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김향자
새벽빛이 푸르스름한 이른아침, 어느 외딴 농가의 대문이 열리고 소들이 쏟아져나온다. 그리고 그 장면을 놓칠세라 김향자(62)는 샤타를 누른다.
화룡시 서성진의 한 마을에서 홀로 스무나문마리의 소를 키우며 살아가는 김기준옹을 만난 건 2년 전의 어느 날이였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진달래촌으로 떠난 지 오라지만, 자식처럼 돌보며 키워온 소들을 옮길 수 없어 홀로 외로이 남아 마을을 지키는 할아버지, 마당 한켠에는 이젠 빛이 다 바래서 원래 색을 알 수 없는 코뚜레와 머리띠가 걸려있고 할아버지의 어머님이 살던 뒤집 마당에는 하도 오래되여 열매도 달리지 않는 배나무가 구부정하니, 그러나 꿋꿋이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곳곳에 묻어나는 우리 민족의 정서들을 보는 순간 김향자는 이 아름다운 풍경들을 모아 다큐멘터리를 창작하려는 마음을 굳혔다.
“소는 우리 민족과 운명을 함께 해온 령물입니다. 생산도구였으면서도 식구였죠. 사회가 발전하면서 현대화한 농기계에 의해 한켠으로 밀려났지만, 소는 여전히 모든 것을 우리와 함께 나누고 있습니다.”
2월 28일 있은 인터뷰에서 김향자는 소에 대한 남다른 시각과 애정부터 드러냈다.
김향자의 ‘황소 시리즈’ 작품.
황소 시리즈 창작을 위해 소에 관련된 공부를 하면서 남다른 열정을 쏟았던 김향자, 사실 그녀는 사진작가이기 전에 우리 문단에서 수필과 소설을 다수 발표한 작가이기도 하다. 일찍 소설가 림원춘옹의 가르침 아래 등단했고, 문학의 길을 걸어온 지 30여년이 된다. 그리고 그 경력은 나중에 촬영을 시작하는 데 아주 좋은 밑거름이 돼주었다.
“주제 선정과 주인공 선정 등 사진도 문학작품과 마찬가지여서 좋은 이야기가 들어있어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다년간의 문학창작이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똑딱이 카메라로 일상의 이모저모를 재미삼아 찍던 데로부터 주변에서 이제는 장비를 갖추고 제대로 찍어보라고 제의했고, 그래서 촬영의 길에 접어든 것이 2000년 그 즈음이였다.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사회인들을 상대로 조직한 촬영강좌에 열심히 참가하면서 리론부터 다졌습니다. 우리 고향의 구석구석을 누벼 누구도 가보지 못한 곳, 새로운 풍경을 찾아다니며 촬영에 열정을 쏟아부었죠.”
평소에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지만 사진기만 들면 다른 사람이 된 듯 주변의 시선따위는 의식하지 않고 열정을 불사르는 김향자였다. 그렇게 창작한 작품들을 하나 둘씩 촬영동북넷이나 중국촬영보에 보내면서 민족녀성작가의 섬세함과 내면 정감세계가 묻어나는 작품들은 하나 둘씩 세상의 빛을 보기 시작했고 김향자는 차츰 사진작가로 더 알려지게 됐다.
김향자의 작품들은 나서 자란 연변의 기층과 군중을 향해 앵글을 맞추고 시대의 발전과 변화 가운데 생겨난 평범한 듯하면서도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아낸다.
“사회적 가치, 예술적 가치, 력사적 가치를 모두 지녀야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연변촬영가협회에서는 2022년 ‘연변녀성촬영가 10인 요청전시’를 기획하고 김향자의 ‘황소 시리즈’ 작품 60점을 모아 제1회 전시로 펼쳐내기로 했다.
전시를 기획한 연변사진가협회 김광영 부주석(연변대학 예술학원 사진과)은 “김향자의 특집다큐멘터리촬영작품 ‘고향∙넋’은 연변향촌의 시대적 변화와 발전 가운데 생겨난 평범한듯하면서도 특별한 이야기를 사진에 담아냈다. 사진작가는 1인칭의 시각으로 이 시대 특유의 아이콘을 촬영, 력사의 한 순간을 잡아두었다. 작품에서는 고향, 농민에 대한 사진작가의 애정어린 눈길을 느낄 수 있다. 신념이 있고 정감이 있으며 감당의식이 있는 촬영가만이 창작해낼 수 있는 좋은 작품이다.”라고 평가했다.
김향자의 ‘황소 시리즈’ 작품과 기타 부분적 작품 60여점을 수록한 동명작품화책 《고향∙넋》도 출간돼 이날 전시에서 함께 선보이게 된다. 더불어 이날 전시된 작품 가운데 한점을 룡정 ‘정∙갤러리’에 기증하기로 했다.
김향자의 ‘고향∙넋’ 촬영작품전시는 6일부터 30일까지 연길백화청사 8층 ‘하겐나커피숍’에서 펼쳐질 예정이다.
리련화 기자/연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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