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경 11월 5일발 인민넷소식(기자 장민영 임영화): 당신은 100여년 전 우리 민족 선조들이 거주했던 전통가옥과 그들이 직접 사용했던 농경기구, 생활도구들을 본 적이 있는가? 도문시 월청진 백룡촌이라는 곳에 이 모든 것을 그대로 보존해온 중국조선족 백년부락이 자리잡고 있는데 조선족이라면 아마도 대부분 한번 쯤은 들러보았을 것이다. 139년 세월의 풍파를 겪고도 현재까지 완전하게 보존되여있는 한채의 전통가옥을 핵심으로 주위 13채 초가집을 새로 지어 조선족 전통부락을 복원한 이곳은 현재 도문시 관광지로도 유명하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마을풍경과 자연스레 어우러진 조선족 전통가옥의 풍치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고 정통 조선족음식을 맛볼 수 있으며 민족복장을 입고 민족가락을 들으면서 조선족들의 민속문화와 농경문화를 몸소 체험할 수 있다. “눈에 띄게 화려한 건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현대화한 놀이시설도 없는 이곳에 오로지 우리 선조들의 문화가 궁금해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모든 것을 손수 일구어낸 주인공이자 우리 민족 전통가옥문화의 전승인인 김경남 사장이 말했다. 백년부락이 세워지고 대외에 개방되여 관광지로 유명해지기까지 장장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이 모든 것은 이곳에 열정과 신념, 민족적 자부심 심지어 자신의 재산까지 전부 쏟아부은 김경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민속문화 전승, 민족정신 고양… 마을사람들에게 혜택 주고파
개혁개방후 해외출입이 자유로워지면서 김경남은 한국으로 떠나 10년 동안 힘든 로무에 종사하면서 주머니를 두툼하게 채워가지고 귀국했다. 벌어온 돈으로 우선 도시에 몇채의 집을 사놓은 그는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머리를 굴리다가 문득 동생이 3000원을 주고 고향(백룡촌)에 사놓은 100년 된 고택이 생각났다. 처음에 그는 그 집을 허물어 홍송원목을 재료로 사용하려 했다고 한다. 하지만 못 하나 없이 지어진 이 민가가 큰 변화없이 보존된 것을 보면서 김경남은 조상들의 지혜에 감탄하는 한편 이를 복원시켜 민족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은 생각이 부쩍 들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초가집을 허물고 벽돌집을 지어주었습니다. 저는 제 돈을 주고 이런 벽돌집들을 한채한채 사들여 다시 초가집으로 건설했고 백년가옥을 핵심으로 한 민속촌을 만들려 했습니다. 당시 가족들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은 모두 저를 이상한 눈길로 바라보았고 반대 또한 만만치 않았습니다.” 사실 김경남은 외국로무로 고생스럽게 벌어온 큰돈을 이곳에 전부 사용했고 심지어 시내에 장만한 집들도 한채한채 팔아서 이 일을 끝까지 이루어내려고 했다. 가족들을 포함한 주변사람들에게 있어서 이는 그의 부질없는 고집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이토록 이 일을 고집한 데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와서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력사의 맥락을 느끼게 하고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를 지키며 민족정신을 고양하기 위한 것도 있었지만 관광업으로 부를 창출하여 한집안처럼 가까이 지내온 마을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우리 민족 전통가옥의 진면모 회복
하지만 이는 결코 쉽지 않았다. 다행히 일을 시작해서 2년이 지난 후 정부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정부에서는 무형문화유산 보호 차원에서 도움을 제공했고 정책적 지지와 더불어 총 540만원에 달하는 자금을 지원했습니다.” 김경남은 정부의 이런 지지에 힘입어 전통가옥, 민속전람관, 민속음식, 민속가락을 일체화한 백년부락을 일떠세움으로써 우리 민족 전통가옥의 진면모를 회복시켰다.
민속전람관에는 백룡촌 100년 이주사를 반영한 벽화가 있는데 이는 김경남이 가장 애착을 가지는 작품이다. 백룡촌의 력사, 항미원조 력사와 전통명절을 보내는 장면들을 생동하게 그린 이 유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금치 못하게 한다. 이 밖에 백여년 전 우리 선조들이 사용했던 농경기구, 생활용품들과 일제통치시기 백룡촌학당 발전사를 반영한 100여장의 사진들도 전시되여있는데 이는 력사적 증거로서 일본의 우리 나라 동북 침략사 연구에도 큰 가치가 있다. 올해는 특별히 조남기 장군의 서거를 애도하고 그를 기념하기 위해 전시관 한켠에 그의 사진과 소개글을 진렬했다고 한다.
“조남기 장군은 이곳을 두번 방문했습니다. 원 국가민족사무위원회 리덕수 주임은 이곳을 방문할 당시 이토록 오래된 전통가옥에 감탄하면서 백년부락(百年部落)이라는 제자를 직접 써주셨습니다.”라고 김경남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백년부락에는 또 마을주민들로 구성된 공연팀이 있어 퉁소를 불고 장고, 북을 치면서 관광객들에게 민족가락을 들려준다. 무형문화유산으로 인정받은 농경무팀도 행사 때 이곳에 찾아온 손님들과 함께 신명나는 춤판을 벌리군 한다. 볼거리가 있으니 먹거리 또한 빠지면 안된다. 이곳에서 만들어 파는 순대, 감자지짐, 떡, 막걸리 등 우리 민족 전통음식들도 뜨거운 인기를 모으고 있다. “매년 평균 2만명에 달하는 손님들이 이곳에 찾아옵니다. 개방한지 10년이 되였으니 총 20만명 사람들의 발길이 이곳에 닿았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20만명의 사람들이 우리 민족 문화와 력사를 료해하고 체험했다고 생각하면 정말 마음이 뿌듯합니다.” 김경남은 기쁜 심정을 감추지 못했다.
노력으로 일구어낸 행복한 삶의 터전
이렇게 백년부락은 민족문화 전승과 민족정신의 고양을 토대로 관광자원을 충분히 발굴하여 일정한 경제효익을 창출했지만 그 수입은 아직까지 백년부락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 밖에 안된다고 김경남은 소개했다.
“우리 조선족은 억척스럽게 생활해왔고 현재 좋은 민족정책으로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백룡촌도 민족정책에 힘입어 력사문화명촌. 특색마을, 전통부락 세가지 영예칭호를 받았고 정부의 지지밑에 우리 민족 무형문화유산을 더욱 잘 지켜나갈 수 있게 되였습니다. 꾸준히 견지해나가면 언젠가는 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고 백년부락도 멀지 않아 전성기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김경남의 가족은 현재 3대가 함께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백년부락을 든든히 지켜가고 있다.
백년부락 건설 초기부터 김경남의 두팔이 되여 궂은일 마른일을 가리지 않은 아들 김정일은 10년간 이곳을 운영하면서 아버지의 고충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또 힘들어 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다고 한다.
10년의 끈질긴 노력과 분투, 지혜와 땀으로 일구어낸 백년부락에서 기자는 수려한 마을풍경을 감상하고 순박하고 인심 좋은 마을주민들을 만나보았다. 그리고 민족 전통가옥의 복원을 고집해온 김경남의 삶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그의 말 마디마디에서 우리 민족에 대한 그의 사랑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인사들이 힘을 모아 백년부락을 도와서 우리 민족 전통이 영원히 이곳에서 살아숨쉬도록 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인민넷 조문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