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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39] ‘우파’ 불운으로 다져진 부자관계(채영춘편-4)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2월22일 08시10분    조회:23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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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문화를 말하다-39](채영춘편-4)

아버님의 가르침으로 어린시절부터 평생 일기쓰기를 견지해온 지금, 수십권 되는 일기책은 채영춘선생의 소중한 보물로 되였다.

중국조선족문단의 어른이셨던 아버님께서는 사회적으로 많은 존중을 받았고 우리 집은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었어요. 아버님의 작가친구분들도 자주 방문 와서 여러 가지 덕담들을 나누고 제자분들도 빈번히 오시고 하다 보니 집은 언제나 흥성흥성하였지요.

1951년부터 1959년까지는 제가 ‘작가의 아들'로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반우파투쟁후기에 아버님이‘우파’모자를 쓰게 되면서 모든 상황이 역전됩니다. 내가 유년기와 소년기에 누린 행복은 너무나도 짧았던 것이지요. 때 아니게 쏟아진 폭설과 서리는 우리 집을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이게 하였어요.

억울함을 당하셨지만 아버님은 아무런 내색을 내지 않으셨다고 들었어요. 함께 ‘우파'로 고생하셨던 원로작가 최정연선생님은 일찍 이렇게 아버님에 대해 말씀하셨어요. "선생은 종래로 편승할 줄 몰랐고 바람 따라 물결 따라 되는 대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였지요. 그는 평소에 아주 말수가 적었어요. 바로 이 때문에‘구사회에 미련있고 신사회에 불만있는 사람'이라는 검은 딱지를 쓰게 된 것이였어요."

1959년도에 아버님은‘우파’모자를 쓴 뒤 모아산과수농장에 있는 부식품기지에 가서 이른바‘로동개조'라는 것을 했어요. 연변의‘우파'분자들의 ‘집중영'인 셈이였지요. 어머니는 늘 여러가지 색다른 음식을 정성껏 장만해가지고 저희 자식들을 데리고 그리로 가군 하였지요. 나의 기억에 거기에는 엉성한 토벽집이 있고 밖에는 헐망한 옷을 껴입은 초췌한 모습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어요.‘우파'들이였지요. 그때 저는 여덟살이였어요.

거기서 아버님은 2년간 로동개조를 하고 1962년에‘우파’모자를 벗었어요. 하지만 ‘우파’감투를 벗는다는 것과 억울한 루명을 벗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였던 것이였어요. ‘우파'분자라는 딱지는 여전했고 남들로부터 백안시되는 대상이였던 것이지요. 연변작가협회에 돌아온 후 창작권리를 박탈당하고 자료실에서 책관리나 하셨어요. 거기에 한술 더 떠서 권고퇴직을 당한 것이였지요. 그러니 그때 아버님은 정치적으로 ‘사형'을 당한거지요. 그 당시는 몰랐는데 어쩐지 아버님께서 집에 계시는 시간이 많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항간에는 이런 말이 있어요.‘아버지 한 분이 백명 스승보다 낫다'. 내가 소학교에 다니던 5년이라는 시기는 어쩌면 아버님께서 ‘우파’모자를 쓰고 로동개조를 하고, 직업을 박탈당하고 비인간적인 수모를 감내하면서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이겨내야 하는 수난의 년대와 점철되여 있었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에 대한 아버지의 단속과 교육은 오히려 더‘가혹'하고 철저했던 것이지요. 이런 점에서 볼 때 아버님의 부성애는 시국이나 가세(家势)의 변화와 무관하게 리성적으로 짜여진 아버지만의 각본에 토대했다는 것을 추리해낼 수 있게 되는거죠.

우리 집에는 그때 책이 많았어요. 한쪽 벽은 전부 책으로 꽉 차 있었어요. 사실 어릴 때 우리 자식들은 책을 마음대로 다칠 수도 없었어요. 잘못 했다가는 아버님한테 혼나게 되는거지요. 아버님은 딱 책을 선택해서 나더러 읽게 했어요. 그리고 꼭 독후감을 쓰게 했구요. 교육자로서의 아버지였어요.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채택룡은 교육사업에 종사했던 분이였어요.

행복했던 동년시절(채영춘과 동생 채성춘).

자신이 어릴 때 반일가문에서 받았던 영향에 의해 역시 이상분으로서 자식들한테 후손들한테 어떤 걸 보여주어야 한다는 뿌리가 깊이 잡힌 분이였지요. 당시로서는 언제 자식들한테 신경 쓸 여유가 있었으련만 그래도 그런 것이 아니였어요.

그때 아버님께서 엄선해서 나더러 꼭 읽게 했던 책자들을 나는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고리끼략전》, 《집 없는 소년》 《참된 사람의 이야기》 《로빈숀 크루소》 등이였지요. 이런 책자들은 하나 같이 한 인간이 아주 어려운 역경속에서 어떻게 자기 스스로를 전승하면서 삶을 바꿔가는가를 깨우쳐 준 지침서였지요.

지금 와 보면 아주 의도적이였지 않았는가 싶어요. 아무래도 아버님은 본인이 우파에 걸리고 했으니 자식들도 상당히 고통받을 것이고 사회에 나가서도 앞길이 험난할 것이라 생각하고 이에 대비한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강심제'를 마련해준 것이 아니였겠어요. 채택룡이 혼자만 걸머져야 할 정치적 수난의 짐을 자식들까지도 함께 짊어질 것 같아 미리 말 한마디 없이 수련을 시킨 것이였지요.

어릴적 아버님의 서재는 내가 곤욕을 치르는 곳이였지요. 아버님은 읽을 책을 선택해 주고는 꼭 독후감을 말하도록 했어요. 옛날 훈장들이 학도들에게 벌을 주듯이, 나는 똑바로 서서 땀을 흘리며 말했지요. 그리고 아버님은 나에게 어릴 때부터 일기를 쓰도록 가르쳤어요. 나는 그때 왜 일기를 쓰라고 하는지 몰랐어요. 일기를 숙제처럼 쓰자고 하니 얼마나 힘들었는지 몰라요. 아버님은 내가 쓴 일기를 보고 틀린 글자를 고쳐주기도 하고 일기 쓰기를 빼먹으면 무섭게 질책하군 했지요. 지금 와 보면 그것도 의력을 다지고 문필수준을 높이도록 습관을 길러준 것이였지요.

그리고 내가 영화를 보겠다면 무조건 돈을 줬어요. 다른 용돈을 달라면 안 줬지만 영화를 본다면 꼭 10전씩 줬어요. 그런데 전제조건이 있었어요. 영화를 보고는 꼭 아버님 앞에서 관후감을 말해야 했어요. 얼마나 고달픈 일이였지는 몰라요. 역시 홀로서기에 필요한 정신적인 ‘영양제'를 섭취하도록 한 것이 아니겠는가 싶어요.

소학교 1학년 후학기에 소선대입대식을 하게 되였어요. 입대한 아이들이 넥타이를 매고 소선대보도원선생님을 따라 입대선서를 한 다음 혁명영웅들의 업적을 이야기 해야 했어요. 이것은 그 당시 룰이였어요. 그때 많이 류행된 것은 동존서, 류호란, 라성교, 구소운, 황계광 등 영웅을 본받아 어떻게 잘하겠다는 결심발표를 하는 순서를 곁들이는 것이였지요.

채택룡선생이 국외로 망명할 전야에 남긴 가족사진(앞줄 오른쪽 첫번째 채영춘).

그래서 아버님한테 이번 소선대 입대식에서 선택할 영웅에 대해 말씀드렸지요. 아버님은 나더러 저녁녘에 오라고 하시더니《고리끼략전》을 건네주는 것이였어요. 그런데 앞부분에 색연필로 밑줄을 쪽쪽 그은 것이 눈에 띄였어요. 밑줄을 그은 부분을 몽땅 암송하고 그날 이야기하라는 것이였어요.

우리 나라 영웅도 아니고 쏘련의‘고리끼'란 사람의 유년시절에 대해 말하라는 것이였지요. 나는 너무 안달아나 그러면 안된다고 떼를 썼어요. "시킨 대로 해!" 아버님은 엄포를 놓았어요. 아주 엄부였지요. 아버님 앞에서는 절대로 두말을 못했지요. 오늘 암송하고 래일 오후 아버님 앞에서 검사를 마치라는 것이였지요.

소선대 입대식날, 내 앞에 나선 동학들은 우리에게 익숙한 혁명영웅들을 들먹이며 공산주의후계자가 되기 위해 항상 준비하겠다는 맹세를 다지는 것이였지요.

"영춘 학생 나와요!" 내 차례가 되여 선생님이 불렀어요.

"나는 아래에 혁명문호 고리끼의 어린 시절을 말하겠습니다." 나는 판박이 로보트처럼 암송한 내용을 내뱉었어요.

그런데 아이들이고 보도원선생 모두가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이상했어요. 어느 달나라에서 온 아이가 아닌가 하는 정도의 눈치였지요. 그날 나는 무슨 정신으로 고리끼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마무리했던지 모르겠어요.

그때 나를 쳐다보던 아이들의 그 눈길이 지금도 기억에 삼삼해요. 그때는 정말 작가아버지를 둔 내가 얼마나 처량하게 느껴졌는지 몰라요. 그 뒤 며칠 동안 학교에 가 머리도 쳐들지 못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 역시 아들에 대한 엄부의 계산된 각본이 아니였겠는가 싶어요.

‘우파'라는 불운은 아버지와 나를 갈라놓은 것이 아니라 더 밀착시킨 역작용을 한 셈이였지요. 오히려 ‘우파아들’이라는 존재가 나에게는 압력이 되면서 인생의 어두운 턴넬을 슬기롭게 지날 수 있도록 하지 않았는가 뒤늦게나마 터득하게 되였어요.

1964년도 가을철의 어느 날, 아버님은 나만 조용히 불러 아래개방지 동시장 자그마한 호떡가게에 데리고 갔어요. 아버님은 아무 말도 없이 갓 튀겨낸 전병 몇개를 사서 내 앞에 놓아주시며 먹으라고 하셨어요. 아버님은 들지도 않고 나를 혼자 먹으라고 하시기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몰래 아버님을 훔쳐보았지요. 그런데 아버님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것이였어요. 내가 아버님을 다시 쳐다보니 아버님은 고개를 돌리며 외면을 하셨어요.

그렇게 아버님과 갈라졌어요. 그때 본 눈물이 소년시절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아버님의 눈물이였어요. 흘러 내리지는 않았지만, 눈에 가득 고였던 아버님의 눈물을 두고 나는 크면서 늘 그 의미를 생각해보았지요.

(장남인 네가 어머니를 모시고 살아가면서 앞으로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게 될는지…) 아마 이러루한 뜻이였겠지요. 아무튼 아버님의 그 눈물은 천만마디 말씀보다 더 깊은 뜻을 담았다고 줄곧 생각해 왔어요.

채영춘선생은 아버님이 선물한 책 《이른 해돋이》를 수십년간 인생파트너로 간직해왔다.

아버님이 외국으로 망명해 간 후 어느 날, 《이른 해돋이》라는 책을 발견하였어요. 모스크바 외국문서적출판사에서 출판한 책인데 바로 쏘련 소년화가를 쓴 전기 중편소설이였어요. 나도 어린시절부터 그림그리기를 무척 좋아했거든요.

이것은 아버님께서 나한테 선물한 책이라고 단정짓게 되더라구요. 보통 아버님께서는 서점가에서 산 책들은 자신의 이름 석자를 꼭 만년필로 밝히고 날자를 쓰지요. 어떤 경우는 날인도 찍어놓고 하였어요. 이것은 아버님의 변함없는 습관이지요. 그런데 그 책에는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러니 꼭 나를 념두에 두고 마련해 준 도서였던거지요. 그 책은 지금도 나의 장서에서 서렬 1위로 자리매김하고 있어요.

그러니 ‘우파'라는 불운은 아버님과 나를 정신적으로 이어놓는 련결고리였어요. 그리고 아버님을 정신적으로 인식하도록 하는 내 인생의 미지의 턴넬이 되기도 하였고 아버님과 나의 부자관계를 끈끈히 이어질 수 있게 한 동아줄과도 같은 것이였지요.

/길림신문 글 구성 김청수기자 영상 김성걸 안상근 김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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