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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78]연변대학 탄생기(박문일편1)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12월14일 08시15분    조회: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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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78](박문일편1) 

전임 연변대학 교장 박문일.

박문일 프로필:

1932년 출생, 중국공산당 당원, 저명한 사학가, 교육가, 저명한 사회활동가. 중국고대사, 조선고대사 전업, 국별사박사생 지도교수. 1960년 전국문교 군영회에 참가, 제6-7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 1982년부터 1998년까지 연변대학교 교장 겸 당위 부서기 담임.

연구 및 관리성과:

《중국조선민족발자취총서》 8권(주필)

1990년 《중국조선족교육리론과 실천》(주필)

1993년 《연변대학개혁과 발전기획》(주필)

저작 및 주요론문:

1984년 《력사사전》 동북3성 조선문도서상 획득

1986년 《조선간사》 길림성우수도서상 획득

1986년 《맑스주의 력사과학이 사회주의 정신문명 건설중에서의 작용》 길림성 우수론문

1992년 《특점을 살려 지방민족종합대학을 꾸려야 한다》 --중국대학교장 교육을 론함

연변대학 탄생기

저는 평생 가장 자랑스러운 나의 모교 —연변대학교의 제1기 졸업생으로서 1949년 3월 20일 학교에 입학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선후로 71년동안 사랑하는 모교 연변대학교에서 공부했고 또 성장해왔습니다. 그래서 연변대학교의 정통적인 학교정신을 늘 머리속에 간직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고 있는 연변대학교의 정통적인 정신은 주요하게 8개 글자입니다.

바로립지 근면 단결 혁신’(立志 勤奋 团结 创新) 이 8개 글자가 건교이후 계속 폭이 넓어지고 영향력이 점점 깊어지고 확대하면서 발전해온 연변대학교의 정신이였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오늘 먼저 학교의 창립과정 력사를 돌이켜 보려고 합니다.

우리 모두가 공인하고 있는 일이지만 력사적으로 우리 민족은 교육에 대해 몹시 중시하고 있는 민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제국주의가 우리 지역을 침략한 후 자기들의 정신을 학교교육에 집어넣으려고 애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은 (자기)교육에 대해 몹시 중시를 돌렸는바 연변지역만해도 많은 조선족소학교와 중학교들이 있었습니다.

명동학교(1908년).

룡정을 놓고말하면 6대 중학교가 있었습니다. 이름난 대성중학교와 동흥중학교도 거기에 포함되여 있었습니다. 광복이 되니 연변지역 뿐만 아니라 동북3성에서 우리 조선족교육이 더욱 활성화되였습니다. 그리하여 룡정에는 련합중학교가 나오고 연안학교의 전통정신을 이어받은 인민중학교가 나왔는데 그 때는 인민중학교라고 하지 않고 인민학원이라고 했습니다.

연길을 놓고보면 연변사범학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광복이후 교육이 급속도로 발전했습니다. 이 때 길림성의 성장으로 (계시던) 항일투쟁의 명장 주보중장군님이 계셨는데 장군님은 동북에서의 해방전쟁이 마무리단계에 들어가게 되는데 전쟁이 끝나게 되면 곧 경제건설시기에 들어가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연변지역에 조선족교육이 대단히 발전하고 있었지만 학생들이 언어상의 제한으로 한족 대학에 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였습니다. 하여 부득이한 정황에서 연변에서 학생들을 선발하여 두차례에 걸쳐 조선의 김일성종합대학과 평양공업대학 등에 류학 보냈습니다.

주보중장군.

그러나 당시 주보중성장님은 이 같은 방식은 기본적이고 장원한 방침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다시말해 림시적인 조치라는 것이지요. 주보중성장님은 건국이 되면 앞으로 이 지역이 자치지역으로 되는데 그렇다면 고급적인 조선민족의 인재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생각한 것이 이 지역에 대학을 꼭 세워야겠는데 이를 위해 조선에 나가 부탁을 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주보중장군은 1948년초에 조선으로 나갔습니다. 조선에 가서 김일성 주석을 찾았습니다. 김일성 주석은 주보중장군과 함께 장백산에서 항일투쟁을 하시던 친구사이였지요. 주보중장군은 김일성 주석에게 자기의 생각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러니까 김일성 주석이 “그럼 누가 들어가면 좋겠는가?”고 물으니 (주보중장군은)“림춘추가 어떨지 모르겠다”라고 대답했지요.

림춘추 전원.

그러자 김일성 주석이 림춘추를 오라고 해서 세분이 한자리에 앉게 되였지요. 세분이 모여앉아 의논했는데 림춘추가 가는 것이 옳겠다고 일치한 결론을 내렸지요. 김일성 주석이 림춘추에게 “연변에 들어가서 대학을 세우라. 대학을 세운 후에 다시 돌아오라.”고 했지요. 그래서 림춘추가 연변에 오셔서 연변전원공서의 전원으로 되였지요.

이해 상반년에 길림성정부에서는 하반년에 전성 민족사업좌담회를 열기로 했습니다. 림춘추 전원은 10월초 연길시 조용선시장댁에서 로기순, 로승균, 최문호, 김유훈 등 연길에 계시는 유지인사들과 좌담회를 열고 길림성민족사업좌담회에 제출할 의제들를 상의했습니다. 결과는 좀 부동한 생각도 있었지만 림춘추 전원께서 “연변에 제일 박절하게 수요되는 조선인대학교를 창립할데 관한 건의를 제출합시다.”라고 하여 합의를 보았습니다.

1948년 12월에 소집된 길림성민족사업좌담회 기념사진.

손꼽아 기다리던 성민족사업좌담회가 12월초에 소집되여 림춘추, 림민호 두분이 참가하게 되였습니다. 그들은 이 회의에서 동북조선인민대학을 창립할데 관한 건의를 제출하였습니다.길림성위원회에서는 이에 찬성하고 동북국에 보고했습니다. 동북국에서 대학교의 설립을 찬성하면서 교명은 연길대학으로 하라고 지시했습니다.

림춘추 전원은 시간을 다투어 연변교육출판사에서 회의를 소집하고 성의 정신을 전달한 후 학교설립준비사업에 착수했습니다. 당시 주비위원회 주임은 림춘추, 부주임은 림민호(당시 연변일보 총편집)였고, 위원들로는 문정일(부전원, 연길현 현장), 최채(연변지위 선전부장), 양정봉(연변공서 교육과장), 로기순(연변의과전문학교 교장), 최문호(연변사범학교 부교장), 로승균(연변공업학교 교장), 김유훈(연변공서 교육과 독학) 등이였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인 준비사업은 림민호, 김유훈, 박규찬(룡정중학교 교장) 등이 하였습니다. 준비 중 학교교명에 대해 연길대학’이 잘 맞지 않는다고 해서 동북국에 연변대학'으로 하는것이 좋겠다는 보고를 다시 제출했는데 후에 동북국에서 동의했습니다.

둥북국의 연변대학 명칭 비준문건

대학설립이 결정되자 1949년 2월 1일에 학생모집광고를 전 동북지역에 발표하였습니다. 그후 한달 남짓한 준비과정을 거쳐 3월 15일부터 18일 사이에 입학시험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등록한 학생이 모두 310명이 되였습니다. 시험은 3가지 형식으로 먼저 필기시험을 쳤고, 두번째는 구답시험, 면담이지요. 그 다음은 신체검사 이렇게 3개 단계를 거쳐서 학생들을 모집했지요. 그래서 310명이 등록하였지만 그 가운데 합격된 학생은 267명이였습니다.

동북조선인민대학(연변대학)’ 학생모집 광고.

그런데 당시 룡정에서 로기순박사님께서 이미 의과전문학교를 세웠댔는데 의과전문학교 학생들 114명까지 합해서 도합 381명의 학생을 모집하는 것으로 제1기 학생모집이 끝났습니다.

3월 20일 오전, 그 때 연길시에 큰 회의장이 없었는데 오늘의 연변대학 부속병원 남쪽에 있는쓰딸린극장'에서 개교식을 했습니다. 대회는 림민호가 주최하고, 최채가 주비위원회를 대표하여 동북국의 대학설립비준문을 선독하고 대학교 창립 대회를 선포하였습니다.

연변대학 개교식 기념사진.

개교식에서 림춘추 전원님께서 보고를 하셨는데 그는 “연변대학교의 탄생은 우리 중국공산당의 민족정책의 체현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전 회의장에서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습니다. 그는 “전교 사생원공들이 당의 령도하에서 한마음, 한뜻으로 단결해서 간고분투의 정신으로 대학교를 잘 꾸릴 것을 희망”했습니다. 그날 회의장에서는 련이어 “중국공산당 만세!”“모주석 만세!”소리가 우렁차게 터져 나왔습니다.

연변대학 개교식에 참가한 주덕해(오른쪽 세번째) 등 지도일군들.

학교 창건시기의 기본정황을 보면, 우선 교직원공은 교원 46명, 그 가운데 각 학과의 개척자, 선구자로 저명하신 은사님들로는 로기순(의학), 최수한(리학), 김창술(수학), 박위훈(화학), 김병진(축산학), 로승균(공학), 박경한(농학), 조득현(예술), 최문호(력사), 오봉협(력사), 오창(한어), 김유훈(교육), 석희만(미술) 등을 학교에서 선정하였습니다. 그리고 학교초기에 일본인 교원이 10여명 있었습니다.

연변대학 건교초기의 교사 건물.

학교 행정엔 과급이상 간부가 11명이 있었습니다. 다음, 학교령도 관리체제는 중앙교육부 직속이였습니다. 교장 주덕해(주전원 서기), 부교장 림민호(쏘련 모스크바 동방대학 학습, 1920년대 혁명에 참가), 교육장 김유훈(위만 건국대학 졸업, 대동학원 연수), 비서장 박규찬(위만 신경법정대학 졸업)이였습니다. 그 다음 학원설치와 책임자로는 리문학부 주임 최문호, 공학학부 주임 로승균, 의학학부 주임 로기순 박사(1932년 일본), 농학학부 주임 박경한이였습니다.

연변대학 창립선언서.

나는 늘 머리가운데 생각하고 있는것이 있는데 바로 짧은 석달동안의 준비과정을 거쳐서 단과대학이 아닌 종합대학교를 건립한다는 것은 고금중외, 중국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범위에서 봐도 대단한 성과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보면 대학을 세우는 것은 단과대학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농과, 사범, 공과, 예술이요 하면서 점점 늘려가는 것이지요. 그러나 단꺼번에 종합대학교를 세운다는 것은 정말 고금중외에 드문 일이지요. 이게 곧바로 무엇을 설명하는가 하면 우리 중국공산당의 정확하고 우월한 민족정책과 우리 민족의 드높은 교육열이 서로 결합해서 나온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연변대학 건교초기 도서관에서 학구열로 불타고 있는 학생들.

옳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연변대학교가 세워진 것은 “중국공산당의 민족정책의 정확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림춘추는 오전에 건교식이 끝난 다음 오후에 도문을 통해서 조선으로 귀국했습니다.

우리 학교의 창립력사를 생각하면 항상 림춘추어르신님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1986년 10월 31일에 학교에서 대표단을 조직해서 림춘추동지한테 찾아가 감사를 표했습니다. 물론 그 당시 학교의 교장이 저니까 제가 이렇게 할 것을 제출했습니다. 이에 모두 만장일치로 동의했습니다. 림춘추에게 드릴 기념품을 준비해 가지고 갈 것을 제기해서 어떤 기념품을 가지고 갈 것인가를 토론했는데 그분이 장백산에서 항일하시던 분이였으니장백산의 매’를 나무로 조각해서 가져다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걸 갖다 드렸습니다. 당시 림춘추어르신님은 조선의 국가 부주석으로 계셨을 때입니다. 하여 그분의 사무실에 가서 만났습니다. 그분은 “림민호 교장은 어떻게 됐는가?” “김유훈선생은 어떤가?”고 하시며 그 때의 분들을 다 물어보시고 그 다음 (우리는) 이곳의 생활상황에 대해 아주 솔직히 얘기를 해주었습니다. 림춘추는 어떻게 하나 연변대학교를 훌륭히 잘 꾸려야 한다고 부탁하시였습니다.

길림신문 /글 구성:안상근,
사진 동영상: 김성걸 김파 정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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