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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102]민속 탐구의 리더로(허휘훈편5)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2월18일 10시14분    조회: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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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102](허휘훈편 5)

오늘은 저 본인과 조선족민속 탐구와 관련하여 제가 어떻게 민속 탐구의 길을 걸어 왔는가를 여러분들과 함께 나누어 보고저 합니다. 제가 민속에 뜻을 두게 된 데는 두가지 계기가 있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첫번째 계기는 저의 부친으로부터의 영향입니다. 저의 부친은 연변대학 조문학부에서 수십년간 교수로 계셨는데 전공분야는 조선고전문학이였습니다. 저의 부친은 고전문학을 가르치고 연구해 오시면서 민족의 전통문화에 각별한 애착을 품고 계셨으며 민속에 대해 많이 알고 계셨습니다.

허휘훈의 부친 허문섭교수.

저의 기억에 의하면 저의 가정에서나 친척집에서 어떤 행사가 있을 때면 저의 부친이 상차림을 하셨습니다. 상차림을 잘하셨기에 저의 부친이 친지들 사이에서 상차림박사로 불리우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어릴적부터 부친이 민속행사에서 상차림을 잘하시는 것을 보고 거기에서 그 어떤 긍지를 어렴풋이 느끼게 되였으며 “이것도 역시 중요한 일이구나.” 하는 소박한 마음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이 일이 어린 저의 마음속에 민속의 싹을 틔워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계기는 제가 지식청년으로 있을 때의 생활경력입니다. 저는 중학을 졸업하고 시골에 내려가 약 5년간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 때 시골마을에서 전에 부친에게서 들었던 민속들과 책에서 읽었던 민속장면들을 생생하게 살아있는 현장의 모습으로 접할 수 있었습니다. 도회지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소박하고 민족적인 농민들의 그러한 생활모습을 통하여 이것이야말로 진짜 민족적이고 전통적인 생활이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마을에서 민속행사거나 민속활동에 능한 로인님들과 사귀고 그분들과 많이 접촉하면서 그분들을 통하여 생활적으로 민속에 대한 초보적인 감성지식을 쌓아가게 되였습니다.

이러한 계기를 통하여 젊은 시절부터 우리 민족의 전통문화에는 귀중한 것들이 많고 이런 귀중한 것들은 반드시 세세대대로 이어져 나아가야 되겠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였습니다.

대학시절의 허휘훈(뒤줄 왼쪽 두번째).

그리하여 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언어문학공부를 하면서도 민속에 각별한 취미를 가졌습니다. 그 당시 책을 구입할 때에도 정길운선생이 쓰신 책자나 조성일선생이 쓰신 책자를 구입하여 읽었고 이러한 저서들을 통하여 민속에 대해 비교적 뚜렷한 학문적인 의식을 갖게 되였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후 연변대학 조문학부에 남아 교편을 잡게 되였는데 그 때 역시 부친과 마찬가지로 고전문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면서도 민속에 대한 흥취와 그것을 탐구해 보려는 욕망이 날로 강해짐을 심심히 느꼈습니다. 그 때 속으로 다짐하기를 어느 때든지 기회가 있으면 민속에 관한 론문과 책자도 쓰고 민속학 과목도 개설하리라 은근히 다짐했습니다.

당시 80년대에는 연변대학에 민속에 관한 전문적인 교과목(학과목)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문학부에서는 정길운선생과 같은 분들을 초빙교수로 초청하여 선택과목으로 민속학을 가르쳤습니다. 정길운선생을 초청하여 과목을 배당하는 과정에 정길운선생을 만나뵙게 되였고 그분에게서 민속에 대하여 공부하였습니다.

수년간의 수련과정과 거듭되는 준비를 거쳐 연변대학에서 조선민속학 교과목을 학교 자체의 힘으로 개설하자는 건의를 공식적으로 학교에 제출하였습니다. 이 건의는 학교지도부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드디여 1989년 7월에 조선민속학 교과목이 전격적으로 개설되였고 그 첫 강의를 제가 하였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미비한 점들이 적지 않았지만 강의가 진척되면서 여러 모로 보완되여 어느 정도 기틀이 잡히고 학생들 속에서도 인기를 얻기 시작했습니다.

1989년도에 개설되여 10여년이 지나면서 점차 민속학 교과목의 위치를 제고시켰습니다. 처음에는 임의선택과로 중요한 과목에 속하지 않았는데 나중에는 필수선택과목, 전공교과목의 기초과목으로까지 끌어올렸습니다. 그러다 보니 민속학강의를 개설하여 지금까지 수십년이 지났는데 민속학 강의에 열중하다보니 전공분야가 어느덧 고전문학으로부터 민속학으로 바뀌게 되였습니다.

박사학위를 받던 날의 허휘훈(중).

저의 전공은 워낙 고전문학이였는데 후에는 고전문학 강의와 연구를 계속 진행하면서도 오히려 민속학 쪽에 더 비중을 싣게 되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박사공부를 하는 과정에도 박사론문 과제를 조선신화연구로 선택하였습니다. 신화라는 것도 결국은 민속의 중요한 한부분입니다. 이런 과제를 선택하고 수년간의 노력을 거쳐 〈조선신화연구〉라는 학위론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습니다.

이렇게 민속탐구를 진행해 오는 과정에 이러저러한 애로에 부딪친 적도 있고 학술적인 난관에 봉착한 적도 있습니다. 제가 박사론문을 준비하던 시기에 있던 일입니다. 그 때 조선민족의 신화유산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무속을 어떻게 인식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론쟁이 생겼습니다.

무속이라면 무당들의 굿풀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80년대부터 90년대까지 국내 학계에서는 무속에 대해 줄곧 미신으로만 보아 왔고 무속에 대한 과학적이고 공정한 학술적 평가를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국외 학계에서는 이 방면에 대한 연구가 많이 진척되였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조선신화연구에서 국외의 연구성과를 받아들여 무당들의 굿풀이노래를 신화유산의 한부분으로 인정하고 론문의 중요한 연구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당시 일부 교수님들이 이에 대한 반론을 제출하였습니다.“무당들의 굿풀이와 같은 것은 아직까지 학계에서 긍정적인 결론이 없기에 굿풀이노래를 연구하는 것은 타당치 않다." 그 뜻인즉 론문에 이런 내용이 들어가는 걸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굿놀이'의 한 장면.

무당의 굿풀이는 민속에서 민간신앙에 속하는 중요한 문화현상입니다. 이는 한 민족의 전통적인 문화심리를 가늠해볼 수 있는 것으로 하여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었습니다. 그런데 무속은 오래 동안 학술연구의 금지구역으로 되여 있었고 그것을 언급하는 것을 꺼려해왔습니다.

(20새기) 80년대는 물론 90년대에 와서도 무속과 같은 민간신앙을 민족의 전통문화라 긍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조심스러울 때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학자적 소신과 용기로 애로를 극복하고 무당의 굿풀이노래를 무속신화로 간주하여 박사론문을 써냈습니다. 나중에는 저의 신화연구가 무속신화의 존재 합리성과 그 가치를 론증해 낸 것으로 하여 학위론문 심의에서 통과될 수 있었습니다.

개혁개방이후에 조선족민속에서 적지 않은 전통문화가 부흥되였는데 그 가운데서 주목되는 것이 민속신앙이라 할 수 있습니다. 민속신앙에서 중요한 한부분은 무당들의 굿풀이입니다. (20세기) 80년대에 길림의 강밀봉지역에서 처음으로 조선족 무당을 발견하게 됩니다. 당시 연변박물관의 연구일군들이 그 무당할머니를 연변에 모셔다가 일주일 동안 민속조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 무당이 진행한 굿풀이는 동영상으로 록화되였습니다. 이는 우리 조선족사회에서 처음으로 발견된 무속 관련 민속자료로서 중요한 학술적, 문화적 가치를 가집니다.

민속신앙에서 무속과 더불어 주목되는 것은 마을신앙입니다. 예로부터 조선족은 마을주변에 있는 큰 산이거나 마을입구에 있는 큰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면서 마을의 평안과 복을 기원해왔습니다. 이런 마을신앙도 과거에는 낡은 미신으로 간주되여 거의 사라지다 싶이 되였습니다.

돈화시 대구촌의‘샘물제'.

개혁개방이후 마을신앙도 부흥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를테면 2006년에 돈화 대구촌이라는 자그마한 조선족마을에 마을신앙이 살아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습니다. 그 마을은 1930년대 후기에 조선반도 남쪽에서 들어온 이주민들로 구성된 마을인데 그 때로부터 지금까지 수십년 동안 마을제사를 줄곧 이어온 것입니다.

제보가 있은 뒤 저는 연변텔레비죤방송국 기자들과 함께 대구촌에 찾아가 현지조사를 진행했습니다. 그 결과 돈화 대구촌에 존재하는 마을제사는 산신을 모시는 마을신앙의 일종이라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 마을이 돈화의 깊은 산골에 있는데 과거에는 마을에 호랑이도 출몰했다 합니다. 예로부터 조선족들에게는 깊은 산속에 있는 범을 산신의 화신으로 보는 민속관념이 있습니다. 이 마을에서도 마을수호신으로 산신을 모시고 해마다 정해진 날에 제사를 지냅니다.

마을사람들이 공동으로 적당하게 물건을 내서 제사물건을 마련한 다음 마을 뒤쪽 샘터에서 산신제를 지내는 것입니다. 이는 연변지역에서 발견된 마을신앙의 좋은 표본으로 되였습니다. 그리하여 돈화 대구촌의 산신제는 길림성무형문화유산대표작으로 입선되였습니다.

개혁개방이후에 마련된 개방적이고 문명한 문화적 분위기 속에서 이런 가치 있는 전통문화에 대한 발굴작업이 순조롭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또 그 결실이 성급무형문화유산대표작으로 선정된 것도 의의있는 일이라 생각됩니다.

학자연구자들에게 있어서 민속문화를 탐구하는 것이 바로 이러한 민족의 우수한 전통문화를 발견하고 그것을 사회에 홍보하고 또 그것을 일정한 문화적인 평가를 받도록 자리매김을 해주는 것 역시 중요한 과업의 하나인 것입니다.

연변대학 민속학 교과서 《조선민속학》.

저는 민속 탐구의 길에서 수십년간 노력해 오면서 어느 정도로 학문적인 성과도 거두게 되였습니다.《조선민속학》, 《조선족민속문화와 그 중국특색》 등 저서를 펴낸 것이 그 결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중에서 《조선족민속문화와 그 중국특색》은 국가급 인문사회과학프로젝트의 결과물입니다. 이 책은 조선족민속을 전면적이고 체계적으로 다루면서 민속문화의 제반 층절들을 파헤치고 그 저변에 내재하고 있는 심층적인 내재적 의미를 천명하는 데서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조선민속학》은 조선민족의 전통적인 생활풍속을 폭넓게 서술하고 다종다양한 민속현상들의 문화적 의미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물질민속, 사회민속, 심리민속, 언어민속 등을 서술대상으로 삼아 그 구성요소와 기본내용을 천명하였습니다. 이 책은 연변대학의 민속학교과서로 선정되여 다년간 민속학 교수사업에 리용되였으며 학생들의 호평도 받았습니다.

중국민간문예가협회 제7차전국대표대회에 대표로 참가한 허휘훈 교수(왼쪽 두번째).

이처럼 민속탐구에 정진하면서 어느 정도 긍정적인 평가도 받게 되였습니다. 이를테면 민속을 탐구하는 사람이면 모두 선망하는 중국민간문예가협회 제7차전국대표대회에 대표로 참가하였습니다. 그 대표로 선출될 수 있은 것은 저의 저서 《조선신화연구》가 중국의 민간문예‘산화상’학술상을 탄 것과 같은 업적을 어느 정도 이루어 사회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게 된 것과 관련된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민속을 탐구하는 것은 민족의 전통문화를 연구하는 데서 자못 의의있는 중요한 일입니다. 따라서 민속연구는 응당 세세대대로 이어지면서 조상전래의 미풍량속을 잘 살려나가고 우리들의 민족의식을 높여주고 민족성을 지켜나가는 데서 추진적 역할을 지속적으로 잘해야 합니다.

연구생들과 함께 있는 석사생 도사 허휘훈교수.

민속탐구를 통해 거기에 깃들어 있는 생활 지식과 지혜를 밝혀내고 그것을 현대생활에 조화시켜 우리들의 삶을 보다 풍요롭게 하는 것이 오늘의 민속탐구자들에게 부여된 중요한 과제로 되고 있습니다. 민속학회 회장을 맡고 있는 저 본인도 그 무게를 심심히 느끼고 있습니다. 모두 함께 민속문화의 발전을 위하여 진력하기를 바랍니다!

길림신문 글 구성/ 김청수 기자

사진 영상/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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