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65](박장수편 7)
2018년 3월 연변인민출판사 량문화 사장이 저를 찾아 출판사에서 개혁개방 40년래 가요집을 출판할 것을 제기하였습니다. 제가 현임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부회장 겸 비서장 최옥화에게 가요집출판을 말했더니 좋은 일이라면서 회의를 소집하였습니다. 회의에서 우리는 근년에 류사한 가요집들이 이미 출판되였으니 조선어로만 편집출판하면 그 가치가 크지 않다고 인정하였습니다.
중국조선족가요정선집
그리하여 중국조선족가요를 전국과 기타 민족에게 홍보하기 위하여 한어로 번역함과 아울러 관례를 타파하여 피아노반주악보까지 편집하여 전국에서 특색 있는 가요집을 세상에 내놓자고 하였습니다. 다음날 저는 출판사를 찾아 우리 방안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랬더니 번역비에 피아노반주악보 제작경비까지 자금이 많이 드는 것도 문제지만 번역이 더욱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희 편집의도를 반복적으로 설명하면서 설득하였습니다. 출판사에서는 끝내 동의를 하였고 출판합동을 체결하였습니다.
전직비서장이 없고 최옥화 원장도 구체사업을 할 수 없는 상황하에서 저에게 구체사업을 맡기였습니다. 제가 전국콩클 때마다 우리 가사 번역수준이 낮아 가사대의(大意)로 대체하면서 각종 콩클에서 수상하였기에 가사번역이 어렵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그렇게 어려운 줄은 몰랐습니다. 2018년말에 출판되여야 할 가요집이 번역이 잘 되지 않아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다 보니 조선어로만 출판하자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근 10개월간 숱한 노력을 하였는데 물러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2003년 11월 남녕에서 거행된 전국 제2차 민가콩클 때 변영화를 데리고 이 콩클에 참가했는데 그때 중국음악가협회 상무부주석이고 우리 나라 유명한 성악가인 오윤택은 광서음악가협회에서 청한 연회석에서 정진옥의 〈아름다운 나의 고향〉은 명곡이라면서 1절부터 2절까지 가사 하나 틀리지 않고 부르는 것을 직접 목격하였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때 계발을 받고 “우리 조선족가요를 한어로 번역하면 기타 민족도 부를 수 있고 중국의 유명한 가수들이 불러 전국에 퍼뜨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면서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꼭 한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기로 작심하였습니다.
원 심양음악학원 관현악학부 주임, 음악회 총감독 지휘 권태성
연구회 회장 우영일은 우리 나라 가요(한어)창작계의 손꼽히는 작곡가이기에 그에게 부탁하여 장춘시예술관 조연문(赵艳雯)을 찾아 원고를 심열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가요집의 차원을 높이기 위해 중국음악가협회 상임 부주석 서패동이 서예를 잘하는데 그 분이 책표지 제목을 제사(题词)하고 우리 나라 유명한 음악리론가이며 중앙음악학원 교수 량우춘이 서언을,우영일이 서문을 썼습니다.
우리는 1년 5개월 동안 6차의 반복적인 수개를 거쳐 최종 115수의 가요를 번역편집하여 2019년 8월에 《중국조선족가요정선집》을 출판하였습니다. 이 저작은 양장본(精装本)인데 특색 있는 한개 민족의 가요집으로서 상당히 반향이 좋고 평가가 높았습니다.
2017년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는 연변조선족자치주성립 65돐을 기념하여 중국조선족음악작품콩클을 거행하고 ‘진달래꿈’ 중국조선족음악회를 선물하기로 계획하였습니다. 우리들은 음악창작에서 평소 원고비와 같은 문제로 기분이 많이 상한 골간들의 창작적극성을 제고하는 사업부터 시작하였습니다.
연변가무단 독창가수 황매화
연변텔레죤방송국 〈매주일가〉는 음악계 뿐만 아니라 사회 각계 특히는 작자들이 매우 중시하는 프로그램입니다. 그런데 원고비가 낮아 적지 않은 작자들은 자기 주머니를 털어야 〈매주일가〉에 작품을 발표할 수 있으니 음악창작에 적극성이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주당위, 주정부에 보고를 올리고 선전부 지도자를 찾아 구체정황을 회보하는 등 연변텔레비죤방송 뿐만 아니라 《예술세계》잡지의 작곡 작사 등 음악작품 원고비를 제고하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2017년 3월,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연변텔레비죤방송국 주최로 ‘중국조선족음악작품콩클’통지를 연변텔레비죤방송에 내보내였습니다. 우리는 우선 가사의 질을 제고하기 위해 3일간 조선족가사창작학습반(47명 참가)을 꾸렸고 응모가사 180여수 중 14수를 선택하여 작곡가들에게 제공하였습니다.
그리고 작품질을 제고하기 위해 2일 동안 집중창작활동을 전개하여 전국 각지 작곡가 22명이 제공한 90여수 DVD, CD를 듣고 평의하였는데 그 가운 데서 적지 않은 수개의견을 교류하면서 가곡질제고에 큰 역할을 하였습니다. 8월초 전국 각지 음악골간들로 평심위원회를 구성하고 응모가요 160여수 중 10수를, 12부 기악곡 중에서 4부를 수상작품으로 선정하였습니다.
그해로 음악회를 열자고 종목까지 토론되였으나 협찬에 문제가 생겨 다음해로 미루기로 하였습니다. 2018년 1월 본회는 음악회를 거행하려고 주당위와 주정부에 보고를 올려 적극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 연변주당위 선전부 김기덕부장을 비롯한 지도자들은 음악회행사를 특히 중시하고 현지지도까지 하였습니다.
연변가무단 남저음가수 김학준
2월 1일, 연변문학예술계련합회, 연변문화방송신문출판국,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의 주최로 룡정해란강극장에서 ‘진달래꿈’ 중국조선족음악회를 거행했습니다.
음악회에서는 권태성의 지휘하에 연변교향악단에서 안국민, 최삼명, 허원식, 최창규 등 저명한 작곡가들의 작품을 연주하였는데 우리 나라에서 손꼽히는 성악협주곡 모택동 사 허원식 곡〈완계사 류아자선생에게 화답함〉(황매화 독창), 김휘 바이올린 독주, 〈명절의 기쁨〉(권길호 작곡) 등이 상당히 절찬을 받았습니다.
김영철, 김학준, 김순희 등 가수들의 독창도 호평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중국조선족음악작품콩클에서 기악곡 1등을 수상한 박세성의 〈 화랑 〉과 가곡 1등을 수상한 김홍위 사 김기철 곡 〈연변의 달〉등 새 작품도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1997년 8월, 북경과 동북3성에서 거행한 ‘조선족국제국내수상자독주음악회’, 2010년 10월 북경에서 거행한 ‘중국조선족작곡가 수상작품교향음악회’는 조선족인재를 홍보하는데 상당한 효과를 보았으며 우리 나라 음악계에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중국음악학원 교수 김휘
그러나 최근 년간 조선족음악사업이 다른 민족과 기타 지구에 비해 발전이 뒤떨어지고 전국무대에서 조선족 예술형상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는 현실 앞에서 40여년간 조선족음악조직사업을 해 온 저로서는 상당히 마음에 걸립니다.
2012년 12월에 우리 나라 저명한 지휘가 〈박우선생음악연구회토론회〉를 가진 기회에 박우의 손자 〈90년대후 국제신예피아노연주가 박성길 〉의 피아노독주음악회를 연길에서 개최하였습니다. 박성길은 2010년 미국에서 거행된 제1차뉴욕국제신예(新锐)피아노연주가선발대회에서 1등상을 수상하였고 “가장 재능(才华)있고 가장 전도가 유망한 연주가”라는 특별상까지 수상하였습니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 국제적으로 명성을 떨친 피아노연주가 랑랑이 세계 유명한 음악중심 미국 카네기 음악홀에서 독주를 한 뒤로 박성길이 그 음악홀에서 피아노연주를 하였는데 음악회가 끝나자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졌고 3곡을 더 연주하고서야 막을 내렸습니다. 박성길은 23세 어린 나이에 수준급 국제콩클에서 4차 1등, 2차 2등상을 수상하였고 미국, 이딸리야, 오지리 등 8개 국에서 피아노독주음악회를 거행하였습니다.
미국의 저명한 음악가 만하돈(曼哈顿) 교수는 “어떤 작곡가도 그의 연주에 대해 그 어떤 의견도 제기할 수 없다”고 하면서 박성길의 연주는 “18세 나이에 80세 음악”이라고 최고 평가를 하였습니다.
90후 신예피아노연주가 박성길
2013년초, 박성길 등 중청년 영재들로 할빈에서 음악회를 조직하려고 하다가 조건이 성숙되지 않아 무산되였습니다. 2019년 봄 저는 고령인데다 이미 연구회 전직일터에서 물러난 불리한 형편에서 음악회를 조직한다는 것은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건국 70돐,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창건 30돐을 계기로 조선족음악영재들의 음악회를 조직하여 조선족음악의 불경기상태를 만회하고 전국에 조선족음악이 후계자가 있다는 것을 과시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할빈시연예영시집단 리사장 서학동을 다시 찾아갔습니다.
그랬더니 서학동 리사장은 “나도 명년이면 은퇴하게 되니 금년에 함께 조선족의 큰 행사를 해봅시다.”라고 통쾌하게 동의하였습니다. 7월 1일 ,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회장 우영일, 최옥화, 권태성, 고창모, 박장수 등이 중국조선족음악회종목을 토론하였는데 중청년영재들로 수준 높은 음악회를 거행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조직사업을 시작하니 생각밖에 문제들이 련속 발생하였습니다. 건국 70주년이여서 중앙예술단체 배우들은 일률로 바깥행사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여 있다보니 배우선택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리고 할빈시 교향악단은 조선족음악에 익숙하지 못한데다 전부 새 작품과 마찬가지여서 련습시간을 5일로 예정했는데 겨우 2일밖에 차례지지 않았습니다.
할빈연예영시그룹 서학동 리사장
특히 박성길 피아노독주와 김휘 바이올린 독주는 음악회의 중점종목이였는데 큰 어려움에 닥쳤습니다. 음악회의 전반 효과를 고려하여 한개 종목을 10분 초과하지 않고 악대반주에 맞추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박성길의 종목은 협주곡이여서 시간이 초과되여 연주할 수 없었습니다. 중국음악학원 김휘가 허원식선생의 바이올린 협주곡 〈나의 고향〉 1악장을 선택하여 련습까지 다 하였으나 당시 중요한 록음이 있어 참가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상했던 음악회 골간 4명중 2명이 무대에 오르지 못하여 몹시 속상하였습니다.
2019년 9월 2일, 할빈시문화방송관광국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할빈연예영시집단에서 주최하고 할빈시조선민족예술관 대행으로 우리 나라 문화도시 할빈대극장에서 중화인민공화국창건 70돐 맞이 ‘중국조선족음악회’가 막을 올렸습니다. 음악회는 권태성의 지휘하에 할빈교향악단이 연주하고 우리 나라 저명한 조선족작곡가 정률성의 <중국인민해방군 행진곡> 등 5부의 기악곡과 정진옥의 <아름다운 나의 고향> . 장천일의 <장백송> 등 9수의 예술가곡, 민악 8중주, 장새납독주 등 16개 종목을 공연하였습니다.
중국교향악단 첼로수석 허옥련
중앙음악학원 교수 허창
음악회에서 중앙음악학원 교수이며 독일 을름시 마이님겐 국가오페라하우스 수석 남고음, 이딸리아벨리니 성악콩클 1등상 등 여러 차례 국제상을 수상한 허창, 연변가무단 성악지도 중국음악 ‘금종상’콩클 수상자 한선녀, 연변가무단 남저음가수이며 중국음악 ‘금종상’결승콩클 입선자, 이딸리아 모데나파바로티오페라하우스 청년성악가 양성원 학원 김학준, 연변대학 성악교수이며 전국제10차 ‘산화상’ 콩클 1등상 수상자 김순희 등 가수와 중국교향악단 첼로수석이며 미국 시카코교향악단과 북경교향악단 수석을 력임한 허옥련, 연변가무단 장새남독주가이며 한국서울국제예술절에서 독주한 김호윤, 한국중앙대학교 국악강사, 제2차 전국 소수민족 기악콩클 금상 수상자 최민 등이 독창독주를 하였습니다.
할빈 중국조선족음악회에서 장천일 곡 〈장백송〉연창 장면
그리고 허창, 한선녀의 2인창, 연길시예술단 좌창(坐唱) 〈제비타령〉등으로 다채로운 음악회를 꾸미였습니다. 이는 최근년간 예술무대에서 보기 드문 음악회였으며 때론 함성까지 터지는 열렬한 분위기 속에서 1400여명 관중들의 뜨거운 환영을 받았습니다.
중국음악학원 저명한 성악교수 송일, 할빈음악학원 교수 등 전문가들은 음악회에 대해 높은 평가를 하였습니다. 원 할빈사범음악학원 부원장이며 현재 할빈음악학원 박사생 도사인 유정민 교수는 “이번 음악회는 아주 멋지고 성공적인 음악회였다. 조선족은 참 대단하다”고 높이 평가하였습니다. 이번 음악회가 성공할 수 있은 것은 우선 서학동 리사장과 할빈시조선민족문화관의 적극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번 음악회 음악감독과 지휘를 담당한 권태성 교수가 어려운 형편에서 음악회를 위해 심혈을 몰부었고 빈틈없이 음악회 준비사업을 추진하였습니다. 연변의 작곡가 고창모는 가무극창작 등 3가지 중책을 맡고 눈코뜰새 없이 바쁜 상황에서도 종목조절과 같은 많은 일들을 감당하였으며 연변가무단 작곡가 박학림은 또 밤낮 편곡을 하고 무대감독도 맡아하면서 음악회 성공을 위해 숨은 일들을 많이 하였습니다。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명예회장 박장수
1980년초부터 저는 중국음악가협회 연변분회 상무부주석 겸 비서장, 중국조선족음악연구회 부회장, 비서장 등 두개 조직의 전문조직사업을 하는 가운데서 음악리론연구, 음악창작, 연기예술, 민족음악, 음악교육, 대외문화교류 활동 그리고 허세록, 박우, 동희철, 안국민, 최삼명, 허원식, 최창규 등 13명 로일대 음악가들과 음악골간들의 음악연구토론회를 600여차 진행하였습니다. 그중 국제행사와 전국성 행사만도 186차 조직하였습니다.
저는 평생에서 두가지 일을 잊을 수 없는데 그것은 즉 모주석을 비롯한 당과 국가의 지도자들의 접견을 받던 일 그리고 전문 음악조직사업일군으로서 중국음악 ‘금종상’콩클에서 10명중 한사람으로 음악가활동상 조직상을 수상하던 일입니다. 상상외로 찾아온 이 두차례 영광은 저에게 큰 고무와 힘을 안겨주었으며 오늘에 이르기까지 평생 민족음악사업을 위해 열심히 일하도록 하였습니다.
글 구성: 김청수 기자
영상 사진: 김성걸 안상근 김파 기자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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