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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79]천지개벽의 변화(박문일편2)
조글로미디어(ZOGLO) 2020년12월14일 14시30분    조회: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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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79](박문일편2)

연변대학교가 설립된 후 대학의 지도사상을 어떻게 하겠는가를 둘러싸고 〈10대 강령〉이 제출되였습니다. 이 〈10대 강령〉은 지금봐도 완전히 현실적인 의의가 있으며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10대 강령〉은 연변대학교의 정신이라는 것입니다. 첫번째는 “중국공산당은 무산계급의 선봉대로서 중국인민을 해방시킨 도사이다. 우리는 당을 옹호하고 당의 정책을 관철하기에 온 힘을 다해야 한다 .”

두번째는 “정부에서 제정한 교육제도를 준수하고 우리 학교의 특점에 근거해서 완정한 대학체계를 건립해야 한다.”

 

연변대학 의학부 학부장 로기순박사(뒤줄 가운데)가 학생들의 의학관찰을 지도하고 있다(1953년) 

세번째는 “정부에서 지정한 과목과 우리 학교에서 특별히 설정한 과목의 교수임무를 잘 완수해야 한다.”

네번째는 “목전 국내전쟁이 아직 결속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는 힘써 곤난을 극복해야 하며 년말전으로 학교의 물질적인 기초를 닦아놓아야 한다.”


건설중에 있는 연변대학 당정사무청사(1951년)

다섯번째는 “학생들의 양성목표를 실현하기 위하여 시시각각 당의 립장에서 학생을 교육하여 그들로 하여금 소자산계급사상을 개조하고 진정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하는 혁명적인 인생관을 수립시켜주어야 한다.”

여섯번째는 교직원에 대한 것입니다.즉 “전교의 교직원들은 개인주의사상을 개조하여 정치를 중시하고 전업지식에 정통하며 학생들을 잘 교육해야 한다.”

이렇게 우리 학교는 1949년 3월 20일에 세워졌습니다. 연변대학교의 령도체계는 건국전에는 동북국에 속해있었고 건국 후에는 직접 중앙의 직속으로 있었습니다. 교장도 그렇고 부교장까지도 주은래 총리가 직접 임명했습니다. 주덕해, 림민호, 박규찬 등 분들도 모두 주은래 총리가 임명했습니다. 제가 1982년 12월에 교장으로 임명된 것도 중공중앙 선전부에서 임명했습니다. 이 때 다른 지역의 학교들은 성당위 상무위원회에서 서기와 교장을 임명했습니다. 이는 연변대학이 설립된 후에 한시기 동안 령도체계가 직접 중앙에 속했다는 것입니다.


연변대학의 지도일군들이였던 주덕해 림민호 박규찬.

연변대학교는 사실은 전 중국의 민족대학가운데서 제일 먼저 세워진 대학교입니다. 우리 모두 승인하는 것이지만 연변대학교는 천지개벽의 변화와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학교가 건립된 다음 대개 두개 시기로 발전되여 왔습니다. 첫 시기 즉 대약진시기인 1958년 8월에 5개 단과대학으로 갈라 졌습니다. 그 때 대약진시기이니“우리 연변에 대학이 하나만 있어서야 되겠는가?”솔직히 말하면 그것 때문이였습니다. “하나만 있어서 되겠는가 갈라지자…” 이래서 예술학원까지 다섯개가 되였습니다.


1957년 10월, 연변예술학교 설립되였다.

1958년 주덕해 교장이 연변의학원 간판을 내주고 있다.

이것이 한개 시기이고 그 다음 전국적으로 고등학교 체제개혁에 들어가기 시작할 때 연변대학교가 갈라진 것이 형세발전의 시대요구에 맞지 않는다고 확인하고 다시 종합대학교로 합치게 되였습니다. 이렇게 두개 시기로 발전해 왔는데 큰 발전을 이룩했습니다.

우선 총적인 발전추세로 볼 때 아래와 같은 6가지가 돌출합니다.

첫번째는 1996년 5월에 연변대학교가 전국고등교육 관리체제개혁에서의 전국의 선구자로 되였다는 점입니다.

두번째는 1996년 12월에 엄격한 심사를 거쳐서 국가교육부에서 21세기를 맞이하여 100개 대학을 중점적으로 건설하는 ‘211공정 대학’선발에 입선되였다는 점입니다. 이 심사가 대단히 복잡했습니다. 하여튼 전국에서 중점적으로 건설하는 대학행렬에 연변대학도 들어가게 되였습니다.


연변대학 ‘211공정’ 립안심사 개회식.

세번째는 2001년 교육부에서 확정한 국가서부개발의 중점건설대학으로 확정되였다는 점입니다.

네번째는 2005년도에 성과 교육부에서 중점적으로 건설하는 대학으로 되였다는 점입니다.

다섯번째는 2008년 5월에 교육부의 대학본과 교육사업에 대한 수준평가에서 북경대학과 같은 점수를 받았다는 점입니다. 이건 보통일이 아닙니다.

여섯번째로 2017년에‘국가쌍일류건설대학'의 행렬에 성공적으로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하여 지금은 국내에서 일류이고 국외에서는 영향력이 있는 특색이 선명한 높은 수준의 대학으로 꾸려나가기 위해 매진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 연변대학은‘국가쌍일류건설대학'의 행렬에 성공적으로 들어갔다.

다음으로 학교의 규모가 어떤가 봅시다. 전임교사가 1352명, 직원이 354명, 그중 교수가 291명, 부교수가 508명, 교육부에서 제정한 신세기 우수인재가 2명 있습니다. 그리고 전국모범, 우수교원이 11명, 국무원 특수수당을 받는 사람이 11명이 있는데 실제로는 이 수자보다 훨씬 많습니다. 퇴직하면 받지 않기에 이는 현직에서 받고 있는 사람을 말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학생을 놓고 보면 기본상 전국각지에서 다 오는데 서장에서까지 학생이 옵니다. 서장에서 온 학생이 9명인가 될 것입니다. 모두 2만 6919명입니다. 그 가운데 박사생 428명, 석사생 4963명, 그리고 류학생이 305명입니다. 한국에서 오는 류학생도 적지 않고 조선에서도 옵니다. 류학생가운데 내가 일본에서 온 학생을 보고 여기 와서 무엇을 전공하는가 물었더니 류학생이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해요. 그래서 왜 한국어를 배우려면 한국에 가지 않고 여기서 공부하냐고 물었더니 류학생이 하는 말이 여기에 와서는 두가지를 다 배울 수 있다고 해요. 한국어 뿐만 아니라 중국어도 배운다는 거지요. 한국에서는 한국어 밖에 배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연변대학은 전국각지에서 모여오는 학생은 물론 해외에서 오는 류학생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력사적으로 학교에서는 함수(통신)교육에 중시를 돌렸는데 지금 13000명 학생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산동, 산서, 신강, 해남에도 있습니다. 학교가 설립된 후 국가를 위해서 적잖은 기여를 하였는데 수송한 인재가 15만명 됩니다. 이 15만명 가운데는 국가지도일군으로 된 분들도 있고 국가공정원의 원사도 있고 성부급 간부들도 역시 적지 않습니다.


1982년 연변대학 조문전업의 여름방학 함수(통신)강의.

다음으로, 혁신개혁방면에서 이룩한 성과들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첫째로는 전국고등학교 관리체제개혁에서의 선봉으로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찍 1985년도에 중공중앙에서 〈교육체제개혁에 관한 결정〉을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1993년, 1994년, 1995년 이 때에 또 국가에서 〈고등교육체제개혁에 대한 문제〉를 제출했습니다. 연변대학에서 중앙의 이 관리체제개혁에 대한 정신을 매우 참답게 학습하였습니다. 연변대학교가 5개 대학으로 갈라진 다음에 몇개 학교의 책임자들이 모여서 연구를 해서 연변대학협의회를 설립했습니다. 1년에 한번씩 륜번으로 각 학원에 다니면서 한해의 정황을 교류하고 새로운 해의 방향들을 의논하고 협의를 합니다. 이 협의회에서 중앙의 체제개혁에 대한 정신이 나온 다음 우리 연변에서 어떻게 하겠는가를 고민했습니다.


1995년 국가교육위원회 주임 주개헌(앞줄 왼쪽 두번째)이 연변대학에서 학교합병문제를 지도했다.

그 때 제가 크게 계발받은 것은 교육부의 부장으로 주개현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그 분이 한번은 로씨야방문을 갔다가 오실 때 연변대학에 들리시였습니다. 그 때 나와 함께 이야기하는 가운데 “연변대학이 옛날길로 돌아갈 수 없는가”하는 이야기를 하시였습니다. 옛날길로 돌아가라는 것은 합치라는 말입니다. 이것이 제 머리속에 박혀있었습니다. 그래서 중앙의 체제개혁정신이 나온 다음 우리 협의회에서는 중앙고등교육체제개혁정신을 집중적으로 의논하였습니다. 학습을 하면서 나중에는 합치는 문제를 토론했는데 기본상 모두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다음 이 정황을 당시 자치주당위 장덕강 서기한테 회보했는데 그걸 잘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 다음 성교육청에 가서 중앙의 고등학교 체제개혁정신을 연변의 고등학교들에서 반복적으로 의논하여 중앙의 체제개혁정신에 따라 한개 대학교로 합병하려고 하는데 성에서 고려해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는 매우 중대한 문제라고 했으며 성에서도 몹시 중시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성의 부성장이 직접 틀어쥐였고 교육부에 회보한 후 교육부에서도 당연하게 완전히 지지한다고 동의했습니다.

당시 중앙교육부의 고등교육을 책임진 부부장이 주원청이였는데 직접 이를 책임지고 틀어쥐였습니다. 그래서 중앙교육부에서 반복적인 연구를 걸쳐 합병하도록 하였는데 1996년 6월 15일에 연길시의 연변체육관에서 합병대회를 하였는데 매우 정중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했습니다. 교육부에서 주원청 부부장이 직접 내려와서 중요한 연설을 하였고 청화대학, 북경대학, 복단대학, 남개대학을 포함해서 동북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도합 43개 대학에서 대표, 혹은 축전이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외에서도 한국의 서울대학교, 일본의 명지대학, 미국의 대학 등 30개 대학과 과학연구기관들에서 축전이 왔습니다. 사실은 연변의 고등학교가 합병하는 체제개혁이 세계적인 주의를 일으키는 일로 되였다는 것입니다. 그 때 교육부에서는 체제개혁 가운데서 전국에 두개의 전형이 있었는데‘북방에는 연변대학교가 있고 남방에는 양주대학이 있다'고 했습니다.

1996년 6월 15일에 연변체육관에서 있은 연변대학 합병대회.

특히 연변대학교는 전국고등교육체제개혁경험교류회의에서 두번이나 보고를 했습니다. 한번은 1996년 8월에 북대하에서 회의가 있을 때 보고했고, 다음 한번은 1998년 1월 남방의 양주에서 또 한번 보고를 했습니다.

국무원에서도 각별히 중시를 돌려가지고 리람청 부총리께서 1997년 7월 25일, 몸소 북경 중남해 자신의 사무실로 오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니까 교육부에서 조연청 부부장이 나한테 전화가 왔지요. “리람청 부총리가 당신을 직접 찾는다.”는 거지요. 나를 만나서 학교의 정황을 들어보겠다는 거지요.

그래서 저는 특별히 찾아갔습니다. 리람청 부총리가 우리들을 매우 잘했다고 고무격려 하시면서 “민족지역에서 종합성 종합대학교를 꾸리는 것은 매우 잘한 일입니다. 당신들 연변의 조건은 매우 좋습니다.”라고 긍정하시고 “민족지구의 경제건설과 사회발전을 위해서 앞으로 복무를 잘해야 하겠습니다.”하고 부탁을 하셨습니다.


연변대학을 시찰온 당시 리람청 부총리.

리람청 부총리가 연변대학에 남긴 제사 ‘원융(圆融)’.

리람청 부총리는 2003년 7월과 2007년 8월에 바쁘신 가운데 우리 학교를 두번이나 다녀 갔습니다. 그가 우리 학교에 오셔서 제사로 써주신‘원융(圆融)'이라는 글은 돌에도 새겼는데 이는 참다운 융합을 부탁하는 마음이라 생각합니다.

길림신문 글 구성: 안상근
사진 동영상: 김성걸 김파 정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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