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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95] 연변박물관의 문물전시(김철수편4)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1월28일 07시49분    조회: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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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 –95](김철수편4)

2012년 12월 8일, 《불멸의 투사》 출간기념회에서 발언하는 김철수.

전시는 박물관의 한개 중요한 직능입니다. 박물관은 문물수집만 해서는 안되며 반드시 전시를 하여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진렬, 전람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수집한 문물을 연구하는 관원들(1990년).

1957년 4월에 연변문물관리위원회가 선 후 이 분들이 문물수집을 하여 얻은 300여건의 문물로 공화국 창립 10주년 되는 해에 처음으로 전시를 했습니다. 이 전시는 자치주가 창립된 이래 첫 전시였습니다. 그전에도 연변에 작은 규모의 전시가 여러번 있었습니다. 내가 알건대 어떤 곳에서는 토지개혁 때 토지개혁 청산품 전시회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장백(지금의소영진)에서도 토지개혁 때 청산품을 전시하여 사람들에게 이런 물건이 나왔다는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의 력사를 반영할 수 있는 문물전시회는 그번 전시가 처음이였습니다.

그때 전시회를 참관한 관중이 약 2만여명이 되였는데 이는 그때로 놓고 말하면 대단한 성과였습니다. 1960년 4월에 연변박물관 주비처가 나온 다음에 1000건도 안되는 문물을 가지고 중앙소학교, 연길시2중의 례당이나 회의실을 빌어서 전시를 하였습니다. 나는 그때 중앙소학교를 다녔는데 전시를 보고 연변에 항일련군이 활동했고 이런 사적지들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였습니다. 이렇게 전시를 통해 청소년들에게 혁명전통교양을 진행하고 상당히 큰 효과를 보았습니다. 그때 이미 사회주의교양운동도 시작되였는데 운동을 하면서 계급투쟁교양도 하였습니다. 내 기억에는 훈춘에 대지주 한의삼의 죄악전람, 중경의 중미합작소 호운봉, 강설금 등 렬사들의 사적전람도 그때에 하였는데 광범한 청소년들이 전람을 통해 많은 교육을 받았습니다. 이것이 연변박물관 초시기에 진행한 전람이였습니다.

1973년부터 시작하여 문물수집을 위주로 활동을 전개하면서 전시회를 개최하였습니다. 팔가자에서 고대유적 54곳을 발굴하였는데 많은 문물이 나왔습니다. 고대문물만 몇백건이 나왔는데 주요하게 발해시기 금띠와 같은 귀중한 문물로 북대출토 문물전시회라든지 발해유적전시회를 개최하고 관중을 접대하였습니다.

발해정효공주묘에서 출토된 비석.

이밖에 혁명사 유물은 있었지만 많은 부분이 류실되고 일부는 찾지 못하여 크게 전시회를 개최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다가 1982년에 박물관 새 청사를 건설하면서 혁명사전시를 먼저 개최하여 연변을 선전하고 연변의 조선족의 력사를 선전하고 연변의 오랜 력사인 빛나는 혁명투쟁사를 선전하여 상당한 빛을 발했습니다.

그후에 해방후의 성취전람을 진행하였습니다. 당시 전국 각지에서 소수민족대표들이 많이 왔는데 그때 그 분들은 이런 박물관이나 전시회를 보지 못했었습니다. 후에 운남성 대리에 갔는데 우리가 한 것을 보고 거기서도 박물관을 꾸리고 전시회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민족 소개와 선전을 위주로 할 뿐이였습니다.

민속문물부 일군들이 민속문물전시를 준비하고 있다.

연변박물관은 그때 이 면에서 소수민족지구의 모범이였습니다. 각 소수민족 지구에 박물관이 나온 것은 바로 그 시기였습니다. 연변박물관을 보고 돌아가서 건설한 것입니다. 대리와 같은 경우는 바이족들이 박물관을 잘 지어놓았는데 연변박물관보다 더 잘 만들고 내부에 전시도 아주 잘하고 있었습니다. 박물관에서 1983년도에 민속전람을 하였는데 민속수집과 재료수집을 위주로 하였습니다. 민속문물도 그때 벌써 1000여건이나 수집하여 물질기초는 이미 닦아 놓았었습니다. 1972년도에 박물관이 회복되였지만 이미 진렬을 할 수있는 기본적인 물질기초가 닦아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1989년도에 북경민족문화궁의 2명 사업일군이 연변에 와서 중화인민공화국 창립 40돐에 문화궁에 와서 조선족 관련 전시회를 할 수 없는가 하고 문의하는 것이였습니다. 우리는 매우 기뻐하면서 주정부에 청시하였습니다. 주정부 지도자들도 매우 좋다고 하면서 북경에 가서 전람회를 개최할 데 대해 지시하였습니다. 그때 10만원도 되지 않는 돈이 내려왔는데 우리는 그 돈으로 전람회를 준비하였습니다. 민족특색과 지방특색을 돌출히 하기 위하여 글씨는 다 나무로 새겼고 작은 표제는 포도넝쿨로 새겼습니다. 물건을 복제하고 제작하였는데 그때 함지랑 많이 팠습니다. 그래서 함지 파는 사진도 찍고 떡치는 장면에 국수 누르는 장면 등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옛날엔 국수 누르는 사진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박물관 동무들이 배우로 되여 룡정박물관에서 촬영을 하였습니다.

자치주 창립 50주년 성취전람실 일각.

이렇게 다 준비한 다음에 연변박물관 전시청의 고대사 전람을 내리우고 민속전시를 올렸습니다. 이 민속전시가 개최된 다음 상당히 많은 사람들의 공명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아니, 지금도 이런 물건을 다 보관하였는가?”하면서 말입니다.

우리 조선족들은 원래 습관이 선조들이 사망하면 그들이 쓰던 물건을 다 태워버립니다. 민속습관이 이러하다보니 남아 있는 물건이 많지 못합니다. 우리 박물관에서 이렇게 오래된 물건을 수집하고 전시하니 로인들이 “야, 이런 물건이 지금도 남아있는가?”하면서 매우 감개무량해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국경절이 되니 그 전람을 북경 민족문화궁에 옮기게 되였는 데 우리 박물관의 일굴들과 해설원들이 따라가서 직접 전시를 하였습니다. 그때 서장에서 아페아왕직메가 왔습니다. 우리는 북경에서 소식공개회도 하고 전시도 하였는데 약 20일가량을 진행하였습니다. 조건은 좋지 않았지만 예상했던 효과를 보았습니다. 민속전람이 끝나고 기본전람이 끝나면서 이것으로 대외선전을 하게 되였습니다. 이밖에 자치주정부에서 포치한 성취전람, 큰 전람을 세개를 해냈고 대형국제상담회와 자치주성립 30주년 성취전시도 진행하였습니다.

2008년에 개최한 조선족민속전람 일각.

자치주성립 40주년 전시는 내가 문자를 맡아 심열을 통과하고 디자인은 박물관의 다른 일군이 맡아 했습니다. 건국 50주년 전시는 내가 령도 직위에서 물러난 다음에 하였는데 2001년도부터 시작하여 전람을 준비하였습니다. 이 전시는 진달래광장에 있는 새로운 청사에 간 다음에 진행하였는데 북쪽의 900평방메터 되는 전시청을 리용하였습니다. 그때 나는 원래 문자와 같은 내용을 하는 사람인데 관장들은 디자이너를 쓰면 돈을 판다고 디자인까지 책임져라고 하여 할 수 없이 총디자인까지 맡아하게 되였습니다. 그때는 이미 현대화설비가 많이 들어가야 될 때였습니다. 그래서 심수, 상해 등지에 가서 성취전람을 참관하였습니다. 가보니 그분들은 경비를 엄청 많이 투입하였는데 보통 매 평방메터에 만원씩 투입하였었습니다. 총디자인을 맡다보니 이런 사정을 돌아와서 회보하고 경비를 절약하고 절약해 400만원으로 책정하였습니다. 매 평방메터에 남들의 절반도 안되는 돈이였지만 주정부에서는 그것의 절반인 200만원을 주면서 임무를 완수하라고 하였습니다. 그것도 좀 지나니 자치주 경축대회 경비로 매개 조목에서 10%씩 줄이라는 통지가 내려왔습니다. 그러니 180만원으로 전람회를 개최하게 되였습니다.

여러가지 설비를 구입하고 재료를 구입하고 전시회를 개최하게 되였는데 우리는 160만원으로 전시임무를 완수하게 되였습니다. 그때 우리 박물관동무들이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디자인부터 모두 자기 손으로 하여야 하는데 그때 나는 컴퓨터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저녁이면 집에서 연필로 설계도를 그려서 컴퓨터를 다루는 젊은 동무한테 주면 젊은 동무들이 그걸 가지고 다시 그려 총체적인 디자인방안을 만들고 최종 완수하였는데 령도들이 보고 상당히 만족해하였습니다. 전반적인 전람회의 디자인이나 배치를 보면 효과가 새롭고 현대색채가 짙었습니다. 2002년도에 벌써 컴퓨터제어장치로 사진조합, 배경그림, 문자설명, 록음 등을 자동화하여 전시청에 들어서면 현대적이고 새로운 감을 느끼게 하였습니다.전람의 형태나 효과 등 전반에서 원유의 전람과 다른 시도를 하였습니다.그번 전람 총화대회에서 주정부 주장은 “이번 전람은 연변의 전람회 력사에서 최고급의 전람으로 되였습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2012년 9월 2일, 연변박물관 락성식이 개최되였다.

일반적으로 조선족들의 풍속에는 생전에 회갑을 쇠지 않으면 사망한 다음에 첫 생일에 회갑을 지낸다. (회갑나이가 지났으면)회갑생일이라고 합니다. 저의 부친은 회갑전에 생일을 쇠지 못했습니다. 나는 그때 부친의 회갑생일을 쇠기로 다 준비하였는데 면바로 그 날자가 전반적으로 개관하는 날이였습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온 저녁 제사를 보고 박물관의 운전기사더러 아침 일찍 우리집에 오라고 하여 화장터에 가서 제사를 마저 지내고 다시 집에 와서 옷을 갈아입고 박물관으로 왔습니다. 양복에 넥타이까지 매고 전람회를 찾은 손님과 령도들을 접대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나는 항상 바쁘게 보내야 했습니다. 아무튼 이렇게 바쁘게 보내더라도 이 사업을 일심전력으로 자기일처럼 책임성있게 하였기 때문에 일정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저는 무릇 박물관에서 개최하는 모든 전시회에 거의 다 참가하였습니다. 내가 직접 참가하였거나 책임지고 조직하여 꾸린 전시회는 약 70차례 됩니다. 그가운데서 비교적 큰 전시를 본다면 박물관의 기본 진렬, 연변인민혁명투쟁사 진렬, 고대사 진렬, 민속 진렬은 내가 책임지고 꾸린 것이고 자치주 창립 30돐, 40돐, 50돐 성취전람은 다 제가 직접 참가하였거나 제작하고 조직하고 책임지고 꾸린 것들입니다.

2012년 9월 2일에 락성된 연변박물관 내경.

2012년 자치주 창립 60돐에 박물관은 진달래광장의 청사에서 더 크고 더 좋은 청사로 이사를 하게 되였습니다. 1000평방메터 이상의 큰 전시청이 3개나 있고 작은 전시청이 여러개 있는 새 건물입니다. 내가 퇴직한 다음에 새 청사에 이주하여 전시청을 새롭게 꾸렸기에 지금의 전시청 건설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내용상에서 전문가 의견형식으로 내 생각을 제기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재의 전시청은 비교적 잘 되였습니다. 고대사, 현대사, 혁명사, 민속 등 내용이 구전하고 풍부하며 문물도 많으며 형식이나 표현방식이 현대적이여서 상당히 잘 되고 있습니다.

길림신문 글 구성/ 김태국 기자

사진 영상/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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