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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113]중국조선족무용예술교육체계 정립(한룡길편4)
조글로미디어(ZOGLO) 2021년3월5일 08시25분    조회:1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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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화인민공화국 창립 70돐 기념 특별기획 대형구술시리즈[문화를 말하다-113](한룡길편4)

중국조선족무용의 발전과정에서 무용교육은 튼튼한 받침돌로 되였습니다.건국 이전에는 여러 중소학교들에서 학생써클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무용인재들이 많이 양성되였습니다. 이들은 조선족예술무용의 기틀을 형성하는 데 있어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를 토대로 새중국 창립과 더불어 1950년도에 처음으로 연변사범학교에서 녀학생 29명을 모집하여 무용반을 꾸리였는데 여기에서 양성된 졸업생들이 사회에 나가 많은 역할을 하였습니다.

저명한 무용가 최승희.

또 다른 하나는 1950년도에 조선전쟁이 폭발하면서 조선의 최승희선생과 학생들 30명이 심양으로 피난을 왔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중국의 주은래 총리는 최승희와 학생 모두를 북경에 모셔갑니다. 이리하여 중국희곡학원에 ‘최승희무용연구반'이라는 무용인재양성반을 설치합니다. 중국에서 당시 문예사업자들 가운데서 무용간부 약 50명, 최승희가 데리고 간 학생 30명 그리고 중국의 동북에서 또 조선족 20명을 모집해갑니다.여기에서 최승희는 중국의 유명한 경극배우 매란방이라든가 이런 분들과 많이 접촉하면서 중국고전무용 훈련체계 건립에 적극적인 역할을 합니다.

이 과정에 최승희는 자기가 30년대 중반에 세계공연을 하면서 왜 서방에는 발레무극이 있는데 동방에는 무극이라는 것이 없는가 하는 생각을 성숙시키면서‘동방발레'라는 것을 창조하려 합니다. 최승희가 구상한 동방발레의 핵심은 중국의 형—무용의 형태, 일본의 색—정교한 춤형식, 조선의 선—늘씬한 춤방식,이것들을 결합하여 동방발레를 만들려 합니다.발레라는 것이 기실 무극이라는 말입니다. 발레무용을 하자면 발레기본공을 련습해야 되는 것처럼 동방발레를 하려면 그를 소화해 낼 수 있는 배우가 있어야 하고 배우를 양성하자면 무용훈련체계가 있어야 합니다.

최승희는 일찍 1945년도에 북경에서 동방무용연구소를 꾸리고 이를 연구했고 평양에서 최승희무용연구소를 꾸리면서 계속 성숙시켜 다시 주은래 총리의 초청으로 왔을 때 이미 완숙된 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이 같이 최승희무용사상을 토대로 한 중국희곡학원 최승희무용연구반에서는 중국의 리정일이라든가 왕철성이라든가 등 많은 제1대 무용가들이 양성되였고 또 우리 조선족들 가운데서도 저명한 무용표현가 최미선이라든가 허명월, 안무가 리인순, 중앙민족대학의 김예화,연변예술학교의 박용원 이런 분들이 다 여기에서 양성됩니다.

다른 한편으로 50년대 초반부터 연변가무단에서 배우들을 보충하기 위해 처음에는 연변지구에서 학원들을 모집하여 학원들을 양성했는데 리록순선생이라든가 최옥주선생이라든가 이런 걸출한 분들이 모두 여기에서 양성되였습니다. 그 후 1956년도에 동북 3성을 대상으로 학생들을 모집하여 훈련반을 꾸립니다.

무용표현가 리록순(1957년).

최승희무용연구소, 연변사범, 연변가무단 학원반 등 이런 교육과정이 중국조선족무용교육의 토대를 만듭니다. 당시 연변조선족자치주 주장인 주덕해동지와 연변가무단 부단장 조득현선생이 전국 제2기 제3차 정치협상회의에 갔다가 정부에 “조선족예술인재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예술교육기관이 필요하다. 그러니 학교를 세워야 한다.”고 제안하자 중앙정부에서는 인차 비준합니다.

그리하여 1957년도 10월 5일에 연변예술학교가 성립됩니다. 당시 무용학과에서는 부교장이신 조득현선생이 발레교수를 책임지고 연변가무단에서 무용교원을 하던 박용원선생이 예술학교가 성립되자 이 학교에 전근하여 조선무용교육을 책임졌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조득현선생은 발레를 전공했지만 조선족무용인재를 양성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발레교육체계를 조선족무용교육과 인재양성의 기초가 되도록 발레훈련체계를 구성하였습니다.

북경무용학원의 요청으로 교수하러 떠나는 박용원 교수를 바래며.

박용원선생은 또 최승희선생의 춤을 공부했지만 거기에 전통성이 미약하다는 점을 파악하였습니다. 이 분은 사범학교 출신으로서 연박한 학식과 문화의식의 소유자였습니다. 때문에 박용원선생은 당시 연변가무단에 있는 하태익선생과 심양에 있는 예기출신인 김용옥 민간예인 이 두 분을 학교에 모셔옵니다. 그리고 조선무용학과에다 전통무용학과목과 최승희립춤훈련학과목 등 두개 학과목을 설치합니다. 그렇게 중국조선족무용교육에서의 첫 교수체계 즉 발레무용, 조선무용, 중국고전무용 등 세개 학과목으로 교수체계를 구성합니다. 그리하여 일찍 문화대혁명 전에 많은 인재를 양성했고 교수체계, 교수대강을 체계화시키면서 교재편찬에도 착수합니다.

그런데 1969년도에 문화대혁명으로 하여 예술학교가 페교되면서 박용원선생, 조득현선생을 비롯한 많은 교원들이 농촌으로 내려갔습니다. 1972년도에 연변예술학교가 다시 개교를 하면서 이 분들이 학교에 돌아와 교육에 투입하게 됩니다. 그러나 당시 역시 문화대혁명의 적 경향으로 교육에서 자기 민족 무용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대체로 본보기극의 성격을 받아들여 교수를 해야 했습니다.

조선족무용의 기본동작부터 가르치는 박용원교수(중).

그러나 이분들은 아주 지혜롭게 대처해 나갔는데 조득현선생은 발레표현방법인 변주법이라든가 기교훈련으로 교수하고 박용원선생은‘표현동작묶음'이라는 훈련계통을 새롭게 만들어 학생들의 표현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니 인물형상창조와 비슷한 방법으로 인재를 양성하였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문화대혁명 후 제1기 무용전공으로 48명 학생이 졸업합니다.

그리고 1977년도부터‘국가중점교육기구',‘중점전문학교’등 칭호를 받으면서 원래 연변만을 대상으로 학생을 모집하던 것을 전 동북 3성을 대상으로 학생을 모집하게 되니 학생모집질도 향상되고 전반 인재양성수준이 현저히 제고되였습니다.

이 시기에 박용원선생은 문화대혁명 기간에 흘려버린 시간을 쟁취하기 위해 자기 교재집필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리하여 1977년도에 처음으로 《조선족무용기본동작》이라는 교재를 출판하였습니다.

박용원선생이 집필한 교재《조선족무용기본동작》.

그 후 이 교재가 전국에 보급되면서 중국무용교육의 최고 학부인 북경무용학원의 교재로도 사용되였으며 이에 따라 중국조선족무용교육의 최고학부라는 위치가 더욱 확고히 정립되였습니다. 그 후 박용원선생은 80년대 초부터 실기교수보다도 리론연구에 더 많은 정력을 몰붓습니다. 이 과정에서 그는 당시 조선족무용이 자기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경향을 극복하기 위해 학교에다 무용리론연구반을 꾸릴 것을 요청합니다. 이어 학교지도부의 비준을 받고 전 주 무용가들 중에서 28명의 골간을 모집하여 고등부인 연변예술학교에 무용리론연구반이란 대학과정을 개설합니다.

그리고 중국예술연구원 무용연구소의 전문가들을 모셔오고 또 연변대학의 저명한 교수님들 례하면 연변의 최옥주라든가 조득현이라든가 이런 저명한 무용가들을 모시고 무용리론인재양성을 시작합니다. 결과 무용리론연수반에서 많은 우수한 조선족무용리론가들이 양성되는데 대표적인 인물로는 리애순,박영광 등 선생들이 있습니다.

무용리론가 리애순.

리애순선생은 당시 연변예술학교 제1기 무용전공생으로서 1975년도에 학교를 졸업하고 개산툰종이섬유팔프공장에 취직하였다가 도문시문화관에 전근했는데 박용원선생이 이 분을 예술학교에 전근시켜 앞으로 예술학교가 대학으로 승격하기 위한 무용리론교원으로 양성시켰습니다.

그리고 박영광선생은 예술학교 제2기 졸업생으로 장백현문공단에 배치되였는데 이 분을 또 학교에 모셔옵니다. 그리고 화룡문화관의 김순희까지 이 세분을 중심으로 28명으로 된 연수반을 꾸립니다. 여기서 많은 연변의 안무가 김복순, 지정선, 허숙, 김희 그리고 연변군중문화관의 강상범, 한동국, 리종환 등 제3세대 골간들이 양성되면서 조선족무용분야의 학술의식수준이 현저히 제고됩니다. 이 학급이 형성됨으로써 연변에서 무용평론이 시작되고 무용학문연구가 시작됩니다. 이와 같이 박용원 교수의 전위적인 의식으로 리론연수반을 조직함으로써 전반 중국조선족무용리론대오가 형성되고 무용학연구분위기가 형성되였습니다.

연변예술학교 무용리론연수반 합영.

1988년도에 연변예술학교가 길림예술학원 연변분원으로 승격되면서 대학교육체제에 편입됩니다. 그 후 1996년도에는 연변농학원, 의학원, 연변대학, 사범학원, 예술학원 등 여러 학교들을 합병하여 종합대학으로 형성하는 과정에 연변대학 예술학원이 성립됩니다.

연변대학 예술학원이 성립되면서 교육체제가 완전히 대학체제로 바뀝니다. 교육체제를 보면 직선적이고 전방위적이고 개방적인 교육체제로 만들어집니다. 전문부에서는 기능형인재를, 대학에서는 사유형, 대학원에서는 전문학자를 양성하는 이런 목표를 제정하면서 비교적 완벽한 무용예술교육체제를 형성합니다.

무용교육으로 말하면 조선족무용인재양성을 목적으로 조선족무용학과목을 중점과목으로 하고 발레무용, 고전무용, 현대무용학과목들을 기초과목으로 설정합니다. 그리고 보조과목으로 소수민족무용, 실천학과목 등 과목들을 설치하여 정3각형식의 교수체계를 구성하였습니다. 이렇게 튼튼하게 기초를 닦고 전면적으로 조선족무용인재를 양성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예술학교중등교육으로부터 시작하여 1800명의 무용인재를 양성했고 약 80여명의 무용연구생들을 양성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괄목할 만한 교육성과들로 하여 중국조선족무용교육은 무용교육연구성과 평의에서 2005년도에는 길림성에서 특등상을 탔고 2006년도에는 국가 2등상을 탔습니다. 그리고 지금 연변대학예술학원은 중국조선족무용인재양성기지로 명명되였고 현재 약 300여명 재학생규모의 고등부, 대학부, 대학원을 비롯한 직선적인 교육체제를 구성하였습니다. 교원대오는 도합 30명인데 그중 박사 2명, 석사 12명, 교수 2명, 부교수 8명 그리고 강사, 조교들이 있습니다.

조선민족무용 전문학과체계 개혁과 실천 국가교수성과상 수상.

중국조선족무용훈련체계의 발전변화를 단계적으로 관찰하여 보면 제일 초기의 최승희체계, 그 다음 박용원체계, 지금 와서는 새로운 체계로 나아가고 있는데 최승희체계는 주로 동작체계 즉 동작개념훈련체계로서 최승희가 정립한 조선민족무용의 기본동작을 가르칩니다. 이로부터 박용원선생은 본질훈련 그러니까 춤동작의 성격, 본질 등 우리 민족춤의 특징을 장악시키는데 주력했습니다.

지금 우리 세대에 와서는 제가 조선평양음악무용대학에서 류학을 하고 귀국하여 젊은이들을 이끌고 국가프로젝트‘21세기 조선족 무용기능 훈련체계 연구’를 완성하는 과정에 조선족무용교수법 연구를 진행하면서 조선족무용기능훈련으로 무용의식을 개발하고 예술창의력을 제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의식개발훈련이라는 새로운 훈련방법론을 정립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조선족무용교육은 60여년의 발전사를 이어오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이렇게 세대마다 새로운 창조, 새로운 인재양성모식으로 발전하였기에 오늘날까지도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특히 세계적인 조선민족문화권에서 보면 중국조선족무용교육체계 속에 최승희체계가 기본상 완벽하게 보존되여있습니다. 최승희가 한국에 있을 때는 미완성상태로 자기 체계를 가지고 있었고 조선에 와서는 자기 체계를 발전시켰지만 후에 주체무용을 수용하면서 약간의 변이가 생깁니다. 최승희무용의 기본요소와 본질적인 특징 및 그 핵심사상을 비교적 완벽하게 보존하고 전승발전해 가고 있는 것이 중국조선족무용교육이라고 하여도 과언은 아닙니다. 하여 국제적인 무용학술모임에서도 연구시각이 중국조선족의 무용교육쪽으로 많이 쏠리고 있다고 봅니다.

학기말 공연을 마친 학생들과 함께 있는 한룡길교수(중).

총제적으로 보면 우리의 무용교육이 선인들의 다함 없는 노력과 지혜와 창조로 그 토대를 잘 닦았고 특히 박용원선생의 전통무용과 최승희의 립춤을 결합시키는 면에서 그리고 그 후기 젊은 세대들의 학술적인 연구 등을 통해 새로운 인재양성의 모식이 형성되고 있는데 금후 아주 전망이 밝다고 확신합니다.

선인들의 공적을 기리고 후세에 전승하기 위하여 이미 조득현선생의 동상과 박용원선생의 동상을 연변대학예술학원청사에 세웠습니다. 조득현선생의 동상은 가족과 학원에서 또 연변문예계에서 세웠고 박용원선생의 동상은 2017년도에 박용원선생의 제자인 손룡규선생의 선도와 노력으로 제자들이 자원적으로 모금하여 동상을 세우고 제막식도 하고 박용원선생의 회억록도 출판하였습니다.

현재 연변대학 예술학원은 중국조선족무용교육의 최고 학부로 또한 조선족무용리론연구중심, 교육연구중심, 창작연구중심으로 부상되여가고 있습니다.

길림신문 글 구성/ 김청수 기자

영상 사진/ 김성걸 김파 정현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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