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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인호 생전 인터뷰-"선비정신으로 국격을 세우자"
조글로미디어(ZOGLO) 2013년10월2일 14시17분    조회:3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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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 최인호 생전 인터뷰-"선비정신으로 국격을 세우자"

대중 역사소설가로서의 면모

글 | 이상흔 인터넷뉴스부 기자

지난 9월 25일 타계한 소설가 故 최인호씨는 독실한 카톨릭 신자였지만, 생전에 그는 "모든 종교의 진리는 하나로 통한다"고 말했다.
 
 
그가 2005년 유교 장편소설인 <유림>을 세상에 내놓았을 때 필자는 그를 인터뷰 했다. 유림을 내놓기 십수년 전에 최인호씨는 근대 한국불교 중흥조로 불리는 한말(韓末)의 선사 경허 경허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길없는 길>로 현대불교문학상을 수상했다.
 
최인호씨는 <길 없는 길>을 통해 불교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서 우리 민족의 혈맥 속에 또 하나의 원형질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는다. 바로 ‘유교’였다.
 
 
“세상엔 변해 흘러가는 것이 있고,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유행가나 패션 브랜드는 자꾸 바뀌지만 ‘노래’와 ‘옷’ 자체는 불변이다. 공자의 인의예지 가르침도 이와 같이 변하지 않는 진리다.”
 
 
그는 <유림>을 마친 후 예수의 일생을 다룬 책을 내고 싶어 했으나, 암투병으로 이루지 못했다. 암투병 중이던 2012년 최인호씨는 <유림> 6권의 내용 중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와 그의 사상을 창의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맹자의 이야기만 따로 모아 소설 <공자>와 <맹자>를 내놓았다.
 
 
 
최인호씨가 별세 후 언론은 주로 그의 초기 작품에 초점을 맞추어 그를 추모하는 기사를 내놓았다. 방대한 자료수집과 꼼꼼한 현장답사를 기초로 쓴 ‘잃어버린 왕국’(1986), ‘왕도의 비밀’(1995), 거상(巨商) 임상옥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 ‘상도’ 등 그의 역사소설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사는 거의 찾기가 힘들었다.
 
 
독실한 가톨릭신자이면서도 한국의 전통과 정서를 누구보다 사랑한 최인호씨. "선비정신 같은 우리 전통 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여 우리 사회의 혼탁한 물꼬를 바로 세우고 국격이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던 그의 말이 떠올라 그의 인터뷰 기사를 아래 첨부한다. [편집자 주]
 

[歷史 특집] 孔子의 반격이 시작됐다 - (인터뷰)「儒林」의 작가 崔仁浩

『仁과 禮는 인간中心사상, 선비정신으로 國格을 세우자』

 
『우리 핏속엔 유교·불교가 녹아 있다』

소설가 崔仁浩(최인호·60)씨가 최근 「儒林(유림)」(열림원 刊)이란 책을 내놓았다. 그의 소설은 중국의 孔子 부활 움직임과 맞물리면서 조용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崔씨는 10여 년 전 경허 스님의 일대기를 그린 「길 없는 길」로 독자들을 불교의 세계로 안내했다. 이번에는 소설 「儒林」으로 2500년 전의 孔子를 불러 낸 것이다.

「儒林」의 1권은 王道政治를 실현하려 했던 趙光祖(조광조), 2권은 孔子의 사상과 삶, 3권은 朱子(주자) 이후 性理學(성리학)을 집대성한 退溪 李滉(퇴계 이황)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인도에서 탄생한 불교가 중국을 거쳐 우리의 원효에 의해 열매를 맺었고, 중국의 유교가 우리나라에 건너와 退溪 李滉에 의해서 완성을 보았습니다. 우리의 핏속에는 수천 년간 내려온 유교와 불교의 사상이 원형질처럼 녹아 있습니다.

우리나라 유교가 남긴 가장 큰 정신문화 유산은 「선비사상」입니다. 선조들이 남긴 선비사상이 서구의 물질문명에 대항하는 중심적 가치가 되도록 해야 합니다』


한국인의 孝에 충격받은 中國人들

중국의 孔子 부활 움직임에 대해 崔씨는 『이는 필연적인 것』이라고 했다.

『중국 공산당은 문화혁명 이후 유교를 「帝王學이다」, 「봉건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다」 하면서 타도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이후 중국은 딜레마에 빠졌어요. 자기들의 전통 가치관을 부정하고 나니, 한마디로 교육에 대한 이념이 없어진 것이죠.

공산주의는 이미 실패한 사상으로 판명이 났고, 하나밖에 낳지 않는 아이들은 가정에서 小皇帝(소황제)가 되고 있습니다. 중국 정부는 「이대로 가다가는 중국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죠. 공식적인 孔子 부활은 이제 막 시작되었지만, 중국의 핵심 관료들은 이미 수년 전에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면서 살아 있는 儒林的(유림적) 전통을 배우고 갔습니다』

―얼마 전 중국에 다녀 오셨는데, 중국 사람들은 유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중국 사람들은 한국의 드라마를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습니다. 한국 드라마에 부모를 공경하고, 문제가 생기면 가족중심으로 해결하는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거든요. 중국인들은 「정말 한국에서는 자식들이 부모들을 그렇게 공경하는지」 궁금해합니다.

이번 중국 방문 때 어떤 기자가 「중국에서는 이미 孝에 대한 개념 자체가 사라졌는데, 전통 가족제도가 살아 있는 한국이 너무 부럽다」고 하더군요. 韓·中·日 동양 3國이 모두 유교권 나라지만, 형식이나 내용 면에서 유교의 전통이 가장 잘 남아 있는 곳이 우리나라이기 때문에 이를 잘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교를 낡은 사상으로 치부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특히 젊은이들 사이에 유교는 곧 「고리타분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孔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유교의 진정한 가르침이 뭔지 모르기 때문이죠. 서구에서 온 물질주의·실용주의·개인주의가 궁극적으로 우리의 정신적 양식이나 갈증을 해결해 주지는 못합니다.

저는 책을 쓰면서 2500년 전에 孔子가 한 말을 접할 때마다 새롭게 와 닿는 것을 느꼈습니다. 맥주나 콜라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결국 사람의 갈증을 해소하는 것은 물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세월이 아무리 흘러간다고 해도 우리의 정신적 갈증을 채워 줄 수 있는 것은 孔子의 가르침일 수밖에 없습니다. 수천 년간 유교의 사상이 우리의 삶 속에 녹아서 전해져 왔기 때문이죠』


유교 자본주의

―한국 유교가 동양 3國의 유교와 비교해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본은 退溪 李滉의 사상을 받아들인 후 유교가 실용적으로 발전을 했고, 이를 정치적 이데올로기로 사용했습니다. 우리처럼 생활 속에서 유교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데까지 발전시키지는 못한 것이죠.

이는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중국도 명절을 쇠고, 민족 대이동을 하지만, 그것이 우리처럼 진정으로 조상에 감사하고, 교감하는 행위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유교는 하나의 율법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부모를 공경하라」, 「예의를 지켜라」 하는 것이 말이 아닌 생활 속에 실천되면서 전해진 것이죠』

―몇 년 전 한국·대만·홍콩·싱가포르를 「아시아의 4龍」이라고 하면서, 유교 등 「東아시아의 가치」가 자본주의와 결합되어 경제발전을 이루었다는 주장이 제기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에는 「東아시아 가치」란 이야기가 잘 들리지 않는데요.

『유교의 가르침이 결국 勞使갈등, 빈부차이에서 오는 갈등 등 물질문명이 발달하면서 생기는 각종 사회갈등을 조화롭게 해결할 수 있는 열쇠라고 봅니다. 유교는 「이익보다 의리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梁(양)나라 惠王(혜왕)이 孟子에게 「어떻게 하면 내 나라에 이익이 올까」 하고 물었습니다. 孟子는 「王이 이익을 추구하면 신하도 이익을 추구하고, 신하가 이익을 추구하면 백성이 이익을 추구하게 되어 온 나라가 혼란해진다」고 대답했습니다. 아주 핵심을 짚은 말입니다.

온 나라가 모두 「이익」에만 혈안이 되면 나라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朴正熙 대통령 때까지는 서구 자본주의로 하루빨리 진입하기 위해 달려왔습니다. 이제는 우리도 公共의 大義를 생각하는 유교적 자본주의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봅니다』


「義」와 「禮」가 사회발전의 토대다

―유교가 21세기 경제발전에 걸림돌이 된다고는 생각지 않는지요.

『절대로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이 건강하다는 것은 그 사람의 면역체계가 제대로 작동한다는 뜻입니다. 경제나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IMF 외환위기 이후에 기업이 구조조정을 하고 투명한 경영구조로 전환하는 것이 결국은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기르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사회의 면역력을 높이는 것은 유교가 가르친 「義」와 「禮」 사상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유교의 義와 禮 사상을 제대로 지켜 나가면 국민이 자기의 이익에만 혈안되지 않고, 사람을 먼저 생각하고 타인을 생각하는 건강한 자본주의를 만들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런 제대로 된 사회를 「유교적 자본주의」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조선후기에 유교가 관념적으로 흘러 空理空論(공리공론)이 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유교가 양반계급의 통치 도구로 쓰였기 때문에, 오늘날의 평등사상과 충돌하는 것 아닐까요.

『신분질서가 분명하던 옛날의 「유교적 통치질서」로 돌아가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이 점에서 큰 오해를 합니다. 저는 유교가 남긴 좋은 유산을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상과 종교이라도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동시에 존재하게 마련입니다.

유교가 권력을 가진 자의 통치 이데올로기로 이용되어 온 것은 사실이지만, 유교에 꼭 그런 면만 있는 것이 아니거든요. 유교에서 말하는 「敬(경)」이라는 것은 지위高下를 막론하고 서로를 섬기는 것입니다. 「禮」라는 것은 윗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유교의 근본사상은 「人本主義」입니다』

崔仁浩씨는 『退溪 李滉같이 儒學(유학)을 완성시킨 위대한 사상가의 가르침을 잘 본받지 못하고, 「四色黨爭(사색당쟁)」이란 한마디로 배척하는 것은 민족의 소중한 정신문화를 스스로 저버리는 몰상식한 태도』라고 비판했다.

『오늘날 미국이 아무리 자본주의의 꽃을 피웠다고 해도 고등학교 총기난사, 인종차별, 테러 등이 빈번하게 발생합니다. 그러한 서구식 자본주의 사회가 우리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하는 사회는 분명히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진문물을 향해 가고 있더라도 우리의 정신만큼은 우리 민족의 원형질로 녹아 있는 불교와 유교 사상으로 再무장하자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그중에서 특히 유교의 가르침이 혼탁한 물질문명에 맞서는 「정의의 사도」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난 사람」보다 「된 사람」을 길러야

―학교에서 우리 민족 사상을 형성해 온 유교에 대한 교육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청교도 정신을 가르치고 있지 않습니까.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요즘 청소년을 보면 얼굴에 활기가 없어요. 학원에 시달리고, 입시에 시달리고…. 우리나라의 교육은 한 사람의 「난 사람」을 위한 교육으로 전락한 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을 길러 내겠다는 건가요? 교육에 대한 기본 가치관은 「난 사람」이 아니라 유교가 오랫동안 가르쳐 온 「된 사람」을 기르는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된 사람이 세상에 넘쳐나야 결국 개인과 사회에 행복을 가져다 주거든요』

―정권이 바뀔 때마다 「人性교육을 강조하겠다」고 하는데 그런 것이 「된 사람」을 기르는 유교 교육이 아닐까요.

『저는 교육부 장관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전시적인 교육방법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육십 나이까지 살아 본 바에 의하면 가장 행복한 사람은 어질고, 예의 바르고, 부모에게 孝道(효도)하는 사람입니다. 효도 하나만 학교에서 잘 가르쳐도 다른 것은 저절로 됩니다.

효도의 전통은 全세계에서 우리에게만 남아 있는 유교의 미덕이거든요. 비록 옛날처럼 엄격하게 효도를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효도해야겠다는 관념조차 버리면 우리 민족은 끝난다고 봅니다. 학교에서 효도 교육만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합니다』


趙光祖, 『나와 임금이 먼저 변해야 한다』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義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것조차 꺼리지 않았습니다. 조선의 선비정신이 왜 지금의 지식인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고 보십니까.

『저는 趙光祖에 대해 쓰면서 私感(사감)을 배제하려고 무척 애를 썼습니다. 어느 정치인이 저에게 「趙光祖를 너무 냉정하게 기술한 것 아니냐」고 하더군요. 어느 시대건 집권자는 개혁을 부르짖는 것이 생리입니다. 그런데 그 개혁이 자기 집권을 강화하고, 파벌을 위하고, 자기의 정치적 생명을 존속하기 위한 개혁이 되면 아무런 감동이 없죠.

趙光祖는 「당신이 먼저 변하라」고 주장한 것이 아니고, 「나와 임금이 먼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것이 趙光祖의 위대한 점이죠. 그는 孔子의 王道政治(왕도정치)를 실천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趙光祖처럼 義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기개와 절개가 조선의 선비정신으로 면면히 이어진 것입니다』

그는 『가정과 학교 교육현장에서는 孝와 禮를 최고의 가치로 가르치고, 사회생활에서는 선비사상을 최고의 덕목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시대의 선비정신이 청렴하고 義와 名譽(명예)를 위해 생명까지 버릴 수 있는 절개를 말한다면, 오늘날의 선비정신은 국민을 위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탐하지 않고, 부정부패하지 않고, 돈과 권력의 유혹에 굴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선비정신이 단절된 것은 조선 후기로 오면서 유교가 空理空論에 빠진 것도 한 가지 원인이겠지만, 그보다는 조선末 대두한 實事求是의 실학사상을 새로운 세대에 적용하기도 전에 일본에 먹힌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고 봅니다.

일본은 우리 민족에게 열등감을 주기 위해 조선의 역사를 「四色黨爭(사색당쟁)의 역사」라고 폄하하는 교육을 집요하게 했습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가 할 일입니다. 사회가 이익을 좇는 것만 숭상하다 보면 사람이란 것이 이익을 위한 매개체로밖에 보이지 않게 됩니다. 때문에 선비정신으로 무장해서 인간을 인간으로 보는 유교적 가치관을 향해 점점 좁혀 들어갈 때가 된 것입니다』


국난극복, 유교의 선비정신이 바탕

―병자호란은 우리가 明에 대한 의리를 지키려다 부른 비극입니다. 「당시 집권층이 명분 때문에 쓸데없는 전쟁을 불러 백성을 고통에 빠뜨렸다」고 오늘날 많은 욕을 먹고 있는데요.

『오늘날의 실용주의 정신으로 볼 때는 당시 집권층들이 이해하지 못할 고집불통 집단처럼 보일 겁니다. 하지만, 그 당시 사람들의 이데올로기에서는 병자호란은 大義를 위한 투쟁이었습니다. 義를 위해 목숨을 버리는 節槪(절개)는 유교의 실천덕목이거든요. 王朝의 존립 기반이자 유교의 최고 덕목인 義를 배반할 수 없었던 겁니다.

이후 유교가 백성들의 삶을 외면하고 점차 空理空論으로 흐르니까 조선후기에 이르러 實事求是 정신으로 돌아가자는 유학의 新조류가 나타납니다. 그렇다고 조선후기 실학자들이 유교의 義를 배척한 것이 아닙니다』

崔仁浩씨는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舊韓末 등 국난 때마다 의병이 일어 난 것은 세계사에서 매우 특이한 사례에 해당한다』며 『의병도 유교의 선비정신이 바탕되었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었으며, 이러한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집단이 당시 백성들을 설득시킬 수 있을 정도로 도덕성을 확보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儒林」이라는 책을 쓰면서 孔子에 대해서 어떤 생각을 가지게 됐나요.

『책을 쓰기 전까지는 개인적으로 孔子에 대해 별로 좋지 않은 감정을 가졌습니다. 세계 3대 聖人 중 하나인 孔子가 13년 동안 어떻게 보면 벼슬 한 자리 얻으려고 온갖 괄시를 당하면서 세상을 돌아다닌 것을 이해를 할 수 없었죠.

하지만 소설을 쓰면서 孔子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 버렸습니다. 孔子는 참으로 인간적인 사람이에요. 孔子는 어떻게든지 상대를 설득하여, 자기 힘으로 정치권력을 변화시켜 보려고 한 사람입니다. 그 과정에서 제자들도 孔子의 말에 반기를 많이 듭니다. 세계의 3大 聖人 중에 제자에게 그렇게 망신당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는 교주가 아닌 인간입니다』

―退溪 李滉의 매력은 무엇입니까.

『退溪는 孔子로부터 내려온 儒林이라는 숲에서 儒家사상을 총정리한 위대한 사상가입니다. 중국에는 朱子 이후 학자는 많이 나왔지만 退溪 같은 大사상가는 배출되지 않았습니다. 退溪의 사상은 유교의 물결을 일본까지 확산시켰습니다.

退溪는 선비로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뛰어난 사표가 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벼슬을 70여 번이나 사양할 정도로 평생 스스로를 은둔화했습니다. 그러면서 「도산서원」이라는 우리나라 최초의 학문집단을 만들었습니다.

退溪는 굉장히 가난했어요. 청렴한 것이죠. 단양 군수에 있을 때 갓과 신이 다 헤어져 「갓과 신을 보내 달라」고 아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남아 있습니다. 退溪는 선비정신을 실천한 상징으로 오늘날 사회발전 원동력으로 충분히 귀감이 될 수 있습니다』


退溪는 위대한 스승

―崔선생님이 말씀한 「선비정신」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가치관으로 자리 잡는 때가 올까요.

『개인에게 人格(인격)이 있다면 나라에는 國格(국격)이 있습니다. 국민성이 바로 國格으로 나타납니다. 지금부터 미디어나 종교, 지도자 등 사회적 필터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의 혼탁한 물꼬를 서서히 바로잡아 가야 한다고 봅니다.

「儒林」이란 책이 이런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작은 힘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다 보면 王道政治를 제대로 실현하는 지도자가 나올 것이고, 우리 민족이 세계사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리라고 봅니다. 회오리바람이 처음부터 크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작은 바람이 모여서 점차 커지는 것이죠』●

조선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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