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83](박문일편6)
나는 학교에 있으면서 후배들에게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어떻게 우리 연변대학교의 정신을 심어주겠는가를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짜내서 신입생들에게 늘 학교의 정신을 강의해 줍니다. 인문학원학생들에게도,사범학원학생들에게도,심지어는 예술학원에 가서도 연변대학의 정신이 어떠한가? 이것을 어떻게 계승해야 하겠는가를 주제로 삼고 특강을 수시로 하고 있습니다. 특강 후 저는 학생들에게 몇가지 부탁을 하는데 주요하게 3가지를 강조합니다.
연변대학 학생들에게 주제강연을 하고 있는 전임 연변대학 박문일 교장.
하나는 꼭 너희들이 리상을 세워야 한다. 꼭 리상이 있는 사람이 되여야 한다. 이것이 목표이고 이것이 동력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맑스의 말을 빌어 “리상이 없는 사람은 위생실의 구데기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보통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걸 학생들에게 꼭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 다음 “나는 종래로 안위와 향락을 생활의 본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학자 아인슈타인의 말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학생들에게 부탁하는 것은 “청년, 청춘시기는 인생도로의 황금시기이다.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는 시기이다. 이래서 오늘의 한시간은 앞으로의 몇달과 대등하게 된다.”고 하면서 명인들의 정황을 소개해줍니다. 맑스, 엥겔스가 저명한 《공산당선언》을 어느 때 썼는가? 맑스가 30살 때이고 엥겔스가 28살 때이다. 청년시기에 썼다 이거지요. 그 다음 레닌이 《로씨야에 있어서의 맑스주의》라는 책을 썼는데 이는 레닌이 29살 때 쓴 것이며 모택동이 《상강평론》의 주필을 맡았는데 그 때 그의 나이가 26살이였고 세계적으로 이름난 물리학자 뉴톤이 《만유인력》에 대한 발명을 했는데 그 때 그의 나이가 23살이였고 24살 때 켐브리지대학의 교수로 임명되였다고 말하지요. 그리고 이름있는 학자 아인슈타인이 협의적인 상대론과 광의적인 상대론을 제출하였는데 첫번째 상대론은 26살 때였고 광의적인 상대론은 30살 때 제출하였다는거지요. 제가 학생들에게 강조하는 것은 청춘, 이 시기는 일생의 제일 귀중한 시기이기에 정말 분초를 아껴 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한국에 서강대학교가 있는데 학교 기숙사의 벽에 “1분은 몇초인가”라는 글을 붙여 놓았습니다. 1분을 하나로만 생각하지 말라 이거지요. 초를 가지고 계산하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 서강대학은 일주일에 한번씩 세계적인 명언을 붙여놓고 모두들 그것을 머리에 기억하도록 합니다. 이것이 내가 연변대학정신을 부탁하면서 한 두번째 부탁입니다.
제자인 김춘선박사와 담소하고 있는 전임 연변대학 박문일 교장.
세번째는 혁신, 이것도 세계명인들의 력사를 소개하면서 합니다. 례하면 맑스가 《자본론》의 서언에서 무엇이라고 말씀했는가? “그냥 마구 좋다고 하지 말라, 그냥 연구도 안하고 동의한다고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이는 《자본론》의 서언에 있는 말입니다. 그 다음 레닌은 “나는 늘 자기에게 이런 임무를 제출한다. 첫째는 학습이고 둘째는 역시 학습이고 셋째는 마찬가지로 학습이다.” 이게 레닌의 구호였습니다. 그 다음 로신이 말하기를 “어디에 천재가 있는가? 나는 남들이 커피를 마실 때 사업에 몰두한다.”고 했습니다. 로신은 림종 10시간 전까지 책을 보았습니다. 고리끼는 뭐라고 했냐면 “천재는 곧 로동이다”, 에디슨은 “천재는 곧 백분의 2의 령감이고 백분의 98의 땀이다.”고 했습니다. 화라경은 “총명은 곧 분투에서 온다. 천재는 분투에서 이루어 진다…”고 했습니다. 나는 학생들에게 세계적인 명인들의 정신을 받아가지고 분투해야한다고 요구합니다.
연변대학 첫기 박사학위 수여식.
우리 연변이라는 이 곳은 앞으로 점점 국제적인 위망을 받게 될 곳입니다. 이래서 나는 연변태생으로 연변에서 끝을 볼 때까지 자기의 일체를 다 헌신하자고 생각합니다. 나는 자연과학은 물론 사회과학도 다 될수 있지만 특히 력사학은 국제적인 우세가 있는 연변대학이 내세울 수 있는 학과라고 생각합니다.
력사적으로 보면 연변이라는 지역은 중국의 동쪽대문입니다. 중국력사를 보면 당나라는 대단히 발달한 동방의 대국이였습니다. 일본과 련계를 하는데 32번 당나라가 모두 이곳 훈춘을 통해서 일본과 련계를 했습니다. 훈춘을 통해서 일본과의 교류를 진행했습니다. 이래서 연변대학에서 지금 훈춘에 분교를 꾸렸는데 대단히 중요한 분교라는 것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있는 전임 연변대학 박문일 교장(앞줄 가운데).
8월 7일, 8월 8일, 8월 9일, 8월 10일, 8월11일, 8월 13일 《길림일보》에 이런 문장이 실렸습니다. 8월 7일에는 대련해양대학교의 남녀 두 교수가 훈춘문제를 가지고 언론을 발표한 문장이였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도 세분이 썼는데 훈춘이 보통지역이 아닙니다. 길림대학도 그렇고 동북사범대학도 그렇고 훈춘에 자리잡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는 틀림이 없습니다. 이래서 우리 연변대학에서 훈춘분교를 세워 놓았는데 현임 김교장이 저한테 오라지 않아 간판을 달겠다고 했습니다. 훈춘을 놓고 보면 앞으로‘일대일로'의 중요한 기지로 된다는 것입니다. 이래서 연변대학‘일대일로'연구원 간판을 그곳에 달 예정입니다.
길림신문 글 구성: 안상근
사진 동영상: 김성걸 김파 정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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