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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17]불후의 명곡〈선생님 들창가 지날 때마다〉
조글로미디어(ZOGLO) 2019년8월28일 13시19분    조회:17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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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 [문화를 말하다 - 17] (동희철 편 - 5)

작사자 김철과 작곡가 동희철.

문화대혁명시기 지식분자가 ‘고린 내 나는 아홉째’로까지 취급이 되니 교원들이 무슨 힘이 생겨 후대들을 양성했겠소. 나도 몇년동안 교원사업을 해본 사람이여서 교원생활에 대해 잘 안단 말이요.

교원들을 받들지 않고 교원들의 사기가 떨어지면 우리 나라 교육이 망하는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소. 교육이 망하면 나라가 망하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고…

“교원을 노래하는 가사를 쓰오”

교육이 망하면 인재를 어떻게 양성하는가. 과학자가 있어야 하고 의사가 있어야 하고 여러 방면의 인재들이 양성되여야 하는데…. 선생님을 존경하는 사회분위기가 있기 전에는 생산도 춰서지 못할것이고 더우기는 과학인재들을 양성하지 못 할 것이 뻔하단 말이요.

그런 절박한 심정을 느낀지 오래 지나 드디여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1978년 전국적으로 당대표대회가 열렸지. 연변에서도 당대회도 열리고 정치협상회의도 열리면서 나는 방송분야의 당대표로 참가하게 되였소. 그런데 어떻게 되다보니 나는 정협쪽에 편입되였더구만.

1978년 문예의 새봄을 맞는 연변문련창작 지도일군들.

그러다 보니 김철 시인과 최정연 선생을 만나게 되였는데 그들은 정협위원도 아니고 초청대표로 정협회의에 참가하게 되였었소. 너무도 오랜만에 그들을 만나니 어찌나 기뻤던지 김철시인을 보자마자 교원을 노래하는 가사를 쓰라고 당부했소. 김철시인도 여러해 동안 감옥에 갇혔다가 해방되여 나온지 오래지 않아 어둑거둑해 하더구만.

“여보 , 교원을 노래하는 가사를 쓰오. 우리 다시 합작하여 귀환병과 처녀와 같은 명곡을 만들기요!” 나는 김철시인에게 다그치듯이 부탁을 했소. 귀환병과 처녀는 50년대초 나와 김철시인이 손잡고 창작한 가요로서 54년 연변조선족자치주 첫 문예작품평의에서 3등상을 탄 작품이였소.

1984년 연변문련회의에서의 동희철 작곡가(왼쪽 첫사람)와 김철시인(오른쪽 첫사람).

그러던 1979년 양력설 이른 새벽에 누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것이였소. 설날 새벽에 누가 찾아왔을가 싶어 문을 열어보니 글쎄 김철 시인이 아니겠소.

“나왔단데, 나왔어요!” 김철선생은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떨리는 손으로 가사를 내앞에 쑥 내미는 것이였소.

받아보니까 마음에 쑥 들어왔단 말이요. 가사가 아주 순수하면서도 순통해서 쭉 내려갔지.

별들이 조으는 깊은 밤에도

꺼질줄 모르는 밝은 저 불빛

선생님 들창가 지날 때마다

내가슴 언제나 뜨겁습니다

아 ---우리 선생님

존경하는 선생님

내 가슴 언제나 뜨겁습니다

그 가사를 받아쥔 일주일만에 이번에는 내가 곡을 지어가지고 김철선생네 집으로 찾아갔소. 그랬더니 김철선생의 부인이 몇번 들으며 따라 부르더니 후렴이랑 내가 쓴 것과 좀 다르게 뽑는 것이 자연스러웠단 말이요. 그래서 시인에게 의견을 들으러 갔다가 그의 부인의 의견도 채납한 부분이 있었소.

80년대초 연변TV의 취재를 접수한 작곡가 동희철, 작사자 김철(왼쪽 세번째)과 부인 방채봉(왼쪽 두번째) .

명곡 창작을 위해 다방면의 건의 접수

그해 5.1절 전야에 석현종이공장에 음악취재를 갔다가 석현진가두선전대 활동이 잘된다는 소개를 듣고 그쪽으로 갔었소.

그들이 새 노래를 배워달라기에 선생님 들창가 지날 때마다 이 노래 1절을 가르쳤지. 그런데 한 동무는 노래는 배우지 않고 뭔가를 쓰고 있는 것이였소. 알고보니 그는 교원의 안해였는데 그 노래를 배우며 크게 감동을 받고 자기 절로  2절, 3절 가사를 만드느라 애쓰고 있는 것이였소.

1977년 연변조선족자치주음악창작학습반 기념사진.

왕청현음악가협회에서 내가 그 곳에 간 걸 알고 학습반을 조직하더구만. 그래서 그 학습반에다 〈선생님 들창가 지날 때마다를 내놓고 의견청취를 했지. 나중에 갈라질 때는 진 가두선전대동무들도 자리를 함께 하고 연회까지 차렸댔소.

모두 함께 선생님 들창가 지날 때마다를 불렀지요. 자체로 창작한 2절 3절도 열성껏 불렀지요. 그러던 것이 점점 소리가 낮아지면서 나중에는 모두 울고있는 것이였소. 선생님에 대한 존경의 뜻이 마음마음에 굽이쳐 흘렀던 것 같았소. 그들의 감정이 그렇게 진실하였단 말이요. 나도 눈물이 나서 돌아서서 왼고개를 틀었지 .

연길에 올라와서 전문가들에게 보이느라 연변가무단 창작조에 찾아갔소. 창작조에 가보니 박우선생이 있었소. 그는 나보다 이상인데 곡도 잘 짓고 지휘도 잘하지. 박우는 피아노를 치면서 손을 대기 시작하였소.

“도시라 쏘파미 레레레도레도- 이러면 얼마나 씨원하겠소!” 그는 큰 소리로 내게 말하는 것이였소.

듣고보니 그 쪽이 정말 완정하게 느껴졌단 말이요. 나는 구도안에 넣어야 광범한 대중들이 부를 수 있다는 점을 많이 고려해 오성음계로 온화하게 했는데 그는 정서흐름에 따라 격정을 넣어 서양음악의 칠음계를 경과음으로 쓴 것이였소.

그 곡이 현대적이고 격정이 있고 하니 나는 그의 견해를 채납하여 이 노래를 정식 발표했던 것이요. 이렇게 선생님 들창가 지날 때마다의 곡이 완성되였던 것이요.

2006년 연변TV ‘문화광장' 동희철작품프로에 초청된 연변제2고중 문예골간 제자들과 함께.

나는 워낙 작곡을 마무리하고는 다방면으로 의견을 듣는 습관이 있었소. 그래서 고향산기슭에서를 창작할 때에도 연변가무단에 찾아가 정진옥 단장에게 심열을 부탁하여 수정을 받기도 하였소. 그리고 맨 마지막으로 음악가협회에 심열을 부탁하여 허세록 선생이 결말 부분이 뭐가 모자라는 것 같다며 ‘화미’를 넣었다가 ‘쏘라쏘 미레라도- '라고 시원하게 끝을 맺어주었던 것이요.

나는 내 작품일수록 최종적으로 음악가협회에서 통과된 다음에 마음 놓고 방송을 했던 것이요. 아무리 내가 방송국에 있다고 내 마음대로 방송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지. 비록 내가 주로 곡을 만들었지만 이렇게 대외적으로 충분히 선배님들의 의견을 많이 받아들였기 때문에 나의 곡이 잘된 것이 아니겠소. 그리하여 평론가들로부터 허심한 작곡가라는 평을 많이 받기도 하였지.

선생님들창가 지날 때마다가 발표되니 사회에서 반향이 아주 컸소. 편지가 눈송이처럼 편집부로 날아들었지. 교원을 존경하지 않고 애를 먹이던 학생들이며 지어 부대에 간 전사들도 과거에 선생님을 존경하지 않았던 잘못을 빌면서 편지를 써서 방송국에 보내왔었소.

연변주정부에서 발급한 피아노를 마주하고 작곡에 열중하는 동희철 작곡가.

이 노래는 중앙방송국소년합창단의 지정곡으로 되였고 매주일가며 노래교실 등 여러 프로를 통해 방송되다보니 전국 나아가 세계로 전파되였던 것이였소.

선생님의 들창가 지날 때마다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다 즐겨부르는 노래로 되였소. 이 노래는 1984년 중앙텔레비죤방송국 양력설야회에서 500명 학생들이 한어로 합창을 하였고 중국조선민족음악교과서, 길림성음악교과서, 전국통용음악교과서에 실려 전국에 전해졌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역시 음악교재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요.

연변주정부에서는 후에 나에게 피아노를 보내주며 고무격려를 하더구만!

“시대를 떠난 명곡이란 있을 수 없는 것이요”

선생님 들창가 지날 때마다 이 작품이 창작된 시기는 4인무리가 타도되고 지식인들에 대한 정책이 시달되기 시작하는 시점에서 창작되여 전 사회적으로 깊은 공명을 불러일으켰고 지식인을 존중하는 사회적 기풍을 형성하는데 큰 기여를 하게 되였지.

이 노래는 워낙 성인가요로 창작되였는데 중앙의 1955년-1979년 첫 아동가요평의에서 창작 2등상을 수상하게 되였고 ‘전국소년아동들이 즐겨부르는 노래'로 선정되였소. 고향산기슭에서와 같이 한자리에 놓일 수 있는 작품으로 자리잡게 되였던 것이요.

80년대초 연변문련회의에 참석한 최정연(오른쪽) 극작가와 함께.

이 시기에 또 최정연선생과 합작하여 눈 녹으니 꽃이 피네(1979년)라는 가요를 창작하였는데 대중들의 깊은 사랑을 받았던 것이였소. 시대를 떠난 명곡이란 있을 수가 없는 것이요.

최정연선생(崔静渊,1920년 한국 강원도 출생)은 40년대초 일본대학문과전문부(文科专门部)를 나온 지식인으로서 1946년-1949년사이에 동북민주련군 리홍광지대 창작원이였소. 항미원조시기 전선작가, 연변가무단 창작조 조장, 연변작가협회 집행부주석 등으로 활약하셨던 분이요. 주로 극작품을 쓰셨는데 1948년에 다막연극 민주련군이 왔네라는 작품을 창작하였더랬소. 그런데 1957년부터 문화혁명기간에‘우파'로부터 시작하여 각종 감투를 들쓰고 농촌에 내려가 로동개조를 하면서 말 못할 고생을 해왔던 것이였소.

국경 30주년 연변문예헌례활동에서 창작 1등상을 수상한 작품 〈눈녹으니 꽃이 피네〉

최정연선생은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자 시대의 봄을 맞아, 문예의 봄을 맞아 마음의 상처를 가시며 앙양된 정서로 새봄을 노래하였지.

오래동안 새봄의 도래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랐던 그 절절함이 고스란히 구절구절에 담겨져있었더랬소. 그것이 그대로 나의 마음에 전달되였고 곡상에 젖어들어 노래로 완성되였던 것이요.

봄바람 불어오네/ 산과 들에 불어오네

잎도 피고 꽃도 피는/ 그립던 봄 돌아왔네

봄이 왔네 봄이 왔네/ 봄이 오니 눈이 녹고

눈 녹으니 꽃이 피네/ 눈 녹으니 꽃이 피네

봄바람 불어와도/ 내 고향은 산이 높아

양지쪽엔 꽃이 피고/ 음지쪽은 눈 날리네

……

                                                          글/ 김청수 영상사진/ 김성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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