이 결핍한 문화환경에서 우리가 그렇게 힘들고 부질없는 노력을 하는 이유는 또 뭘까?

  단지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처럼 우리가 조선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우리 말, 우리 문화의 습득은 당연한 것이 라고 생각해서 그런걸까?

  중국의 내륙 도시에서 육아를 하는 모든 조선족 젊은 엄마아빠들이 한번 즈음은 고민을 해 봤을 지극히 현실적인 문제다.

  "I came, I saw, I conquered. - Julius Caesar"

  어느날 우연히 접하게 된 이 간지나게 멋진 구절을 보며 우리는 딸애와 함께 그 답을 찾아 나서기로 한다.

  "그리로 가거라, 가서 보고 가슴으로 느끼거라."

  이보다 더 직접적이고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방식이 어디 또 있으랴?!

  유대민족은 이스라엘국이 창건되는 1948년까지 2000 여년간 나라없이 세계 각지에 산재하여 살아온 고달프고 기나긴 방랑의 역사를 겪었단다, 유대민족의 이런 특정한 방랑의 역사를 학계에서는 디아스포라 (Diaspora)라고 정의를 내린다.

  압록강을 건너 어언 한세기를 주름잡아 진행되어 온 중국 땅으로의 대규모적인 이민역사, 지난 세기 90년대 까지 중국 동북 지역에 집거하여 살고 있던 190만의 조선족들이 이젠 중국의 내륙으로, 한국으로, 일본으로, 미주로, 유럽으로 산재하는 "디아스포라"를 겪고 있다.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찾는 길은, 현재 디아스포라를 겪고 있는 우리 "조선족" 한테는 어쩌면 한평생 풀어가야 할 숙명적인 과제인것 같다.

  어차피 신앙을 포함한 확고한 신념에 대한 경외지심이 결핍한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현대 사회이다. 그러한 경부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 딸애가 어렵사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으며 일찌감치 자아성찰이라는 인생 과정을 고민하는것 또한 별로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아빠엄마는 생각하고 있지.

  한번의 여행은 전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단지 그 답을 찾는 기나긴 여정의 첫 시작으로 우리는 딸애와 이번 여행을 함께 한다. 그리고 이번 한국 문화체험이 딸애와 우리 가족 전체의 인생에서 사뭇 중요한 한 장(Chapter)이 되는 걸 깨달은건 그 후로 열흘 뒤, 여행을 마치고 귀국 길로 인천공항에 다시 도착했을 때였다.

  그러나 현재의 우리는, 익숙하고도 낯선 나라, 한국으로 가고 있는 중이다.

  "그리로 가서 보고, 가슴으로 느끼기" 위해......

  시도 때도 없는 엄한 북경수도공항 항공관제에도 영향없이, 비행기는 제시간에 이륙하고 예정된 시간에 인천공항에 우리를 무사히 내려준다.

  비수기 시즌을 골라 잡은 스케쥴임에도 불구하고 입국수속 카운터 앞에 길게 줄을 선 중국 관광객의 규모에 아빠와 엄마는 살짝 경악을 한다. 그렇게 20여분 동안 줄을 서며 대기 끝에 우여곡절 없이 입국 절차를 마치고 여행 목적지에 공식적으로 도착하였다.

  우리가 여행사에 예약 임대한 무선 와이파이기를 찾기 위해 공항안을 돌아본것이 본의 아닌 첫번째 문화체험 코스가 되었다.

  때마침, 공항 1층 로비에서 전통무용쇼가 있어 딸애는 처음으로 우리 민족 전통무용을 보게 된다. 색갈이 예쁜 한복, 덩실덩실 흥겨운 가락, 크지 않은 공간이지만 아담하고 절제된 무대와 즐거운 관객들이다.

  구경거리가 주된 여행이라지만 "의", "식", "주", "행" 등 모든 요건들과 시설의 편의성에 각별히 신경을 쓰며 여행자의 몸과 입을 즐겁게 하는것이 우선임은 물론이고, 덤으로 편한 이동 수단으로 가뿐한 마음에 기분좋은 눈구경을 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일단 가장 중요한 "주" 방면에서 우리는 고맙게도 마침 중국회사에서 근무하며 한국에 장기 주재원으로 파견되어 있는 아빠의 외사촌동생 - "박사장"의 숙소에 투숙할 수 있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남은 여행동안 고맙고 고마운 분들을 수없이 만나게 되지만 "박사장"은 낯선 이국 땅에서 흔쾌히 우리 가족을 수용해 주신 첫번째 "은인"이었다. (고마운 "박사장"이여 ㅋㅋ)

  "박사장"의 숙소까지는 공항 터미널로 한시간 정도 가야 하는 거리다. 버스가 떠나고 어느정도 흥분이 가라앉았는지 딸애는 금새 흔들흔들 버스안에서 곯아 떨어진다.

  엄마의 팔베개를 편히 하고 내가 앉은 옆 좌석까지 다리 펴고 편하게 자는 딸애로부터 잠시 나마 해탈이 된 아빠와 엄마는 각자 휴대폰을 열어 보며 문자들을 체크한다.

  마침 그 시간대에 연변팀의 경기가 시작되었고 홈팀 광팬인 아빠는 서울에서도 그 중요한 경기 중계를 놓칠리가 없다. 아~ 젠장, 그날 따라 연변팀은 료녕팀한테 0:3으로 무참하게 발리고 있었고, 휴대폰으로 생방송 중계를 지켜 보던 아빠는 서울 한복판을 달리는 버스안에서 격분을 주체못하며 "아*끼들이" 하면서 연변사투리욕을 하는 모습을 엄마는 한심하게 바라보고 있었다나.

  버스는 달리고 달려 "박사장"이 살고 있는 동네에 도착했고, 마중나온 "박사장"과 함께 숙소에 들려 짐을 풀고난 뒤 일행은 동네돌이 겸 저녁식사를 나왔다.

  북경에서부터 우리말 표준말을 유창하게 구사하는 딸애는 진배없는 현지인 "동네 어린이"다. 여유롭게 뒤짐잡고 걸어 다니며 이것저것 구경하고 궁금한 걸 아빠 엄마와 물어보며 동네돌이를 한다. 엄격한 우리말 교육의 진수가 빛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박사장"이 저녁을 한우 구이로 접대를 한단다. (아 뭘 이런걸 다 ㅋㅋ)

  아침부터 시작된 긴 여행에 변변한 끼니없이 기내식과 챙겨온 간식으로만 연명을 했던 우리, 딸애는 목탄불에 지글지글 살살 녹는 잘 익은 한우구이에 태어나 처음으로 혼자서 백반 한공기를 거뜬히 제껴버리며 엄마아빠를 깜짝 놀래웠다. (네살짜리가...), 하지만 이건 앞으로 남은 9일간의 먹방여정과 비교하면 단지 미미한 수준일 뿐이었다.

  푸짐한 저녁상을 물리고, 소화 겸 저녁 산책으로 다시 동네 투어를 하는 우리 일행.

  박사장이 살고 있는 경기도 성남시의 "판교"는 IT회사들이 집중되고, 부동산 시세가 뛰고 있다는 활기로운 신도시다.

  거리에 있는 음식점과 주점에는 야근을 끝낸 젊은 직장인들이 한잔 하며 피곤한 노고를 풀고 있고 주변 주택가의 놀이터에서는 어린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사람 사는데는 다 똑같다고들 하지만, 북경에서는 볼 수 없는 어딘가 사뭇 다른 느낌의 이웃나라의 밤 풍경이다.

  여름을 마무리하며 불어오는 어딘가 푸근한 느낌의 초가을 바람이 기분좋게 설레이는 밤이다.

  저쪽에서 정장차림의 직장인들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맥주 한잔 하다가 흥이 났는지 즉흥으로 반주없이 가락좋은 노래를 한다. 취객의 고성방가가 아니라 상당히 감정이입이 되어 있는 수준높은 가창력이다. 북경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라 신선하게 다가온다.

  낮에 에너지 소모가 많았던 이유였을까 바람 타고 풍겨오는 길옆 가게의 맛있는 구이냄새 때문이였을까, 아니면 산책하는 동안 저녁밥이 벌써 소화가 다 된 걸까?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치킨 한마리를 포장해 가는 걸 사양하면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니라. 식기 전에 맛있게 먹어야 한다고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딸애는 후다닥 샤워하고 젖은 머리결 드라이도 마다 하고 바삭바삭 맛갈스런 치킨을 양념에 듬뿍 찍어 잡숴 드신다. 가르쳐 주지도 않은 이런 것들은 어디서 보고 들었는지…

  이쪽에서는 유모차 밀고 나온 젊은 부부들의 모습이 보이고, 공터에서는 또래들과 놀이에 여념이 없는 동네 꼬마들의 즐거운 소리가 들려온다.

  아침까지만 해도 북경에 있던 우리가 저녁은 서울 수도권 도시의 어느 고기집에서 먹고 이렇게 한국의 밤거리를 활보하고 있다.

  가까우면서 먼 나라...

  익숙하면서도 낯선 나라...

  앞으로 9일 간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 하는 기대감으로 감개가 무량해진다.

  야식을 먹었으니 일찍 자기엔 이미 글렀고, 우리는 이국 땅에서 상봉한 "박사장"과 그동안 살아왔던 이야기들을 하면서 자정이 넘도록 해피한 밤시간을 보낸다.

  그렇게 어느덧 밤이 깊어가고, 다음날 일정을 위해 흥분이 가셔지지 않은 채, 급기야 정신이 또릿또릿 말짱한 상태에서 억지로 잠자리에 든다.

  일정이라고 하지만 사실 유명한 곳 몇군데만 생각해 두고 있는 외, 우리는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두발로 소박하게 지도 따라 간다는 상당히 러프한 계획(?)만 세웠을 뿐이다.

  내일은 수원에 계시는 지인을 만나러 가야 하는데 이 시간에 자면 다음 날 몇시에 깨어 날려나...

  걱정반 기대반으로 잠자리에 누워 엎치락 뒤치락 흥분한 딸래미를 안정시키느라 애쓰는 사이 문화체험단 일행은 어느새 고요한 꿈나라로 들어가며 충실했던 첫 하루를 평화롭게 마무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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