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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구술시리즈-6]문예의 새봄을 맞이하여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5월9일 08시59분    조회: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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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6](김희관편6)

1984년 당과국가의 지도자들을 모시고.

1983년 음력설을 쇠고 조남기 서기께서는 연변대학에 <작가반>, <기자반>과 항일투사 자녀 <연수반>을 꾸린 일에 대해 저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어요.

“이번에 좋은 일을 성사시켰구만. 연변대학에 이런 인재양성반을 꾸리는 것은 참으로 좋은 대책이인거예요. 앞으로 몇해에 한차례씩 이런 인재양성조치를 대면서 우리의 문화예술을 전승해나아 가야 하겠어요.”

그후 저는 조남기 서기님의 배려하에 연변조선족자치주문화국 국장으로 임명되였지요.

1984년 ‘연변의 여름’예술절에서의 김희관 문화국장.

문예일군들의 마음부터 추슬리다

저희가 연변주문화국에 부임해서 처음 전개한 업무는 연변의 전반 조선족문예사업에 대한 조사연구를 진행하고 문예대오에 대한 대정돈을 하는 것이였어요.

그때는 10년동란이 끝난지 몇 년이 잘 되였지만 그래도 여독이 많았어요. 우선 문화예술계에 몸담고 있는 연예일군들은 서로 10년간의 알륵을 다 지우지 못하였기에 정신이 분산되여 있고 합심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았어요.

이런 가운데서 어떻게 그들의 적극성을 발휘할 것인가? 중요한 문제는 문화예술일군들의 마음에 다가서서 그들을 위로해야 되겠다고 생각하였지요.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년세가 가장 많으신 문화예술인들부터 위로하기로 하였지요.

문화국 당위에서는 30년이상 문화예술전선에서 분투한 분들을 위한 전문모임을 가지고 그들에게 영예증서를 발급하였어요. 온갖 정치모자를 들쓰고 운동 때마다 얻어맞기만 하면서 창작자유를 잃었던 어르신들이라 그만한 위로에도 그토록 감격해 할줄은 미처 몰랐지요.

그런데 생각 밖으로 한 분이 사무실에 찾아와서 앉자마자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서 말씀했어요. “김국장님이 어떻게 나한테 이럴 수가 있는가요? 이전에 김국장님의 아버지는 그토록 나를 관심해주셨는데…”

그분이 바로 유명한 장고춤 무용가 리록순녀사였지요. 그는 반년이라는 시간차이로 영예증서를 못 받은거였어요. 인사과에 다시 알아보니 그분처럼 얼마간의 시간 차이로 영예증서를 못 받은 분들이 20여명은 잘 되였어요. 그래서 얼마 후 다시 영예증서를 보충해 발급해 드리고 기념품까지 드리면서 ‘빚'을 싹 갚아드렸지요.

1984년 전주 청년배우 기량검열 기념.

또 한가지 문제는 일부 문예일군들은 10년동란 기간에 다른 사람을 비판하면서 이러저러한 과오를 범했던 것이였어요. 개별적인 당사자는 행정적인 처분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였지요. 당시 저 역시 10년 동란의 피해자의 한사람으로 고민도 많았지요. 그러나 사회적이고 력사적인 오점에 대해서는 절대로 어느 개인에게 물어서는 안된다고 자각했지요. 결국 과오를 범한 어느 누구에게도 처분을 주지 않고 담화를 통해 응어리를 풀게 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업무에 적극 뛰여들도록 고무하였지요.

그리고 저는 또 예술가들의 감정세계를 알고 싶었어요. 그래서 어느 토요일 저녁에 저명한 작곡가 최삼명선생을 따라 그물고기잡이를 떠났어요. 마침 동행한 연변일보 농촌조의 선배인 윤효식선생은 최삼명선생의 처남이여서 아주 스스럼 없었지요. 그래서 우리 셋은 부르하통하 동쪽 소영자촌으로부터 그물을 치면서 <밤작전>을 시작했지요.

난생 처음 밤에 강가에서 모닥불을 피우고 ‘세치네’매운탕에 소주를 마시는 즐거움을 느꼈어요. 최삼명선생은 1961년 겨울, 저의 아버지 김문보(문교 서기)를 따라 화룡현 로과공사에 하향하여 명곡으로 남은 <친선의 꽃>을 창작했던 이야기를 자세히 들려주면서 문예일군들에 대한 아버지의 깊은 배려를 두고 재삼 외우시는 것이였어요.

그러면서 아버지의 뒤를 이어 문예일군들을 진심으로 관심하고 안위하기에 애쓰는 저의 노력에 찬사를 보내시더니 그만 저를 와락 그러안아 주시는 것이였어요. 순간 저는 뜨거운 눈물을 금할 수가 없었어요.

연변을 찾은 국외 예술인과의 교류 기념.

‘연변의 여름’예술절의 탄생

1984년 봄, 전 주와 각 현 시의 가무단, 문공단의 연예일군 업무회보평의작업을 진행하였어요. 그러면서 문예콩클을 통한 결실을 맺기 위한‘예술절'을 생각해냈어요. 사실 외국에는‘예술절'이라는 기록이 있지만 그때 저로서는 바깥세상을 못 나가 본 터라 확신이 있은 건 아니였어요.

1984년 제1차‘연변의 여름'예술절을 성사시키기 위해 초봄에 북경으로 달려가서 국가문화부를 방문했어요. 주위지(周巍峙)부장께서는 저희를 친절하게 맞아주시고 회보를 들으면서 필기까지 하시는 것이였어요.

그리고 나서 잠간 사색을 하시더니 “10년동란이후 연변은 참으로 일찍 깨여났습니다. 다른 데는 아직 잠자코 있는데 연변에서는 벌써 예술절을 준비한다고 하니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 그때면 우리가 사람을 파견하여 연변의 예술절에 대해 견학하고 경험을 얻으려고 합니다. 연변가무단은 가무예술의 기초가 대단하기에 연변의 무대예술을 잘 이끌어갈 것으로 믿습니다.”라고 고무격려해주었어요.

북경에서 돌아온 후, 4월 중순에 룡정현영화발행공사 영상실에서 전 주 문예창작일군들의 창작회의를 열었어요. 그 창작회의는 ‘연변의 여름’예술절을 열기 위한 동원회, 창작회의였습니다. 당시 저명한 작곡가 안국민, 최삼명, 허원식, 최창규, 동희철, 연극 연출이며 유명한 배우인 허동활, 극작가 황봉룡 등 저명한 예술가들이 모두 참석하셨지요.

1985년 연변문련좌담회의 한장면.

개막식에서 저는 연설도 않고 그냥 여러분들에게 몇가지 부탁을 했어요. “마음대로 생각하십시오. 마음대로 말씀하십시오. 마음대로 술을 드시세요. 그리고 마음대로 건의해주십시오. 이제부터는 정말 머리채를 낚아채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니 모두들 크게 웃었지요.

그때 후근부에서는 예술가들에게 대접을 잘하려고 조양천술공장을 찾아 62도짜리 소주를 자동차로 실어들였습니다 . 그리고 밤에는 식당이 모두 문을 닫기 때문에 통졸임을 사서 술병에 맞춰 각 침실마다 나눠드리기도 했지요. 여러분들이 기껏 마시고 기껏 얘기하시라고요

과연 여러분들은 잠을 자지 않는 거예요.‘해방의 날이 왔다'고 ‘정말 창작의 새봄이 왔다'고 하면서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는 거예요.

저는 ‘우리는 가무만 하시겠습니까. 오페라도 하고 무극도 합시다. 심지어 조건이 되면 발레도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우리의 전통을 중시하고 어떻게 새로운 형식으로‘춘향전',‘심청전',‘흥부전’ 등 어렸을 때 봤던 고전예술들을 다시 잘해보자고 제의를 한 거예요.

그리고 북경에 갔다 온 정신을 전달하고 국가에서 기대가 크다는 것, 창작활동을 활발히 하여 가무를 무대예술로 승화시킬 데 대해 강조를 했지요.

1984년 국가문화부‘예술절’조사연구소조 성원들과 함께.

제1차‘연변의 여름’예술절 개막식날, 국가문화부 <조사연구소조>일군들은 연변영화발행공사 영상실에서 거행한 개막식장에 친히 오시여 우리를 축하해주었어요. 참으로 고마웠지요.

그번 예술절에서 가장 우수한 인물은 극작가 고 리광수씨였어요. 그는 연극 《도시+농민》라는 씨나리오를 창작해 무대에 올렸는데 관중들의 열렬한 박수를 받았지요. 일부 로일대 연극작가들은 극적구성에 문제가 있다며 부정하기도 하였지만 ‘새로운 시대'를 구가하는 참신한 연극이라는 주장이 우세를 차지하면서 연극 《도시+농민》은 대상을 받게 되였지요. 지금 보아도 우선 개혁개방시대 ‘농민공'이라는 새로운 모티브가 좋았고 극적 구성에서 영상의 몽따쥬수법을 활용한 것이 큰 장점이였지요.

고 리광수 극작가는 청년작가로서 이 작품을 무대에 올려 아주 대박을 낸거예요. 그는 대상을 받게 되였고 뉴스인물로 되였어요. 이런 뉴스피플이 나타나 예술절은 더욱 원만하게 된거구요.

후날 고 리광수의 연극작품 <사랑의 품>은 또 북경무대에 올라 관중들의 뜨거운 눈물을 자아냈고 드라마로 변신하여 더욱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지요.

제1차 <연변의 여름> 예술절이후 연변가무단의 무극 ‘춘향전'이 무대에 올라 국내외에서 큰 인기를 누렸지요. 가극‘아리랑'이 전국가극콩클에 참가해 문화대상들을 받았잖아요! 당시 국가문화부 하경지부장은 “가극 ‘아리랑’이야말로 진짜 가극”이라고 높이 칭찬했구요.

후날 로일대 예술가들은‘룡정의 창작회의와 <연변의 여름>예술절은 력사적의의가 있는 예술행사였다'고 높이 긍정하시더라구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중국조선족의‘문예의 새봄'을 맞은 첫 출발이였던것 같아요.

중앙희극학원 조선족연극배우반.

제1차 <연변의 여름> 예술절을 마친 후에는 즉시 중앙희극학원에 <조선족연극배우반>을 꾸리는 작업에 돌입했지요. 사실 지난 세기 60년대, 중앙희극학원에서는 문화부의 지시에 따라 <서장연극배우반>을 꾸려 장족연극배우들을 양성했고 그들은 졸업작품으로 대형연극 <문성공주(文成公主)>를 무대에 올려 주은래 총리 등 중앙지도자들의 긍정을 받았으며 관중들의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았지요.

당시 우리 연변연극단에서는 너무나 부러워했지요. 지금은 바로 그 대형연극 <문성공주> 가 대형뮤지컬로 발돋움하여 로천공연으로 세계의 귀빈들을 맞이하고 있어요.

10년 동란후, 연변연극단의 단장이며 저명한 연극가 박영일선생은 역시 중앙희극학원에 <조선족연극배우반>을 꾸리려고 동분서주 하시면서 많은 수고를 하셨지요. 다행이 그후로 저희가 또 북경의 중앙희극학원 지도자를 찾아 여러차례 담화하면서 결국에는 가을학기부터 <조선족연극배우반>을 꾸릴데 관한 협의서에 싸인을 하게 되였지요.

그래서 연변에서 연극소질이 있고 무대형상이 좋은 남녀학생 27명을 뽑아 중앙희극학원에 보내 연극공부를 하게한거에요. 당시 <조선족연극배우반>의 총책임자는 중국에서 <연극대사의 황제>로 불리우는 김내천선생이였구요. 당시 중앙희극학원에서는 원장으로부터 반급담임까지 모두 최선의 정성과 열정으로 우리의 연극배우들을 키웠던거예요.

지금 연변예술학원의 연극부 선생님과 연변가무단 연극부의 중견들은 모두 중앙희극학원 <조선족연극배우반>출신들이지요. 지금 퍽 유감스러운 것은 그렇게 공력을 들여 키운 우수한 조선족연극배우들이 설 무대가 별로 많지 않고 연극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TV드라마나 영화가 거의 없다는 것이예요.

길림신문/글 김청수 기자, 영상사진 김성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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